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연법과 실정법을 봅시다.
자연법은 말 그대로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주어지는 권리입니다.
이는 국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임을 전제로 주어지는 법입니다.
자연법 사상에 따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같은 영장류도 인간으로 분류되는 이상 '인권'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법은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굳이 성문법으로 만들지 않습니다.(물론 만들어도 상관없겠지요. 가령, 우리 헌법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명문 규정이 있는데, 이것은 자연법 사상을 명문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헌법이 자연법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은 분명 실정법입니다.)
반면, 실정법은 '실정에 맞게 제정된 법'을 말합니다.
실정법은 국가를 전제로 하는 법입니다. 즉, 국가가 있어야 권력이 있고, 권력이 있어야 법이 제정된다는 논리입니다.
우리의 헌법, 민법, 형법, 도로교통법 등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말하고 수업에서 배우는 법들은 모두 실정법입니다.
간간이 그 법령(법률과 명령) 속에 당연히 자연법 사상이 내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두 실정법의 틀을 갖추고 있습니다.
극단적 실정법학자들은 자연법을 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상 실정법의 근본 정신엔 자연법 사상이 녹아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건대,
1789년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발단이 된 프랑스 대혁명은 자연법 사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혁명은 합법적인 것이 됩니다. 위정자들의 가렴주구를 견디지 못해 정권을 엎은 것이므로 이는 인간 본래의 인권을 찾기 위한 저항권 행사이므로 전혀 잘못된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정법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들은 프랑스의 실정법이었던 신분제를 무시하고, 그들의 왕을 무력으로 죽인 것이므로 '혁명'이 아니라 '반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란'에 참가했던 파리 평민들은 모두 범법자인 것입니다. 즉, 프랑스 실정법에 따르면 그들은 '역모죄'로 사형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그럼 오늘날 우리는 그 사건을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부르나요, '프랑스 대반란'이라고 부르나요?
당연히 전자로 부릅니다. 그만큼 현대의 법정신에도 '자연권'이란 개념은 굉장히 강하고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실정법과 자연법은 합치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실정법학자와 자연법학자들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실정법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수적으로 많지만, 오늘날은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