결대로
송언수
하늘 땅 바다 공기 등을 총칭하는 자연이라는 글자 뜻은 ‘본래 그렇다’이다. 삶의 궁극적 조건이자 지향인 자연은 그래서 인간 활동의 기준이기도 하다.
시비와 선악과 미추의 척도가 자연이다. 결은 어디에나 있는 자연이다. 숨결처럼 사람마다 본래 그런 것도 있고, 물결이나 바람결처럼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본래 그런 것도 있다. 그것을 그것대로 찾아주는 작업, 그것이 결대로다. 시간과 사건의 때를 벗겨 스스로 제 멋이 드러나게 하는 작업이다. 대지의 자식과 바다의 자식에게 자신의 쓸모와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일이 나전칠기다.
신미선 작가는 박완서처럼 애들 다 키운 후 시작한 늦깎이 작가이다. 그러나 박완서 같은 대단한 배경도 없고 맨땅에서 혼자 힘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도착한 땅이 어디든 뿌리내리고 그곳에서 정성을 다하는 개나리를 닮았다. 죽을힘으로 일가를 건사해 온, 시리게 아프지만 언제나 든든한, 통영의 이웃 같다. 십년 이상의 작업 연수, 여러 번의 수상실적, 다양한 작가활동이라도 처음은 언제나 두렵고 떨린다.
오늘의 낯섬과 정성이 내일도 계속되기를 빈다.
그녀의 작품에서 그녀의 결을 본다면 좋은 안목이다. 더하여 당신의 결을 본다면 좋은 인생이다. 그런 시간이기를 빈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성태
제목이 ‘제수씨의 첫 개인전’인 이 글은, 나전칠기 신미선 작가의 전시장에 걸렸다. 11년의 나전칠기 작업을 선보이는 첫 개인전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은 시아주버니가 그녀를 생각하며 적은 글이다. (갤러리 벽에 걸어 달라고 써 준 글이 아니다)
개인전 오픈하는 날, 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 정영만 선생과 중요무형문화재 염장 조대용 선생이 그녀와 나란히 서서 관람객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분들은 누가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는 분들이 아니다.
결은‘나무 돌 살갗 비단 따위의 조직이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녔다.
장조림을 만들려면 고기를 푹 삶아 결대로 찢는다. 고기를 굽거나 조릴 때는 결 반대로 잘라야 부드럽다. 피부가 비단결이라거나, 머릿결이 부드럽다거나 할 때 우리는‘결’이라는 단어를 쓴다. 사람에게도 쓴다. 화목하려면 결이 맞아야 한다거나, 그 사람은 우리와 결이 맞지 않는다거나. 한결같다는 말도 쓴다. 사람에게 결은 어쩌면 ‘인품’일 것이다.
나전칠기는 지난한 작업이다. 백골에 옻칠을 하고 사포질을 한다. 옻칠은 고르게 해야 한다. 고르지 않으면 얼룩덜룩해진다. 옻칠한 표면이 매끄러워야 하기 때문에 사포질은 필수다. 옻칠과 사포질은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밑 작업이 끝나면 나전을 올린다. 가느다란 상사를 칼로 끊어 장식하는 끊음질과 도안을 그려 자개를 오려 붙이는 주름질 기법이 있다. 무엇이 되었든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우리나라 전통치고 쉽고 빠른 게 없다.
마흔 넘은 나이에 시작한 나전 작업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가슴이 떨렸다는 그녀다. 뒤늦게 발견한 천직이다. 그녀 스스로도‘성실히’작업했다고 자부한다. 공예대전에서 연이어 수상하면서 그녀의 재능은 공인되었다. 이 작은 지역에서 시기와 질투가 왜 없었겠는가. 그녀는 거기에 일희일비 하지 않았다. 작품으로 말하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에만 몰두했다. 지금도 그녀는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며 자신의 작품만을 생각한다.
나무의 결과 자개의 결을 살리는 나전칠기 일을 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결을 살리겠다고 공방이름을 ‘결대로’라고 지었다. 그런 그녀의 결은 주위 사람들의 응원으로 더욱 빛난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중의 의미를 담은 시아주버니의 글과, 그녀의 작업을 응원하는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의 축하가 그녀의 결을 말해준다. 나무와 자개의 결을 살린 그녀의 결을 보러 전시장을 찾은 많은 이들은 그들 나름의 결로 그녀의 곁에 서 있다.
나의 결은 어떠한가 들여다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