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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하나님, 달갑지 않은(?) 공짜>의 줄거리: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라고도 합니다. 정말 세상에서는 공짜가 없을까요? 그리고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과연 없을까요? 세상에는 공짜도 너무 많고 공짜 싫어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에 달합니다. 가장 좋고 위대한 공짜이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시큰둥한 대접을 받는 공짜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달갑지 않은(?) 공짜
(누가복음 1:57~66)
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59.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63.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 달갑지 않은(?) 공짜>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하나님, 달갑지 않은(?) 공짜’
인터넷 상에서 초등학교 3학년 박호현 어린이의 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 공기 마시는 것 공짜 / 말 하는 것 공짜 / 꽃향기 맡는 것 공짜 / 하늘 보는 것 공짜 / 나이 드는 것 공짜 / 바람소리 듣는 것 공짜 / 미소 짓는 것 공짜 / 꿈도 공짜 / 개미 보는 것 공짜”라고 썼습니다. 자기가 공짜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적은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이 어른으로 하여금 참으로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공짜가 없다고 말하는 선생님과 공짜가 이토록 많은 호현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공짜의 특징은 기쁨입니다. 호현이가 공짜라고 느끼는 것들의 대부분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공짜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호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다고 여기질 못합니다. 대표적으로 나이 드는 것이 그러합니다.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나이가 빨리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에 나이 드는 것이 공짜라 좋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빨리 나이 들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고 그것이 공짜라 기쁘다고 여기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른들은 비싼 돈을 내고 영화보고 뮤지컬을 보면서 좋아하지만 아이는 개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더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어른들 중에서 개미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개미 보는 것은 공짜이지만 어른들은 그로부터 기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공기 마시는 것도 공짜입니다. 공기가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공기가 공짜라고 해서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얘들아, 참 공교롭게도 이 세상에 선생님이 마음으로 간절히 좋아하는 것들 중에는 공짜가 없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은 개미 보는 것이 아니고 꽃향기 맡는 것도 아닙니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돈이나 승진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공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을 살펴봅니다. 세례 요한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는 나이 많고 아이도 없었는데 기적적으로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설교에서 말씀드린 대로 세례 요한의 출생의 의미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나타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본문은 큰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이 준비시키신 사람들은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사는 동안 마음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세상을 떠나서 하늘로 가야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근본 취지입니다. 다만 이러한 복음의 취지를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오늘도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당장 좌절감이나 패배감에 빠져있거나 의기소침해 있을지라도 그 또한 열심히 살아보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결과이지 이 세상을 떠나고자 마음먹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처럼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가지면 마음을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가치들이 가득하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한편 십자가 복음은 그토록 좋은 것이 많은 세상에 대해서 날마다 언제 어디서나 죽을 것을 요청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신 예수님을 따라서 하늘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본래대로라면 한 사람도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켜주십니다. 하늘에는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모은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좋으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를 시켜주시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따라서 이 땅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자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13~14절에서 요한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이긴 것과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사건입니다.
갈멜산에서의 대결의 핵심은 바알을 섬길 것이냐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바알이란 풍요와 다산을 주관한다고 믿어지는 신이었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실제로 섬기고 있었던 것은 재물이었습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론으로 바알을 채택한 것입니다. 즉 엘리야는 재물과 하나님 중에 선택할 것을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의 대표로서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승천하게 됩니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선택하였다면 이처럼 하늘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두 사건의 의미는 세례 요한의 존재 안으로 들어와서 일생동안 드러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이 일생동안 촉구하였던 것은 이 땅에 있는 가치들을 좋아할 것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좋아할 것인가 선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좋다면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실 분이 세례 요한의 뒤에 오실 예수님이심을 전했습니다. 그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동안 이 땅에 있는 것들을 좋아하며 살았던 죄악을 회개해야만 합니다. 세례 요한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상징하는 세례에 참여함으로써 예수님 맞을 준비를 시켰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세례 요한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사가랴의 가문에는 대대로 요한이라는 이름이 사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돌림자를 쓰듯이 당시에는 조상들로부터 이름을 가져오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모였던 친족들과 이웃들은 전통을 따라 나이든 아버지의 이름인 사가랴를 물려받는 것이 무난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가브리엘 천사에게 들은 대로 아이의 이름을 요한으로 하고자 합니다. 이 당시 사가랴는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고지된 잉태를 의심함으로써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요한이라는 이름을 고집하자 친족들은 곤란해하며 말 못하는 사가랴에게 몸짓으로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가랴는 서판에 요한이라는 이름을 써서 주며 엘리사벳에게 동의합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은혜를 주시는지가 바로 오늘 말씀의 주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란 당신 자신을 공짜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요한이라는 이름에는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공짜로 주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엘리야의 갈멜산 사건에서도 발견됩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섬기고 있었고 그 수단으로 재물을 관장한다고 여겨지는 바알을 선택했습니다. 재물이 은혜 베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은혜를 베푼다면 바라는 대로 돈을 얻게 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황당한 이야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재물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들에 대해 은혜를 기대합니다. 외모를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은 외모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모를 섬긴다고 하여도 외모가 아름다워지는 은혜는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갈멜산 사건과 세례 요한의 이름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란 당신 자신을 공짜로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의 이름이 갖는 의미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이름에 담긴 의미를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최고로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을 통해 영이시고 빛이신 하나님의 좋으심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산 아래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망각할 정도로 하나님의 좋으심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세례 요한이 무엇으로부터의 회개를 요구하였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좋으신 하나님 대신에 이 땅의 가치들을 더 좋아한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십계명과 율법에서 정한 규정 밖의 행동들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가장 좋아한다면 율법과 계명에서 벗어난 행동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십계명이나 율법을 어기는 것이 죄악이 아니라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죄이며 그 죄의 결과가 십계명이나 율법을 어기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예수님께서 최고로 좋으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내실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앞서 세례 요한이 등장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세 번째 의미는 좋으신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므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공짜로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요한의 이름에는 이러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의미에 대해서는 앞선 세 가지 의미를 전제로 하여 어떤 문제가 제시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최고로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는 그 길을 가면 하나님을 공짜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제시되는 문제는 우리가 과연 공짜로 주어지는 하나님을 좋아하느냐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시에서 호현이가 공짜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선생님께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호현이와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갖는 것은 은혜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좋아하고 건강과 장수를 좋아하고 가족들의 형통을 좋아하고 애인을 좋아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공짜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에 호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 하나 들어있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공짜로 주시고자 하셔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으니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번 휴무기간에 집안을 정리하면서 한 30만 원이 들었습니다. 고장 나서 잘 쓰지도 않았던 의자들을 버리기 위해 폐기물스티커를 사는데 3만 원이 들었습니다. 또 장롱도 버렸는데 한 칸에 8,000원이나 드는 스티커를 몇 장이나 사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장롱은 혼자서 옮길 수가 없기에 인부들을 불렀더니 15만원이나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는 돈을 줘가며 그 사람들에게 쓰던 가구를 주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돈을 줘야만 했던 이유는 그들이 폐가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폐가구처럼 취급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얼마나 생색을 내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달갑지 않아서 전혀 갖고 싶지 않으니 하나님을 믿는 데 생색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공짜로 받고 싶은 은혜는 어디까지나 돈이고 건강이고 자녀의 형통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갖는 것입니다. 돈 빼고 건강 빼고 자녀의 형통을 빼고 하나님을 공짜로 가지라니 달갑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들을 공짜로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들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기어이 하는 말이 “세상에는 공짜가 하나도 없다.”라고 합니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공짜로 갖는 일에는 전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생활화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준비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세례 요한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건강을 바라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지면 건강이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바라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이 약속해주는 은혜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바라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지면 돈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꼭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지면 그 사람이 실은 나의 만족과 기쁨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좋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부디 경험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집사람이 수박을 사오면 깍두기처럼 썰어서 큰 그릇에 담습니다. 그럴 때에 가운데 부분의 정육면체의 조각이 가장 맛있습니다. 수박은 둥글기에 가장자리로 갈수록 정육면체 모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욕심쟁이처럼 똑바르게 썰린 것을 먼저 먹습니다. 그러다보면 수박의 바깥쪽 부분을 나중에 먹게 됩니다. 처음에는 달지만 갈수록 맛이 없습니다. 반면 집사람은 바깥쪽 부분을 먼저 먹기에 끝까지 수박을 맛있게 먹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맹물로 느끼게 할 만큼 달달하고 좋은 분이기 때문에 욕심을 내서 먼저 하나님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일들이 나로부터 버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달달한 맛을 느끼며 살아갈 때에 삶은 완전히 공짜로 살게 됩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삶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주권아래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는 승진하고 월급이 오르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십자가 생활화를 함으로써 하나님을 공짜로 가진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을 가장 달달하게 느끼는 동안에 승진도 월급인상도 더 이상 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 맹물 같이 되어버린 승진도 월급인상도 하나님의 주권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공짜로 가져서 세상을 맹물로 여길 수 있게 되면 세상은 공짜가 됩니다. 물이나 공기가 공짜로 주어지듯이 세상은 하나님의 때에 따라 뜻에 따라 주권에 따라 공짜로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공짜로 주어지는 것들을 좋게 느낄 수가 없는 것은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공짜로 먹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수박의 제일 달달한 부분입니다. 가장자리의 수박은 맹물처럼 느껴지듯이 계속 하나님을 먹고 있는 사람은 설령 하나님께서 대통령을 시키고 재벌이 되게 하셔도 달지 않게 느낍니다. 세상을 맹물처럼 느낄 수 있을 때에야 공짜 삶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의 요한이라는 이름에 이러한 놀라운 혁명적 의미가 담겨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많고,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많고, 없어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들이 많고, 갖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십자가를 생활화함으로써 하나님이 제일 좋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으시고 하나님만 가지면 세상은 맹물에 불과합니다. 십자가에서 세상을 좋아하는 마음과 세상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이 죽었음을 인정하고 유지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의식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것이고 예수님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다시 태어나서 마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갖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을 소망하고 좋아하는 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공짜로 주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이 세상에 대한 소원이 하나도 생기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을 많이많이 가질 수 있도록 소원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짐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맹물처럼 변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물을 공짜로 주신 것처럼 우리의 삶을 조달해 가시며 이끌어 가십니다. 이것을 직접 체험하시고 간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요한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대로 하나님이 제일 좋으심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바라게 하셨고 바라는 하나님을 공짜로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에 참여하여 하늘로 올라가서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써 세상에서 좋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맹물처럼 여겨지게 하시고 그러한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공짜로 주어지는 참으로 이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