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의 계절에 생각나는 것들
김철교(시인, 평론가,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장)
노르웨이의 극작가 겸 소설가 욘 포세(64)가 금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었다. '인형의 집'을 쓴 입센(1828~1906)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작품이 상연되었다고 한다. 좋은 작품을 많이 생산하여 독자들을 행복하게 하는 작가들에게 값진 상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문학상은 노벨문학상, 퓰리처 문학상, 맨부커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다수의 명망 있는 문학상이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이 이력서에 올려도 부끄럽지 않은 문학상이 아닐까 싶다. 물론 ‘문덕수문학상’을 비롯한 연조가 짧은 문학상도,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문학상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적지 않는 상금을 주면서, 나눠먹기식 혹은 끼리끼리의 문학상이라는 오명을 얻지 않도록 지혜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모두가 받고 싶어 하는 문학상이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심사위원이 해당 분야의 대표성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심사 절차가 객관적이고 투명하여야 한다. 그래야 전문 비평가나 독자들에게 수긍을 받을 수 있다. 공정성이란, 예술에 대한 시각이 사람마다 다르고, 객관적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어려운 주문일 수밖에 없다.
가끔 자기 보다 못한 작가가 상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 때, 혹은 공모를 했으나 낙선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안목이 없다거나 수상기준에 이의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등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지 않는 상이, 작품의 질보다 자기 단체에 대한 공헌도를 중시하는 경우도 있다. 무슨 상을 받기 위해 수여 단체에 로비하는 작가도 종종 눈에 띈다. 이 모두 볼썽사나운 일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할 만한 작가를 손꼽으라면 망설여진다. 어떤 사람은 갖가지 방법으로 노벨문학상에 추천해달라고 로비도 하는 모양인데, 그럴수록 작가의 작품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안에서만이라도 대상이 될 만한 분을 발굴하여 집중 조명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훌륭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많지만, 누구나 수긍할 수있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대한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다. 학계와 문단에서 집중적으로 작품을 다루어주고, 비중 있는 문학상을 수여하여, ‘대한민국의 노벨문학상 감 작가는 누구누구다’라고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야 할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조차도 넓은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나라 언어로 번역을 한들 그게 무슨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싶다. 정부기관에서 지원하여 번역하는 작품마져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상은 좋은 것이다. 이력서에 올려도 부끄럽지 않을 문학상을 받는 것은 더욱 좋다. 그러한 문학상을 주는 단체가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