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니 불이 환한 도서관이 보입니다. 도서관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들리는 노래도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노래와 불빛에 이끌려 도서관으로 갔으나, 아무도 없어서 선생님 댁으로 성큼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불쑥 들어가도 되나? 망설이며 주은언니의 뒤를 따랐습니다.
선생님 가족과, 규리, 서로가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기는 했는데, 다들 클레이로 마라탕 만드는 유튜브 영상에 빠져있었습니다. 주은언니와 저도 거실에 살포시 앉아 함께 유튜브를 봤습니다. 이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6주를 살게 된다면, 선생님으로 살기보다는 '그냥 추동 청년 1'로 살겠구나 하고요.
권민정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신 저녁을 먹고 있는데, 서로가 내일 있을 면접의 질문지를 미리 보여줬습니다. 질문이 어려웠습니다. 꼼꼼히 읽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질문이어서 놀랐습니다. '괜히 미리 보여준 게 아니구나. 지금부터 혹시 면접 시작인가? 면접관이 면접을 잘 준비하라는 신호를 준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잠들기 전, 호숫가와 마을을 산책했습니다. 어둠이 덮인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고, 마을의 반딧불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함께 걷고 나니 최선웅 선생님과 주은언니와 저 사이에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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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민트차 한모금, 선선한 바람 한숨, 햇빛 한아름 누리고 동네 산책했습니다. 밤실마을을 두루 다니며, '우리가 다닐 지역사회의 개념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산책하고 방에 돌아와 복지요결 13페이지 지역사회 부분을 읽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 하나하나를 잘 알고 있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왠지 호숫가마을에서 잘 배우고 적용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권민정 최선웅 선생님과 아침을 먹으며 지난밤 안부를 나눴습니다. 이때부터 면접이 시작되는 듯 했습니다. 자기 전 사랑방의 벌레를 처리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여름은 어떨지 여쭤보고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벌레에 대응하는 이웃분들의 이야기를 언뜻 들으며,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새로운 동네에서 집을 구하는 세입자처럼, 다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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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시간이 다 된 것 같아 도서관 문을 열었는데, 아이들이 망설이다 아직 나가있어달라고 했습니다.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데, 뒤에서 의논하는 소리가 다 들렸습니다. 시율이가 들어오라고 부르기를 기다렸다가,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승아와 시율이를 만났습니다. 직접 만든 안내팀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나이가 몇이야?"
"몇학년이야?"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다시 생각해보니 승아와 시율이는 안내팀을 빙자한 면접팀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주은언니가 먼저 면접을 보러 들어갔고, 저와 승아는 둘이 더욱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승아가 진지하게 "저희 이제 좀 더 얘기를 해봐야겠네요." 라며 대화를 이끌었습니다. 이야.. 제가 회사를 꾸린다면 승아를 인사팀 팀장으로 임명해야겠다는 상상을 잠시 했습니다.
"최하영 선생님 들어오세요"
바로 들어가려 했는데, 어느새 승아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앉아있던 곳에서 면접 장소까지 몇 발자국 안되는데도, 면접 보는 의자까지 직접 안내해주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민채가 '매뮤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림 중 컵에 예쁜 꽃이 그려진 자스민차를 선택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하는 사이에 금방 가져다주었습니다. 민채는 면접이 끝나고 혹시나 티백이 너무 오래 우러나서 맛이 없어질까봐, 티백이 끊어질까봐, 계속해서 자스민차의 상태를 계속 살펴주었습니다. 정성이 느껴져서 더욱 맛있었습니다. 차대접팀 서율이, 민채, 은성이 고맙습니다.
의자에 앉으니, 환영 플랜카드와 직접 꾸민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글자 한글자 꾸민 은우의 이름표, 연필로 담백하게 그린 규리의 이름표, 에이포용지 사이즈 그대로 이름을 쓰고 휴지곽에 붙여둔 선빈이의 이름표, 아기자기한 서로의 이름표까지. 각자를 닮은 이름표를 보고 나니 면접관의 자기소개가 더욱 잘들렸습니다.
서로 은우 규리 선빈이가 했던 질문 중, 기억에 남는 질문들은 이렇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돕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하셨는데.. 왜인가요?"
"호숫가마을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어울려사는 삶을 사랑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떤건가요?"
"사회복지학과는 왜 가게 되셨나요?"
"여름에 어떤 활동을 하고싶은가요?"
질문 하나하나 제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게 되는 예리한 질문이었습니다. 면접 당시에는 잘 대답하고 싶은 마음과, 4명의 눈을 잘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에 정확히 어떤 대답을 내놓았는지는 희미합니다만, 이 질문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수첩 한켠에 적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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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이 참 빨리 끝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모두가 잘해줘서 그런 거라고 하셨습니다. 동의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차대접 팀은 조용히 하느라 힘들었고, 안내팀도 나름의 힘듦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모두가 더운날 다들 면접을 위해 애써줘서 고마웠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나니, 추동에서 사는 삶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짧은 하루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자기소개서에 눌러 쓴 글씨보다, 생생하게 펼쳐진 눈앞의 삶과 사람들이 더욱 잘 보입니다.
제 안의 부족함을 직면하고, 또 이웃들의 지혜를 빌리며 살아내고 살아가는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뜨거울 여름을 기대하며!
하영, 고맙습니다.
유니크한 컵받침! 도서관이랑 어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