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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세상과 벗 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됨
4.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
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5.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영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
다 하였느니라 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9.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
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4:4-10)
오늘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
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
말 이해되지 않는 분 없지요?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 세상과 친한 자,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이
물음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신앙을 말하면서,
세상과 여전히 친밀하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다 하
면서 세상과 가까우면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자기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간음하면, 그는 그 남편의 분노를 사서 더러운 여자로 정죄
받고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같이 세상과 벗하는 자는, 세상과 가까운 자는, 세상과 간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음하는 자들이여, 세상을 벗처
럼 친구처럼 가깝게 하는 자들이여, 그것은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 맺는 것인데, 그다음 6에서 하나
님이 누구를 물리치신다고요? 교만한 자, 세상과 간음한 자들은 교만한 자인데, 하나님께서 그 교
만한 자를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마귀가 인본과 이룩한 마귀의 세상입니다. 마귀가 세상 임금입니다. 세상의 특징은 탐욕과
허세와 사치와 낭비와 집착과 애착과 자랑하는 것과 욕심과 쌓는 것과 경쟁하는 것과 싸움입니다.
믿는다면서도 세상을 벗 삼고 있으면, 세상 것에 집착하는 것이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
과 간음하는 교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7에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하라"고 합니다. 세상과 간음하는 교만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피한다고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하리라 하니까 그저 이 대목만 보고, 나를 해코지하려는 마귀라는 존
재에 대해서만 대적하여 물리치라는 말씀으로 알고 '마귀야 물러가라' 합니다만, 세상을 벗하고 있
는 사람이 마귀가 가져다주는 마귀의 것들로 간음하면서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마귀가 대적
이 되겠습니까? 세상과 벗하는 것을 버리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외치는 것이 아
니라 절교를 선언하고 떠나 나오는 것이 대적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믿음이 되지 못
하도록 막는 가장 쉬운 것이, 세상과 벗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믿는 이
유를, 구원받는 것도 믿지만, 물질적인 것에다 마음을 더 두게 합니다. 세상에서 잘살아야 하는 것
이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신 복인 것처럼 하여 세상 것에다 마음을 고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세상에 붙들리게 하여 꽁꽁 묶어놓는 것입니다.
8절에서 그것을 뭐라고 말합니까?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마음을 어떻게 하라고요? 성결케 하라 앞에서 세상 특징이 뭐라고 했습
니까? 탐욕과 허세와 사치와 낭비와 집착과 자랑하는 것과 반항하는 것과 욕심과 경쟁과 쌓는 것과
싸움이라는 말이죠. 이런 것들에서 돌이켜 자신을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오직 내게 예수님만 계시
는, 예수님만 사랑하는 성결이 돼야 믿음이요 구원입니다. 9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라는 겁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라 세상을 벗하여 살던 죄인의 삶
을 애통하고, 세상 것 때문에 웃고 즐기기 원한, 세상 정욕을 따른 죄를 애통하고, 세상 즐거움을
얻고자 세상과 벗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임을 알고, 근심으로 바꾸어 회개하라는 겁니
다. 10에 주 앞에서 낮추라 하셨으니 주 앞에서 낮추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 앞에 자신을 알고
낮추는 것이 회개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죄인임을 아는 것이 회개를 아는 것이
요, 그 은혜의 크기를 아는 것이요, 주 예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원하면 반드시 세상과 벗하는 것들을 대적해야 합니다. 다 물리쳐야 합니다. 두 마
음 품은 것을 지체치 말고 대적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과 복종의 겸손이 돼야 여러분 삽니
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순종하는 겸손을 가져야 산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벗하여 즐거움을 얻고 기
쁨을 얻으려는 두 마음을 품은 것에서 나와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여 따르는 성결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두 마음 품은 것을 교만이라 하고 교만은 구원받지 못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옥
이냐? 영생 복락이냐?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을 택할 것이냐? 예수님을 택할 것이냐?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는 길은 두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라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사람들이 두 마음을 품고 세상과 간음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알고자 하는
적극적인 믿음의 자세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것을 분명히 지적하여 '세상과 간음하는 여자들
이여, 세상이 벗이 되어 있는 자들이여'라고 외치며 그것은 다 죄요,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니 그것
을 깨끗이 하고 성결케 하라고 충고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세상으로 간음하는 것,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한 부분만이라도 말씀을 드려보
려고 합니다. 성전 말씀이나 다른 말씀에도 다 다루었지만, 생활 속에서 여전히 품고 살면서 속고
있는 세상이 무엇인가? 오늘 좀 더 나눌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뜻을 거스르고 벗어나 육의 소욕
을 좇아서 행하는 것이 다 세상입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것에 대한 이론은 잘 알면서도 실제
자기 생활에서는 간음을 열심히 행합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 세상과 벗으로 삼고 살았던 것을 그대
로 끌고 와서 감각 없이 행하며 살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형벌이 따라붙는 것입니다.
오늘 4의 '세상과 벗 된 것이'에서 세상을 헬라어로 '코스모스'라고 합니다. 코스모스는 그 뜻이
체계, 조직, 또는 대적, 원수, 악의 지배 등입니다. 요약하자면 '사단이 자기의 것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라는 뜻이에요. 성서에 우리말로 세상이라는 단어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하면 전부 다 사단의 코스모스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만도 세상을 원어로는
'아이온'이라고 한 곳도 있고 '오이쿠메네'라고 한 곳도 있고, 아무튼 시간 세상을 말할 때나 또
'현존하는 세계' 또는 '물질적인 세계'등을 말할 때 원어는 다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세상이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문장이나 문맥을 통해 그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세상이라는 단어
만 보면 무조건 사단이 조직한 코스모스 세상으로 보시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히4:3에 9:26에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라고 했는데,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코스모스의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 자연 만물을 창조했습
니다. 그러나 코스모스의 세상은 창조가 아니라 누가 세웠다고요? 사단이 자기 세상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세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물질세계,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말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했으니, 그 세상을 같은 세상으로 보면 안 됩니다. 히2:5에서
도 장차 오는 세상을 이라고 해서 장차 오는 세상은 바로 예수님 강림 이후의 세계를 말하는 것으
로, 이때도 하나님께서 물질세계를 새롭게 하여 그 세계에 들어가 살기 때문에 그래서 '장차 오는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말씀의 문맥을 통해서 또 원어 뜻을 통해서 이해해 볼 수 있어야 하
지만, 어쨌든 하나님 창조의 목적하신 뜻을 거스르고 벗어나 육신의 원하는 바를 좇아 행하는 모든
것이 다 죄요 마귀의 코스모스 세상입니다.
약1:27에.....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
여기 '세속'도 똑같이 원어로 '코스모스'입니다. 아무튼, 세속의 세상은 마귀가 임금입니다. 요14:
30에 요12:31에 마귀를 '세상 임금'이라고 했고, 고후4:4에 '이 세상 신'이라 했고, 엡2:2에 '공중
의 권세 잡은 자'라 했고, 요8:44에 거짓을 창조해 낸 '거짓의 아비'요 그 거짓으로 계12:9에 '온
천하를 꾀는 자' 즉 세상으로 살게 하여 결국은 지옥으로 끌고 가는 자라고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
습니다. 이같이 마귀와 세상을 분명하게 가르치시고, 믿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도록 하셨음
에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과 벗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영생보다는 세상을 더 중히 여기는 것
이니, 그의 구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구원받지 못해요. 예수님 믿는다는 그
구원의 증거는 그의 삶을 통해 마귀 것이냐, 하나님의 것이냐?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 하나님께서 더럽게 여기시는 것이 도덕적인 것에만 있는 줄로 생각
지 마세요. 그것은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생각입니다. 도둑질, 살인, 거짓말, 사기 등의 이런 도덕
을 거스른 것은 즉시 죄로 드러나는 것이지만, 세상을 벗하는 것은 아무도 죄로 보지 않습니다. 세
상으로 사는 인간에겐 환영할 뿐만 아니라 아주 합리적인 것입니다. 사단이 임금인 세상에서 사는
인간은 그것이 복인 줄 알고, 너무나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 환영하는 것이지만, 믿음에서는 죄보다
도 더 더럽게 하고 하나님을 더 거스르는 것이 바로 세상과 벗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옷을 입는 것은 몸을 가리고, 추위나 더위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래서 필요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추위나 더위에서 몸을 보호하는 기능보다는, 겉치장을 아름답게 하려고 온갖 무늬를
놓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모양을 만들어 놓는 옷과 같습니다. 여러분 옷에다 여러 가지 잡다한 무늬
를 놓는다고 그 옷이 더러워 보입니까? 죄로 보입니까? 더러워 보이는 것도 죄로 보이는 것도 아니
라 아름답게 보이는 것 아닙니까? 바로 세상이 그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 세상을 벗한다고 해서 죄
로 보지 않습니다. 세상은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이려고 놓는 무늬와 같아서 절대로 죄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그 세상을 위해서, 아름답고 화려한 그 세상을 취하려고 붙잡고
좇아갑니다.
그렇기에 믿는 자가 명예나 부귀를 이루기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것, 그것을 세상과 간음하는 죄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것으로 보는 자 없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로 보지 않습니
다. 오히려 부귀 명예를 얻는 것,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이라고 하고 칭찬하고 부러워합니다. 그
러나 세상 만족을 얻기 위한 것이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연예인이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며 온갖 형태의 춤을 추며 노래하는 것 죄로 봅니까? 도덕을 거스
르는 것이 아니니 죄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고 하여 선호합니다. 사람들의 성향이 되고 있습니다. 일반적 성향으로 흐르고, 선호하는 것
이라 말입니다. 여러분, 술장사한다고 해서 그것을 죄로 봅니까? 술 먹는 것도 죄로 보지 않습니
다. 몇십만 원, 몇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 들었다고, 몇십만 원, 몇백만 원짜리 구두를 신었다고,
몇백만 원짜리 짐승 가죽옷 입었다고 죄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능력으로 봅니다. 재력으로 봅
니다. 그 같은 것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처럼 여겨 자부심을 갖는 것이
지 않습니까?
제가, 요즘 물가가 비싸고 경제가 너무너무 어렵다고, 그럼에도 명품이라고 불리는 고가의 제품들
은 오히려 호황을 누린다는 그 뉴스 보도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세상이요, 세상은 이런 쪽으로 흘
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같은 세상을 죄로 봅니까? 믿는다 해도 사실은 다 세상을 좇고 있기
때문에, 죄로 보지 않고 능력으로 보고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코스모스 그 세상으로부터
좇아 나온 인간의 자랑이요. 탐욕이요. 허세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타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세상과 벗하여, 육체를 위하고 자기만족과 자존심을 위해서, 자기 기분을 위해서
사는 것이면 그것은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 되는 삶입니다. 참으로 믿기 원하면 자기에게서 세상을
몰아내야 합니다. 대적해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맺는 것입니다. 세상
은 자기가 결단하면 끝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단에게 유혹을 받고,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지었어도 세상
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마귀의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하나님께서 오셔서 피 흘려 구속하신다는 예표로 친히 양을 잡아 피 흘려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그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신 뒤, 그들에게서 떠나신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신 것도 아니고,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떠나 사단의 세상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는 말입
니다. 그다음 사단은 아담의 후손인 가인이 하나님과 화해의 제사에 실패하자 하나님과 화해된 형
제 아벨에 대해 미움과 분노를 품게 하고, 제사를 받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한 분풀이로 동생 아벨
을 죽이도록 사주하여 살인하게 함으로써, 가인을 자기의 소유로 삼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기에 가인과 함께 하나님을 떠나간 인류는 사단의 소유가 되어서 사단의 탐욕과 잘못된 집착과
거짓과 위선과 미움과 원한과 두려움과 불안과 속임 등, 이 같은 어둠의 요소들로 성품이 되어 자라
났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불안한 내일을 살게 되었고, 자기를 즐겁게 하여 두려움과 불안함을
떨치려고 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게 되었고, 먹고 마시는 것과 입는 것의 즐거움에 집착하게 하였
고, 자기를 방어할 도구들을 발명하는데 집착하게 되었고, 각종 방탕한 오락을 계획하는데 집착하
게 하였고, 자기의 성,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성을 구축하는 것에 집착하게 하였습니다.
창4장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자기 힘으로 살고자 쌓아 올리는 문화 항목이 기록되었잖습니까, 사
단은 이 네 항목이 더욱 구체적이게 하고 체계적이게 하여 자기 세상을 조직해 나간 것입니다. 사
람은 점차 여기에 얽매이고 사로잡혀서, 사는 뜻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빠져 끝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고, 간음과 부도덕으로 천하고 더러우며 영이 없는 짐승과 일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
단의 조직 아래 있는 그 세상을 엄중히 심판하신다는 것을 노아 시대 때 홍수로 다 멸하여 보이셨
습니다. 세상 신이요, 세상 임금인 마귀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상은 이제 악의 극치를 이루었고,
죄로 보이지 않는 온갖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듯 하여 완전히 농익은 때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심히 가까워진 때가 되었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의 삶에 임재하여 계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방해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고, 사람들을 자기 소유로 삼고자 세상으로 유혹하는 마귀의 그 간계 앞에 맞서 이기는 한 계보를
두셨습니다. 마귀의 세상과 맞서 이기는 소수의 사람으로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의 은
혜를 입었으며 하는 사람들을 두셨다는 말입니다. 죄는 가졌지만, 세상과 합류하지 않은 사람들 즉
아담과 그 후손 아벨과 셋과 그 셋의 후예들의 계보, 창세기 5장에 기록된 그 계보에서 에녹이 태어
났고 므두셀라가 태어났고 노아가 태어났고 노아의 아들 셈의 후예로 아브라함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조직된 세상 속에 살면서도 자기를 지켜 그 세상에 합류하지 않은 사람들, 죄에
서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을 그 계보 속에 두시고 함께 계시면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통
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같이 혈통적으로 죄는 가졌지만, 세상에 맞서며 세상을 따르지 않았던 사
람들과 함께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그런데도 오늘날 죄를 대속하여 그 죄에서 건져
주시고, 마귀의 그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시는 것을 모른다거나 행하는 것이 아니면, 하늘이 무너진
다 해도 구원받을 길은 없습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세상과 벗하면 그것은 간음하는 것으로서 하
나님께서 더러운 것으로 여기시는 것이요, 하나님과 원수 맺는 것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이 분명히
말하고 있고,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있음을 알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쓰이
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세상을 담고 그 세상과 벗하고 있으면 거룩하신 성영
님이 절대로 거하실 수 없습니다. 믿음을 돕기 위해 곁에 와계신 성영님도 어느 시점에서
떠나버리십니다.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이 그동안 듣지 못한 것도 아니고, 말하지 않았기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땅
에 있을 동안 필요한 것으로서 필수품이 아닌 그 이상은 다 세상입니다. 어떤 것이 되었든지 필요
외에는 다 세상입니다. 의복은 우리에게 필요입니다. 몸의 추위와 더위를 막고, 가리는 데 필요한
것으로 세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옷을 돋보이게 하려는 장식이나, 시대 유행을 따르는 것 절대 세
상입니다. 값비싼, 명품이라고 하는 것들에다 가치를 두고 자기 과시나 자기만족으로 삼고 있는
그런 것은 이미 하나님과 원수인 코스모스 세상입니다.
오늘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한 그 간음의 특징이 세상 사치와 낭비와 향락입니다. 사치는 누구를
위한 겁니까? 예수님을 위해 사치하는 것일까요?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믿음을 위해 사치하는 것
일까요?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낭비도 향락도 다 자기를 위한 겁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자기 기
분을 위해서 다 사치하고 낭비하는 것이지, 예수님을 위해서 믿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과 간
음하는 것입니다. 딤전2:9에 여자들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단장하지 말라 했습니다. 사치를
금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담한 옷을 입고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계17:4에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
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믿는
다는 사람들의 비유입니다.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었다는 것은, 세상 권력을 쥐었거나 권력에
몸담고자 하고, 부귀 영화를 누리며, 또는 그 부귀나 영화를 부러워하고, 또는 현재 그 영화를 누
리며 호화로운 생활에 취해 사는 것, 또는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을 말합니
다. 이로써 믿는다는 것이 다 거짓임을 드러나는 것입니다.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다'는 것은, 믿는 것의 알맹이가 없고 겉치장만 잘
포장된 것을 말합니다. 자기 몸을 귀금속으로 단장하는데, 귀금속 단장은 왜 합니까? 자기 아름다
움이 되고 자랑이 되고 과시하여 뽐내기 위함입니다. 머리에다 귀에다 옷에다 목에다 팔목에다 손
가락에다 꾸미고 장식하여 치장하는 이것으로 영적인 거짓된 믿음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사치로
향락의 잔을 들고' 자기의 즐거움으로 삼는 생활로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가증한 물건들'은 하나
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들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다 아는 거잖아요? 저의 전하는 말씀을 듣고
는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필요한 것, 다시 말해 집안의 물품들, 가구 등도 필요가 아니라, 용도를 넘어
서 고가품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귀히 여겨 쓸고 닦고 다칠세라, 깨질세라 애지중지하며 마음에 우
상이 돼 있는 것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물들의 형상이나 초상화로 장식한 것들, 박제나 그림들로
장식하여 놓은 것들, 다 자기의 우상으로써 하나님의 가증한 것들입니다. 그 앞에서 절하는 것만
우상이라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지 말라''섬기지 말라'고 하신 모든 것, 사람의 수공
물들을 장식품으로 놓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그런 것들은 필요가 아니라 자기 마음과 눈이 좋아하
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에게서 오늘 계17:4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으면 거짓이요, 음행이요,
그 속에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딤전2:9에 아담한 옷을 입으라 했습니다. 믿는 자로서 마땅히 예의를 갖추어 격에 맞는 단정한 옷
을 입어라, 깨끗하며 검소하며 격식에 맞는 단정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사치로 보인다거나
고가의 옷으로 자기 과시, 자기 자랑으로 보이거나, 또는 옷에 무늬나 생김새가 요란하고 별스럽게
생겼다거나, 또는 여자들의 옷이 밀착되거나 짧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다 세상
거짓 신으로부터 좇아 나온 것입니다. 신앙은 세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옛 생활인 마귀의 세상에
서 나와야 합니다. 나오는 것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뜻입니다. 구원의 새 생활로 들어가
려면 옛 생활방식은 깨끗이 끝을 내야 합니다. 예배하러 올 때도 하나님께 대한 예의나 성의가 없
이 자기 편리대로 아무 옷이나 입고 오는 것,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품이 보이는 겁니다. 신앙의
됨됨이, 인품의 됨됨이가 보인다는 말입니다.
또한, 돈도 세상은 아닙니다. 필요입니다. 그러나 돈이 마음을 차지하였다면 주인이요 세상입니다.
온전히 세상입니다. 돈을 좇아 사는 것, 돈을 위해 사는 것, 온전한 세상입니다. 마귀의 세상에
속해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
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라고 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
랑이요.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여기까지 1부 말씀임)
(여기부터는 2부 말씀임) 여러분, 말씀 제목을 "세상과 벗이 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됨"이라고 붙
였는데 제가 만들어 붙인 제목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세상과 벗 된 것이 무엇인지?
다 이해한 것이지요? 오늘 말씀도 받는 믿음이기를 바랍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지 않은,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변화를 받는 훈련의 때였습니
다. 교인이 많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교인들 가정에 방문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런데 방문하는 가정마다 저의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을 대적하는 그런 부류의 물건들이었습니다. 저 자신은 그런 것들을 원래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전혀 관심도 없었고, 다시 말해 어려서부터도 왠지 보기 싫은 것들이라 제 삶에서는 성경이 금하신
그런 것들이 전혀 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제가 성경이 금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교회 다니게 되고 성경을 읽게 된 것은 제 나이 35세 이후부터였는데 저의 성격상 어려서부터 아주
싫어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사신 저의 부모님도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삶 속
에는 하나님이 금하신 물건들을 취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교회 다니게 되었을 땐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적하는 저주받은 물
건인지는 몰랐습니다. 이후 성영님께서 방문하는 가정들에서 그런 물건들이 눈에 보이게 하시고 깨
닫게 하신 것은, 가보처럼 장식해놓은 짐승들의 그림이나, 도자기류나, 새겨놓은 사람이나 짐승의
문양이나, 가구나 의복에 그려진 사람의 모양 짐승의 모양 등, 또 사람의 형상들, 짐승의 형상들,
사람 모양의 인형이나 동물 인형들, 조화, 등등에 귀신들이 붙어 거처가 되고, 그 집안사람들의 마
음을 주장하고, 세상 것에 애착하게 하고, 병을 주고, 생활의 어지럽게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
주를 품고 사는 것들로 그것들과 일반이라는 말입니다.
귀신들에게 붙어살도록 권리를 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귀신의 문화,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마
귀의 세상에서 나온 가증한 것들을 믿는다는 이들이 여전히 껴안고 있어,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이고 샤머니즘의 정신이고, 그러한 물건들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를 보게 하셨습니다.
어느 집엔 키 낮은 장식장 위에다가 여러 모양의 인형들을 정돈하여 진열해놓았는데, 거기에 눈도
코도 없는 검은 그림자 형상의 귀신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주인은 60대의 여자 구역장이었는데,
병원 진단에는 특별히 이상은 없다는 데도, 매일 몸이 아파서 많이 힘들다고 예배를 원하기에, 가
서 그걸 목격한 것입니다. 하여 그 인형들을 깨끗히 다 치우라고 치워야 몸이 낫는다고 일러주었
습니다. 이후 또 그 집에 예배드릴 일이 있어 방문했는데, 그 집 다락이 귀신들의 집합소가 되어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락이 아무래도 어둠의 처소인 것 같으니 다락 좀 보자고 열어
보니 치워버린 줄 알았던 그 인형들이 다락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가 아기를 낳고
집 나가버리고, 아들은 여기저기 직장을 옮겨 다니며 떠돌고, 그 인형들이 6살 어린 손녀가 위안을
얻는 것들이어서 손녀에겐 없으면 안 되기에 버릴 수는 없다고, 또 선물로 들어온 것이 많아서 버
릴 수 없다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놓았다고 했습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
놓았으니 되지 않겠느냐 했습니다.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만, 이후에 결국은 그가 믿음에
서 떠나 교회를 등져버렸다는 것을 제가 듣게 되었어요. 후에 깨달은 것은 하나님을 모실 거룩한
심영이 아니라는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왜 이 것을 말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믿기로 하였으면 믿음의 길로 들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되어 구원으로 들어가려면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데 있어 문제
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는 진정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스스
로 알지 못하면 그 사실에 대하여 듣게 되었을 땐 즉시 행함으로 옮겨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
지 기어코 귀신의 편에 서서 변명을 하고 나오는 겁니다. 그 물건이 아주 비싼 거라 안 되고, 식구
중에 누가 눈치 보여서 안 되고, 결혼 때 선물 들어온 것이라 안 되고, 자기가 많이 좋아하는 것이
라서 안 되고, 집안 가보로 내려오는 것이라 안 되고, 생일 때 선물 받은 것이라 안 되고, 아까워
서 어떻게 버리느냐....., 이 같은 변명을 하기에 바쁘더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
시는 것일지라도 기어코 지켜야 한다는 듯이 온갖 변명들을 권리처럼 내세우더라는 하등 가치 없는
더러운 그것들로 자기 영혼이 지옥 가기를 선택하더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인간 자기가 누구인가를 안다면 그 같은 하찮은 것들에게 자기 영혼을 팔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것처럼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니, 하나님께서 그 손을
깨끗하다 하시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성결하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겸손으로 보시지 않습니다.
더럽고 가증하니, 깨끗지 못하니, 하나님의 저울에 올리지 못할 가치 없는 것들이니 쓰레기를 불
에 던져 태우듯이 태워버리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그런 태도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
하려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지 모르겠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듯이 살면서 죽을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
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죄인이라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이 피 흘려 죄 사해주신 은혜 감사
한다고, 고백한 신앙이면 이미 성결한 생활이어야 맞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설사 그 믿음에 있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더럽게 여기시는 것으로서 사단의 세상에서 나온 것
이라고 말씀이 들려지면, 그동안 알지 못하고, 또는 속고 있었던 것을 분히 여기고, '제가 미련하
고 무지해서 하나님께서 더럽게 여기신 세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회개합니다'하
는 애통함이 일어나고, 자기 믿음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근심으로 바꿔 슬퍼해야 할 것이고, 즉시로
가증한 물건들을 처리해버리는 믿음의 행동이 일어나야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
이라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가 누구이기에 그런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이 계신 것과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본문 8-10이 그것을 말하는 거잖아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는
것 아닙니까? 믿는다 할 때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가까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믿는 자
가 가까이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까이해야 하나님께서도 가까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같이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들을 먼저 나 자신에
서나 생활에서 깨끗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기초적인 일입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하십니까?
제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문제 때문에 예배드려 달라고 하면서 말씀에 순
종하지 않을 예배를 왜 원한 것이지 참 문제였구나, 교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여
제가 이런 태도들을 알고부터는 누가 되었든지 예배를 청해도, 예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라 여겨 예배는 하지 않을 것으로 아주 정해버렸습니다. 약2:14에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했습니다. 구원할 수 없
다는 말입니다.
약2:5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하나
님이 이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자를 택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 대해서는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
게 아니하셨느냐"라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누구
겠습니까? 그러면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것,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
욕, 이생의 자랑에 대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자기 속에 세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자기 속에 세상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 것에 미련 없는 겁니다. 집착하지 않는 겁니다. 욕
심을 갖지 않는 겁니다. 세상을 의지하지 않는 겁니다. 세상 것에 매이지 않는 겁니다. 세상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겁니다.
아! 그럼 나는 세상 쪽의 것은 현재 넉넉하니까, 내 사는 동안에 쓸 돈이 충분하기 때문에 더 욕심
없어, 미련 없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성격상으로 그다지 세상 것에 관심 없
기 때문에,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로부터 좇아 나온 세상이요, 하
나님과 원수를 맺은 인간 속에서 마귀가 조직적으로 세운 세상이요, 그러므로 그 세상은 하나님께
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마귀의 것이요, 죄요, 사망이니 자기도 그것을 더러
운 것으로 여겨 깨끗이 끝을 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을 위해서 필요 그 이상은 좇아가지 않는 것, 그래서 세상에 대하여 그 마음에 가진 것이 없으
니 세상에 대해서는 가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같이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
에는 부요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로 그 속에 세상이 없어야 하늘의 것을 받아들
일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고 삶에 붙잡고 있으면 절대로 믿음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대하
여 가난해지지 않으면 자기는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하나님의 나라 천국
이 그에게 있을 수 없고, 천국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오늘 약4:16에서는 세상 자랑은 허탄한 자랑
이라 했고, 그런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다음 4:17에서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복하는 것이 사람에
게 선임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에서 나와 천국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뒤로하고 하나님 아버지 나라를 향해 성영님과 함
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그 나라를 향해 가는 사람이 만일에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고, 집착의 마음이 있으면, 욕심이 있으면, 절대로 절대로 하나님 나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교회 나와서 앉아 있을 수는 있고, 교회 생활 열심히 할 수는 있어도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나갈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깨달아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눅17:32에 예수님께서 세상 것에 대한 미련을 두고, 그 세상을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돼 버린 롯
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고 있으면 세상과 함께 멸망한다는 것을 롯의
처로 하여금 경고의 기둥으로 보이신 그것을 알라고 롯의 처를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뒤이어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이 영원
히 살 수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목숨 사는 것 때문에, 목숨 살기 위해서 마음을 다 쏟고 세상이 하
는 대로 쫓아가는데 바쁘고, 붙잡으면 결국 그 목숨도 잃을 뿐만 아니라 영생도 잃어버린다고 하셨
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잃는 자는 오히려 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목숨이
살기 위해서 세상을 붙잡고 있는 자는 예수님의 강림 때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것이지, 세상과 벗하고 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세상을 이김은 그 믿음이라고 요일 5:4,5에 하나님에게
서 난 자는 세상을 이긴다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과 벗하고 세상과 함께 즐거워하며 사는 것은
왜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니, 이미 답이 나와 있으니 그거 비위 맞춰가면서
사정할 것 뭐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하셨습니다. 환란을 당하더라
도 담대하라고 명하셨어요. 왜냐? 요16:33에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겨놓으셨으니, 예수님이 죄와 사망 권세를 잡은 자 마귀와 그의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아주 장
사 지내버리고 다시 살아나셨으니, 바로 예수님이 이기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으니,
이기셨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세상에 대하여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이기는 것이지 끌려다
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끌면 끄는 대로 세상에 잡혀서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
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믿기 원하면 세상 뒤로 돌려버리고 나를 따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
르려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해져 버려야 따를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만이 예수님께서 승리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 보좌 우편에 함께 앉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다시 강조합니다. 예
수님께서 죄인인 자기의 구주이심을 믿고, 영원한 생명의 그 나라로 들어가기 원하면, 그것은 하늘
길이냐 세상 길이냐? 둘 중 하나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나라요, 세상은 마귀가 세운 코스모스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마귀의 나라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
상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도 세상은 원수입니다. 참
으로 믿으려면 세상은 자기 원수라는 것부터 100% 인정해야 하고 미워해야 합니다. 원수인 세상과
벗이 되어 있으면 즉 친해져 있으면 그도 여전히 하나님과 원수 관계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눅18:29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
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위치의 책임을 버리고 부모도 버리고 가족도 다 버려라. 이런 극단적인 말씀
이 아니라, 부모라 할지라도, 아내나 형제나 자녀라 할지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코스모스 세상을
버린 자, 부모와 자녀의 혈육 관계임에도 그들이 가진 세상, 그 뜻에 함께하지 아니하고 떠나 나온
자는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혈통 관계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고 마귀가 지배하는 것
들에 함께 얽매이고 세상에 끌어들이는 것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에서 행함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단호하고 분명하게 끊어내 버린 자가 오히려 버린 그것보다 더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같이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
는 것에는 여러 핍박도 따를 것이요, 비난도 받고 협박도 받을 것이요, 타협의 요구도 있겠지만,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믿음을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을 단호히 버릴 때는 하나님께서 그 몇 배로
반드시 보상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위해서 포기해버리면 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시는 것을
저는 확실히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것 없으면 못살 것처럼 싸우고 네 것이냐 내 것이냐 분쟁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위해서 깨끗이 포기해버릴 때 하나님께 보상이 따르는 것을 저는 분
명히 보았어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죽고자 하면 살릴 것이요.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할 수
있고, 차라리 양보해버리면 하나님께서는 보상하신다는 것이요. 그런 믿음이면 영생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적당이라는 것 없습니다. 신앙은 '적당히'가 없어요. 성경은 적당히 하라고 하지 않
았습니다. 네가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면 그 믿음은 가족 관계에서조차도 코스모스의 세상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 절대로 타협을 말씀하신 것 아닙니다. 예수님이 마음을 다하고 뜻
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지 적당주의가 되라고 하신 것 아닙
니다. 믿음은 하나님 방법을 따르는 것이지, 그렇게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아멘이고, 아닌 것은 변
명으로 넘기려는 두 마음을 품은 적당주의가 되라는 말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기는 그것이 좋은 것이지 않으냐고,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마귀에게
잡히는 올무가 되고, 해를 입게 되는 것이라고, 네 영적인 믿음에 해를 입는 것이라고, 믿음을 더
럽게 하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금하라 말씀하시는 것인데 그 말씀 앞에 뭐라고
변명하고 있습니까? 고가품이라 아까워서 안 되고, 자기 취미라 안 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
안 되고, 아무튼 여러 변명과 함께 꼭 그런 식으로 믿어야 하느냐? 예수님 믿기 힘들고 너무 어렵
다. 그럼 세상에서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하는 식의 태도들로 대적하듯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잘못함이 드러나면 내가 속는 생활을 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되어 즉각 행함으로 돌아가
야 하는데 인간의 교만은 여전히 하나님께 맞서려는 태도부터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죽이려고
애굽에서 이끌어 낸 것이냐? 기운이 떨어져서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라고 하며 모세를 대적하여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십시오. 잠시의 고난을 불평하고 세상을 뒤돌아 보고 세상을 붙잡고 있던 이스라
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다 멸망을 당했습니다. 천국을 상징하던 가나안 축복의 땅에 들
어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불순종하던 그의 부모들로 인해 부모의 죄를 대신지고 40년 동
안 광야에서 유리하던 자가 되었다고 민14:33-35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믿는다는 부모들의
잘못된 믿음과 불순종의 교만 때문에 자기 자녀들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 속
에서 유리하는 영혼이 되어 죽음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자녀들이 교회 다닌다고 '나는 괜찮아!'가 아닙니다. 교회 나왔다고 구원받는 것입니까? 교회는 나
왔어도 그 영혼은 여전히 하나님께로 나오지 못하고 유리하는 영혼입니다. 여러분이 영의 눈이 없
어 그 영혼 상태를 보지 못하니, 그저 교회 열심히 다니면 구원받은 줄 알고, 교회에 충성 봉사하
면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된 믿음인 줄 착각하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하는
그것으로 구원이 된 것인 줄로 착각하는 것일 뿐, 실지로 영의 눈을 떠 그 영혼의 모습을 보면 불
쌍한 영혼인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던 구약의 사람들은 모두 다 세상과 맞서 따르지 않
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그들을 통해 일하셨고, 동행하였으며, 은혜를 입었으
며 하는 사람들만 구원의 반열에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마음이 붙들려서, 세상이 오히려 하나님의
위치가 돼 있기 때문에 말씀이 그들 속에서 거절당하고 무시당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난봄에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곳의 지역 산자락을 낀 도로를 지나가다가 제가 남편에게
혼잣말로 '이곳 땅이 평당 돈 만 원도 안 됐었는데, 그렇게 몇천만 원이 될 줄 알았으면....,그렇
게나 비싼 땅이 될 줄 알았으면 그전에 땅이나 좀 사둘 걸, 그렇게 땅 값이 오를 줄 누가 알았겠
어!, 세상에나! 지금 평당 몇천만 원이나 한다니 말도 안 나오네, 도대체 그런 쪽에는 왜 그리 깜
깜해서 그런 기회들을 잡아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네'라는 말을 하는데, 삶의 뒤안길이 돌아다 보
이면서 어쩌면 그리도 그런 쪽은 뭐하나 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겁니다.
나와 저 사람과 똑같이 천만 원이 있다고 가정해요. 그 사람이 내게 집을 사 놓으면 값이 올라 돈
번다고 해도, 나는 전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마음이 미동도 안 하는 겁니다. 그 사람은 집만 사
면 얼마 안 있다 몇 배가 뛰는 겁니다. 또 팔고 사고하면서 몇 년 사이에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보
면서도, 그런 투기할 생각이 나는 전혀 들지 않은 겁니다. 돈 얼마만 있으면 내 회사가 일어나! 얼
마만 있으면 장사할 수 있는 밑천이 돼! 얼마만 있으면 그 집을 사서 갈 수 있어! 하는 사람들에게
빌려줬다가 깨끗이 다 떼먹히는 일들만 더러 당하여 돈에 대해 가난뱅이를 면하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니까 내가 그런 일에 참 어두웠구나, 정말 어떻게 그리도 어두웠을까?
너무 어두웠더란 말이지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안에서 느닷없이 '네가 세상에 대하여 눈
이 열렸으면 성경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세상에 대하여 눈이 열렸
으면 성경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하고 또렷한 성영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지
체할 것도 없이 '아! 그렇군요 성영님! 그렇다면 천만 번을 물으신다 해도 저는 세상에 대한 것은
열리지 않는 것을 원합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열리지 않는 것을 원합니다. 원하고 원합니다! 하고
대답하며 성영님의 세심한 배려와 가르침에 큰 감동을 하고, 제가 또 그 일로 얼마나 큰 행복한
찬양을 드렸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세상에 대하여 잘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잘 알게
되었고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면 세상 것에서는 떠나
나와야 함을,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서 믿음의 길이요 예수님의 길이요 천국 길이라는 것을
옛사람도 옛 생활도 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으니, 이제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는 그것이 용
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여러분에게 말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것에는 세
상이 없어야 열리는 것이요,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이처럼 내게 확실하게 확증시켜 주기까지 하셨
으니, 이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제가 이같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게 해야 하는 책임이나 있는 것처럼 말씀을 전하지만, 이제 믿음을
택할 것이냐, 버릴 것이냐? 하는 것은 여러분 각자 선택에 있습니다.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이 천
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자기를 지으신, 능히 지옥도 천국도 보내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하여 전해주는 것에, 가벼히 넘겨버리고 우습게 여겨버리는 교만한 태도들로 인하여
사실은 하나님께서 더는 그런 곳에 말씀을 주는 것 원치 않으신다고 제 심중에 계속 말씀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밝혀드립니다. 제가 믿음에 대하여 영적인 뜻을 전하는 것, 더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계속 주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두려운 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듯 하는 것은, 결국
불신앙에서 나오는 태도이니, 여러분이 믿음을 택하려면 마귀가 세운 코스모스 세상을 붙들고 있으
면서, 말씀을 대적하듯 하는 그 태도들에서 깨끗이 돌이켜야 할 것을 강력히 충고하고 권합니다.
구약의 인물들에게서 세상과 타협하였으므로 후에 그것이 올무가 되어 멸망을 받은 것을 우리는 얼
마든지, 그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수6장을 보면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
게 그들의 물건을 아무것도 취하지 말라고 백성들에게 이르라고 하셨습니다. 수6:17에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했고 18에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
라 하셨습니다. "여호와께 바치되"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단과 그 사단으로부터 나온 저주
받은 것들은 하나님께 멸망 받을 것으로 작정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주받은 것, 그 말입니다.
그리고 18의 뜻이 '너희는 멸망할 그 물건으로부터 너희 자신을 보호하라 너희가 그 멸할 것을 어
느 것이라도 취하면, 이스라엘 진에 저주가 임하여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까 사단을 섬기는 자들에게서 나온, 하나님이 없는 인본에서 나온 멸망 받을 그 코스모스 세상의
것들을 말합니다.
그다음 큰 성 여리고를 무너지게 하여 큰 승리를 거둔 이스라엘이 그 뒤에 이어서 아이 성과 전쟁
을 하였는데 대참패를 당했습니다. 수가 아주 작은 아이 성과의 전쟁에서 대참패로 큰 수치를 당
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다 보는 것이니 잘 알잖아요?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기 때문입니
다. 멸망하기로 작정된 저주받은 물건을 취하였기 때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진노하셨다고 말씀했어요(수7:1). 바친 물건은 '멸하기로 작정된 것, 저주받은
것' 그 말이에요. 말씀의 뜻 이해하셨어요?
수7:11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멸
하기로 작정된 저주 받은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하셨습니
다. 그 범죄자는 아간이라는 사람으로 제비 뽑혔는데 수7:20,21에 그가 말하기를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다고 했습니다. 아간이 그때
까지는 기분이 매우 좋았겠지요. 얼마나 꿈이 부풀었겠습니까. 시날산에 그 좋은 외투, 값나가는 외
투, 세상이 명품이라고 말하는 그것을 감추어놓았으니 앞으로 거주하게 되면 이것을 입고 뽐내고 다
니리라 하지 않았겠어요? 감춰둔 돈과 은을 가지고 잘살리라 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그 물건들과
함께 아간만 멸망 받은 것 아니에요. 그 자식들도 그의 가축들도 돌로 맞아 죽고 그의 장막도 그에
게 속한 모든 것도 다 '불에 사르고'했습니다.
그렇게 아간과 그 가속을 심판한 뒤에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아간만의 일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믿는다는 대다수가 이 아간과 같은 모습입니다.
세상의 것을 취하려는 데 온 마음과 온 힘을 쓰고 있습니다. 수7:10-12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저주
받은 물건은 그 어떤 것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자
신도 저주받은 자로 멸망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자기만 멸망하는 것 아닙니다. 말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다 죽음을 맞았습니다. 목숨이
명대로 살다 죽도록 버려두셨습니다. 그 불순종한 부모들로 인해 자식들이 죄를 지고 40년 동안
그 어려운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어요. 부모들의 죄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들을 집안에 둔다 하면 그 집은 저주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가보
처럼 소중히 여기고 다루며 짐승들이나 사람의 형상들로 그리거나 새긴 문양들이 복이나 주는 것처
럼, 실제로 복을 주는 것으로 아는 거잖아요? 우상이 되고 벽면에 장식한 사람의 모양이나 짐승의
그림들, 가구나 의복에 새겨진 모양들, 모든 형상, 조화나 인형들 아무튼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다 저주의(귀신이 좋아하는) 물건들로써 사람의 영혼을 더럽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기어코 취하는 자세는, 설마 이런 것까지,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 무슨 미신을 믿는 것
이냐? 하는 변명들로 붙잡고 있으려 하는 겁니다. 변명들을 왜 합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귀신 편
에 있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들을 때는 마음이 불편한데 불편해도 지나가면 그만
인데, 어느 날 또 듣고, 또 듣고 하니 양심이 불편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애착하던 것들인데, 그
동안 모시고 살면서 쓸고 닦고 깨질세라 뭐 어떻게 될세라 애착을 가졌던 것들인데, 버린다는 것은
너무 아까운 생각도 들고 그것들에 죄스러운 마음까지 드니, 그래서 그 물건들이 다른 집에 가서라
도 존재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자기 물건들을 누가 잘 간수하고 지켜주므로 건재하기를 바라는 계
산을 하고 남을 주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가져가 주기를 바라면서 밖에다 다치지 않도록 내다 놓
는 겁니다. 제가 왜 이리 시시콜콜 말을 합니까? 그 속이 다 들여다보이니 안타깝고 답답해서예요.
이런 태도면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는 것도 아니요, 믿는 것도 아니요, 믿음 아니
에요. 이 같은 태도들은 믿음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귀신의 종노릇한 것입니다. 여전히 귀
신 놀이한 것이지 끝을 낸 것이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됩니까?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것을
끼쳐줌으로써 악한 자 노릇을 한 것입니다.
우리 믿음은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지 타협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고 우
리를 더럽게 하는 저주받은 것이라는 말씀 앞에서 어떤 것도 미련을 품고 아까워하고 돌아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속으며 살았던 것을 분히 여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멸하기로 작정된 너희
모든 저주받은 것들을 내가 깨트린다, 찢어버린다, 태워버린다 하고, 깨트리고 찢고 태워서 깨끗이
청소해버릴 수 있어야 그것이 마귀와 관계 두지 않는 선포요, 끊어내는 행함입니다.
그 같은 정신을 가진 자라야 성영님이 함께하실 수가 있지, 그런 깨끗한 정신인 사람만이 성영님이
함께 하실 수 있는 그릇이라 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다 멸하라 하셨습니다. 성경을 다 찾아봐도 멸
하라 하셨지, 아까우니까 조금 남겨두거나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라는 것 아닙니다. 다 멸하라고 하
셨습니다. 수6:21에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했고 수7:12에 그 바친(저주받은) 것을 너희 중에
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정
답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내게 있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요? 누구에게 있어요? 정답의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교만한지 결정권을
자기가 쥐고,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되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참으로 믿기 원한다면 이제는 이런
말씀 더는 안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기회이니 철저히 회개의 기회가 돼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모르겠습니다. 회개의 기회가 되는지는......, 혹 내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것이 있다면 자기와 관계를 끊기 위하여 그것을 다시 돌려받아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깨끗이 처리해
야 할 것입니다.
이미 그 자신도 바친 것일 수도 있는데(수7:12)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제 마음 심히 불편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자기 가치를 그렇게나 하찮은 것들에다 묶어두는 것인지, 스스로 자신을 하찮은 귀
신과 동등으로 하고 있으니 만일 그 자신이라면 저의 이 말씀들이 들리기나 하겠습니까, 미련을
두었던 롯의 처가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 기둥이 되어 세상 가운데 세워놓은 경고의 기둥이 되었다
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철저히 회개가 되지 않으
면, 그것들과 함께 멸함을 받게 된다는 것을, 그러므로 여러분이 저의 이 같은 말씀들이 심사에 거
슬리고 거부감이 들고 마음으로 대적하려면 이 말씀에서 떠나면 됩니다. 널린 것이 교회인데 주저
할 것 없습니다. 여기의 말씀은 코스모스의 세상 것에서 나와 말씀대로 순복하여 믿음으로 살 것으
로 뜻을 확고히 정한 것이 아니면, 어떠한 경우라도 믿음을 위해 살 것으로 뜻이 돼 있지 않으면
절대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못 알아들은 척, 못 들은 척하면서 말씀을 거스르는 일을 계속 반
복하는데 그러지 말라는 얘깁니다. 듣기 거슬리고 거북하고 싫으면 주변에 자기에게 맞는 교회들이
널렸으니 떠나라는 것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예수님를 믿고 성영님이 오셔서 계신 자는 성영님께서 옛사람과 옛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반드시 이
끌어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성장하면 할수록 버려야 되는 것에 더 감각이 깊어져 가게 되어 있습
니다. 성영님께서 작은 것까지라도 느낌이 들게 하시고 알게 하셔서 보게 하시니 그런 죽은 더러운
것들을 자기에게 두고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열리고 깨달아지니 또 무엇이 없는가
하고 스스로 돌아보고 찾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참으로 믿음이면 오늘 이런 말씀까지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임에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겉만 있지 속이 없는 것을 볼 때 슬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혹 필요한 가재도구나 의상이든 들이려면 색상이나 무늬 등의 모양새를 좀 가리는 뜻도
가지십시오. 코스모스 세상 좀 가리자는 말입니다. 짐승의 털옷이라든가..., 예수님 믿는 사람이
요한이 낙타 털옷을 입었다고 하니까 자기도 흉내 내는 것인가? 무슨 털인지는 모르겠는데 칠흑
같은, 새까만 털옷을 입고 예배에 앉아 있는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감각 없고 거부감도 없는지.
., 그 같은 짐승 털옷들을 입지 않는가 하면, 뱀 무늬 같은 것, 악어 무늬 같은 그런 종류, 표범
무늬 같은 것, 호피 무늬 같은 그런 혐오스러운 것들을 자기 몸에 걸치고 들고 다닙니다. 입고
걸치고 다녀! 그러니 제가 믿는다는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볼 때 믿음의 정신이 바른 사람으로 보
겠습니까? 그런 것들 입고 들고 집안에 가보처럼 들여, 걸고 장식해놓는다면 그가 누구에게 지배
받고 있다는 증거이겠습니까?
제가 오래전에 어떤 목사가 당신의 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기록한 책을 읽었는데 지금도 확실
히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외국에서 있었던 일로 어떤 여자가 10대로 보이는 딸을 목사에게 데려와
기도해주기를 부탁해서 기도를 시작하려는데 성영님께서 분명하고 정확한 음성으로 '그녀의 손가락
에 끼고 있는 반지를 빼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반지가 기도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는
가 생각하는데, 또다시 '그녀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라'하셨다는 겁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
도 되고 또 이것이 정말 성영님의 말씀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으나 곧 그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에 묶여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또다시 세 번째 똑같은 음성이 있어서 그녀의 손가락을 들어
'이것이 무슨 반지냐?'물으며 보니 반지에 자그마한 뱀의 형상이 있는데 머리는 쳐들고 몸은 반지
를 칭칭 감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려 하는데 안 빠지더라는 거지요. 반
지는 분명히 느슨한데, 빼면 쉽게 빠질 것 같은데 빼려고 하니 도무지 안 빠지더라는 것입니다.
반지가 움직이지도 않고 빠지지 않아 계속 잡아당기자 그 여자가 크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더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 목에서, 입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어요. 목에서 추
한 소리가 입을 통해 나오는데 '이 여자를 놔라 이 여자는 내 것이다'라고 하는데 그 소리가 얼마
나 소름 끼쳤는지 뼛속까지 오싹했다고 했어요. 어찌 되었든 예수님의 피를 적용하여 반지를 빼내
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20분가량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굳었던 그 여자 몸이 곧 풀
리며 자유로워졌다고 했어요.
이같이 어둠의 영은 손가락 반지에 있는 뱀의 형상을 통해서도 권리를 행사하여 사람을 자기 것으
로 칭칭 감고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사사로운 것이라도 자기 주변과 생
활을 살펴서 옛 생활, 인본의 마귀 세상에서 나온 것들을 깨끗이 청소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생활
에 필요만 있어야 할 것이지, 그 이상은 다 우상이고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 되어
귀신에 지배하도록 권리를 주게 된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삶이 단순하고 검소해야 영적 생활에 유익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십시오. 여러분이 지금까지 말씀
을 듣고도 고집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들어온 문제들에 대해서 이름을 지목해서라도 사
례를 말하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 예수님의 교회가 이 건물에 오기 이전부터도 강단에 검은색 의상
을 입고 올라오지 았았어요. 검은색은 죽음을 의미하고 또 상징으로써 사단이 권리를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후의 말씀은 생략하고 말씀을 여기서 맺습니다. 여기까지의 말씀으로도
자신을 돌아보고 깨닫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우리 영혼에 빛의 말씀을 주셔서 어둠의 것을 다 쳐낼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올려드립니다. 아멘!!
2011년 세상과 벗 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됨.p87-p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