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배 탄 사람들
(사도행전 27:9-19)
1.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한 달 일하고 받는 월급을 셀러리라고 하고,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봉급생활자를 셀러리맨이라고 합니다. 신성로마 제국에서는 월급을 소금으로 주었습니다. 셀러리(salalium)라는 말이 라틴어로 소금이라는 뜻이랍니다. 월급 주던 군인을 솔저(soldier)라고 하는 것도 소금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이탈리아반도 남쪽의 테베레강(Tebere) 근처에서 이미 BC. 4세기경부터 바닷가에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소금 광산에서 파낸 소금보다 값싸고 맛도 좋아 찾는 이가 많았습니다. 이 소금을 내륙으로 운송하고 나아가 유럽 여러 지역으로 팔기 위해 길을 닦다 보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되었고, 로마는 소금을 판 돈으로 강력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하게 한 소금길을 따라 죄수가 된 바울이 배를 탔습니다. 어두운 율법의 그늘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만나 개종하여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울이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다가 결국은 유대교의 이단자로 몰렸습니다. 유대인들에 의해 고소를 당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유대인들에게 재판받는 것은 그 결과가 뻔하므로, 로마로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의 호송을 받으며 함께 로마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2. 한배 탄 사람들
죄수가 된 바울은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를 향해 길고도 먼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욥바항구를 떠나 지중해를 따라 이탈리아를 향해 가던 중 미항이라는 항구에 들렀는데, 날씨가 사나워졌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지니 배를 띄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갑론을박 말이 많아졌습니다. 바울은 이런 기상 상태에 배를 바다 위에 띄우면 위험하다고 반대했습니다. 싣고 가는 화물은 물로 배도 부서지고 그 안에 탄 우리 생명도 보장할 수 없을 것임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선장과 선주는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그 손해는 누가 감당할 것이냐면서 조금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죄수들의 호송을 책임지고 있던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서둘러 가자고 동의했습니다. 마치 10년 전 세월호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한배를 타고 있는데 생각은 하나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까지 무사히 가야 하는 바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른 다녀와서 다시 한탕을 더 뛰어야 수지가 맞는 선주가 있고, 선주 마음에 들어야 월급을 더 받는 선장도 있습니다. 죄수들의 호송을 맡은 백부장은 이래도 저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한 달 지나면 월급 나오니 서두를 이유도 없고, 배 부서져도 손해날 것 없으니 붙잡을 이유도 없습니다. 배는 하나지만 그 안에 참 여러 사람이 타고 여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말도 많습니다. 입 달린 사람이라면 모두 한마디씩 합니다. 제각각 다른 말을 합니다. 그렇다고 그 말들이 다 옳은 말, 바른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들어보면 틀린 말도 아닙니다.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듯이, 들어야 할 말이 있고, 들어서는 안 될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옥석 가려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3. 바람이 불어야 알곡이 드러납니다.
전문 뱃사람인 선주와 선장의 말을 무식한 죄수의 말 보다 더 믿은 백부장 율리오의 결정으로 배는 항구를 떠났습니다. 육지를 떠나 바다 한가운데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풍이 불어 순조롭게 출발했습니다. 바울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바다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장의 뜻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어 바람 부는 대로 밀려다니며 배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나중에는 항해하는 데 꼭 필요한 배의 기구들까지 내버리며 배를 가볍게 했습니다. 이제 선장과 선주가 할 말이 없습니다. 바울이 나서서 한마디 합니다. 그러기에 내 말을 들었으면 좋을뻔하지 않았느냐. 그랬으면 이런 불행한 일을 만나지 않았을 것인데, 그러나 이제는 안심하라고 합니다. 혹 배는 부서지더라도 우리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니 이 배를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자고 했습니다. 결국은 그 배에 타고 있던 276명 모두 다른 배로 갈아타고 안전하게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할렐루야.
바람이 불어야 알곡이 드러납니다. 작은아들이 주머니에 가득 돈 넣고 다닐 때는 친구도 가득하게 많았습니다. 밥 같이 먹는 친구, 심심할 때 놀아주는 친구, 여기저기 같이 돌아다니는 친구가 종류별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돈 떨어지니 친구도 다 떨어졌습니다. 바람 한 번 부니 돈과 함께 친구들도 다 날아가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냄새나는 돼지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이 탄 배에 선장과 선주 그리고 백부장에 다른 죄수들까지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배의 안전과 안전한 여행을 위해 바른말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른 생각 하는 사람은 바울밖에 없었습니다. 바울 곁에 친구도 없었습니다. 배의 안전을 걱정하고, 안전한 여행을 걱정하고, 그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울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 자기 편에 서서 생각하고, 제게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며, 눈앞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계산하며 결정하고 있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가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한번 세차게 불어닥치면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습니다.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야 토실토실 알곡이 드러납니다.
유라굴로 광풍은 알렉산드리아호 배를 망가트리는 바람이 아닙니다. 바울을 바울 되게 해서 주님의 복음이 빛을 발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겨울 지나고 가자던 바울의 말을 선장이나 선주의 말보다 더 빛나게 했고, 바울의 말에 따라 배에서 떠나지 않은 276명의 생명이 안전하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할 바울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4. 주인공은 죽지 않습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은 병이 들어도 죽지 않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은 총에 맞아도 죽지 않습니다. 등장인물이 아무리 많아도 주인공은 죽지 않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한배에 탄 사람들, 돈을 벌기 위해 탄 사람이 있고, 일하기 위해 탄 사람이 있습니다. 선장과 선주는 돈을 벌기 위해 배에 탔습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바람이 불어도 풍랑이 일어도 배를 띄웁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죄수를 호송하는 것이 그의 일입니다. 배가 부서지든 가라앉든 상관이 없습니다. 빨리 가든지 서 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이 배 아니면 다른 배로 갈아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는 그 로마에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사명을 받아들고 그 배에 탔습니다. 인생 여로에 일엽편주 작은 배에 의지하며 항해하는 우리 배도 수시로 풍랑을 만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끝까지 죽지 않는 주님의 사명으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