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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소감>
2025년 10월 24일 금요일
제1장 시간 속의 궁전(57~60쪽)
삶의 목적을 전복시키다 - 헤셸의 안식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시고 제자들을 모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 공동체는 예수님이 분부하신 것을 가르치고 배우고 행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동참합니다. 그렇게 생긴 새로운 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르는데, 교회는 이 세상에 모델이 되거나 대안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모델공동체(model community)이며 대안공동체(alternative community)입니다.
이것은 하워드 스나이더가 자신의 책, 『왕의 공동체』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델공동체는 세상을 비추는 빛과 같고, 대안공동체는 세상을 전복하는 혁명과 같습니다. 톰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가리켜 혁명이 시작된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사망 권세가 다스리는 세상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천상의 세계를 바라보고 사는 삶에서 돌이켜 지상에 하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깨닫고 그것을 추구하고 살기로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헤셸의 책, 『안식』을 읽으면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저는 더 착하고 더 정의롭고 더 너그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걸어야 하는 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헤셸의 책은 저에게 하나님 나라가 낡고 병든 세상에 대안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것을 느낍니다.
1. 쉼은 '수단'이 아닌 '목적'입니다
헤셸은 안식일을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더 효과적인 노동을 위해서 하루의 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이 안식일을 위한 수단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식일을 위해서 6일간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노동은 수단이고 안식이 목적입니다. 안식일은 생명을 위한 날입니다. 안식일은 천지창조의 목적입니다. 안식일은 삶의 막간이 아니라 삶의 절정입니다."
저는 이 말에 대하여 두 가지 감정을 느낍니다. 하나는 너무 낯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저의 생각과 정반대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2. 안식일: 하나님의 의도로 본 첫째 날
안식일이 목적이라면 그 목적은 이사야 43장에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즉,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하심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세상에 비추며 그 영광(아름다움)을 모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시편 8편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제사장입니다. 아니,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인간이 하늘의 정신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하늘의 은총을 힘입을 때 이 세상에서 생육 번성 충만의 통치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만물 위에 교회를 두시고 그 교회의 머리로 예수님을 세우셨다고 하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만물을 충만하게 하신다고 소개합니다.
그렇게 인간은 하나님의 어전(御前)에 서서 기쁨과 과묵함으로 경배합니다. 그것을 경험하고 연습하고 완성하는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안식일은 창조로 보면 마지막 날이지만(last in creation),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로 보면 첫째 날입니다(first in intention). 이것이 구약성경이 소개하는 안식일입니다.
3. 제8요일의 혁명: 새로운 통치의 시작
그런데 기독교회는 안식일과 유사한 의미로 주일을 기념합니다.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그 날은 안식 후 첫날입니다. 그것은 제8요일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저는 2024년 7월에 ‘제8요일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래와 같은 묵상을 했습니다.
제8요일은 일곱 번째 날인 안식일 다음 날을 가리킵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안식일 후 첫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성경은 안식 후 첫날이라고 말합니다. 그 날에 세상은 그 이전과 다른 새로운 곳이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설명입니다.
그 날은 마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 것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첫 사람처럼 예수님은 동산지기로 여겨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통치권이 바뀌었음을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2:15)."
이제 그리스도의 새로운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전부터 예비하신 그 일을 이어가십니다. 그렇게 인간은 다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며 하나님의 세계를 상속하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날, 그 날이 바로 제8요일, 안식 후 첫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날을 일요일이나 주일이라고 부릅니다.
4. 수단의 노예가 된 삶에 대한 반성
헤셸의 책, 『안식』을 읽으면서 저는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은 우상의 신전을 짓는 일에 종사하며 삶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하도 오랫동안 그 일을 하다 보니 그것이 본래 자신들의 일이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이끌어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게 하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었습니다.
저는 우리들이 어쩌면 그렇게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고 수단을 목적으로 바꾸어 버린 세상에서 노예와 같이 살고 있지 않나 반성해 봅니다. 교인이 된 후에도, 심지어 세례를 받은 후에도, 아니 목회자가 되었어도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의 첫째 날인 안식일의 의미를 상실하고 사는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예수님이 새롭게 시작하신 제8요일의 혁명에 동참하는 삶은 고사하고 말입니다.
5. 안식일의 완성: 모든 날의 거룩함
저는 안식일이 7일 중에 하루이지만 결국은 모든 날이 거룩하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성소가 본래 거룩한 곳이었지만, 요한계시록에서 보면 새 예루살렘이 정육면체의 모습으로 내려와 온 세상을 덮어버립니다. 그것은 온 세상이 지성소와 같이 거룩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되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성전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제정 의도는 결국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을 위한 심장과 같은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로마서 14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은 어떤 신자들이 어떤 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또 다른 신자들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둘 다 옳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옳습니다. 그런데 모든 날을 같게 여기는 사람은 왜 그럴까요? 어쩌면 그는 제8요일의 의미를 이해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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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케스트>
삶의 목적을 찾아서 - 헤셸의 안식
제목: 쉼은 수단이 아니다: 헤셸의 ‘시간 속의 궁전’을 걷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삶의 방식, 즉 ‘일’과 ‘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책, 아브라함 헤셸의 『안식(The Sabbath)』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일’과 ‘쉼’,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인가?
여러분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편하게 쉬어야지.” 혹은 “주말에 푹 쉬어야 다음 주에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지.”
맞습니다. 우리에게 ‘휴식’은 더 나은 ‘노동’을 위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헤셸은 이 순서를 완전히 뒤집어 버립니다.
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6일간의 노동은 안식일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안식일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다.”
정말 낯선 주장이죠? 우리는 쉬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쉬기 위해서 일한다는 겁니다. 안식일은 우리가 사는 7일 중 ‘막간’이 아니라, 삶의 가장 높은 지점, 즉 ‘절정’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에 지어진 궁전, 안식의 목적
그렇다면 이 안식이란 목적은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돈, 집, 물건 같은 ‘공간적인 것’을 소유하려 평생을 바칩니다. 하지만 헤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거룩함을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식일은 바로 ‘시간 속에 지어진 궁전’과 같습니다. 이 궁전에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존재의 목적을 회복합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인간은 본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의 영광(아름다움)을 세상에 비추며 통치하는 존재죠.
안식일은 바로 이 ‘제사장 훈련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어전(御前), 즉 그분 앞에 서서 기쁨과 과묵함으로 경배하는 것을 경험하고 연습하는 날입니다. 창조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가장 궁극적인 의도(intention)의 첫째 날인 것입니다.
제8요일의 혁명: 새로운 시작
그런데 기독교는 안식일 다음 날, ‘안식 후 첫날’을 기념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이죠. 신학자들은 이 날을 ‘제8요일’이라고 부릅니다.
제8요일은 7일의 사이클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사망 권세가 다스리던 낡고 병든 세상에 ‘새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마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 것처럼 말이죠.
골로새서의 표현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의 통치권과 권세들을 무력화하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새로운 통치, 즉 ‘제8요일의 혁명’에 동참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세계를 상속하는 자녀, 동역자가 된 겁니다.
출애굽의 거울: 수단의 노예
헤셸의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 부름 받았지만,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우상 신전을 짓는 노예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일 자체가 자신들의 목적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우리가 버는 돈, 우리가 소유한 것들, 우리가 해내는 업무들. 이것들은 하나님 나라라는 궁극적인 안식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을 ‘목적’으로 착각하고 노예처럼 살고 있지 않나요?
교회를 다니고, 심지어 직분자가 되었더라도, 안식일과 제8요일의 본래 의미, 즉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는 삶’이라는 혁명을 상실한 채 그저 바쁘게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궁극적인 안식, 매일이 주일처럼
여기서 우리의 묵상은 최종 단계로 나아갑니다. 안식일이 일주일에 하루지만, 결국 모든 날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 아닐까요?
요한계시록을 보면, 새 예루살렘이 정육면체의 지성소 모습으로 온 세상을 덮어버립니다. 이제 특정 성전이 필요 없습니다. 온 세상, 모든 공간이 거룩해진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의 목적은 7일 중 하루의 거룩함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6일의 삶 전체를 거룩하게 만드는 ‘심장’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어떤 사람은 특정 날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고 하면서 둘 다 옳다고 말했습니다. 왜 모든 날을 같게 여길까요?
그것은 그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 ‘제8요일의 연속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루하루가 모두 ‘주의 날(Lord’s Day)’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목적은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안식과 통치에 동참하는 거룩한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노동이 이 궁극적인 안식을 위한 아름다운 수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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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인 글>
아브라함 J. 헤셸의 안식일 신학 분석:
수단과 목적의 전도와 제8요일의 완성
I. 서론: 수단과 목적의 전도
본 논고는 아브라함 J. 헤셸의 저서 안식(The Sabbath) 제1장 논의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의 도구적 합리성에 기반한 ‘휴식의 수단화’에 대항하는 안식일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한다. 헤셸은 안식일을 더 효율적인 노동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아닌, 그 자체로 궁극적인 목적(end)임을 주장하며 노동과 쉼의 전통적인 수단-목적 관계를 전도(inversion)시킨다. 즉, 엿새간의 노동은 안식이라는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 규정된다. 안식일은 삶의 막간(interlude)이 아닌 절정(climax)이자 창조의 근본적인 의도를 담고 있는 시간이다.
II. 존재론적 거룩함으로서의 안식: 시간 속의 궁전
헤셸에 따르면, 안식일은 인간이 물질적 소유와 지배에 집착하는 공간(space)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거룩한 시간(time)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행위이다. 안식일은 ‘시간 속에 지어진 궁전(A palace in time)’으로서, 인간이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을 회복하는 훈련의 장이 된다.
1. 제사장적 역할 회복: 안식일의 목적은 이사야 43장과 시편 8편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찬송과 영광을 위한 인간의 창조 목적과 일치한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고 영광을 반영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안식일은 이 제사장적 경배와 더불어, 생육·번성·충만이라는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는 것을 경험하고 연습하는 신성한 시간이다.
2. 의도의 첫째(First in Intention): 안식일은 창조의 시간적 마지막(last in creation) 날이지만, 창조의 궁극적인 이유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의도의 첫째(first in intention) 날로 해석된다.
III. 제8요일의 혁명: 새 창조와 대안 공동체
기독교의 주일(안식 후 첫날) 기념은 구약적 안식일의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제8요일의 혁명’으로 완성한다.
1. 통치권의 전복: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7일의 사이클을 넘어선 새로운 시대, 즉 새 창조(New Creation)의 시작을 선언한다. 골로새서 2장 15절에 의거하여, 십자가와 부활은 사망 권세가 지배하던 낡은 통치 질서를 무력화하고 그리스도의 새로운 통치를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2. 대안 공동체적 실천: 교회는 이 혁명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모델 공동체(model community)이자 대안 공동체(alternative community)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본래적 목적을 상실하고 수단(노동, 소유)을 목적으로 착각하여 노예처럼 살았던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적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목적에 기반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실천적 반성의 근거가 된다.
IV. 결론: 안식의 종말론적 확장
궁극적으로 안식일의 의도는 일주일에 하루의 거룩함에 국한되지 않고, 종말론적 완성 단계에서 모든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에 있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지성소 형태)이 온 세상에 임하여 성전이 불필요해지는 비전은, 거룩함의 영역이 지리적/시간적 경계를 초월하여 전 포괄적(all-encompassing)이 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제8요일의 혁명적 삶에 깊이 참여하는 신자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 14장 5절 논지처럼, 특정 날만을 중요시하는 것을 넘어 모든 날을 주의 날(Lord’s Day)처럼 인식하며 살아간다. 이로써 인간은 더 이상 효율적 노동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쉼이 아닌, 하나님의 안식과 통치에 동참하는 거룩한 존재라는 본래적 목적을 삶의 모든 순간에 실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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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헤셸의 안식] 쉼이 목적이 될 때, 우리의 삶이 혁명적으로 달라지는 이유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우리는 모두 ‘열심히 일한 당신, 쉬어라’라는 슬로건에 익숙합니다. 쉼은 더 나은 성과를 위한 재충전, 즉 ‘노동의 수단’으로 여겨지죠. 그런데 만약 이 모든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유대인 신학자 아브라함 J. 헤셸은 그의 명저 『안식(The Sabbath)』에서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과 ‘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복시킵니다.
1. 쉼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다: 헤셸의 역설
헤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안식일을 위해 엿새 동안의 노동이 필요하다. 노동은 수단이고, 안식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우리는 대개 “더 잘 쉬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헤셸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궁극적인 안식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엿새 동안 일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일주일의 막간(interlude)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지향해야 할 절정(climax)인 셈이죠.
이 낯선 주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2. 시간 속에 지어진 궁전: 존재의 목적을 회복하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공간’과 ‘소유’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더 큰 집, 더 많은 물건, 더 넓은 영향력... 헤셸은 이러한 물질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거룩함은 시간(Time) 속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안식일은 ‘시간 속에 지어진 궁전’입니다.
이 궁전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 목적을 회복합니다. 성경은 인간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릅니다. 안식은 바로 이 제사장적 역할, 즉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과묵함으로 경배하고, 하나님의 영광(아름다움)을 세상에 비추는 통치 훈련의 날입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시간 순서로는 마지막 날이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의도(Intention)로 보면 가장 첫째 날인 것입니다.
3. 제8요일의 혁명: 새로운 삶의 시작
헤셸의 안식일 신학은 기독교의 주일(Lord’s Day)로 이어지며 더욱 혁명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기독교는 안식일 다음 날인 ‘안식 후 첫날’, 즉 ‘제8요일’을 기념합니다.
제8요일은 7일의 사이클을 깨고 새 창조(New Creation)가 시작된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사망 권세가 지배하던 세상의 낡은 질서는 무력화되었고(골로새서 2:15), 새로운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제8요일의 혁명’에 동참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 공동체(alternative community)로서, 목적을 상실한 채 수단에 갇혀 노예처럼 살았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4. 나를 돌아보다: 수단의 노예가 된 삶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혹시 우리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본래의 제사장적 소명은 잊고 이집트에서 하던 노예 노동(수단)을 자신의 목적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교인이 되고, 심지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의도하신 궁극적인 목적을 상실하고, 끊임없이 일과 소유라는 수단에 매여 있다면, 그것은 ‘제8요일의 혁명’에 동참하지 못하고 여전히 옛 통치 질서 아래 살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5. 안식의 완성: 모든 날이 거룩해지는 비전
궁극적으로 안식일의 목적은 일주일에 단 하루만 거룩한 시간을 갖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은 지성소의 형태를 띠고 온 세상에 임하여, 더 이상 특정한 성전이 필요 없게 됩니다. 이는 거룩함이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으로 확장된다는 뜻입니다. 안식일은 바로 우리의 삶 전체를 거룩하게 만드는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4장 5절에서 어떤 신자는 특정 날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신자는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고 말하며 둘 다 옳다고 한 것처럼, 제8요일의 혁명에 참여한 우리는 이제 모든 날을 ‘주의 날(Lord’s Day)’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안식과 통치에 동참하며, 거룩한 존재라는 본래의 목적을 삶의 모든 순간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마무리 질문: 여러분의 삶에서 ‘쉼’은 무엇을 위한 수단입니까, 아니면 그 자체로 궁극적인 목적입니까? 오늘, 이 질문을 통해 여러분의 시간 사용 패턴을 재정립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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