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멍의 선물
송 미심
지난밤에 비가 많이 왔던 모양이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도 많고 물소리도 세차다. 봄날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답다. 수정처럼 맑은 물속이 훤히 보여 옹기종기 모여있는 돌멩이와 수초들도 생기가 넘친다.
물가에는 벚나무들이 푸릇푸릇 잎사귀를 터뜨린다. 남아있는 꽃잎이 눈송이처럼 하늘거린다. 며칠만 일찍 왔으면 한창 만발한 무리꽃송이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제때를 맞추지 못해 아쉽다. 내가 아버지의 속마음을 제때 알아차리고 챙겨드리지 못한 무심한 처사로 속상했던 것처럼.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벼루에 연적의 물을 부어 먹을 갈곤 했다. 요즘처럼 먹물이 없었던 시절이라 마음에 드는 검은색이 만들어질 때까지 벼루에 먹을 문지르면 손목이 뻐근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붓을 꺼내고 깔판을 깔고 화선지를 바르게 펴서 누름대로 눌러 준비를 했다.
아버지의 글씨체는 참으로 고르고 반듯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아버지는 학교 브리핑이나 일정표를 만드느라 바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글씨체를 닮고 싶었다.
아버지는 타지로 전근이 되었고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려고 도시로 유학을 왔다. 짬이 나는 주말에나 고향 집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일곱 자녀를 키우고 가르쳐야 했던 아버지의 힘든 무게감을 세세히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붓글씨 쓰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아버지가 차분하게 글을 쓸 짬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여름 방학 때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고향마을에 있는 학교로 다시 근무중이었다. 내게 넓고 네모진 밭을 장만했다고 구경을 가자고 했다. 면 소재지 가까이에 있어 아버지가 학교에서 집으로 오가는 길에 들르기가 좋았다. 거기다 비옥한 땅이어서 우리 일곱 형제자매 상급학교에 공부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흐뭇해하셨다. 자식들이 해마다 층층이 학교에 다녔으니 그 수발도 힘들 터에 월급 모아 아버지 이름으로 된 밭을 얻었으니 참으로 오달진 일이었을 것이다.
쉼 없이 내달리는 물길을 눈으로 따라간다. 내 몸도 물과 함께 유영한 듯하다. 마음의 짐도 함께 그렇게 흐르다 사라지면 좋겠다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쉬는 동안, 대학 입학 신청을 하려고 우체국에 들르기 위해 우리 밭이 있던 신작로를 지나갔다. 동행했던 언니에게 밭에 들렀다 가자고 했더니 언니가 머뭇거렸다. 낌새가 이상해서 재차 졸랐다. 언니는 내 등록금 마련을 위해 그 밭을 팔았다고 했다. 동네 또래 아이들은 도시로 나가 부엌살이를 하거나 공장일을 해서 부모에게 돈을 보내 효도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에게 딸을 대학까지 공부시켜 뭣에 쓰냐고 핀잔을 들기까지 했다 한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버지가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느라 잠 못 이뤘을 시간들을 나는 알지 못했다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청준의 소설 “눈길” 내용이 퍼뜩 떠올랐다. 주인공 어머니가 눈길을 걸어 아들을 버스 정거장까지 바래다주었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되짚어 오면서 아들을 위한 기원과 설움을 눈물로 쏟았던 대목이 있어서였다. 돌 고르고 거름 주었던 밭을 팔면서도 내색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 아버지가 그리 든든해하던 밭을 남에게 넘기고 쓰라린 가슴을 안고 허정거리는 발걸음으로 어찌 집까지 오셨을지 가슴이 저몄다. 내가 미안해할까 봐 흔연스레 웃고 지냈던 행복한 시간들을 생각하니 가슴을 후비는 듯 쓰렸다.
언젠가는 그 밭을 다시 사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생각뿐 실행하지도 못하고 결혼을 해버렸다. 나는 아버지에게 채무자였고 갚아야 할 짐을 지게 되었다.
딸아이를 안고 고향 집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선물로 한시를 써주시겠다고 했다. 한 겨울이라 입김이 서렸는데도 지필묵을 마루에 펼쳐 놓았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방을 마다하고 너른 마루를 고집했다. 아버지가 글씨를 쓰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나는 먹을 갈았고 정좌를 하며 생각에 잠긴 아버지는 의식을 치르려는 제주 같았다.
마침내 붓을 들어 첫 글자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이 사르르 떨리고 한 획 한 획에 정성이 들어갔다. 힘을 모으는 듯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이어 나갔다. 마무리를 하고 한 번 훑어보시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버리기를 여러 번 했다. 슬며시 아버지를 쳐다보니 찬바람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나는 잠시 숙연해졌다.
버려진 한지가 쌓이고 마침내 만족스러운 듯 붓을 놓은 아버지는 ‘이제 됐다’라며 가져가라 했다. 생각만큼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애를 써 보았다고 겸연쩍어했다. 값나가는 진다리붓이라면 더 잘 쓸 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그때 아버지의 갈급함을 귀담아들어야 했다. 붓 타령이 아니라 좋은 붓으로 글을 써 보고 싶었다는 것을. 넌지시 한 말의 행간을 생각하며 말하지 못한 소망의 언어를 붙잡아야 했다. 나를 위해 소중한 밭을 팔았던 아버지의 작은 의망을 눈치채야 했다. 정현종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에서 읽은 시구에서처럼 고급스러운 진다리붓 세트가 아버지에게 피어날 꽃봉오리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세월도 물처럼 그 순간 붙잡지 않으면 사라져 간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잔잔한 물이 바람결에 흔들리듯 때때로 나의 무심함을 떠올리다가도 일상의 잡무에 쏠려 묻혀버리곤 했다.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몸져누웠을 때 눌러놓았던 추억은 소환되었고 아버지가 더 이상 붓을 잡지 못한다는 막막함에 아득했다. 병상이라도 진다리붓을 사드리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체념하듯 ‘괜찮다’라고 했다. 그러고서 한참이나 창밖을 망연히 내다보셨다. 아픔을 건드리지는 않았는지 또다시 민망해졌다.
생전에 아버지는 서툴러도 좋으니 우리 일곱 자식이 붓글씨를 써서 병풍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소망이라도 이뤄드리고 싶어 문화센터에 문인화 교실에 등록했다. 난초 한 촉이라도 그려드리면 무거운 마음을 상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 쉽게 얻는 것은 없었다. 석 달이 가까워져도 난잎 한 개도 마음에 들게 그려지지 않았다. 봉안 (봉황의 눈)이나 달랑 복(사마귀의 배) 은 숨은그림처럼 돋보이지 않았다. 잎사귀 세 잎은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흐트러졌다.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반복 연습으로 체험하며 익혀가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한겨울에도 땀을 흘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힘을 빼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나를 내리면 주변 사람이 보이는 관용 같은 것일 것이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일. 그래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붓글씨를 써 보라고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데 늙수그레한 나이에 이제야 나는 철이 든 것일까?
물은 여전히 제자리를 비워주고 새로운 곳을 찾아 흐른다. 욕심도 집착도 없이 빈손이다. 삶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말라는 노자의 말이 옳은 것 같다. 지나간 물은 지나가고 만다. 나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으려 한다. 바람 한 줄기 불어와 물줄기 흔들어도 물은 거꾸로 오르지 않는다.
물멍으로 내 마음도 가벼워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