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1장 탄생은 깨달음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핍박이 가장 극에 달했던 일제강점기에 문선명은 태어났다. 자연을 벗하면서 우주의 진리를 배워나갔고,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면서 16세에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40여 세가 될 때까지 삶은 고달프고, 굶주리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문선명은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1. 덕이 별까지 미치는 곳
덕성동(徳成洞), 풀이 하자면 "덕을 이룬다"는 뜻이다.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덕달면 (徳達面)에 있는 동의 이름이다. 문선명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훗날 그는 신도들에게
"본래 내가 태어난 곳은 평안북도 정주군 덕달면 덕성동입니다. 정주군에서, 지방에서 덕이 달해 가지고, 지방 가운데 어떤 마을에서 덕이 달해 가지고 그 다음에는 덕성동, 덕이 별에 비친다는 거예요. 덕이 있는 별이라는 것이 뭐예요? 그것은 주님을 상징하는 것 아니에요?"
라고 들려주었다. 덕성(徳成)을 덕성(徳星)으로 잘못 해석했지만 평생 하나님과 예수를 근간으로 삼는 종교에 헌신했으니 뜻풀이는 옳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951년 흥남 감옥에서 풀려난 후 남한으로 넘어왔고 40년이 지난 1991년에 다시 고향땅을 밟았다. 그리고 2012년 성화(聖和 별세)할 때까지 고향에 가지 못했다. 92년을 살면서 세계 구석구석 다니지 않은 곳이 없건만 정작 자신의 고향은 한 번밖에 가지 못했다. 그는 고향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아무리 멀더라도 근본을 떠날 수 없습니다. 변치 않는 심정적, 정서적인 근본을 떠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뿌리가 거기서 퍼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넘어설 존재가 없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심(郷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고향이라는 것은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교육의 재료를 80퍼센트 이상 공급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서 고향과의 인연을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겠어요?"
만약 문선명이 북한이 아닌 곳에서 태어나 고향땅을 언제든지 갈 수 있었다면 통일교의 역사는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며, 그만큼 한국과 세계의 상황도 지금과 달랐을지 모른다.
문선명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이다. (덕달면이 덕언면으로 바뀌었다) 흔히 평안도 사람들을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한다. 그의 말처럼 "용맹이 뛰어나 소련 중국 할 것 없이 국경을 잘 넘나들고 어디든지 걸어다닌다." 그 기질을 이어받은 문선명은 평생동안 수많은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며 평화, 화합, 교육, 기업, 종교 활동을 펼쳤다.
문선명은 남평문씨(南平 文氏)다.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성씨가 그러하듯 남평문씨도 그 창시는 전설에 따른다.
서기 472년(백제 개로왕 15년) 전남 남평현 동쪽에 장자지(長者池)란 못이 있고 그 못가에 천길 높이의 바위가 솟아 있었다. 하루는 군주가 그 바위 아래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에 오색구름이 감돌면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신기하게 여긴 군주가 바위 위에 올라가 보니 석함이 놓여 있었고, 그 속에는 피부가 옥설같이 맑고 용모가 아름다운 갓난아기가 들어 있었다. 그 군주는 아기를 데려와 길렀는데 5세에 문사에 스스로 통달하고 무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았다. 그리하여 성을 문(文)으로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이라 칭했다. 그후 삼중대광 벽상공신으로 남평백에 봉해지고 98세까지 살았다. 그 후손들이 남평문씨이다.
이는 전설이기에 정확한 기록은 아니다. 남평문씨 대종회에서는 백제 개로왕 15년의 탄생은 고려 개국공신이라는 역사 기록과 맞지 않아 통일신라 말기로 정정하였다. 또 시조에서 중시조까지는 해석상 모순이 있어 1731년 장흥 월천서원에서 발간한 남평문씨 최초의 족보인 신해보(辛亥譜)에서 문익(文翼, 고려 문종 때의 대신)을 중시조(1세조)로 하였고 이후 최초의 합의된 대동보에서도 중시조를 1세로 하여 세계(世系)를 정리하였으며 최신의 대동보도 이를 따르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에는 남평문씨 인물이 여럿 실려 있다. 고려 때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文益漸), 태조 이성계의 7대 외조부인 문극겸(文克謙), 일제 강점기의 거부 문명기(文明埼), 정치인 문재인(文在寅), 영화배우 문소리(文素利), 목사 문익환(文益煥) 등등이다. 그러나 정작 문선명의 이름은 없다. 그만큼 세상으로부터 홀대를 받았다는 뜻 아닐까.
첫댓글 고맙습니다*^^*
아주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