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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내 바람기가 하나님의 의처증 이유>의 줄거리 :
의처증은 아내의 행실을 지나치게 의심하는 병적 증세입니다. 아내의 정절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강박감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내에 대한 의심이 과도한 것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아내의 모든 생각 감정 의지와 말과 행동이 천성적으로 온통 바람기로 찌들어 버린 상태라면, 즉 바람기가 과도하면 의처증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선민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참담하신 심정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괜히 나 같은 것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셔서 하나님 마음이 나의 뿌리 깊은 바람기에 대한 의심 때문에 편하실 날이 없습니다.
내 바람기가 하나님의 의처증 이유
(민수기 5:1~31)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3.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
6.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7.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17.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18.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의 머리를 풀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의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19. 여인에게 맹세하게 하여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다른 남자와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20.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몸을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21. (제사장이 그 여인에게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하고 그 여인에게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가 마르고 네 배가 부어서 네가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22.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를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를 마르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23.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24. 여인에게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리라
본문은 크게 세 문단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로 1~3절은 나병 환자와 유출증 환자와 부정한 자를 진영 바깥으로 내보내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6~10절에는 진영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써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손해에 해당하는 물질의 오 분의 일을 벌금으로 더해 돌려주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11~31절까지는 아내의 탈선에 대해 남편이 의심할 때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세 번째 문단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남편은 의심되는 아내를 제사장에게 데려갑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면 언뜻 보기에 일종의 주술을 행하는 것 같은 쉬이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본문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서 ‘내 바람기가 하나님의 의처증 이유’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나의 바람기는 하나님께 의처증이 생기게 하는 이유입니다. 의처증은 아내의 행실을 지나치게 의심하는 병적 증세입니다. 아내의 정절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강박감이 가져오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 대한 의심이 과도하다고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아내의 모든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말과 행동이 천성적으로 온통 바람기로 찌든 상태라면 어떨까요? 쉽게 말해 바람기가 과도하다면 아내의 행실에 대해 과도하게 의심하는 의처증은 상응하는 것으로써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본문에 담긴 영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는 선민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참담한 심정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 것을 좋아하는 영적 바람기에 찌든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셔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으십니다. 본문은 이런 하나님의 의처증으로 비유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 나의 천성적인 바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시면서 나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회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진영을 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문단인 1~3절에서는 진영 안에서 부정한 자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을 말씀하십니다. 회막을 중심으로 짠 진영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영이기에, 더럽히지 않도록 부정한 자를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문단인 6~10절에는 진영 안에서 머물 때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는 말과 행동을 했을 때의 대처법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사건이 생긴다면 죄를 고백하고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그대로 갚되 벌금으로 오 분의 일을 더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단인 11~31절에서는 아내의 탈선에 대해 남편이 의심할 경우에 해결하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전체적 맥락을 보면 하나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문단에서는 나병 환자나 유출증 환자나 주검에 접촉한 자로 대표되는 부정한 자들이 언급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나병 환자는 마음에 세상을 담은 상태이고, 유출증 환자는 세상 것을 추구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주검에 접촉한 자는 하나님 뜻에 없는 일에 계획하고 손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부정함은 곧 하나님과 끊어지는 원인입니다. 우리는 부정함이 생기는 이유를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회막을 중심으로 진영을 짰기에, 누구나 문을 나설 때는 회막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선민 각자가 인간 회막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회막은 하나님의 이름을 둔 곳입니다. 이러한 회막을 의식할 때 마음도 의식을 따라 회막 안으로 따라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은 하나님의 이름이 가리키는 실제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로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때 부정함이 문제가 됩니다. 부정함이란 하나님의 이름을 의식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땅에 있는 대상을 향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함의 의미를 나병과 유출증과 주검을 만지는 것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나병은 마음에 세상 것을 담아서 절대 감사가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유출증은 마음에 세상 것을 담고 실제로 추구하고 추진하려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주검에 접촉함으로 비유되는 하나님 뜻에 없는 일을 계획하고 손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또 선민은 하나님을 마주하여 레위인의 업무에 참여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의 업무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을 마주하시면서 절대 평강을 업무로 수행하고 계십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좋으심으로 기쁨을 누리시며 절대 만족을 업무로 수행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을 기억하시며 절대 감사를 업무로 수행하십니다. 우리는 레위인의 업무를 예수님의 업무로 이해하고, 이 업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할 수 없다면 마음은 채움을 위해 세상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업무에 충실하여 항상 기쁨과 쉬지 않는 기도와 범사의 감사를 통한 마음 채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 채움을 위한 대상으로 타인을 상대하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본문은 이러한 일이 생기는 근본적 이유에서 영적인 바람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존재하는 뿌리 깊은 바람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합니다. 그 결과로 마음 채움을 타인에게서 얻으려 하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뒤틀리는 일의 근본적 원인은 영적인 바람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의도에서 바람기를 주된 내용으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바람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남편의 의심을 해결하는 문제를 말씀하시는데 그 내용이 독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내용의 본문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의심을 드러내 보여주고 계십니다.
15절을 보면 “그의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헌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심의 소제’와 ‘기억의 소제’라는 특이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일반적인 소제는 곡식 가루에 기름을 넣고 유향을 넣어서 한 움큼을 번제단에서 태웠습니다. 기름은 성별 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내 인생에 할당된 모든 시간이 성별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별 된 시간을 사는 사람은 어제, 그제, 내일, 모래를 살지 않습니다. 10년 전, 10년 후처럼 시간을 단위로 묶지 않고 지금을 살아갑니다. 시간을 단위로 묶게 되면 마음은 세상에서 수평적으로 움직이기에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께 가려면 마음은 수직으로 하늘에 올라갈 수 있어야 하기에 언제나 내 의식은 지금만을 붙잡게 됩니다.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며 시간을 단위로 뭉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루를 내듯이 계속해서 지금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제는 마음이 하나님께 가야만 하기에 나의 시간은 가루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소제에 유향을 섞었다는 것은 이러한 마음가짐이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을 단위로 묶어서 수평으로 움직이지 않고 지금이라는 가루로 만들어서 수직으로 하나님께로 올라갑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계획 속에서 시간을 단위로 묶으시며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나가십니다.
한편, 본문에서는 이러한 소제의 의미를 응용하여 의심받는 여인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탈선을 의심 받은 여인은 의심의 소제와 기억의 소제를 두 손에 들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탈선을 했다면 스스로 그 일들을 기억하고, 탈선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주의 물’을 마시게 합니다. 여기서 저주의 물이란 물두멍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막 일을 하기에 앞서 물두멍의 물로 손과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깨끗하게 하는 거룩한 물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저주의 물’이란 토기에 물두멍의 물을 담게 합니다. 그리고 성막 바닥의 흙을 한 줌 넣습니다. 거룩한 물을 일부러 더럽게 한 것입니다.
이제 제사장은 더러워진 물을 여인에게 주며 저주의 말을 알려줍니다. 27~28절을 보면 “그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의 배가 부으며 그의 넓적다리가 마르리니 그 여인이 그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 /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또 저주의 글을 쓴 두루마리를 그 물에 헹구게 했습니다. 저주의 글을 쓴 먹물이 들어갔기에 저주의 물이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은 아멘 아멘 대답하고 그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마치 일종의 주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흙이 들어가고 먹물이 들어간 물을 마셨다고 해서 꼭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마르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탈선은 여자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자가 탈선했다면 상대 남자도 탈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대 남자도 의심의 소제를 들고 저주의 물을 마셔야 했겠지만 그러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시며 탈선한 여자와 남자를 모두 돌로 쳐 죽이라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염두에 두자면 본문은 비유입니다. 하나님이 선민을 바라보실 때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비유가 아닌 지켜야 할 법으로써의 규례를 말씀하신 것이라면 당연히 남자에 대한 말씀도 나와야만 합니다. 아내도 남편을 의심할 수 있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탈선한 자들을 마땅히 돌로 쳐 죽이라고 할 정도로 그 문제를 엄격하게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심만을 다룬 것은 비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시는 마음가짐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저주의 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물을 토기에 담고 회막 바닥의 흙을 한 줌 섞으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회막은 우리의 의식이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게 하는 것에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의식으로 회막을 바라본다면 마음도 따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둔 회막 안으로 의식이 들어왔다면, 이제 마음은 하나님의 이름이 가리키는 실제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하늘로 가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마음은 독사의 새끼처럼 땅에 붙어서 하늘로 가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처럼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회막 바닥의 흙을 섞은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식함으로써 마음이 회막 안까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땅에 붙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거룩한 물처럼 선민의 마음은 거룩해야만 합니다. 선민의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담아야 합니다. 거룩한 물에 회막 바닥의 흙을 섞는다는 것은 거룩해야 할 선민의 마음에 세상 것이 담겼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저주의 물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저주의 물에 저주의 말을 쓴 두루마리를 헹구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실 때 창자에 들어가서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마르는 일과 같은 저주가 임할 것임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가 의미하는 바는 탈선하지 않은 여인에 대한 언급으로 알 수 있습니다. 28절을 보면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로부터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마름이란 임신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임신도 비유입니다. 실제로 육체적으로 불임이 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비유는 이사야 54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에게 더 큰 복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하며 갈라디아서 4장 27절에서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육체적으로 잉태하지 못하는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일이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임신을 언급하신 것은 비유입니다. 탈선한 여자에게 저주가 작용하여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말라버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리킵니다. 여인이 아이를 잉태함의 영적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2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신다는 부분의 원문을 보면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땅에서 뜻을 이루시려고 하는 상태를 암탉이 알을 품는 것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 뜻이 땅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임신의 영적 의미를 선민 각자에게 적용해 본다면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담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산이란 이렇게 담긴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나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저주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영적 바람기를 이기지 못해 세상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서 하나님의 존재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좋음으로 만족하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을 인정하지도 못합니다. 선민으로서 레위인의 업무를 수행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마음에 세상 것을 담아버린 상태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마음에 세상 것을 담는 영적 간음이자 탈선이 발생한다면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저주의 내용이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담기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만큼 막대한 손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마음 채움을 세상에서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래라면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잉태하고 말과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출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 채움을 세상에서 구하기에 결과적으로 관계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꼭 돈으로 계산하여 갚을 손해가 아니더라도 내가 저주받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잉태하지 못한 채 사람을 대한다면 그는 무조건 나로 인해서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임신하여 출산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의 말과 행동을 다 좋게 받아들여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임신하여 출산한 것이기에 영적으로 그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들이더라도 내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임신해서 출산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영적으로 손해를 끼치는 일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의 핵심적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탈선을 의심하는 남편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신 것에는 영적 바람기를 스스로 깨달으라는 의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의심하실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으로는 정직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는 일에 주력해야 합니다. 다만 이것을 위해서는 앞선 단계가 필요합니다. 내가 나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문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나의 바람기를 잡으려면 나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은 나를 의심할 수 없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부정함이 생긴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거룩해야 할 마음에 세상 것을 담는 것은 거룩한 물에 회막 바닥의 흙을 섞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임신하지 못하는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종자 씨앗입니다. 나를 의심할 수 없다면 이 씨를 잉태하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앞서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과 레위인이 예수님과 동일시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하는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하고 싶다면 먼저 나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할 때 바람기가 들어있는지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게 어떤 감정이 들 때 바람기가 들어있는지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분이 안 좋을 때 그 상태를 절대시해서 기분이 안 좋은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기분이 안 좋다면 그 원인이 나의 바람기 때문임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이성에게 호감을 드러낼 때 ‘끼를 부린다’는 표현을 쓰고는 합니다. 이것은 영적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교태를 부리는 영적 바람기를 죽일 때 마음에서는 절대 평강과 절대 만족과 절대 감사가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이 바람기가 하나님을 의처증 남편으로 만들 정도로 지독하게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이 바람기 때문에 절대 평강도 없고, 절대 만족도 없고, 절대 감사도 없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생각하고, 감정이 움직이고, 의지가 발동하면서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말고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나의 바람기가 작동하고 있다. 내 마음이 남편이신 하나님께 정확하게 머물고 있다면 평강할 것이고, 만족할 것이고, 감사할 것이다. 내게 평강과 만족과 감사가 없는 이유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의처증처럼 보이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나를 의심하는 의아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의처증(疑妻症)은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는 것이고, 의부증(疑夫症)은 아내가 남편을 의심하는 것이라면, 내가 나를 의심하는 것은 의아증(疑我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결국 바람기에 의한 탈선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아증은 나의 바람기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탈선하는 상황을 의심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것이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과 유향을 뺀 소제를 ‘의심의 소제’이자 ‘기억의 소제’라 부르게 하십니다. 우리는 한순간도 하나님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의식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고, 마음은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제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로 가야만 합니다. 이로부터 남편이신 하나님의 아내로서 비유될 수 있는 관계의 속성은 충족됩니다. 우리는 신분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일 뿐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측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몸이 남자나 여자인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관계하는 속성 중에는 배우자의 관계로 설명될 수 있는 속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가르쳐주시고자 본문에서 의처증과 같은 남편의 모습을 비유로 삼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쉼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의심함으로써 하나님 마음에 쉼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내게도 절대 평강과 절대 만족과 절대 감사가 주어집니다. 절대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이유는 내 몸이 처한 상황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게 처한 상황과 연결된 상대적 평강과 만족과 감사가 아닙니다. 세상과의 관계가 끊어졌기에 세상의 상황이 어떻든지 절대 평강, 절대 만족, 절대 감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하늘로 올라갈 때만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절대 평강과 절대 만족과 절대 감사가 없는 상태에서 하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무조건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자신을 신뢰해 왔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저주에 합당한 바람기에 의해서 나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겁도 없이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내뱉고,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내뱉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 바람기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절대 평강과 절대 만족과 절대 감사가 있습니까? 어떤 상황을 접하든, 누구 앞에 있든, 평강하고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한데도 내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말과 행동을 신뢰한다면 영적 바람기를 방치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때문에 기분이 좋다면 나의 바람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면 나의 바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상과 간음을 하는 중입니다. 저주의 물이 창자에 들어가서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마른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비유적 표현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기분 좋게 여기는 일, 만족스럽게 여기는 일은 모두 저주의 물이 들어와서 배가 붓는 것과 같습니다. 배가 붓는 것은 배가 부른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착각한 채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은 세상적으로 기분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 인해서 평강과 만족과 감사가 나와야만 합니다. 회막을 앞에 두고 산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 회막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임신해서 말과 행동으로 출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바람기로 인해서 자꾸만 끊어지고 망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향해 갖고 계시는 의심을 덜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의심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참담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택하시는 바람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안식을 드리고 쉼을 드리고자 한다면 내가 나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나를 의심하는 의아증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의아증이 있어야만 십자가 생활화의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의 원동력은 나의 바람기에 대한 의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의아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한 조각과 내 말과 행동 하나하나마다 바람기가 섞여 있지 않은가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의심을 확증하는 길은 내 마음에 평강이 있는가, 만족이 있는가, 감사가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람기에 의한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말과 행동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의아증을 놓지 않음으로써 십자가 생활화에 박차를 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만을 임신하고, 말과 행동으로 출산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무더운 여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만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뜨겁게 해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악력도 열정적이 되게 해주시며 그럴 수 있는 원동력을 얻기 위하여 의아증으로 일관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