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 다음이 펼쳐진다.
<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고 >
2025.1.더불어
이 책의 앞부분에서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남겨진 남자들과 함께 살며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어린 소녀 빅토리아가 우연히 길에서 인디언소년 윌슨문을 만나게 된다. 그 짧은 순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처럼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는 소녀의 가슴속에는 윌슨문이 하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까지 계속 머릿속을 맴돌게 된다.
“윌슨 문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결코 서두르거나 초조해지는 법이 없었고, 사람 사이에 생기는 긴 침묵을 수다로 채워야 할 어색한 그릇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는 좀처럼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 없었고, 과거를 돌이키는 일은 그보다 없었으며,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오로지 현재의 순간만을 두 손에 소중히 담고서 작은 것 하나하나에 경탄하는 사람이었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윌슨문은 그 마을 사람들로부터 쫒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빅토리아는 옆집에 숨어 지내던 윌슨문과 남몰래 밤에 만나게 되고 둘은 불같은 뜨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강렬하게 누군가에게 빠져들 수 있는지 놀랍기도 했다. 젊은 남녀의 사랑은 결실을 맺게 되고 빅토리아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체 지내게 된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남동생이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윌슨문은 마을의 다른 청년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 당시 시대상을 잘 모르지만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렇게 대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 같았다.
혼자 남겨진 빅토리아는 점점 배가 불러오면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집을 떠나 아이를 낳기 위해 윌슨문과 함께 지내던 장막으로 가게 된다. 어떻게 그곳에서 홀로 지내면서 자연에서 먹거리를 찾고 몇 달을 보낼 수 있었는지 아마도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더 견뎌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빅토리아는 결국 혼자서 아이를 낳게 되지만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산을 내려와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 아이를 두고 떠나게 된다. 그때의 슬픔을 ‘슬픔을 넘어서는 슬픔’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그녀는 그 슬픔으로 인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 지게 되고 연약한 소녀에서 강인한 여성으로 바뀌게 된다.
사실 내가 빅토리아의 엄마였다면... 아마도 처음부터 윌슨문을 만나는 것을 반대했을 것이고 이렇게 비밀리에 만나게 되어 아이를 가졌다면... 아마도 빅토리아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 빅토리아는 옆집에 사는 루비앨리스를 찾아가게 되고 그녀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 이후 그녀는 미친 사람도 악마도 아니었고 그저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를 돌봐주며 살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윌슨 문과 루비앨리스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당하게 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차별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 하는 것 같았다.
나또한 그렇게 심하게는 아니더라도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 외면하고 무시하려는 경황이 있는데 조금은 더 상대를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빅토리아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함께 살던 이모부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말썽만 부리던 남동생도 일을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고 아버지만이 남아계신다. 빅토리아는 예전처럼 묵묵히 집안일을 하며 지내게 된다. 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고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되고 어릴 적부터 함께 해왔던 복숭아농장을 빅토리아 혼자 맡게 된다.
할아버지대부터 쭉 이어오던 집안의 자랑스러운 복숭아농장이지만 마을이 댐 조성을 위해 수몰되게 되게 빅토리아는 식물학교수의 도움을 받아 복숭아나무를 옮겨 다른 곳으로 가져가서 심게 된다. 그것은 성공을 장담할 수없는 일이었지만 빅토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역경을 이겨내고 그 복숭아나무 또한 새로운 토양에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새로운 터전에서 복숭아농장을 잘 꾸려가는 빅토리아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이 버린 아이가 자꾸 생각나고 그 기억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참 신기하게 매년 찾아간 아이를 버렸던 장소에서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편지에는 아이를 데려가서 키운 이야기들이 길게 쓰여져 있다. 빅토리아는 그 편지의 주인을 찾게 된다. 그녀를 통해 빅토리아는 자신의 아들 루카스를 만나게 된다.
루카스를 만나기 전 아들이 자신을 만나기를 거부하면 어쩌지,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만나게 된다.
“어떤 존재가 형성되기까지는 시간이라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윌이 가르쳐 주었듯이 흐르는 강물처럼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걸림돌을 무릅쓰며 멈추지 않고 흘러왔다는 게 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강물처럼 나 역시 나를 다른 존재들과 이어주는 작은 조각들을 모으면서 살아왔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빅토리아와 루카스가 만나는 장면에서 윌슨문이 꼭 살아서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는 대목이 참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어릴 때 만났던 잠깐 동안의 윌슨문의 모습과 성품을 똑 닮은 루카스를 만났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인생의 우여곡절을 다 겪어내고 끝까지 살아낸 사람의 모습에서 존경심이 들었다. 과연 나라면 하고 생각해보니 절망을 더 했을 것 같은데 빅토리아는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의 편견들과 복숭아 농장을 과연 잘 일궈나갈 수 있을지 불안과 걱정,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아이를 버리고 살아온 더 큰 슬픔까지도 겪어내면서 살아온 그 삶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그리고 한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한사람이 그렇게 크게 자리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그 사람과의 만남의 시간이 얼마나 오래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순간일지라도 한사람의 인생에 파문을 던지고 그것이 인생을 바뀌게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린 시절의 풍경은 우리를 창조한다. 그 풍경이 내어주고 앗아간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되어 우리 가슴에 남고, 그렇게 우리라는 존재로 형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