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울릉도 성인봉(984m), 독도. 경북 울릉군 소재.
산 행 일 : 2010. 9. 11.(토) 산행코스 : 도동 ~ 통구미 ~ 태하항 ~ 현포 ~ 천부항(풍혈) ~ 나리분지 ~ 저동항 ~ 도동 (울릉도 일주 버스투어) 산행참석 : 26명.
<울릉도 탐방 일정>
일 자 | 지 역 | 교 통 편 | 시 간 | 세 부 일 정 | 식 사 | 9월10일 (금) | 서 울 | 전용차량 | 00:00 | * 영등포신세계 23:00 / 양재 서초구민회관 23:30 | | 9월11일 (토) | 묵 호 울릉도 | 전용차량 쾌속선 | 05:00 08:40 11:10 12:30 18:00 | ▶ 묵호 여객터미널 도착 및 조식 ▶ 묵호항 출발 ▶ 울릉도 도착 및 점심식사 ▶ 육로 관광 및 성인봉 트레킹 (소요시간 약 5시간) ☞ 코스 : 나리분 →투막집 →신령약수→성인봉 → 도동 ▶ 숙소 방배정 및 저녁식사 | 조식:현지식 중식:현지식 석식:자유식 | ◈ 숙소 : 중앙장 여관 | 9월12일 (일) | 울릉도 독 도 울릉도
묵 호
| 쾌속선 | 05:00 07:00 12:30 13:00 17:00 19:30 19:40 21:00 | ▶ 기상 및 조식 ▶ 독도 탐방 ☞ 독도탐방 * 기상악화시 접도 못할수도 있습니다. ▶ 점심식사 ▶ 해안길 따라 행남도 트레킹(소요시간 약 3시간) ☞ 코스 : 도동항→해안산책로→행남등대→촛대바위→ 등대→저동 →도동 ▶ 울릉도 도동항 출발 ▶ 묵호항 도착 ▶ 저녁식사 ▶ 서울출발~~ go go ~~ | 조식:현지식 중식:현지식 석식:현지식 | 참고사항 | 1. 위 상기사항은 현지사정에 의하여 다소 변경될수 있습니다. 2. 기상악화로 인하여 섬 체류시 소요경비는 본인부담입니다. 3. 독도탐방은 당일 선표와 당일 기상에 의하여 변경 or 취소될수 있습니다. |
<산행 지도>
백대 명산을 찾아다니는 중에 울릉도의 성인봉도 백대 명산에 포함되어 있어서 울릉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울릉도는 배편과 숙소는 물론이거니와 섬 내에서의 이동을 위한 교통편도 따로 준비를 하여야 한다. 다행히 우리 산우회의 원년 멤버인 최여사님이 안내산악회를 운영하고 계셔서 전체 일정을 도움받기로 했다. 비행장이 없는 울릉도에 가기 위해서는 포항이나 묵호에서 배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빠른 괘속정을 이용하더라도 3~4시간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혹여 풍랑이라도 일면 발이 묶이기 일쑤라서 육지의 직장인들이 울릉도 여행을 마음먹기란 그리 녹록지가 않다. 국내 산행에 휴가를 낼 수도 없는 형편이라 우리는 금요일 저녁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묵호항까지 버스로 이동하고, 묵호항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배편으로 울릉도에 도착하여 백대명산인 성인봉 산행을 하고, 이튿날인 일요일에 독도 탐방을 하고 서울로 돌아는 2박 2일 일정으로 울릉도 탐방을 계획하고, 평소의 산행과 마찬가지로 금요일 저녁 늦게 양재에서 버스에 올라 묵호항으로 출발한다.
흐린 날씨를 걱정하며 양재에서 버스에 올라 묵호항 여객선터미널 주차장에 도착하여, 잠시 더 뒤척이는 사이에 어느새 날이 밝았다.
묵호항 전경.
터미널 주차장 옆에 있는 향로식당이란 곳에서 곰치국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곰치국은 곰치로 끓인 강원도 삼척 지방의 해장국으로, 강원도 삼척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꼼치가 표준어인 곰치는 지역에 따라서 '물메기', '물텀벙', '물고미', '물미거지'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데, 곰치(물곰)와 물메기는 사는 지역이나 생김새가 서로 다른 생선이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물곰이라는 곰치가 잡히고, 서해안이나 남해안에서는 물메기가 잡힌다. 옛날에는 곰치가 못생기고 살이 물러서 안 먹고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하며 비린내가 없고 살이 연하여, 바닷가 최고의 해장국 재료로 꼽힌다. 곰치국은 맑게 끓이는데, 묵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얼큰하게 하여 먹기도 한다. 뱃사람들은 배에서 곰치를 걸어 말린 후에, 살을 찢어 구워 먹기도 한단다.
곰치국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백두들.
아침식사를 마치고 묵호항 여객터미널에서 울릉도행 배를 기다리는 백두들.
울릉도행 뱃삯이 예상보다 훨씬 비싸다.(인천에서 제주도까지가 5만원 정도임)
기획상품이라서 요금이 좀 저렴할 듯도 한데..
울릉도로 가는 씨플라워호 승선.
씨풀라워호 내부 전경.
울릉도에 접근하며 하선 채비를 한다.
울릉도 도착하여 하선.
울릉도 도동항 전경.
<울릉도(鬱陵島)> 울릉도는 경상북도 동북단 동해상에 위치한 군으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면적 72.9k㎡, 해안선 길이 64.43km인 울릉도는 성인봉(聖人峰, 986m)이 최고봉이다. 육지와의 거리는 경상북도 포항에서 217km, 후포에서 159km, 동해 묵호에서 161km, 강릉에서 178km이다. 인구는 1만 153명(2015년 현재)이다. 현재 울릉도는 1읍 2면 25리 체제이다. 울릉군의 주도(主島)는 울릉도이며, 부속 도인 관음도는 예전에 유인도였다가 지금은 무인도로 변했으나 연도교가 놓여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그 외 울릉도의 저동항 바로 앞에 있는 죽도(1가구 2명), 독도의 서도(1가구 2명) 동도(등대원들과 독도 경비대원)로 이루어져 있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하여 남쪽은 가두봉, 동북쪽은 두루봉에 이르는 능선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섬의 북서부에는 나리분지가 있는데 동남과 서남부가 높이 500m 정도로 단애(斷崖)에 둘러싸였고, 북쪽에는 200m 정도의 낮은 산지가 가로막혀 있는 울릉도 유일한 평야이며 유명한 관광지이다. 울릉도에 대한 지명은 512년(지증왕 13)에 우산국에 대한 이야기로 처음 등장한다. 930년(태조 13) 우릉도(芋陵島), 덕종 때 우릉성(羽陵城), 인종 때 울릉도(蔚陵島) 등의 지명이 등장했다. 고려 때는 울릉도(鬱陵島)·우릉도(于陵島)·무릉도(武陵島) 등이 나온다.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라 하고 독도를 송도(松島: 마쓰시마)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메이지 정권 전후에 울릉도를 마쓰시마,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였다.
울릉도는 신생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종상화산으로 조면암·안산암·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넓은 구화구에 신화구가 분출한 이중화산인데 성인봉(聖人峯, 984m)은 외륜산에 해당하고, 신화구인 알봉분지에는 중앙 화구인 알봉(卵峯, 538m)이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화산체이므로 해안은 대부분이 절벽을 이룬다. 특히 서남과 동남 해안은 90m 높이의 절벽으로 천연의 양항 발달이 어렵다. 온화한 해양성기후로 2005년의 최저 기온은 -9.1℃, 최고기온은 32.3℃, 연평균 기온은 12.2℃, 연강수량은 1,511.6㎜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폭풍 일수가 많다. 강수량은 연중 고르게 나타나며, 특히 겨울철에는 강설량이 많아 우데기라는 특수한 가옥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 식생은 향나무·박달나무인데, 특히 향나무는 섬 전체에서 볼 수 있으며 그밖에 해당화·섬들국화도 자라고 있다.
울릉도는 512년(지증왕 13)에 신라에 귀속되었다. 1018년(헌종 9) 여진족의 침입을 받았고, 1157년(의종 11) 주민들을 이주시킬 계획을 가졌었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고려 때부터 공도정책(空島政策)이 시행되다가 1694년(숙종 20)부터 울릉도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공포되어 이민이 장려되었다. 1900년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개칭하면서 강원도에 편입하였고, 1906년 울도군을 경상남도에 편입했다. 1914년 경상남도에서 경상북도로 이속시키고, 1915년 군제를 폐지하고 제주도와 더불어 도제로 변경하였다. 1949년 정부 수립 후, 울릉군으로 환원하였고 1979년 남면이 울릉읍으로 승격하였고, 2000년 4월 7일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를 신설하였다. 울릉도는 국토의 막내이며 사연이 많은 곳이다. 울릉도는 512년(지증왕 13) 때 이사부 장군에 의하여 신라에 귀속되었다. 그 당시 울릉도를 우산국(于山國)이라 불렀으며, 우해왕(于海王)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때 신라 장수 이사부 군사가 처음 우산국에 상륙하여 이 작은 섬을 쉽게 정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와 험준한 산악에서 살아온 우산국 주민들은 손쉽게 항복하지 않았다.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자 이사부 장군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쓰게 된다. 이 섬에 맹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무로 사자상을 만들어 불을 뿜어대는 위력을 발휘한다.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놓아서 죽이리라’ 하니 그들이 두려워하여 항복하였다고 쓰여 있다. 사자만 보아도 놀라운데 입에서 불까지 토해내는 바람에 섬사람들은 그만 항복하고 만 것이다. 백기를 든 우산국의 우해왕은 이 놀라운 나무 사자로 우산국을 잘 통치해 달라고 유언과 동시에 자신은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사부 장군은 항복한 우해왕의 유언을 들어주기로 하고 그 나무로 만든 사자를 해변으로 던졌는데 그만 그 사자상이 굳어져서 지금의 서면 남양리에 있는 사자봉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해왕이 투신할 때 벗어 두었던 투구도 그대로 굳어져서 지금의 투구봉이 되었다. 고려 태조 13년에 우산국 사람 백길토두로가 와서 토산물을 헌납하였다. 의종 때에 울릉도가 산림이 울창한 데다 섬이 크고 토지가 비옥해서 백성들이 살 수 있다는 소식을 왕이 전해 듣고, 1157년(의종 11)에 김유립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 『고려사』에는 고려 현종 9년에 동북의 여진족이 울릉도에 침입하여 섬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울릉도는 여진족의 침입으로 인해 고려 현종 때부터 거의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무인도가 되었으나, 조선 초 이래 육지의 백성들이 계속 건너가 살았다. 930년(태조 13)에 우릉도, 덕종 때는 우릉성, 인종 때에는 울릉도 등의 지명이 등장했다. 울릉도는 조선시대 태종 이후 공도정책을 실시하여 주민들이 살지 않았으나 숙종 19년(1693), 일본이 울릉도를 죽도라고 부르면서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였다. 1696년(숙종 22)에 울산에 살던 어부 안용복 등의 눈부신 활약으로 울릉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끝나게 되었다. 그 뒤에 관리를 파견하여 3년마다 1회씩 울릉도의 순찰을 강화하여 일본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고 영국처럼 해양을 중요시 여기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죽도와 송도라고 부르며 자주 건너와 울창한 산림을 벌채하였다. 이에 조정은 1881년(고종 18)과 1882년(고종 19)에 일본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1882년에는 이규원 감찰사가 울릉도를 감찰하고 개척령이 선포되었다. 이후 이민이 시작되어 울릉도에 공식적으로 주민들이 살게 된 것이다. 근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한반도의 여러 섬들을 개척하라는 고종 황제의 명을 받들어 벼슬을 시행하던 김옥균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고종 19년(1882)에 개척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울릉도에는 한국인 116명과 일본인 79명이 나라의 허락도 없이 몰래 들어가 도벌과 해산물, 약초를 채취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울릉도는 1914년 경상남도에서 경상북도로 이속되었다. 1949년 정부 수립 후 울릉군이 되었고, 1979년 남면이 울릉읍으로 승격하였으며, 2000년 4월 7일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를 신설하였다.
예전의 울릉도는 외로운 섬으로 불릴 만큼 인적이 뜸했다. 그 이유는 워낙 파도가 높고, 잘못하면 풍랑주의보 때문에 3-4일간 붙잡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두 옛이야기가 되었다. 작년 한 해에 무려 40만이 넘는 관광객이 울릉도 여행을 하였으니 섬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관광지로 대변신을 하였다. 울릉도의 가장 큰 마을인 저동항에는 유명한 봉래폭포가 있다. 여름철에 내수전 해수욕장에서 야영을 많이 한다. 내수전 약수터에서 한참을 위로 올라가면 죽도, 관음도, 섬목이 한눈에 펼쳐진다.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 석포마을까지는 트레킹 코스로 좋다. 석포에서 오른쪽에는 관음도가 정면으로 보이고, 선창에서 현포마을까지 절경의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도동항 인근에 있는 숙소로 향한다.
숙소인 중앙모텔에 여장을 풀고 바로 앞에 있는 중앙식당에서 백반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을 먹었던 중앙식당. 숙소인 중앙모텔과 관련이 있는 듯한데, 시설은 형편없었으나 중앙식당의 음식은 그런대로 깔끔했던 듯하다.
이틀간의 일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협의를 한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성인봉 산행을 포기하고 내일에 예정되었던 버스 일주 투어를 진행하기로 하였으나, 백대명산 산행을 와서 성인봉 산행을 꼭 해야 한다고 우겨서, 내일 오전에 독도 선상관광과 성인봉 산행을 나누어 진행하기로 한다.
숙소인 중앙모텔이 있는 골목 전경.
우천으로 성인봉 산행은 내일로 미루고, 소형버스에 올라 울릉도 일주관광에 나선다.
길가에 걸려있는 관관 안내판.
버스를 타고 시동항 방향을 향하며 돌아본 도동 방향.
통구미 해변 거북바위 도착.
통구미(桶龜尾)는 울릉군의 유일한 자연 포구로, 마을 양쪽으로 골짜기가 깊고 좁아 통처럼 생겼다고 하여 통구미라 하였으며, 또한 거묵 모양의 바위가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것을 보고 거묵이가 들어가는 통과 같다고하여 통구미(桶龜尾)라 하였다고도 하며, 거북바위와 향나무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통구미를 향하고 있는 거북바위 모습. 그다지 거북스럽지 않다. 아마도 보는 위치에 따라 거북이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향나무 자생지로 알려진 해안절벽 모습.
자연포구로 형성된 통구미 마을 포구에는 작은 몽돌해수욕장이 있고, 거북바위와 함께 마주 보며 향나무 자생지가 자리하고 있다. 울릉도의 특산품을 예기할 때 빼어 놓을 수 없는 향나무는 바위에서 산다고 하여 석향(石香)이라 불리기도 하며, 과거에는 울릉도 주민들의 땔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태우면서 나는 향이 독해서 당시에 모기가 접근을 하지 않았으며 향나무 향기를 싫어하는 뱀 역시 향나무가 많은 울릉도에는 살 수 없다고 한다.
통구미 해안 서쪽의 향나무 자생지 모습.
거북바위는 보는 방향에 따라 7~8마리의 새끼 거북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ㅉㅉ
태하항으로 향하는데 우측 창밖으로 버섯바위란 안내판이 있다.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황토흙이 보이는 태하항 황토굴 도착.
예전에는 이곳 깊숙이 바닷물이 밀려왔을 텐데, 지금은 도로가 조성되어 파도소리가 머물던 곳에는 사람들의 발길만 머무는 곳으로 바뀌었다.
황토굴 전경. 황토굴의 일부분만 황토가 드러나 있다.
<태하항(台霞港)>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있는 어항으로, 1972년 2월 5일 지방어항(구 제2종 어항)으로 지정 고시되었다. 2003년 태풍 매미 때문에 항구 시설이 완전히 유실되자 사업비 약 121억 8,000만 원을 투여하여 2006년 6월 복구하였다. 항내수면적 4,544㎡로, 방파제 110m, 물양장 130m, 돌제(突堤) 35m의 시설을 갖추었으며 20여 척의 어선이 이용하고 있다. 태하항으로는 지방 2급 하천인 태하천이 흘러들어 온다. 항구 주변에 태하 황토굴과 울릉도의 대표적인 서낭당인 성하신당(聖霞神堂), 해안절벽 대풍감(待風坎, 해발고도 171m) 등이 있다. 대풍감 위에는 울릉도등대(태하등대)와 '울릉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49호)'가 있다. 태하항(台霞港)은 울릉도 서부에 위치하며, 울릉도 개척 당시 제일 먼저 사람의 발길이 닿은 동남동녀의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천해의 절경을 자랑하는 태풍감, 만물산, 기타 천연기념물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태하항 전경.
황토굴에서 대풍감 해안산책로로 가기 위해서는 철기둥 계단을 따라 올라야 한다.
대풍감 해안산책로로 들어선다.
돌아본 태하항 조망.
태하항을 배경으로.
해안산책로를 따라 대풍감에 있는 울릉등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해안산책로를 따라 모퉁이를 돌아서자 대풍감 낚시터가 나온다.
<대풍감(待風坎)> 경상북도 울릉군의 서면 태하리 북서쪽 해변 바다 끝에 위치한 바위산(154m)이다. 태하리에서 북쪽 방향인 현포리로 배를 타고 가면 해중에 하늘로 치솟고 있는 산에 밧줄을 꿰어서 맬 수 있을 만한 구멍이 있다. 등성이에는 태하등대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향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49호)가 있고 괭이갈매기들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해동지도』에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대풍소'(待風所)가 표시되어 있으며, 『조선지도』와 『대동여지도』에도 나온다. 『울릉도도형』에는 대풍구미(待風龜尾)로 표시되어 있으며, 『조선지형도』에 대풍감(待風坎)이 기재되어 있다. 1882년(고종 19)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기 이전에 전라도 사람들이 울릉도를 많이 왕래하였는데, 이는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배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울릉도에는 배를 만들기에 적합한 나무가 많아 낡은 배를 타고 여기에 와서는 새 배를 만들어 돛을 높이 달고 바위 구멍에 닻줄을 메어 놓고 본토 쪽으로 부는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서 바위 이름을 대풍감(待風坎)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다리던 배는 마침 바람이 불어 돛이 휘어질듯하면 도끼로 닻줄을 끊어 한달음에 본토까지 갔다고 한다.
대풍감 방향으로 이어진 해안산책로를 따르면 울릉등대가 나올 듯도 한데...
울릉도등대 방향으로 더 진행하여 대풍감을 제대로 보고 싶었지만, 시간적인 제약으로 발길을 돌려 다시 태하항으로 향한다.
뱅글뱅글 돌아내려 태하항 황토굴로 다시 내려간다.
태하 지명유래.
성하신당 모습.
<성하신당(聖霞神堂)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559-7번지에 있는 신당으로, 울릉도의 대표적인 성황당이다. 울릉도에는 촌락마다 산신당과 해신당 등 신당을 갖추고 있는데 성하신당은 울릉도 전체의 성황신당 지위를 지니고 있다. 울릉도에서 크고 작은 배를 만들면 선주(船主)들은 가장 먼저 이곳에 배를 타고 와서 제사를 지낸 후 조업을 시작한다. 울릉군 서면 태하리 태하초등학교 아래 큰황토구미 마을의 숲에 있다.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목조 맞배지붕집으로, 주변에 담장이 둘러져 있다. 최초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19세기 말엽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원래는 현 위치보다 약 10m 남쪽에 있었으나 1934년 대홍수 때 유실되어 다음 해에 중건하였고, 1984년 증·개축하였다. 신당에 모신 신위는 ‘성하지남신위(聖霞之男神位)’와 ‘성하지여신위(聖霞之女神位)’이다. 1970년 9월 신상을 봉안하였으며, 1978년 2월 성황당에서 성하신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음력 3월 1일 또는 2일에 제사를 올리는데 울릉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제 형식으로 열린다. 성하신당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다. 조선 태종 때 안무사 김인우가 울릉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섬사람들을 모아 육지로 출항하기 전날, 김인우의 꿈속에 해신이 나타나 동남동녀를 두고 가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출항하려 할 때마다 갑자기 격랑이 일어 섬을 떠날 수 없었다. 이에 할 수 없이 예쁘장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속여 섬에 둘만 남겨 두고 배를 띄우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잦아들었다. 8년 후 김인우가 다시 울릉도에 갔을 때 그곳에는 꼭 껴안은 아이들의 백골만 남아 있었다. 이에 사당을 지어 참회하였는데 이로부터 성황당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성하신당 내부 모습.
세월이 변하여 성하신당 뒤쪽에는 태하교회 건물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현포를 향하는데, 길가에 울릉도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삶는 기구가 눈길을 끈다.
현포 전망대 도착.
살짝 당겨본 현포 앞 코끼리 바위.
코끼리 뒤쪽의 작은 바위섬은 코끼리 배설물일까?
현포 전망대에서 코끼리바위를 배경으로.
현포전망대에서 대풍감 방향을 배경으로.
현포 조망.
움직이지 않으면 마시는 백두들!
백두의 여전사들이 코끼리바위를 배경으로.
백두들이 떠난 현포전망대.
천부항 풍혈.
나리분지 도착.
멈추었으니 다시 마실 준비를 한다.
멈추었으니 다시 마셔야지..ㅉㅉ
동동주가 들어가니 혈색이 좋아졌쟎이여!
나리분지를 끝으로 울릉도 일주관광을 마치고, 저녁식사가 예정된 저동항으로 향한다.
저동항으로 이동 중에 시동해안 토산품 판매점 방문을 위해 내려서 바라본 시동해수욕장과 망향봉 방향.
시동리 토산품 판매점에서 오징어, 호박엿, 산나물 등을 조금씩 구매해 준다.
울릉도 호박엿의 재료들!
저동항에 도착하여 바라본 촛대암.
내수전 방향의 저동항 전경.
저동항 활어 횟집들을 둘러보고는,
둘러본 활어회와 무슨 관계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울릉도 약소전문이라는 '암소한마리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울릉도에서 오징어 회로 저녁식사를 예상했었는데..ㅉㅈ
숙소인 중앙모텔에서 2차.
2차도 오징어가 아닌 육포와 과일이 안주다.
거의 종일토록 비가 내리는 바람에 성인봉 산행을 내일로 미루고 울릉도 일주 투어를 했다. 버스를 타고 주마간산으로 보는 울릉도였지만 예상보다 멋진 경관을 가진 섬이다. 언젠가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보리라 다짐을 하며, 내일 독도 탐방과 성인봉 산행을 위해 비가 개여서 화창한 날씨로 바뀌기를 기대하며, 편하지 않은 잠자리에 든다.
(울릉도 2일차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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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청 오래전 일인데 언제 올리신거요? 좌우간 옛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돌아올 때는 배멀미로 고생한 기억이 제일 큽니다. . 다른 회원님들 독도 관광가셨을 때 배멀미 걱정스러워서 비 맞으며 혼자 성인봉에 간 기억도 . . .
오늘 올렸는데 날짜는 지난해 11월에 임시로 만들어 놓았던 곳을 이용했습니다.
시간 날때 마다 옛날의 빠진 부분들을 메꾸어 가고 있습니다.
저도 기억이 잘 나지않는데, 형님의 옛기억이 다시한번 사라져 가던 옛추억을 떠올리게 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