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기억하는 맛
< ‘통영백미 기다림 속에 찾아오는 사계절 바다의 맛’을 읽고 >
2024.8. 더불어 차상희
통영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통영백미’라는 책을 읽으면서 소개되는 음식들에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맛과 추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음식을 통해서 떠오르는 추억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잊고 있었던 지난 추억들 속으로 빠져드는 시간들이 좋기도 했다.
아버님의 고향, 사량도 바다에서 잡은 장어 숯불구이
아버님의 고향인 사량도에는 큰고모님께서 아직도 살고 계신다. 여름에 시댁 삼촌가족과 함께 사량도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간 적이 있다. 고모부께서 직접 작은 배로 잡아오신 장어를 그 날 저녁 촌집 마당에 숯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석쇠에 구워먹었다. 고모님께서 만드신 장어양념장에는 방아잎과 생강이 듬뿍 들어가 있었고 숯불향이 베인 장어를 찍어서 먹으니 너무나 맛있었다. 그때 나는 시댁식구들이 어렵기만 하던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장어가 너무 맛있어서 입 안 가득 장어를 먹었고 내가 먹어본 장어구이 중에 제일 맛있었던 기억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할아버지댁에 우무콩국을 배달해요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여름이 되면 엄마는 부엌에서 우뭇가사리를 끓여서 틀에 넣어 우무를 만들었고 굳힌 뒤에 얇게 채를 썰었다. 거기에 콩국을 만들어서 붓고 얼음을 띄워서 주전자에 한가득 담아주셨다.
나는 우리가 살던 일운마을에서 할아버지께서 사시는 이운마을로 우무콩국을 가져다 드리라는 심부름을 갔다.
할아버지의 마당 한편에는 포도나무가 넝쿨을 만들어 터널처럼 되어있었고 나는 할아버지께 우무콩국을 드리고 포도를 따먹었다. 엄마는 아이가 다섯에
늘 밭일이며 집안일도 많았는데도 더운 여름 할아버지께 드릴 우무콩국을 만드시는 수고를 다하셨다는 걸 이제야 느낄 수 있다.
지금 내 고향의 우리 집도 할아버지집도 모두 허물어졌지만 그 기억은 사진의 한 장면처럼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엄마가 생각나는 맛, 통영 빼떼기죽
며칠 전부터 빼떼기죽 생각이 나더니 비가 오니 더욱 간절해졌다. 강구안에 있는 통영 빼떼기죽 집을 찾아갔다. 오랜 시간 끓여 식혀 둔 빼떼기 죽들이 죽통에 담겨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죽 2개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내 입에서는 “고구마 빼떼기~ 고구마 빼떼기~ 말랐다~ 말랐다~ 고구마 빼떼기~” 라는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내가 이런 노래를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익숙하게 이 노랫말들이 흘러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집에 가자마자 연신 “맛있다”를 외치면서 빼떼기 죽 한통을 금세 비우고 말았다.
통영 빼떼기죽은 어려운 시절 고구마를 오래 저장하기 위해 말려서 먹거리가 부족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말린 고구마와 잡곡을 넣어 끓여서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 집에서도 고구마를 심어서 캐서 먹기도 했고 그 시절 욕지도에서 살던 작은 이모가 욕지 고구마를 주기도 했던 것 같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에는 마당이 있었고 그 마당 한편에 놓인 평상 위에 고구마를 썰어서 말려두었다. 고구마전분이 하얗게 나와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고구마는 하얗게 말라갔다. 그렇게 말린 고구마를 가지고 강낭콩에 여러 가지 잡곡을 넣고 오랜 시간 빼떼기 죽을 끓여서 간식으로 내주셨다. 커다란 솥 한 가득 빼떼기 죽을 끓여놓으면 뜨거울 때는 호호 불면서 먹다가 차갑게 식은 후에도 또 야금야금 맛나게 먹었다. 차갑게 식어도 그 맛이 달라지지 않고 양갱처럼 약간의 쫀득거림이 있어서 맛있어서 나는 차가운 빼떼기죽을 더 좋아했다. 은근하게 달콤하면서 기분 좋게 배를 채워주고는 했다. 아마도 고구마를 썰어서 말리고 또 여러 가지 잡곡에 오랜 시간 불에서 끓여서 내어 온 엄마의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었기에 더 달콤하고 더 든든하게 나에게 전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은 눈으로 코로 입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흡수되어 오래도록 남는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통영에 살아서 내가 접해 볼 수 있었던 여러 음식들이 다시금 내게 참 소중하게 다가온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통영의 맛, 바다의 맛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아서 나를 지탱하게 하는 든든한 힘이 되어 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