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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기쁨을 돕기 위해 일하고,
사랑하기 위해 징계하십시오(고린도후서 1:23~2:11)
* 본문요약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에 다시 가지 않은 것은 그들을 아끼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서로 마음이 닫힌 상태에서 가봐야
공연히 바울이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자로 보일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을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의 기쁨을 돕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하는 일꾼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근심 가운데 그들에게 나아가기 보다 사랑을 담은 편지를 써 보냈던 것입니다.
그 편지로 범죄 한 성도가 벌을 받고 회개를 하였다면,
이제 그가 다시 교회의 회중 앞에 나오도록 용서하고 그를 도우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사탄의 책략에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찬 양 : 455장(새 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
432장(새 382) 너 근심 걱정 말아라
* 본문해설
1. 바울이 고린도에 가지 않은 이유(1:23~2:4)
1:23) 내가 내 영혼을 두고(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기 때문이라.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우리 마음대로)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린도후서 2장
2:1) 이제 나는 다시는 근심된(슬픈) 마음을 가지고는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은 너희뿐이라.)
그런데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설명 : 그런데 내가 너희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에게
내가 오히려 근심(아픔, 슬픔)을 안겨 주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그곳에 갔을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바로 그 사람에게서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내가 마음 아픈 일을 당하게 될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대단히 괴롭고 걱정하는 마음, 답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2. 처벌받은 성도를 용서하고 그의 회복을 도우라(2:5~11)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내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이 있었을지라도)
그는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고 말한 것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는 것이라.
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지나친 슬픔에 짓눌리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손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계략(궤계, 속셈)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 차라리(7절) : 말론
차라리(말론) : ‘매우 많이, 대단히’를 뜻하는 ‘말라’의 비교급으로
‘그보다 더 많이’라는 뜻입니다. 용서하고 위로하는 것을 더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11절) :
우리의 적은 사탄이지 징계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진짜 적이 누구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 묵상 point
1. 참된 리더십 :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 바울
바울이 고린도에 다시 방문하지 않은 것은
서로 마음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고린도에 방문하여
공연히 그들을 지배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기쁨을 돕는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진 리더의 참된 모습을 발견합니다.
1)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기쁨을 돕는 자(2~3절)
바울이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가진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로부터 자신이 듣기 거북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단지 바울 개인을 모욕하는 것뿐이었다면
바울이 그렇게 답답하고 슬프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짓 교사들의 말만 듣고 복음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대로 간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복음의 자리에 다시 돌아와
하나님과 바울과 고린도교회 성도들 모두가 기쁨을 얻는
참된 기쁨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랐습니다.
2)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자(1:23~24)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그들이 주께서 주시는 신령한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하는 자일뿐이라고 말합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자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만 내리는 자가 아니라,
자기도 그들과 함께 일하는 주님의 일꾼에 불과한 자라는 것입니다.
3) 기쁨과 사랑의 회복을 위해 지도력을 사용하는 자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이런저런 일을 하듯,
그는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모두가 다 함께 주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을 얻기 위해
각자 자기의 맡은 일을 하는 것처럼
지도자 역시 함께 기쁨을 얻기 위해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뿐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지도자는 자기감정 해소를 위해, 지도자라는 자기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일방적으로 남을 지배하려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그가 참된 기쁨을 얻도록 돕는 자입니다.
당신의 지도력은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합니다.
➀ 내 감정이나 자존감을 위해 지도력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교회에서 많은 경우에
내 마음이 불편했다, 혹은 내 자존심이 상했다는 이유로 갈등을 키워갑니다.
특히 당회원(목사와 장로)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이들은 자기 직분에 합당한 대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 직분에 합당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아주 크게 화를 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그의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➁ 우리는 서로의 기쁨을 돕기 위해 있는 자들입니다.
남을 지도하는 직책에 있는 자들은
내가 마음이 불편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늘 살펴야 합니다.
단지 내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바울처럼 그들이 복음의 자리를 잃어버려
기쁨을 상실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인지….
바리새인들처럼 단지 자기 자리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면
자칫 나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자를 지배하는 자들이 아니라
서로 기쁨을 돕는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 참된 징계 : 사랑하기 위해 징계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복잡한 문제가 생긴 것은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음행 사건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의 교인 중에 아버지의 여자와 동거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린도교회는 이 사람을 책망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사람을 자랑하기까지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5:1~13의 묵상포인트 1번을 참조하십시오.)
그래서 바울이 보낸 그 강력한 편지(고린도후서 10~13장)에서
이 문제를 아주 강력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은 마음을 졸이며 그 강력한 편지가
혹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더 닫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뜻밖에 그 사람은 물론 고린도교회 전체가
다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 범죄한 자가 회개하고 교회로부터 처벌도 받았으니
이제 그를 용서하고 교회의 성도로 받아주라는 편지를 씁니다.
이것이 고린도후서 1~9장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기가 그를 징계한 목적은
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1) 기쁨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 징계합니다(4절)
참된 징계는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나 부부간에나 자녀에게나 어디에서든
누군가에게 징계를 내린다면 기쁨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대로 그냥 가면 그가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니
그가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도력을 발휘하여 징계하는 것이어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징계가 되는 것입니다.
2) 회개와 믿음을 돕기 위해 징계합니다(4절)
그런데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신실한 믿음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를 따라 믿음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강력한 책망이 담긴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징계를 하는 직책을 가진 자들은
자신이 징계를 할 때에 회개와 믿음을 돕기 위한 것인지,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를 살피십시오.
3)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 징계합니다(4절)
그가 지금처럼 살아가면 주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게 되므로,
그가 주님 안에서 참된 믿음을 회복하여
나와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징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징계하는 것입니다.
이런 징계가 사람을 살립니다.
4) 잘못된 징계는 지나친 근심에 잠기게 합니다(7절)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에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징계합니다.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책망합니다.
사랑하기 위해 징계하는 자는
징계를 받는 자의 마음이 상태를 살피면서 징계하지만,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징계하는 자는 오직 자기감정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상대가 내 징계를 듣고 더 감정이 상하였더라도 그런 것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내 감정만 중요할 뿐입니다.
이렇게 내 상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징계하거나,
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혹은 내 직책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징계를 한다면
징계가 그 범위를 넘게 됩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징계에 반발을 하여 더욱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규합하여 징계한 자를 공격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징계는 사람을 망하게 하고 관계를 망쳐서
결국 그 공동체도 함께 무너지게 합니다.
● 묵상 :
➀ 가정에서도 사랑을 위해 징계하십시오.
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사랑을 나누어야 할 가정에서조차
자기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징계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기쁨을 돕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면
오히려 반발심만 키우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가 잘못했을 때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징계하는 자가 되십시오.
➁ 당신이 가진 권력을 기쁨을 돕기 위해 사용하십시오.
특히 당신이 권력을 가진 자라면
백성들의 기쁨을 돕기 위해 당신이 가진 권력을 사용하십시오.
백성들의 기쁨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기쁨을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한다면
차라리 권력을 가지지 못한 것만 못한 자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왕을 기억하신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이 가진 권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3. 기쁨을 기대한 사람에게서 도리어 갈등과 슬픔을 느낄 때(2, 7절)
바울은 고린도교회로부터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아테네 전도에서 크게 실망한 바울이
그다음 지역인 고린도에서 큰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기쁨을 주었던 그들이 바울에게 지도받기를 거부하고,
심지어 복음의 말씀까지 거부하여 도리어 바울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자들이
도리어 우리에게 근심과 갈등과 슬픔을 안겨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가족, 나에게 기쁨을 주는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애인, 다정한 친구들이 도리어 나에게 근심과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런 일들이 더욱 극렬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기쁨을 기대한 사람에게서 도리어 근심과 갈등을 얻게 되었다면
그 마음의 상실감은 그만큼 큽니다.
그에게 기쁨을 기대한 것이 크면 클수록 그 마음의 상처도 큽니다.
우리 모두 연약한 사람들이니
친근한 사람들로부터 기쁨과 위로를 받기를 바랍니다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묵상 : 주님의 위로로 만족할 줄 아는 자가 되십시오.
결국 우리가 믿고 의지할 자는 오직 주님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옆에 있는 자와 나누는 사랑과 섬김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자로부터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무슨 이상한 일 당한 것처럼 크게 상처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로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위로에 만족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마지막 때의 혼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4. 사탄의 책략 : 회개를 막고 신앙공동체를 파괴함
1) 징계를 받고 회개했다면 이제는 용서하고 위로하라(6~7절)
고린도전서와 그 강력한 편지에서
아버지의 여자와 동거를 한 그 사람을 아주 무섭게 책망했던 바울은,
그 사람이 고린도교회에서 회개를 했고,
또 교인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 처벌을 받았다면
그가 다시 신앙공동체로 나오게 하라고 말합니다.
다시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도록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고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랑하기 위해 징계를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비록 범죄 하여 고린도교회의 신앙에 나쁜 영향을 주고
많은 사람을 시험 들게 하였더라도,
그가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다면
그가 다시 신앙 공동체에 나오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2) 회개를 못하게 하는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지 마십시오(11절)
이렇게 그를 용서하고 다시 교회 공동체의 멤버로 활동할 수 있게 도와야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사탄의 속임수는 인간의 감정을 이용하여
회개를 불가능하게 하고 신앙공동체를 파괴하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였더라도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그를 향한 불쾌한 감정을 계속 갖도록 하여
신앙의 자리인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그가 다른 성도들을 규합하여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교회(신앙공동체)가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 묵상 :
➀ 회개하여 주님 앞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징계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회개한 교인을 용서하고 그가 회복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적은 범죄 한 성도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우리는 그가 범죄 하였을지라도 다시 주께로 돌아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회개하여 주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다시 가졌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를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하며 섬기는 자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➁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징계를 받은 자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우리의 적은 그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식구나 같은 성도끼리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라는 식으로 그에게 죄의 주홍글씨를 씌워
영원히 죄인 취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바른 믿음을 갖도록 돕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주관하려는 자가 아니라
기쁨을 돕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지배하려는 자가 아니라
참된 믿음을 갖도록
서로 돕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징계를 하더라도
사랑하기 위해 징계하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4. 중보기도 : 깨어진 가정과 교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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