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똥파리
최창준
‘왕십리’ 하면 가수 김흥국의 ‘50년 왕십리’라는 노래도 떠오르고 김소월의 시 ‘왕십리’도 떠오른다.
그리고 잘 알려진 이야기는 무학대사의 이야기다. 무학대사가 이 곳 왕십리에 와서 이 곳을
도읍지로 정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소를 몰며 쟁기질하는 농부로부터 “이 모래같이 미련하고
곰같이 생긴 놈아”라는 욕을 먹고 돌아보니 그 사람은 없어지고 둘레를 보니 토굴에 왠
도사가 앉아서는 “마포는 학의 머리요, 이 곳은 학의 꽁지다, 학의 꽁지에 들어 설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하더라나, 결국 이곳에서 십리를 더 들어가서 수도(지금의 경복궁자리)를
정했다는 이야기가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민들에게 왕십리를 대표하는 말이라면 “왕십리 똥파리”가 아닐까. 왠지 촌스럽고
임의로워서 다정하게 들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천박하게만 들리는 말 “왕십리 똥파리”.
오늘의 성동기행은 왕십리 똥파리를 찾아가보자.
하왕십리 일대(1935년)
재래식화장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변소를 치우는 사람이 와서는 긴 대를 이은 바가지로
퍼서 물지게처럼 생긴 똥지게에 담아 차량이나 리어카에 실어 갔던 기억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내가 살던 산동네는 변소를 치우는 기간이 길기도 하고 똥차가 잘 오지 않아서
치워가지 않는 날이 길어지면 화장실 가는 일이 정말로 짜증나고 그것만으로도 산동네가
지긋지긋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퍼갔던 그 많은 똥들은 다 어디로 갈까. 가끔은 그런 의문들이 들기도 했었는데...
일제시대에 왕십리1동 일대(지금은 용두동 일대인데 그 당시에는 청계천이 용두동을 돌아서
흘러갔었고 용두동까지가 왕십리였다고 한다.)에 거대한 움을 파서 시멘트를 바르고 그곳에
서울 전역에서 나오는 똥을 처리했다고 한다. (아마 조선시대부터 처리장은 그 자리에 있었던
듯 하고 일제 때 시멘트를 바른 것으로 추정) 어르신들의 기억으로는 몇 백 평이 되는 규모였고
그 똥통에는 배까지 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 똥통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위치는 검정다리(현재의 비어당교) 건너편 용두동 일대라는데
지금은 빌딩들이 들어서서 전혀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뚝섬갈비 명성의 배경
서울 전역에서 퍼진 똥들은 동대문까지 와서는 기동차에 실려(6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동대문에서 뚝섬까지 다녔던 전기동차로 많은 성동지역 주민들이 그 추억을 가지고 있다.
당시는 똥만 나르는 기동차도 따로 있었다고 한다) 이곳 왕십리의 똥통에 부려지면
다시 리어카나 자동차에 실려서 과수원이나 채소밭으로 날라져 거름으로 쓰여졌다.
뚝섬 일대뿐만 아니라 현재의 건국대 부근에 형성되었던 거름통, 그 외에 여기저기 있던
거름통들에 담겨졌다가 동부지역 일대의 채소밭으로 날라져 싱싱한 야채를 키우는
거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뚝섬 갈비’라는 이름까지 얻을 정도로 유명했던 뚝섬의 배추는 이 풍부한 거름 탓에
기름지고 싱싱하게 자랄 수 있어서 그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닐까.
청계천 비어당교 다리. 맞은편이 용두동이고
오른쪽으로 ‘똥통’이 있었다고 한다.(왕십리쪽에서 찍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동네 옛 이야기 중에 하필이면 왜 그런 지저분한 이야기를
찾아 쓰냐고 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이 똥통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묘한 감동을 느꼈다.
길거리에 누어진 강아지 똥이 아름다운 민들레 꽃을 피게 하는 과정을 묘사한
“강아지 똥”이라는 권정생 님의 동화가 있다. 왕십리 똥파리의 어원을 들으면서
그 동화가 떠오른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세상을 키우는 땅, 왕십리
똥이란 무엇인가. 사람에게 쓰여질대로 쓰여지고 남은 찌꺼기로, 누구나 더러워 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켜주는 거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농민들은 똥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가.
왕십리의 땅은 스스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온 장안의 똥들을 온 몸에 받아 안고
새로운 세상을 키우는 곳이었다.
왕십리가 새롭게 잉태할 세상은 어떤 곳일까.
인서점 심범섭 선생님(왼쪽)과 45년 봄부터 왕십리에 거주해 오신
관우물노인회 김안식 회장님(오른쪽)이 도움말을 해주셨다.
땅 부자는 없지만 누구나 집 걱정은 안하는 세상. 큰 부자는 없지만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는 없이
누구나 정직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 몸이 아프면 누구나 치료비 걱정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공부하고 싶으면 누구나 등록금 걱정 없이 배울 수 있는 세상, 그리고 통일의 희망과 힘이
넘쳐나는 세상, 강대국에게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지를 보이는 나라, 그러한 새로운 세상을
잉태하는 곳이 왕십리라고 한다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일까.
그러나 왕십리는 왕의 측근이 수도를 짓기 위해 들렀기때문이 아니라 바로 민중과 똥이
있었기에 그리고 지금도 생산의 땅, 서민의 땅이기에 새로운 세상을 잉태할 거름의
땅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뚝섬선, 광나루선의 기동차는 현재 이스턴 호텔자리를 시발지로 청계천의 흐름을 따라
동묘, 용두, 마장, 왕십리, 성동, 상후원으로 이어진다. 상후원 정거장에서 뚝섬선과
광나루 선으로 갈려서 뚝섬선은 서뚝, 동뚝, 유원지 정거장으로 이어졌고, 광나루선은
화양, 모진, 구의를 거쳐 광장정거장이 종점이었다. “서울 교통사”에 의하면 1961년에
운행이 정지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