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증명서
(창세기 45:11)
1. 호적(戶籍)
호주를 중심으로 어떤 집안의 내력을 간직한 호적 제도는 2007년을 끝으로 없어졌습니다. 2008년부터 호주와 호적 대신에 각 개인의 가족관계를 기록한 가족관계등록부(家族關係登錄簿)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과거의 호주제가 양성평등의 헌법 정신에 위배 된다고 2005년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함에 따라,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종전의 호적이 호주 중심의 가족 단위로 작성되었던 것과 달리 가족관계등록부는 개인별로 작성되었습니다.
2022년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4.5%인 750만 2천 가구이고, 연령대별 비중은 29세 이하 19.2%, 70세 이상 18.6%, 30대 17.3%, 60대 16.7% 순서로, 지역별 전체 가구 대비 1인 가구 비중은 대전이 38.5%로 가장 높았고, 서울(38.2%), 강원(37.2%), 충북(37.0%), 경북(37.0%) 등 전국적으로 비슷한 모양입니다. 세 집 중에 한 집은 혼자 사는 집이랍니다.
가마솥에 밥을 해서 일고여덟 명이 둘러앉아 한 상에서 아침 식사를 같이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혼자서 끼니를 이어가는 ‘혼밥’이 일상이 되었으니 참 많이 변했습니다.
요셉은 열두 형제가 북적거리며 살던 아버지 집안에서 출가하여 하루 세 끼니를 ‘혼밥’으로 해결하며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떨어져 살던 가족을 다시 만났습니다.
2. 가족입니까?
한집에 살면 가족이었습니다. 한솥밥을 먹으면 가족이었습니다. 얼굴만 닮아도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의 손놀림에 따라 얼굴이 만들어지고, 밥은 식당 주방장이 해주는 대로 먹고, 한 지붕 아래 수십 가구 수백 명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 식구고 누가 내 가족인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매번 머리카락을 뽑을 수도 없고, 동사무소에 가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볼 수도 없습니다. 요셉은 친부 확인 소송을 내지 않았고,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누가 내 가족입니까?
1) 가족은 짐을 같이 집니다(창45:11).
강아지 한 마리를 집안에 들여놓았더니 그 강아지 때문에 웃을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 강아지가 웃을 일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고뭉칩니다.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모릅니다. 강아지는 남의 집 강아지가 이쁘고 귀엽습니다. 집안으로 들여놓으니 짐입니다. 같이 지내려면 누군가가 그 짐을 져야 합니다. 가족은 짐을 같이 지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동생을 집안으로 들인 요셉은, 그 짐을 스스로 자기가 다 지겠다고 합니다.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고, 모든 형제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남았지만, 애굽의 총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가족으로 그 짐을 지겠다고 합니다. 그 짐은 짐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아버지와 형제들을 위해 지는 짐은 짐이 아니라 가족관계증명서입니다.
가족은 무거운 짐, 가벼운 짐 가리지 않고 짐을 같이 집니다. 네 짐 내 짐이 따로 없습니다. 짐을 같이 지는 사람이 가족입니다.
2) 가족은 허물이 없습니다(창45:5).
같이 살다 보면 지지고 볶을 일이 한두 가지 아닙니다. 저는 반갑다고 하는 짓이겠지만, 신으려고 내려놓은 실내화를 물고 달아납니다. 가지고 오라고 불러도 못 들은 척 왔다가 돌아갑니다. 한 짝만 신고 따라가면 침대 밑으로 들어갑니다. 나오라고 부르면 맨입으로 나옵니다. 쭈그리고 엎드려 손을 뻗쳐도 닿지 않습니다. 옷걸이라도 들고 머리를 처박고 간신히 꺼내기는 하지만 내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입니다. 듣는 사람은 남의 집 강아지니 재미있어 웃을지 몰라도 한집에 살아야 하는 가족으로는 짜증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들춰내지 않았습니다. 나를 애굽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말고, 나를 죽이려 했다고 한탄하지 말라고 합니다. 형으로서 동생에게 이보다 더 나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죽으라고 구덩이에 처넣고, 멀리 애굽으로 팔아넘긴 형들의 행위는 한 가족, 동생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허물이요, 다시는 상종도 할 수 없는, 남만도 못한 형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허물 많은 형들을 허물하지 않고 용서합니다.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사이에는 허물이 없습니다. 감출 허물도 없고 끄집어낼 것도 없습니다. 내 허물이기 때문입니다. 허물이 없어야 가족입니다.
3) 가족은 같은 길을 갑니다(창45:7).
아무리 같이 사는 가족이지만 생각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재주도 다릅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살다 보면 서로 의견이 달라 부딪치고 싸울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서로의 관심이 오히려 간섭으로 느껴지고, 그 간섭이 자존심을 건드리고, 기분이 망가지고, 언성을 높여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뿐입니다. 가족은 바로 돌아서서 다시 한길, 가던 길을 갑니다.
요셉은 애굽 상인들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오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로 형들이 빈 쌀자루를 들고 내려왔고, 동생 베냐민이 형들을 따라 그 길로 내려왔고, 나중에는 아버지 야곱이 자식들 앞세우고 그길로 내려왔습니다. 그동안의 우여곡절은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한 길로 내려와 한 집에 모였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 먼 길, 그 넓은 땅, 그 많은 집이 있지만, 가족은 한 길을 걸어 한 집에서 모입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3. 가족관계증명서
호적초본을 대신하는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내 가족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출생의 비밀부터 어떤 사람들과 무슨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가족인지 아닌지를 증명해줍니다. 피를 나눈 혈족(血族)이 있고, 결혼을 통해 법적으로 만들어진 처가(처족)과 시가(시족) 즉 법족(法族)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믿음의 가족 즉, 신족(神族)이 있습니다.
호주제는 없어졌고, 세 집에 한 집은 1인 가구가 되었고, 명절이 되어도 가족보다는 여가가 우선인 세상에서 누가 가족이고 누가 이웃인지를 분간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이 이웃이 될 수 없고, 이웃이 가족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핵가족이 되어 갈수록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울타리, 어떤 것을 주고도 만들 수 없는 가족의 울타리는 더욱 견고해져야 합니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절하는 꿈은 요셉의 믿음이었습니다. 허물없이 서로의 짐을 같이 지고, 한 목적지를 향해 더디더라도 함께 가는 그 믿음이 가족관계증명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