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
바림하는 시간
2023. 02. 백란주
시절을 잊고 철쭉이 피었다. 시간을 잊고자 피어남인지, 알 수 없는 마음처럼 꽃망울을 터뜨릴 때 안쓰러움이 먼저였다. 거실에 두고 눈을 맞추던 순간 한 송이가 툭, 떨어진다. 찰나다. 시들지 못하고 통꽃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본 순간 나 또한 멈추었다. 꽃이 지는 노화의 과정을 건너뛰어 생을 마감한 한 송이를 거둔 내 손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둠과 밝음의 교차를 지켜보던 순간 친구 카카오 톡이 왔다. 밤늦은 시간이나, 이른 새벽 시간에 드러나는 전화 기능은 위급한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 내 안부를 묻는 대화가 오히려 폭풍전야처럼 손끝이 시려왔다. 예상했던 순간이 현실이 되었다. 떠났다는 글자를 읽는 순간 세상은 암전이 되었다. 미혼의 딸아이에 대한 마음은 순간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얼어붙은 자음과 모음 그리고 손가락은 핸드폰 위에서 서로를 외면하다 닫았다.
작년 가을,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자주 연락을 하거나 만나지 않지만, 초등 동창이라는 이유로 어색함의 거리를 줄여준다. 안부를 묻는 친구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잘 지내지’라고 묻지만, 왠지 안부가 아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들렸다. 무슨 일 있냐는 나의 물음에 큰딸아이가 너무 아프다고 한다. 암 투병 중인데 치료가 더 이상 의미 없다는 말을 무심히 한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하기에도 이미 위로가 되지 않는 시점, 먹먹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친구에게 희망 고문 같은 시간을 빌었다. 계절이 건넜고, 해가 바뀌어버린 것으로만 우리는 받아들였다.
단체 문자를 보내야 하는데 보낼 수가 없었다. 부고라는 글이 슬프지 않을 수 없지만 머리에 이는 슬픔보다 가슴에 묻는 슬픔은 더하지 않는가. 머리가 마음을 이끌지 못해 문자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전하는 문자와 부재중 전화. 전화기를 보면서도 마침표가 생각나지 않는 문장과 마주한다. 부모님들의 부고를 알리는 것과 무게가 다르다.
햇살이 마중 나온 정오, 내 손가락은 부고라는 글자를 썼다. 발인이라는 시간까지 적었지만, 그 형식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글도, 조문 시간을 정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가 소풍을 끝내고 따뜻하고 편안한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는 마침표 없는 문장을 보냈다. 무슨 일이고, 무슨 일이고, 무슨 일이고, 받은 이도 보낸 이도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깊은숨만 쉰다.
영하의 날씨인데 홍매화를 보내왔다. 한파에 얼어버릴 꽃이 걱정되었다. 거실에서도 툭, 꺾어진 철쭉을 보았던 터라 꽃이 피는 환호보다 지는 것에 대한 염려가 앞선다. 인연을 맺은 베란다 식물들은 떨림 증후군으로 분주하다. 오물거리는 몸짓으로 살아있음을 말한다. 어김없이 꽃대를 올린다. 삼십 년 가까운 난초, 이십여 년의 난초, 그리고 삼 년 차의 난초. 세 난초는 올해도 보란 듯이 꽃대를 올리며 꽃망울을 품었다. 내 아이와 보냈던 시간처럼 그들을 본다. 옹알이했던 순간처럼 꽃망울을 물고 있거나, 꽃띠의 나이처럼 만개하거나, 갈무리하는 시간처럼 잘 지고 있는 꽃을 보며 알아간다. 꽃이 피는 것만큼 지는 것도 중요함을.
친구 딸이 피우다 만 꽃을 누군가는 그리움으로 지는 시간을 채워 가리라 믿는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만으로 그리움이라는 꽃으로 지는 시간, 마침표 없는 문장이 되어 평생 가슴에서 사랑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바림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움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