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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池心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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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書에는 要發揮自己性靈*이라 切莫寄人籬下*요 凡臨摹各家는 不過竊取其用筆이요 非規規*形似也라 近世每臨一家에 止摹仿其筆畫하고 至於用意入神에는 全不領會니라 要知得形似者有盡이요 而領神味*者無窮이니라 東坡自謂에 懸書壁閒觀之는 所取得其大意니 正指此也라 若趙承旨*가 不能補米顚*海月賦는 則轉爲臨摹所困矣니라
글씨를 쓰려면 자기의 성령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며 절대로 다른 사람의 울타리 밑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각 서예가를 임모하는 것은 그 용필법을 절취하는 것에 불과하며 형상을 비슷하게 본받는 것도 아니다. 요즘사람들은 매번 한 서예가를 임모함에 다만 그 사람의 필획만을 모방하는데 그치고 마음을 가다듬어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에 이르러서는 온전하게 깨닫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형상을 비슷하게 하는 것은 끝이 있지만 고상한 운치를 깨닫는 것은 끝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소식이 스스로 이르기를 “글씨를 벽에 걸어놓고 보는 것은 그 큰 뜻을 취하는 것이니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마치 조맹부가 미불의 〈해월부〉를 보충할 수 없었던 것은 즉 임모하기에 곤란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性靈(성령) : 내심(內心)의 세계, 정신ㆍ사상ㆍ감정 등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寄人籬下(기인리하) : 남의 집 울타리 밑에 기거한다는 뜻으로 과거의 것을 답습하거나 남에게 의지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規規(규규) : 천박하고 고루한 모양, 식견이 좁고 융통성이 없는 모양을 이른다. 『莊子ㆍ秋水』에 “자네는 정신없이 자질구레한 지혜 분별로 그를 찾으려 하고 쓸모없는 변론으로 그를 잡으려 하고 있네. 이것은 다만 가느다란 대롱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송곳을 땅에 꽂고 大地의 깊이를 측량하려는 짓이니 참으로 작은 소견이 아니겠는가[子乃規規然而求之以察, 索之以辯, 是直用管窺天, 用錐指地也, 不亦小乎.]”라고 하였다.
*神味(신미) : 신운(神韻)과 흥취로 고상한 운치를 이른다.
*趙承旨(조승지) : 조맹부(趙孟頫, 1254-1322)는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를 지내서 조승지라 불렸다. 자는 자앙(子昂)이고 호는 송설도인(松雪道人)ㆍ구파(鷗波)ㆍ수정궁도인(水晶宮道人)이며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오흥(吳興) 사람으로 벼슬은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를 지냈다. 서예와 회화에 복고주의를 주장하였으며, 서예에서 송설체(松雪體)로 일가를 이루었고 회화에서는 남종화를 변화시켜 원대의 화풍을 열었다. 구양순ㆍ안진경ㆍ유공권과 함께 중국 고대 ‘해서사대가’라 부른다.
*米顚(미전) : 미불(米芾, 1051-1107)의 자는 원장(元章)이고 호는 녹문거사(鹿門居士)ㆍ해악외사(海嶽外史) 등이 있다. 규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고 행동거지가 미친 듯하여 ‘미전(米顚)’이라 불렸으며, 수묵화뿐만 아니라 문장과 시서(詩書), 고미술 일반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송나라 태원(太原) 사람으로 서예에서 채양ㆍ소식ㆍ황정견 등과 함께 ‘북송사대가(北宋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먹의 번짐과 농담만으로 그리는 미법산수화(米法山水畵)를 창시하였다.
12
字畫承接處에 第一要는 輕捷不着筆墨痕하여 如羚羊挂角*이라 學者가 工夫精熟이면 自能心靈手敏이나 然이나 便捷은 須精熟하고 轉折은 須暗過라야 方知折釵股*之妙니라 暗過處와 又要留處行이요 行處留라야 乃得眞訣이니라
글씨의 필획을 이어받는 곳에서 첫 번째의 요점은 민첩하게 필묵의 흔적이 생기지 않게 하여 영양이 뿔을 나무에 거는 것과 같아야 한다. 배우는 이들이 공부를 정통하고 능숙하게 하면 저절로 마음은 신령스럽고 손은 민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민첩한 것은 정통하고 능숙하여야 하며 전절은 암암리에 지나쳐야만 비로소 절차고의 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암암리에 지나쳐야 할 곳과 머물러야 할 곳에서는 행필하고 행필해야 할 곳에서는 머물러야 이에 참된 비결을 얻는다.
*羚羊挂角(영양괘각) : 영양은 밤에 잘 때에 나뭇가지에 뿔을 걸어서 위험을 막는다는 뜻으로 흔적을 찾을 수 없거나 모든 것을 초탈하여 자유분방한 시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折釵股(절차고) : 주이정은 『서학첩요(書學捷要)』에서 “절차고는 마치 동곳의 다리를 구부리는 것과 같이, 구부리는 모퉁이가 원만하고 굳센 힘이 고르게 하는 것을 이른다[折釵股者, 如釵股之折, 謂轉角圓勁力均”라고 하였으니, ‘乚’의 필획에서 힘이 고르게 안배되어야 하는 것을 이르는 용필법이다. (『懸吐譯註書學捷要』, 玄巖書堂書論講讀班譯, 도서출판 무송 2020, 27쪽 참조)
13
東坡*云 執筆無定法하니 要以指實掌虛로 爲主니라 指實은 如紙鳶乘風하여 不得有一微隙하니否則不能扶搖*而上이라 掌虛는 如御車坦道하여 不得有一窒礙하니 否則不能縱送*自如니라 吾更謂執筆如鎗法이 左右前後偏鋒正鋒을 必隨勢轉之하여 一氣貫注하니 操縱在心이라 時亦微帶側意하면 運掉更靈이라 柳公權*論心正筆正은 論其理也요 余論執筆은 論其勢也니라
소식은 “집필은 정해진 법이 없으나 손가락을 충실히 하고 손바닥을 비우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손가락을 충실히 한다는 것은 종이연이 바람을 타고 오르는 것 같아, 하나의 작은 빈틈도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오리바람이 불어와도 상승할 수 없을 것이다. 손바닥을 비운다는 것은 탄탄대로에 수레를 몰고 가는 것과 같이 하나의 장애물도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활을 쏘아 보내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말하건대 “더욱이 붓을 잡는 것은 창을 쓰는 법과 같아 전후와 좌우, 편봉과 정봉을 반드시 필세에 따라 전환하여 하나의 기운으로 꿰뚫으면 조종은 마음대로 된다. 때때로 측필의 필의를 조금 띤다면 운필이 더욱 영묘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유공권이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다”라고 논한 것은 그 이치를 논한 것이요, 내가 논하는 집필은 그 필세를 논한 것이다.
*東坡(동파) : 북송의 소식을 가리킨다. 소식(蘇軾, 1037-1101)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며 사람들은 ‘소동파’라고 부른다. 철종 때 한림학사ㆍ예부상서를 지냈다. 서호ㆍ안진경ㆍ양응식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그는 채양ㆍ황정견ㆍ미불 등과 함께 ‘송사대가’라 불린다. 작품은 〈황주한식시첩〉ㆍ〈적벽부〉ㆍ〈제황기도문〉 등이 있다.
*扶搖(부요) : 회오리바람을 가리킨다. 『장자ㆍ소요유』에 “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 옮겨 갈 때에는 [그 큰 날개로] 바다의 수면을 3천 리나 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서 9만 리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그리하여 북쪽 바다 상공을 떠나서 6개월을 계속 난 뒤에 비로소 한 번 크게 숨을 내쉬는 것이다[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摶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라고 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縱送(종송) : 縱은 활을 쏘는 것이고, 送은 활을 쏘아 새를 잡는 것을 가리킨다. 『시경ㆍ정풍ㆍ대숙우전』에 보인다.
*柳公權(유공권, 778-865) : 자는 성현(誠懸)이며 당대(唐代) 경조 화원(京兆華原) 사람으로 당나라의 정치가ㆍ서예가이다. 안진경과 명성을 나란히 하여 사람들이 ‘안유’라고 일컬어 역대 서예의 귀감이 되었다 하여 ‘안근유골(安根柳骨)’이라는 말이 있다. 당 목종은 유공권에게 필법을 물으니 “용필은 마음에 있으니 마음이 바르면 필법도 바르게 됩니다[用筆在心, 心正則筆正]”라고 하였다. 작품은 〈현비탑비(玄秘塔碑)〉ㆍ〈신책군기성덕비(神策軍紀聖德碑)〉 등이 있다.
14
作字는 以精氣神*으로 爲主니라 落筆處엔 要力量하고 橫勒處엔 要波折*하며 轉捩*處엔 要圓勁하고 直下處엔 要提頓*하고 挑趯*處엔 要挺拔*하며 承接處에는 要沉着하며 映帶*處에는 要含蓄하고 結局處엔 要回顧니라 操之縱之하여 六轡在手*하며 解衣磅礴*하고 色舞眉飛*니라 董思翁云 作字에는 須攢捉*이라 卽米元章이 無垂不縮하고 無往不收意也니라 會得此意하면 便是作家이니라 彼纖媚取悅*이나 或用筆粗獷*하고 自謂古致者는 何足論哉리오
글씨 쓰는 것은 정신ㆍ기운ㆍ신채를 위주로 해야 한다. 붓을 대는 곳에서는 역량을 발휘해야 하고 가로 긋는 곳에서는 파와 절이 있어야 한다. 꺾는 곳에서는 원만하고 굳센 힘이 있어야 하고 아래로 내려 긋는 곳에서는 들었다가 조금 머물러야 한다. 갈고리에서는 빼어남을 요하며 이어받는 곳에서는 침착해야 한다. 마주 보는 곳에서는 함축해야 하고 끝에 이르는 곳에서는 회봉을 하여야 한다. 그것들을 조종하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어 자유분방하며, 모습은 춤추는 듯하고 눈썹은 나는 듯하다. 동기창이 말하기를 “글씨를 쓸 때에는 모름지기 모아서 오므려 잡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즉 미불이 “붓을 세우면 오므리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면 거두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이 뜻을 깨달아 이해한다면 바로 작가이다. 저 섬세하고 아름답게 하여 남의 환심을 사거나 혹은 용필이 거칠고 난폭하여 스스로 옛것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자가 어찌 족히 논할 수 있으리오.
*精氣神(정기신) : 정신(精神)ㆍ기운(氣韻)ㆍ신채(神彩)를 이르는 말이다. 『동파제발ㆍ논서(論書)』에 “글씨에는 반드시 신ㆍ기ㆍ골ㆍ육ㆍ혈이 있어야 한다. 다섯 가지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글씨가 될 수 없다[書必有神氣骨肉血, 五者闕一, 不為成書也]”라고 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波折(파절) : 파도처럼 기복이 있는 것을 이른다. 왕희지의 『제위부인필진도후』에 “하나의 파획에도 세 번의 굴곡이 있어야 한다[每作一波, 常三過折筆]”라고 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轉捩(전렬) : ‘전’은 회전하는 것이고 ‘열’은 비틀어 꼬는 것을 이른다. 절차고(折釵股)에 대한 말이다.
*提頓(제돈) : 필봉을 들어 올렸다가 멈추어 머무르는 용필법이다. “안진경 해서에서 많이 운용하고 있다. 즉 가로획을 수필 할 때 붓을 가볍게 들어 허한 필봉을 모나게 꺾어 모서리에 이르게 하는데, 분명히 붓을 들어 뒤집는 동작은 없다. 그런 뒤 가볍게 오른쪽 아래로 향해 점을 만들고 필봉을 조절한 뒤 다시 붓을 당겨 아래로 행필한다.”라고 한 것을 참고 할 수 있다. 『서예기법』, 劉小晴 저, 곽노봉ㆍ이정자 역, 도서출판 다운샘, 2018, 74쪽.
*挑趯(도적) : 영자팔법의 네 번째 필획인 갈고리를 이른다.
*挺拔(정발) : 높이 곧추 솟아 빼어남을 이른다.
*沉着(침착) : 차분하게 가라 앉은 것을 이른다. 양흔(羊欣)의 『고래능서인명』에서 “오나라의 황상은 초서를 잘 썼는데, 사람들은 ‘착실하여 경박하지 않고 막힘없이 시원시원하다’고 하였다[吳人皇象能草, 世稱沈着痛快]”라고 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影帶(영대) : 서로 어우러지는 것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상승효과를 낳는 것을 이른다. 채옹이 『구세』에서 “낙필과 결자는 위는 아래를 덮고 아래는 위를 이어받음으로써 그 형세가 서로 갈마들어 서로 어우러지게 하고 서로 형세가 등지지 않게 해야 한다[凡落筆結字, 上皆覆下, 下以承上, 使其形勢遞相映帶, 無使勢背.]”라고 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六轡在手(육비재수) : 옛날의 수레는 네 마리의 말이 이끌었는데, 말 한 마리에는 두 개의 말고삐가 있고 양쪽 끝의 고삐는 수레 앞턱의 가로장에 매어 있으므로 마부는 여섯 개의 말고삐만 잡으면 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여섯 개의 말고삐가 손안에 있다’고 하였다. 후에 거마를 부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즉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解衣磅礴(해의방박) : 옷을 벗고 다리를 뻗고 앉다. 즉 행동이 의례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음을 가리킨다. ‘解衣般礴臝’라고도 한다. 『장자ㆍ전자방』에 “송나라 임금이 그림을 그리게 하려고 할 때 여러 화공들이 모두 당도하여 송원군의 읍을 받고 시립해서 붓에 침을 바르고 먹을 갈며 밖에 있는 자가 절반이었는데, 어떤 화공 한 명이 뒤늦게 이르러 느긋하게 종종걸음으로 걷지 않으며 읍을 받은 뒤 서 있지 않고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공이 사람을 시켜 엿보게 했더니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로 앉아 있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화공이다’[宋元君, 將畫圖, 衆史皆至, 受揖而立, 舐筆和墨, 在外者半, 有一史後至者, 儃儃然不趨, 受揖不立, 因之舍. 公, 使人視之, 則解衣般礴臝. 君曰可矣. 是眞畫者也.]”라고 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色舞眉飛(색무미비) : ‘풍채는 드날리고 눈썹은 춤추는듯하다’는 말로, 기쁨과 득의에 찬 기색과 표정을 나타낸 말이다. ‘色飛眉舞’라고도 한다.
*攢捉(찬착) : 모아서 오므려 잡는 것을 이른다. 放縱(방종)과 대응하는 말이다.
*纖媚取悅(섬미취열) : 섬미는 섬세하고 아름다움이고, 취열은 남의 환심을 사는 것을 이른다.
*粗獷(조광) : 거칠고 난폭함을 이른다.
15
臨書*異於摹書*니라 蓋臨書는 易失古人位置*이나 而多得古人筆意니라 摹書는 易得古人位置이나 而多失古人筆意니라 臨書易進하고 摹書易忘은 則經意*와 不經意之別也니라
임서는 모서와 다르다. 대개 임서는 옛 사람의 위치는 잃기 쉬우나 대부분 옛 사람의 필의를 얻게 되고, 모서는 고인의 위치는 얻기 쉬우나 대부분 옛 사람의 필의를 잃게 된다. 임서가 진보하기 쉽고 모서가 망각하기 쉬운 것은 곧 마음에 두는 것과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의 차이이다.
*臨書(임서) : 법첩을 옆에 놓고 보면서 쓰는 것을 이른다.
*摹書(모서) : 법첩 위에 투명 종이를 놓고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을 이른다. ‘描紅(묘홍)’이라고도 한다.
*位置(위치) : 점과 필획의 위치 즉 자형을 가리킨다.
*經意(경의) : 마음에 두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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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過庭云 草不兼眞하면 殆於專謹*하고 眞不通草면 殊非翰札*이라 善用筆者는 眞草並擅이라 推之大小라도 莫不皆然이라 近有擅此하고 不擅彼者는 不過偏長*耳라 究之大字不足은 小字侷促*하여 未見其盡善*也라
손과정은 “초서가 진서와 겸하지 않으면 오로지 삼가고 조심하기만 하여 위태하고, 진서가 초서와 통하지 않으면 뛰어난 한찰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붓을 잘 운용하는 이는 진서와 초서를 아울러 잘한다. 대자와 소자를 미루어 보아도 대개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요즈음 이것은 잘하는데, 저것을 잘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한쪽 방면에만 뛰어난 것에 불과할 뿐이다. 궁구해보면 대자가 부족한 것은 소자도 군색하여 아직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을 보지 못했다.
*專謹(전근) : 오로지 삼가고 조심하는 것을 이른다.
*翰札(한찰) : 편지 또는 문장을 이른다.
*侷促(국촉) : 행동이 어색하여 도량이나 소견이 좁음을 이른다.
*偏長(편장) : 한쪽 방면에만 잘하는 것을 이른다.
*盡善(진선) :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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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池之法은 不外結體用筆이라 結體之功은 在學力이고 而用筆之妙는 關性靈이라 苟非多閱古書하고 多臨古帖하여 融會*於胸次면 未易指揮如意也라 能如秋鷹搏兔에 碧落摩空*하며 目光四射*면 用筆之法得之矣니라 昔稱蔡忠惠*가 書歐陽公*晝錦堂記*에서 每一字에 必寫數十赫蹏*하고 竢合作*而後에 用之러니 世謂之百衲*碑라 此言結體之加意也니라
임지의 방법에서 결체와 용필을 제외할 수 없다. 결체의 공력은 배우고 힘쓰기에 달려있고 용필의 묘미는 성정과 관련이 있다. 진실로 고서적을 많이 보고 고법첩을 많이 임서하여 흉중에서 어우러져 하나가 되지 않으면 쉽게 뜻대로 운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가을 매가 토끼를 잡을 때 푸른 하늘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쏘아보는 것과 같이 한다면 용필의 법도를 터득할 것이다. 옛날에 채양이 구양수의 〈주금당기(晝錦堂記)〉를 쓸 때에 매 한 자마다 반드시 수십의 혁제(赫蹏, 얇은 종이)에 써서 〈주금당기〉와 비슷하게 하여 사용하였으니 세상에서는 이것을 ‘백납비(百衲碑)’라고 하였다. 이는 결체에 특별히 유의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融會(융회) : 어우러져 하나가 됨을 이른다. 또는 종합하여 총체적으로 이해함을 이른다.
*碧落摩空(벽락마공) : 푸른 하늘에서 선회하는 것을 이른다.
*目光四射(목광사사) : 눈빛으로 사방을 쏘아 보는 것을 이른다.
*蔡忠惠(채충혜) : 채양(蔡襄, 1012-1067)을 이른다. 자는 군모(君謨)이고 흥화선유(興化仙遊) 사람이다. 천성8년(1030) 진사에 급제한 뒤 단명전학사가 되었기 때문에 ‘채단명(蔡端明)’이라 불렸고, 시호가 충혜(忠惠)이기에 채충혜라고도 불렸다. 서예는 우세남ㆍ안진경을 배웠고, 진나라 사람의 법도를 취하였다. 송 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작품은 〈만안교기(萬安橋記)〉ㆍ〈사사어서시(謝賜禦書詩)〉가 있고, 문집은 후세 사람이 편집한 『채충혜집(蔡忠惠集)』이 전한다.
*歐陽公(구양공) : 구양수(歐陽脩, 1007-1072)를 이른다. 자는 영숙(永叔)이고 호는 취옹(醉翁)ㆍ육일거사(六一居士)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북송(北宋)의 정치가이자 문학가로 벼슬은 한림학사(翰林學士)ㆍ추밀부사(樞密副使)ㆍ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했다. 시호가 문충(文忠)이라 세인들은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이라고 부른다.
*晝錦堂記(주금당기) : 구양수가 지은 위국공 한기(魏國公韓琦)의 주금당에 대한 기문(記文)이다.
*赫蹏(혁제) : 글씨를 쓰는 폭이 좁은 비단을 이르는 말이다. 뒤에 종이를 이르는 말로도 썼다.
*竢合作(사합작) : 서화나 시문이 원 작품과 합치함을 이르는 말이다.
*百衲(백납) : 승려들의 누더기 옷을 이르는 말이다. 衲은 기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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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草於承接*處에 最要體會니라 有一筆이 關照*兩筆者요 有一筆이 關照數筆者니라 切不可直往直來니라
초서를 쓸 때 승접하는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득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한 번의 운필이 두어 번 운필한 것과 관계된 것이 있고, 한 번의 운필이 여러 번 운필한 것과 관계된 것이 있다. 절대로 곧게 가고 곧게 오는 것은 옳지 않다.
*承接(승접) : 앞에서 받아 뒤로 이어주다는 뜻이다.
*關照(관조) : 관계되어 조응하다는 뜻이다.
19
楷法與作行草用筆一理하고 作楷에 不以行草之筆하여 出之에 則全無血脈하고 行草에 不以作楷之筆하면 出之에 則全無起訖이라 書譜云 伯英은 不眞而點畫狼藉하고 元常은 不草而使轉*縱橫이라하니 吾意楷須融洽하고 行草須分明이라하니라
해서의 필법과 행초의 용필은 하나의 이치이다. 해서를 쓸 때에 행초의 용필로 쓰지 않으면 작품에 혈맥이 전혀 없고, 행초를 쓸 때에 해서의 필법으로 쓰지 않으면 작품에 시작과 끝이 전혀 없다. 『서보』에 “장지가 진서에 통달하지 않았다면 (초서의) 점과 필획은 흩어져 어지러웠을 것이고, 종요가 초서에 통달하지 않았다면 (진서의) 사전은 뒤섞여 어지러웠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해서는 반드시 점과 획이 융합되어야 하고 행초는 반드시 점과 획이 분명해야한다’라고 생각한다.
*使轉(사전) : 서법의 용어로 행필에서의 전절과 호응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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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帖에 須先觀字之起筆落筆抑揚頓挫*左右縈拂*上下銜結*이라 書譜云 一畫之閒에 變起伏*於鋒梢하고 一點之內에도 殊衂挫*於豪鋩*이라하니 吾意에 臨字之要는 在中竅*하고 至於點畫之工整에는 猶後也라하니라
첩을 임서할 때는 반드시 글자의 기필과 낙필, 억양과 돈좌, 좌우의 얽히고 떨어짐, 상하의 머무르고 맺는 것을 먼저 관찰하여야 한다. 『서보』에 “한 획 안에도 기복이 붓 끝에서 변화가 있게 하고, 한 점 안에서도 육좌가 호봉에서 다르게 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나는 “임서의 요점은 법도에 맞게 하는데 있는 것이고 점과 획의 깔끔한 정리에 이르는 것은 오히려 뒤에 할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頓挫(돈좌) : 조금 머무른 뒤에 필봉을 꺾어 세워서 아래로 향해 누르는 용필법이다.
*縈拂(영불) : 얽히고 떨어지다는 뜻이다.
*銜結(함결) : 머무르고 맺는다는 뜻이다.
*起伏(기복) : 행필에서 붓을 들어 움직이는 것(提)과 붓에 힘을 준 채 잠시 머무는 것(頓)을 가리킨다.
*衂挫(육좌) : 용필에서의 육봉(衄鋒)과 좌봉(挫鋒)을 가리키는 것으로 ‘육봉’은 노(努)획의 끝에서 적(趯)획으로 바뀔 때 역필로 비틀어 위로 거두는 것이다. ‘좌봉’은 늑(勒)획에서 노(努)획으로 전환하여 꺾어 운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손과정은 『서보(書譜)』에서 “하나의 필획 사이에 일어나고 엎어짐은 필봉 끝에서 변화하며, 하나의 점 안에 비틀고 꺾음은 붓 끝에서 달라진다[一畫之間, 變起伏於鋒杪, 一點之內, 殊衄挫於豪芒]”라고 하였다. (玄巖書堂書學捷要講讀班譯, 『懸吐譯註書學捷要』, 도서출판무송, 2020, 110쪽)
*豪鋩(호망) : 필봉의 끝을 이른다. 豪와 毫는 통용한다.
*中竅(중규) : 법도에 맞는 것, 적중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