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동 354의 추억
2018.11.
더불어 차 상 희
올해 3월에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꿈을 꾸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그해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을 살았던 미수동의 우리 집이 나오는 꿈이었다. 그 때 우리 집은 방향에 따라서 내리막 길 쪽에서 보면 2층집이고 바다 쪽에서 보면 지하층이 있어서 3층집으로 보이는 구조였다. 지하층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외삼촌이 살고 있었고 1층은 횟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층은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이었다. 그 집의 내 방에서는 창이 두 곳으로 나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충무대교가 보이고 다른 쪽에서는 당동 쪽 바다가 보였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하면서 앉아 있다 보면 배가 지나가는 풍경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집에서도 늘 바다가 보였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나는 충무대교를 건너서 학교를 다녔기에 매일 대교 위를 건너면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바다를 보면서 그 시절을 보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 시절 바다는 늘 내 곁에 있어주었다.
그렇게 꿈을 꾼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었을 때 나는 우연히 미수동 쪽으로 지나다가 우리가 살던 집이 아주 근사한 카페로 변신을 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집은 10년이 넘게 아무도 살지 않고 외롭고 쓸쓸한 외관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날 뚝딱하고 근사하게 변한 그 집을 보면서 나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그 집을 떠나보내게 되었는데 이렇게 멋지게 변한 모습을 보니 우리가 끝까지 그 집을 지켰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었고 나는 마음을 먹고 그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과연 어떤 분들이 이 집의 주인이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살던 그 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구석구석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오전에 아직 손님이 없는 그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마주한 그곳은 밝은 등이 반짝거리고 예쁜 꽃들이 장식되어있었다. 카페 앞으로 펼쳐진 바다가 나를 중고생이던 시절로 데려가는 듯했다. 주문을 하면서 살며시 주문을 받으시는 분께 혹시 주인분이시냐고 물어보았다. 그분이 주인이 맞으셨고 나는 그분과 눈을 맞추며 내가 중고생시절을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곳은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고 저곳은 어떤 모습이었다고 주저리주저리 처음 뵙는 그분께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다행이도 그분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반가워해주셨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이 집을 직접 지으시고 처음 이곳에 사셨던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따님도 이곳을 방문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이곳에 사셨던 분들이 한데 모이게 된다면 그것도 참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고 그 추억들이 궁금해졌다. 이 공간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좋아하는 공간으로 변하게 된 것에 벅찬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 싶으면 한 번씩 추억을 소환하러 찾아 가볼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좋다.
바다는 나에게
이해인 / 수녀, 시인
바다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삼촌처럼 곁에 있다
나의 이야길 잘 들어 주다가도
어느 순간 내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엄살은 무슨? 복에 겨운 투정이야"
하고 못 들은 척한다
어느 날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부탁하면
금방 구해줄 것처럼 다정하게
"그래, 알았어" 하다가도
"너무 욕심이 많군!" 하고
꼭 한 마디 해서
나를 무안하게 한다
바다는 나에게
삼촌처럼 정겹고 든든한
푸른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