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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
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만일 네 손이
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8:1-10)
1,2,3에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는데 '그때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
을 하시기 전 말씀을 마치고 난 뒤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 물었다는 말입니다. 앞에 하신 말씀
과 연장선은 아니지만, 우리 17:22,23절 말씀부터 한 번 살펴볼까요?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
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제삼 일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
하셨는데, 이 말씀은 지금 두 번째 하신 예고입니다. 이때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예고의 말씀에
대해 도무지 알아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를 못했어요. 이것은 성영님이 오셔서 증거를 받아야 영적
으로 이해할 수 있고 자기의 것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4에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버나움은 갈릴리 해변에 위치한 곳인데 여기서 '반 세겔 받는 자'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20세 이
상 된 남자들만 내는 성전세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최
소의 액수인 반 세겔을 매년 한 번 내는 것으로서 그것을 '생명의 속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반 세겔을 받는 자들이 '너희 선생도 반 세겔을 내야 하지 않느냐? 왜 내지 않느냐?'했다는 말입니
다. 그러자 베드로가 25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에 베드
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하셨습니다. 여
러분! 세상 나라의 임금, 즉 나라의 주인이 자기 아들에게 세금 부과하겠습니까, 타인에게 부과하
겠습니까? 타인에게입니다. 아들에겐 받을 일 없습니다. 임금의 나라이면 자기 아들의 나라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속전'이 되시고 성전이니,
성전세를 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전세를 받는 자들이 '생명의 속전'에 대한 이 같은
본뜻을 알고,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면 '생명의 속전'이 되실 분이 오셨으니, 예수님에게 반 세겔을
왜 내지 않느냐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는 타인입니다. 제자들도
그들에게는 타인입니다.
그래서 27에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셨습
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내가 생명의 속전으로 왔는데 어찌 성전세를 내라 하느
냐, 너희가 그것도 모르느냐 한다면 그들이 그러냐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정
한 율법을 어기고 폐지하려 한다고 오해하여 충돌이 일어날 것이니, 너희가 나와 너희를 위하여 가
져다주라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관리하는 재정에서 주라 하지 않으시고, 바다
에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 입을 열면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그것을 가져다주라고 하셨습니
다. 어떤 이들은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보인 것이라고 말하는데, 예수님은 어떤 의미 없이, 또는
우연히 신성을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성전세를 입을 열어 내준 물고기는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과 연관된 것으로서
바로 예수님이 그 성전세를 치르러 오신 것임을 표적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
기 배 속에 있었다가 다시 토해낸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사심을 상징합니다. 하여 예수님께
서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12장).
그러니까 물고기 입을 열어 동전 한 세겔을 얻어 성전세를 가져다준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물고기
가 요나를 삼켰다가 다시 토해낸 그 사건의 바통을 받아 자신이 죽으러 오신 생명의 속전이라는 것
을 보이신 뜻입니다. 생명의 속전이 되어 죽으러 오셨다는 것을 먼저 오르는 고기 입을 열어 한 세
겔을 가져다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해됐습니까?
이제 오늘 본문에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것을 묻는 것
은 이때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실 것에 대한 이해가 없던 때라, 눅9:
46에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라고 말했듯이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
여 왕이 되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논쟁을 하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다 알고 계셨는데, 자리에 대한 그런 경쟁심을 마음에 두고 있던 이 제자들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배정해 주실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너는 이 자리고 너는 저 자리라고 배정해 주시면, 논
쟁할 일도 없겠다는 생각에서 지금 예수님께 나와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지 않으시고 한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앞에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라면 몇 세 정도까지를 어린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7세까지요? 그래요. 7세는
어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린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암튼 예수님께서 불러 세운 어린
아이는 3세에서 6세 정도까지가 아닐까 생각하고, 어린아이로서의 그 특성을 가지고 말씀을 나눠보
겠습니다. 예수님은 대답 대신에 둘러보시고 한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제자들 앞에 세우시고 진
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한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
면 여러분은 어린아이에 대해 말씀하신 이것을 깨달아 보았습니까? 아니,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여러분은 다 어린아이와 같아서 천국에 들어간 자기 되었느냐는 말입니
다. 여러분! '결단코'라고 하셨습니다. 결단코!
그러면 왜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왜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는지 우리 한번 생각해보
겠습니다. 어린아이 하면 여러분 뭐가 생각납니까? 순진성, 엄마만 의지하는 것, 천사 같은 모습,
혼자 살 수 없는....,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다 맞습니다. 아이 처지에서는 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오늘 얻고자 하는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아이는 악함이 없고 순진하고,
거짓이 없고, 겸손하니 그래서 예수님이 그것을 가르치시려고 어린아이를 앞에 세우셨다고들 말합
니다. 그러나 이것은 답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이라고 해서 순진한 것 아닙니다. 거짓도 겸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도 본성 속에 거짓이 가득하고 악함이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불리하면 거짓말합니다. 아이이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나 말이 귀엽고 예쁘다는 것이지, 순진성이라
하면 모순이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신 것은 바로 어린아이의 특
성을 들어서 제자들에게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는 누구만 있으면 됩니까? 자기 부모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어린아이니까 부모
보다는 대부분 엄마와 함께 많이 있게 되니,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부모 개념보다는 엄마만 있으면,
엄마 품만 있으면 평온한 것이지 다른 것 어떤 것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암튼 어린아이는 부
모 품이 가장 편안하고, 부모 품이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에게
고대광실을 지어줘도 그거 욕심 없습니다. 그거 관심도 없습니다. 아이 앞에 돈을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너 이 돈 가지라'해도 그것이 낯설기만 하지 가치 모르는 것입니다. 시큰둥한 것이지 '아이
고, 이거 웬 돈이냐?'하고 싸안지 않습니다. 설사 가져봐야 한두 장 정도일 것입니다. 아이에게
"얘야, 네 엄마하고 이 돈하고 바꾸자"하면 그까짓 돈에는 관심 없고 오직 제 엄마를 어떻게 할까
봐서 절대로 엄마 품을 놓지 않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에게 "얘야, 너 명예가
또는 돈이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아느냐? 그래서 사람들이 그 명예 공명을 얻으려고
돈을 얻으려고 큰 힘을 쏟고 노력하는 데, 네가 네 엄마를 버리면 너에게 그것 다 줄게, 네 엄마 버
려라" 한다면 아이가 그러겠다고 할까요? 아니, 그것만 있으면 인생을 사는 것은 더는 바랄 것은 없
는 성공인데, 그거 싫다고 할까요? 오히려 아이는 엄마 아빠만 있으면 되지, 그런 말은 듣지도 않으
려고 엄마 아빠 품으로 더 파고들 것입니다. 세상 부귀 명예 영광 다 준다 해도 어린아이는 그런 것
에 관심도 없고 그딴 것 다 필요 없고, 오직 엄마 아빠만 있으면 됩니다. 아이는 부모만 있으면,
부모 품만 있으면 세상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잘 놀고 있는 것도 부모가 시야에 있기 때문입니다. 잘 놀다가도 눈앞에 부모가 안 보이면
그때는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라도 그거 필요 없습니다. 놀란 마음으로 놀던 것 다 팽개치고 이리저
리 울고불고 엄마 아빠를 불러대며 찾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왜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시
고 말씀하셨는지, 이 정도만 말씀을 드려도 여러분이 다 이해되지 않겠습니까? 아이는 부모만 있으
면 최고예요. 아이는 부모 품만 있으면 최고 좋은 안식처요, 세상 그 무엇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
러니까 어린아이의 이 특성을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예수님의 의도하신 바의 뜻을 벗어나 바리새인 서기관과 같게 될 뿐입니다. 단순한 하나, 어린아이
는 부모만 있으면 되지, 높은 자리 큰 자리, 명예, 영광, 돈을 바라며 이런 것들에 마음을 두고 있
지 않다. 아이는 그런 것들에 관심도 없고 계획도 없다. 염려나 근심도 하지 않는다. 단지 부모만
있으면 아이는 모든 것에 족해 한다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다 헛소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높다''내가 크다'하며 자리다툼의 변론을 벌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 천국
에서는 누가 크냐고 묻는 말에 이 같이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높은 자리, 큰
자리, 명예, 영광을 바라며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면 부모만 있
으면 족한 어린아이처럼 오직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으로 족한 것이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그같
이 부귀 명예 공명 그런 세상 영광을 바라는 나라가 아니요, 어린아이와 같은 그런 특성이 아니면
따를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이켜'하셨습니다. 돌이켜! 너희들
예수님 믿기로 했느냐? 너희가 참으로 예수님 믿고자 예수님께 나온 것이냐? 예수님이 묻습니다. 그
러면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런 것들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단호하십니다. '돌
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하셨습니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
니다. 여러분 세상 것을 바라고 계획하고 그런 것들을 따르면서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
까? 결단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학업을 하는 것도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여러분이 돈을 벌려고 애쓰는 것도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세상에서 부귀 명예 높은 자리, 큰 자리에 있기 원해서입니까? 세상 발전에 이바지하려
고 하는 것입니까? 세상의 것들을 누리고 살기 위해서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결
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요. 부르시는 음성을 들으면 하던 것 다 놓아버리고 세상에서 빨리
돌이켜 나와야 하는 겁니다. 여기에는 '그래, 네 사정이 그러니, 어쩔수 없으니, 하나님이 봐주실
것이니, 그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호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도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고, 내일도 날이 있고 날은 얼마든지 있으니 하며 흐지부지할 수 없다
는 것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만 있으면 되듯이 자기에게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님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 자기가 이 땅에 오게 된 이유, 하나님이 자기를 지으신
목적, 알고 보니 예수님을 만나 살라고 보내신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예수님이 아니면 자기 인생이
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 계시면 된다는 그 믿음과 그 삶이어야 하는 것으로 확실히 돌아
앉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명예가 아무리 좋아도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으로 유혹이 들어
와도 그것에 끌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에 우리가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계시면 되는 그것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어린아이에게 "네 부모와 명예와 바꾸자, 부모 택할래 명예 택할래, 부모
냐 돈이냐?"하면 아이가 뭘 택할까요? 아이는 돈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에요. 아이에게 물어보는
그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뭘 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도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는
데 그러면 어떻습니까? 이 물음도 믿는 시간이 길었던 여러분들에게는 이제는 당연히 어불성설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린아이의 특성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드렸으니 이제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4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오직 엄마(부모)가 아니면 안 되는 처
지를 아는 것, 자나 깨나 엄마(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있는 그것을 족해 하는, 기뻐하는 그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만이 아이에겐 행복이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자기를 낮춘다는 의미입
니다. 천국에서 큰 자라는 것은 위에서 설명 다 드렸으니 생략합니다만, 어린아이는 자기 부모만 있
으면, 부모 품만 있으면 다른 것 그 어떤 것도 쫓아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린아이가 좋아할
것을 보이며 감언이설로 '내가 네 엄마인데 내게 와라'해도 그 사람을 자기 엄마라고 따라가지 않습
니다. 이미 아이 마음에서 저를 품에 안고 함께 있는 엄마만이 제 엄마이지 속이는 그 말에 조금도
미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 엄마 품으로 달려들어 그런 말 듣지 않으려고 방어합니다. 부모와 함
께 있으면 아이는 길바닥이든지, 초가든지 기와집이든지, 어떤 환경에 있든지 그런 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부모가 있으면 아이는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고 안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이 어
린아이와 같은 그것이 자기를 낮추는 것이요,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신 것, 여러분이 이제 어린
아이와 같은 특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니 좀 더 깨달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다 새김질 될 줄 믿습니다.
좀 다른 말입니다만, 이 시대가 말입니다. 아이들이 아이 같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
이의 수준을 넘어 어른 같은 아이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아주 말하는 것도 아이 같지 않아서 좀 징
그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른이 오히려 대화가 딸리는 정도입니다. 그런 시대가 되었어
요. 우리 인간 입장에서 보는 순수함이라는 것이 없고 너무 되바라졌다고나 할까요. 그 정신세계들
에 대해서 사실 무섭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둘이 아
니야! 세상의 모든 것이 최첨단을 가고 있으니, 아이들의 정신세계도 거기에 발맞춰 가더란 얘기에
요. 그러니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곳으로 치닫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잡
아버릴 수 있는 매개체들은 사방에 깔려있고, 방송이나 통신의 네트워크(network)의 체계가 세계로
뻗어 있어서 감당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일주일 동안 몸의 이상 증세가 나타나 앓아누워서, 도무지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습니
다. 사람을 삼가라고 하신 것을 지켜 삼가야 할 일임에도, 사람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늘
앞서가다 보니 지켜지지가 않아, 그것으로 영적 해를 입는 일들이 계속 있게 되어 결국 일이 터졌
습니다. 더욱이 한 교회 안에 있는 경우에는 제가 경계한다 해도 어느 계기에 가서는 무너집니다.
나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사명과 나의 입장에 대한 규정(rule)을 지켜준다면 모를까, 접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상담식이 되어서 말려드는 것이지요. 이번 일을 겪게 된 경우도 귀신은 나의 그 같은
약함을 잘 알고, 귀신의 영향을 벗지 못할 운명이 된 한 가정을 내 앞에 두고, 안타까운 사정 이야
기를 나누게 하고, 기회 되면 그런 이야기를 듣게 하고, 동정심에 끌려서 같이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 연유들로 영적 해(害)가 차올랐는지 점차 내 몸에 귀신에 씐 증세가
차츰 보이더니, 결국 몸으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당사자가 겪는 고통과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의 안타까운 사정 이야기를 간혹 듣기
도 했었고, 상담을 청하면 면담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고, 내 마음이 거기에 동화되어 얼마나 고통
스러울까 하는 안쓰러움과 연민을 마음에 품게 되고 마음으로 아파하니, 지금 귀신이 나에게 영적
해를 입게 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려고 사람을 앞세워 놓고, 그들과 친근하게 하여 자기 사명을 행하
려고 와서 아주 그럴듯한 이유로 나를 속여 보이니, 내가 그 귀신에게 얼마나 잘 속아 주는지, 힘
을 펼치는 기회로 잡았던 것이지요. 그러니 말씀 앞에서 믿음을 잘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긍
휼히 여김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하여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곧 영적
인 화(禍)를 내가 불러들이게 된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병명으로는 대상 포진이라고 하던데, 생전 처음 몸에 이런 해를 입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왼쪽 귀
뒤쪽 머리 전체와 온 목까지 점령이 돼서, 온 머리와 목이 바늘로 찌르듯이 쑤시고 얼마나 아픈지
정신이 없는 겁니다. 거기에 감기몸살과 오한까지 겹쳐 정신이 몽롱해지고 비몽사몽이 되어 무엇
인지 가닥을 잡지 못하고 온 신경이 헤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잠을 좀 잤으면 좋겠는데, 밤낮 깊은
잠을 도무지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동정심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사람을 통한 귀
신의 모든 속임이 나의 온 신경을 공격하듯이 어지럽게 하고, 온갖 잡다한 것들이 복잡하게 신경
속에서 겹치는(overlap) 산만함으로 어디 뭐 붕 떠있는 것과 같았고, 그동안 말씀 준비한다고 나름
받았던 정신적 스트레스며, 또 설교 말씀을 책으로 만든다 하여 원고 교정하는 일로 받은 정신적인
부담감 등이 신경 속에서 전부 교차하며 뒤엉켜서 회오리바람처럼 마구 맴돌았습니다. 그러니 신경
을 공격받으니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내게 처한 상황은 내 미련함으로 인한 것임을 회개하며, 그러나 그들의 고통이 내 마음에 전
해져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마음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린 것이니, 나를 이곳에서 건져주시라고
계속 간청하였으나 듣지 않으신 것처럼 하시더니, 비로소 그 일로 내가 어떤 상황까지 갔는지 아주
의미심장한 그 상황을 비몽사몽에 보게 하셨습니다. 내가 사람을 통해서 귀신에게 속아 귀신과 함
께 교감하며 감정을 나누고 받아들였음으로 현재 받는 고통의 분량이 찰 때까지 겪어야 한다는 것,
예수님의 날이 이르기까지는 고통을 겪어야 할 것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어제는 성영님
께서 제게 여러 말씀을 주시며 그중에 어떤 현상을 보게 했느냐 하면, 지금 아기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기 낳게 해달라고 그것을 목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셨는데, 그
들에게 아기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태에 들어가 앉아서 잉태케 하여 그 귀신이 그
잉태된 아이와 함께 태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기가 안
생기면 그냥 안 생기는 것에 순응해야 하는데, 억지로 자녀를 낳으려는 그것이 큰 소원이 되어서
귀신에게 빌듯이 기도한다고 정성을 들이니,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귀신이 잉태케
하더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도해서 얻었다고, 하나님이 주셨다고 고백을 하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이면 모든
것에 순응이 돼가야 함에도 억지로라도 낳으려고....왜 그 인위적으로 아기 낳는 것 있지 않습니
까? 그것을 뭐라고 하지요? 인공수정, 맞아요!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모릅니
다. 창조 질서를 건드리는 일이 되어 아주 미워하시는 것이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를 흉내 내는 그 같은 일들을 허용함으로 인해서, 사실은 동성애라는
죄악의 누추하고 더러운 행위들이 힘을 가지고 일어나게 하는 하나의 빌미가 되게 하는 일이 되기
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해서 아기 낳았다고, 인위적으로 아기 만들어 낳아놓고 또 지옥 보내는
것입니다. 저도 구원받지 못하면서 아기 낳아 또 지옥 보내는 것입니다. 그걸 어제 영(환상)으로
보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이후에 제 남편에게 이야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말
하는 것도 불편하고 힘들고, 마음 아프고, 이야기한다고 또 곧이들어질까? 곧이들으면 또 뭐 해!
듣고 돌아서면 언제 들었느냐 하듯이 여전히 감각 없고 돌이킬 줄도, 깨닫지도 못하는데 하는 대화
를 했습니다. 그게 자기 욕심입니다. 자기 욕심! 인간 욕심! 육체의 정욕이에요. 그게 다 정욕이란
말입니다.
제가 만감이 교차하면서 너무 참담하고 슬펐습니다. 지옥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절실
하게 들었습니다. 지옥 때문에 마음에서 화가 다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아버지께 '지옥이
없다고 말해주세요'하며 나도 모르게 외쳤습니다. 제가 아픈 중에 비몽사몽 기도하느라 힘을 쓰는
겁니다. '성경은 지옥을 누누이 밝혀 주셨고 말씀해 주셨지만, 하나님 아버지! 지옥 없다고 해주세
요'하면서, 또 있는 지옥을 없다고 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님에도, 이런 맘 내려놓고 그만 힘들어
야 하겠다고 진즉부터 맘을 먹었음에도 안 되는 겁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해도 '지옥에 갔
을까, 천국에 갔을까, 일평생 예수님 믿는다고 했는데, 지옥 갔으면 어떡해!' 돌아가신 분들을 통해
서도 마음 고민이 있습니다. 주변을 봐도 교회를 봐도 여기저기를 다 봐도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 어디 구석에라도 지옥 없다고 써 놓은 것 좀 발견하게 해주세요. 나에게 발견하게 해주세요,
아버지, 성경에 없으면 제게 말씀이라도 해주세요. 지옥 없다고..... 지옥 없다고 말씀해주세요. 지
옥 없다고 말씀해주세요" 막 부르짖었습니다. 아~ 그랬는데, 예수님의 날 예배에 뭔 말씀을 전해야
하나 ....,성경을 그냥 읽지 뭐, 하고 편하게 생각했지만, 성경 읽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를 않았습
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예배 말씀에 대해 묵상하며 기도하는데 이 본문 말씀을 주신 겁
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니 지옥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옥은 있다. 지옥이 없는 것이 아
니라 있다고 응답하신 말씀이더란 말이에요. 이 말씀으로 말입니다.
그래도 나는 지옥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너무너무 정말 아주 진짜 싫어요. 그러면 아버지 지옥 없
다고 한마디만 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세상에 아무것도 염려 없습니다. 지옥만 없다면 아무것도 염
려 없습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옥 없다고 한마디만 해주세요. 그러면 저 자유
롭겠어요. 저 너무너무 행복하고, 혹 만일에 자식일지라도 예수님 안 믿는다면 '그래 네 편한 대로
살라 하고 버려두겠는데'라고 이런 억지를 부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잖아요. 지옥은 있다고 오
늘 말씀을 주신 거더라고요. 그렇기에 믿는 여러분, 세상이 좀 어렵지만, 어려운 거 좀 극복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어렵다 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 사랑하는 데에 모든 마음을 쏟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므로 영원한 천국, 그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들어가는 분들이 돼야 하겠지요?
그래서 이제 5의 말씀,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
니 제자들에게 천국에서 큰 자에 대한 말씀을 쭉 하시고, 또한 그같이 돌이켜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
이를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곧 예수님 자신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제
자식을 저 자신으로 보기 때문에 곧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어린아이와 같
은 자들을 위해서 죽으셨고 사셨습니다. 그렇기에 6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
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저도 예수님 앞에 어린아이로 아주 작은 자입니다. 그러나 이제 믿음의 장성한 자니 누구든지 나를
실족케 할 자는 또한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소자를 실족케 할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를 믿는 이 소자'하셨는데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면 왜 다른 누구 때문에 실족
합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맞지만, 아직은 어린아이
수준, 믿음이 잘 성장하도록 말씀의 양육이 필요한 어린 신자를 말합니다. 이 어린아이 하나를 '실
족케 하면' 무서운 말씀입니다. 아직은 예수님이 자기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것, 오직 예수님이 아
니면 살 수 없다는 것, 그 신앙 고백이 처음에는 진정 영의 믿음에서 나올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
는 누구든지 자기 의지, 혼의 의지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구원받아 진정한 믿음이 되
는 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와서 말씀을 배우고 성영님으로 자신을 알고, 예수님을 또한 성영님으로
배우고 앎으로써 또 연단 받으며 깨달아 깨어지고, 비로소 예수님이 자기의 구주요 모든 것이 되신
다는 그 확고부동한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나를 믿는 이 소자 중'한 것
은 아직은 믿음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될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다음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하신 이 '실족'은 덫이라는 말입니다. 덫! 짐승을 잡기 위해 놓
은 덧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덫은 누가 놓은 것일까요? 사단이 인본의 사람을 이용하여 놓
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믿는 길인 것처럼 하여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덫에 걸리도록 하는 것
을 말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끌어버리는 것, 그래서 유대교의 지도자들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이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전부 그런 방향으로 끌어버렸잖습니까? 전부 실족케 했잖아
요. 실족케 했어!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렇게 높은 자리, 큰 자리, 세상 영
광의 자리, 그런 자리다툼이나 한다면, 그것은 너희도 그들과 같은 세상으로 이 어린아이들을 실족
케 하는 것이니, 이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다 달아 깊은 바다에 빠트
리는 것이 나으니라. 다시 말해 실족케 하는 것보다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다 달고 바다에 빠트리
는 그것이 죄가 덜함으로써 낫다 그 말입니다. 실족케 하여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들어가게 하는 것
보다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아 바다에 넣어 죽음에 넣는 것, 즉 목숨을 죽이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7에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하셨습니다. 영혼들을 실족케 하는 일들로 세상에 화(禍)
가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영혼들을 실족케 하여 지옥 자식이 되게 함으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함께 심판에 들어가게 하는 그것이 바로 세상에 화가 있는 일임을 말합니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
을 수는 없으나'하는 것은 실족케 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일하다 보면 실족케 하는 일이 당연
히 있을 수는 있지 어떻게 없겠느냐 하는 그럴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실족케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세상에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는데 제자들아! 너희는 그렇게 실족케 해서는 안 된다. 실
족케 하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트리는 것이 낫다고 하심으로써 바로
실족케 하는 일이 얼마나 큰 화가 있을지를 말씀하시는 뜻입니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
으나,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상대적인 반어법 표현이에요.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해됐습니까?
그러면 오늘날은 사단이 인본을 이용하여 실족케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는 복
주시기 원하는 좋으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세상 복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복 주시기 원하
시니 예수 믿는다는 증거가 뭐냐, 복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여주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사는 것으로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은 잘살아야 한다. 물질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 증
거하는 일이지 않겠느냐. 세상에서 명예 얻고 이름을 내므로 잘 된 것을 보여주고, 믿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많이 있어서 복음의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고 하는 등의 이런 세상 것으로 복을 말하는
모든 것, 암튼 무엇이 되었든지 세상을 품게 하는 것으로, 예수님도 좋고 세상도 좋다 하는 이 같
은 누룩 넣은 떡을 선전함으로써, 마음을 끝까지 세상에다 고정하도록 하는 이런 것이 바로 실족케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두 주인을 섬기라고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두 주인 섬길 수 없다고 하셨
습니다. 또한,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아니면 세상입니다. 세상도 좋고 예수님
도 좋다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것도 좋고 세상의 복도 좋고, 아~ 알마나 좋아! 사람의 계산으로는
이거 금상첨화잖아요.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니 좋고, 세상에서도 잘사는 복이 있으니 참 좋지 않습
니까?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나은 신이 어디 있겠으며, 이보다
더 좋은 달콤한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은 육체의 본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질기고 강한지, 하나님께 물질의 복 달라고 기도해라 말 안
해도 자연적으로 합니다. 하지 말라 해도 자기 스스로 합니다. 육체의 것 세상 것을 위해 비는 것
이 본능이 하는 일이므로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 본능에서 나올 수
있도록,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교회는 그런 육체의 것 세상의 것을 위해
빌러 오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예수님
과 연합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가르침을 줘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
하고 받지 못하면 그의 문제지만, 세상도 주고 예수님도 주면 그것이 실족하는 일이니, 그것은 실족
케 한 자의 문제가 됩니다. 사람이 마음에 육체의 것 세상을 품고 있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예수님
은 그 안에 계실 수 없습니다. 마음이 듣고 받는다 해도 다시 밀려나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세상
을 품고 있으면, 그냥 밀려나 버린다는 말입니다. 절대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실 수가 없어요. 그렇기
에 세상을 품게 하거나 육체의 것을 위해 믿는 예수님으로 이끌어 주면 그것은 영의 구원을 받지 못
하도록 실족케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세상 복을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상의 복이나 육체의 복을 말할 수
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이 되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복은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되는 것이요, 잘되면 자연적으로 삶의 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삼
위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고 관계가 돼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니, 물질
의 복 달라고 기도하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그것을 기도하라고 그것을 본질처럼 말하기 때문
입니다. 사실 실족케 하는 것이 이미 그 자신이 영혼들을 실족하게 하는 자로 쓰임을 받고 있는 것
이기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정으로 믿기 원하여 그 진정의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미쁘시니
믿음을 도와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 진정의 마음이 없다는 것이지요.
제가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트리라 하신 것에 대하여 매우 의문이었고 궁금했
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 이런 사형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것
을 비유로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2014년 2월에 이 본문의 말씀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가운
데 얼결에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의도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은 것에 마음의 아
쉬움이 커서 그때 녹화한 영상을 홈피에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특히 6에서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
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라는 말씀이 깊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상태에서 말씀을 말했던 것입니
다. 그래서 그 내용에 대해 기억날 때마다 성영님께 질문을 드렸었는데, 제가 말씀 책 출간 때문에
지금 이 내용에 대한 원고 교정을 해오다가 여기까지는 교정 작업을 마쳤는데, 다음 이어갈 연자 맷
돌에 대한 의미가 속 시원히 풀리지 않아서 그냥 멈춰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말씀의 동영상이 있
는 것이 기억이 나서, 어쨌든 사람들이 그곳에서도 들어야 할 음성이 있음을 알고, 영상을 인터넷
에 올리고 본문 6의 말씀, 연자 맷돌 부분이 마음에 걸려 넘어가지 못한 점을 성영님께 아뢰고 깨달
아 알게 해주실 것을 간청 드렸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지금 다음 말을 네가 기록하라, 내가 네 뇌
속에 보여 알게 하겠다"하셨습니다. 즉 그동안 전할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뜻풀이를 해주셨던 것처
럼 하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여 성영님께서 나의 뇌 속에 보이신 것은,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렸는데,
여러분, 연자 맷돌을 맨 줄을 반사적으로 자기가 풀어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단 1초도
여유 없이 그대로 바다 밑으로 직행합니다. 맷돌은 힘이 넘쳐 아주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사람의
목에 묶인 밧줄은 팽팽하게 사람의 목을 숨 쉴 틈도 없는 속도로 끌고 갑니다. 큰 연자 맷돌의 무
게나 바다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곳, 한 치 앞이 내다보이지 않은 암흑 속으로 떨어지는데 그
밑이 어디인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물속에서 사람이 버텨봐야 2,3분일 뿐이지, 그래서
살아있을 이유가 없는데 보기에는 분명히 목숨은 죽었는데, 그런데 또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었습
니다. 살아서 그 고통을 그대로 다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보이는 것은 맷돌에 매여 떨어지는 그 물의 압력으로 인해 심장이 터져버리고, 모든
장기가 다 터져버리고 이후 온몸이 갈기갈기 분해되어 없어지고, 나중엔 맷돌만 있었습니다. 그런
데 문제는 숨이 끝났으면 다 끝나야 하는데, 몸이 분해되었으면 그 사람은 이미 없어진 것인데, 왜
그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그의 외치는 처절한 소리가 울리는 겁니다. 심장이 터져나갈 때의 그 아픔
과 고통, 온 장기가 터져버릴 때의 그 아픔과 고통, 온 살점이 갈기갈기 떨어져 나갈 때의 그 고통
의 울부짖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워하는 처절한 그 울부짖음이 깊은 바닷속에서 울려 나왔습니다. 깊
은 바다, 한 번 떨어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지옥이란 곳의 처참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왜 예수님께서 그냥 바다에 빠뜨리라고 하셔도 되는데, 왜 깊은 바다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하신 것은 먼저는 제자들에게 너
희가 그런 세상 권력과 영광을 얻은 것처럼 누가 크냐를 논쟁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나를 따르는
것이면, 그것은 자신도 물론이거니와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께 나온 자들을 실족케 하는 것이 된다
는 것을 가르치신 뜻입니다. 그런 육의 것을 품고 예수님을 따를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기에, 외적
으로 따르는 것 같지만, 영으로는 절대로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는 것이기에, 결국은 사람을 자신
과 같은 곳, 자기가 있는 곳으로 믿음을 인도하게 되니 실족케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만
일 그러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그 영혼을 지옥
으로 보내는 것보다 목숨 죽이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어찌 목숨 죽이는 것을 옳은 것처럼 말씀
하시는 것이겠습니까? 지옥 보내는 것보다 그것이 낫다는 역설적인 말씀을 하심으로써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히 듣고 새겨듣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제가 지금, 제자들에게는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는 것을 여러분께 설명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자 중 하나를'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도 물론이거니와 제자 전
부를 포함한 표현입니다. 제자들끼리 자리다툼으로 논쟁하고 서로 주장을 높이고, 다시 말해 육의
정욕의 것들을 가지고 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그것은 피차간에 실족케 하는 일이 되는 것이라는 뜻
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세상 것을 취하려고 누가 크냐 하는 것으로 논쟁하여 다른 제자
의 마음에도 그런 본능이 원하는 것들을 붙잡도록 마음을 부추기면 그를 실족케 하는 것이니, 너희
가 그러려면 차라리 그를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고 깊은 바다에다 빠뜨리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육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게 하여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어 세상에 화가 있
는데, 그러나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누가 크냐고 묻는 제자에게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8,9에 만일 그런 육의 영광을 취하려는 그 일로 네 발이 네 손이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고 눈도 빼버리라고 하시는 것으로, 여기에는 타협도 여지(餘地)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또 한편 말씀을 인간 머리(인본)로 이해하여 사람들을 자기의 사상 안으로 끌어들이는 바리새인 서기관
같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세상 것으로 연결하여 세속화하는 사두개인 같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들과 같은 자들이 바로 사단이 실족케 하려고 놓은 덫입니다. 이 덫에 걸려 들어
가면 나올 길이 없습니다. 왜냐면 자기 본능이 원하는, 인본이 원하는 자기 본래의 것이니, 그것을 최고
의 것으로 맞는다고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까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린 장면
에서 보이신 것, 나타난 그 형편이 바로 그들의 영원 영원한 형편이 될 것을 성영님께서 보여 알게 하셨
습니다. 왜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깊은 바다에 던지는 것인가, 그것이 이해되지 않아 내내 의문에 빠진
내게 비로소 보이신 그 형편이 바로 실족케 한 그들에게 임할 심판의 모습이었다는 말입니다. 영영히 나
올 수 없는, 심연의 깊은 곳과 같은 지옥의 고통을 보이신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이것에
여러분은 감각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영혼을 실족케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가를 말
입니다. 깊은 심해 속으로 떨어져 심장이 터져 파열돼 나갈 때의 그 아픔과 고통, 오장 육부의 장기들이
파열될 때의 그 아픔과 고통, 숨을 쉴 수 없는 그 목이 조인 답답함과 아픔과 고통, 온 몸이 갈기갈기 떨
어져 나가는 그 아픔과 고통이 그대로 영원 영원하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바다에 던져져 물속에서 목숨이 죽는 고통의 시간은 2,3,4분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 심적으로 겪는 죽
음의 두려움과 고통이 또한 영원 영원할 것임을 상기케 하셨습니다.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같이 연자 맷돌을 목에다 매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라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성영님께서 보여 알게 하신 것을 받아 기록을 정리하고 나니 심신이 너무 곤하여져
서 쉬던 중에, 맷돌은 알겠는데 연자 맷돌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렴풋하여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다른 설명은 생략하고, 소나 나귀의 힘을 빌려 돌리는 대형 맷돌
로 큰 것은 지름이 120-150cm이고, 무게는 1t이 넘는 것도 있다고 되어 있어서, 연자 맷돌의 무게나
크기를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8절봅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기 8,9의 말씀은 마5:
27-30의 말씀, 간음치 말라 하신 말씀에서 오늘 눈 빼내 버리고 오른손 찍어 내버리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고 가르쳐 명하신 것은, 누구든지 믿기 원하는 자는 같이 받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천국은 제자들만 허락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옥 또한 예수님 당시에 실족케
한 자들만 허락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
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는데도 믿는다고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이, 정신은 조금 수양은 되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자기 육의 정신과 육의 욕구를 만족하게 하려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좀전에 말했던 것
처럼 여러분, 세상이 얼마나 좋습니까, 끝없이 발전하는 모든 물질문명의 것들로 삶의 편리함을 가져다
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말입니다. 그러니 그 편리함을 주는 세상을 쫓아가기 위해 마음을 쓰고 힘을
쓰고 시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 높은 학문을 하는 것도 대부분 세상 성공을 위하여서 하
는 것에 그 마음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대나라를 회복하여 왕이 되시면, 그것이 천국이고 그 천국에서 서로 높은
자리, 좋은 자리에 앉겠다고 논쟁을 벌이고 다투어오던 중이었는데, 해결이 나지 않으니 결국 예수님께
서 지정해 주실 것을 바라고 나와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누가 제일 높은 자리에 있습니까? 나
인가요? 제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의 이 같은 자리다
툼은 곧 육체의 정욕에서 나는 욕심이므로, 그 정욕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하시며 그것을 범죄라고 하셨
습니다. 제자들이 바라는 이 같은 영광이나 명예나 물질 등이 마음에서 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곧 손도
발도 눈도 다 그 일을 위해서 일할 것이고, 그것은 자기 육을 위하고 섬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그
런 것들에서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러분 '결단
코'라고 하셨습니다. 결단코! 결단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따른 양 눈이, 양손이, 양발이 다 그 일에 충성을 다하여 범죄케 하니, 범죄한다
면 손 하나 발 하나 찍어 내버리고 눈도 하나 빼버려라, 두 손, 두 발, 두 눈이 있어 범죄케 하여
지옥 불에 던지움을 받는 것보다 한 눈, 한 손, 한 발 가지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여러분,
이거 예수님께서 그냥 예사로, 농담으로 하신 말씀 아니라는 것, 명심하십시오. 저는 말입니다. 만
일 제가 저의 손 하나 발 하나 찍어내고, 눈 하나 빼야 한다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죽어도 못
할 것 같습니다. 순간 예기치 않은 어떤 사고가 나서 잘리고 빠졌다면 모를까 내가 내 손 찍어내고
내 발 찍어내고 내 눈을 빼야 하는 것,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못합니다. 생각만
해도 '어이구!' 몸서리쳐집니다. 차라리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저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고
그것이 기쁘고 행복한 것이지, 절대 내 손발 내가 못 찍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나의 것으로
받아 그렇게 사는 것이 훨씬 쉽지, 나는 눈 빼지 못해요. 참으로 예수님을 안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이것을 말로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생략합니다만.....,
여러분, 도끼로 손을 찍는다면 단번에 찍어지겠지요. 발도 손도 그렇고, 눈도 그렇고 단번에 잘라지
고 빠집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들에 걸림이 많으니, 한 손, 한 발, 단번에 좀 찍어 내
버리고, 눈 빼버려야 하지 않습니까?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원치 않으면 말입니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그곳이 자기에게 좋다 한다면 모를까, 단번에 찍어내고 빼버려야 하지 않는가 말입
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두 손, 두 발, 두 눈을 가지고 영원한 지옥 불에 던지움
을 받는 것보다 범죄케 하는 한 손, 한 발 찍어 내버리고 한 눈 빼라'고 하신 것은, 진짜 손 찍고
발 찍고 눈 하나 빼라는 것을 말씀하기보다는 그 같은 사단의 종노릇하는 육의 것들에서 즉각 찍어
내버리고 하나님에게로 온전히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찍어 내버리라'는 것은 지체치 않고 지금 바
로 그 마음에서 깨끗이 버리고 돌아서야 함을 말씀하는 뜻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심각히 듣기를 바랍
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겠거든 진짜 한 눈 빼고, 한 손, 한 발 찍어 내서라도 범죄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의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체가 해를 받는 것이 나으니 찍
어 내고 빼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왼편은 사단 쪽임을 의미하고 오른편은 하나님 쪽을 의미합니
다. 그렇기에 육을 지배한 사단의 것을 단호히 잘라버려라 그 말씀입니다. 그렇지 못하겠거든, 두
손, 두 발, 두 눈이 있어 범죄케 하는 것이면, 네 한 손, 네 한 발, 네 한 눈 찍어 내버리고 빼버리
고라도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런 말씀들 앞에 당당한 것을 보면 참 대단하고 아이러니(iro
ny)합니다. 말씀을 그냥 자기 맘대로 자기 편리하게 해석하고 그것을 정답처럼 여겨버리니 당연히
당당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 육이 바라는 것을 따라가는 일로 예수
님을 따를 수 없게 된다면, 차라리 손 찍어내고, 발 찍어내고, 눈 하나 빼내 버리라는 이 같은 단호
한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고, 마음을 세상에 두
고 쫓는 것, 그것은 두 손 두 발 두 눈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차라리 손 하나 발 하나 찍어 내버리
고 눈 하나 빼내 버리라. 두 손, 두 발, 두 눈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는 불구가 되
어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신 것입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하나님을 보는 한 눈만 있어야 함에도, 두 눈이 있어, 사단이 주인인 세상을 탐하는 눈을 두고 있
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그것들에 끌려가는 것이면, 그 눈은
빼내 버리라는 말입니다. 사단쪽의 것은 빼내 버리라는 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바라보았음으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
이게 된 그것으로 넘어진 것은, 예수님을 오시게 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하신 것이지만, 이제 예수님
이 오셨으니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육을 섬기는 것으로 사단의 세상
이니, 그곳에서 나와야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는다는 사람들이 에덴의
그 사건은 자기와 상관없는 것이 되어 있습니다. 상관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은 주님을 믿
어서 구원받았으니까 됐고, 에덴동산의 사건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아담과 하와의 일이니 됐고, 하나
님이 날 사랑하시니 세상에서도 남보다 뛰어나고 이름나고 복을 받아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보이겠다고 그 복 주시라고 종교 생활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는 것은 또 얼마나 좋아합
니까? 보는 것에 너무나 매료되어 있습니다. 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니 견물생심이라고 보는 것들
에 마음이 끌려가고 마음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보는 눈을 빼내 버리라고
하십니다. 보는 것 때문에 네 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명하셨습니다. 보기 때문에 네가
세상을 쫓느냐? 그럼 두 눈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눈 하나 빼버리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그러니 빼내 버리라는 것입니다. 세상 육의 것을 보는 눈을 빼내 버리면 이제 보이는
것이 하늘이지 않겠습니까? 영생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예수님 따르는 하늘길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냉혹한 말씀 같지만, 자기 분수를 알려 하지 않는 사람이 교만한 것입니다. 진짜 교만하고 자기애
가 대단합니다. 말씀대로 믿기 원한다고 하나님께 고백은 하면서도 사실은, 이것이 말씀대로 믿는
것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에게 불리한 말씀밖에 없으니 마음이 불편한 것입니다. 그러
니 후에는 그냥 자기가 편할 방향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영혼을 가진 존재로 세상에
왔고 그것이 인간에게 정해진 것인데, 지옥이 아니면 천국이라고 정해져 있으니, 정해진 이것을 벗
어날 길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옥이 어디 있고 천국이 어디 있어! 지옥 없어! 어디가 있어!"
한다 해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있다고 하면 있는 것입니다. 저도 얼
마나 답답하면 그렇게 거부하는 사람이라도 지옥에 가지 않았으면 하여, 지옥 없다고 말씀 좀 해주
시라고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지옥은 있다고, 지옥을 전하라고 아주 나에게도 딴 말 못
하도록 이 말씀을 딱 주시고 내 입으로 확실히 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있기도 전에 나의 죄를 대신 갚아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이미 죗값을 치
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면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내게 나아와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필요
없으니 불에다 넣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린아이들과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
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전제하여 말씀하시고 10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
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하셨
습니다. 여기서의 소자는 그때 당시에 창기나 세리 등 죄인이라고 비난받는 모든 자를 말합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지도자들이 이들을 비난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만나시고
치유하시고 죄를 사하시고 함께 식사도 하셨습니다. 그들을 맞아들여 자유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
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소자들에게 천사가 붙어 돕는다는 말입니다. 그
들을 업신여기면 그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다 보고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를 받으시면 어떻게 나오실까요? 하나님께서도 그를 업신여기실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의 외모나 형편을 보고 절대로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아이들과 같
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깨달아 보았습니다. 말씀의 의도를 다 깨닫고 각자 자신의 믿음의 말씀으로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눅9:48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는 말씀을 잘 새김질하여 보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 베푸사 말씀으로 사는 능력을 갖추게 하여 하늘 영광에 들게 하신 삼위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제 4 장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p89-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