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건립하는 일반적인 수순에서 본 만남의 미술관 - 이우환과 그 친구들 건립 추진의 문제점
미술관 건립의 일반적인 과정(소장품중심 미술관에 대한)
1. 미술작품 확보(기증,수집,위탁,대여 등)
2. 작품의 분류 및 학술적 연구작업 진행(학예연구사 선임)
3. 전시작품 디스플레이 시뮬레이션 등 향후 장․단기 운영계획 수립
4. 2.를 토대로 미술관의 성격과 소장작품의 내용에 맞게 설계
5. 설계완성, 건축
6. 디스플레이, 개관
만남의 미술관 - 이우환과 그 친구들 건립 과정의 문제점을 앞의 기준으로 살펴보면
1. 미술작품 확보 - 현재 시점(2014년7월)까지 확정 된 작품이 없다.
약정서에 정작 필요한 작품의 기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약정서에는 일방적으로 이우환의 친구인 안도다다오가 설계한다고만 확정되어 있을 뿐이다. 작품 기증에 관해서는 이우환 본인의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쓰여 있지 않으며 그 친구들은 물론 누구인지조차도 쓰여 있지 않는 ‘노력한다’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수사로 표현된 문서라기에도 곤란한 정도이다.
2. 작품의 분류 및 학술적 연구작업 진행(학예연구사 선임) - 1.이 진행되지 않음으로 인해 당연히 진행된 바가 없다.
설사 작품이 없더라도 이우환에 대한 미술사적 접근과 예술적 성취와 대구지역과의 관계성 등에 대한 공청회 혹은 학술발표회 등의 과정은 얼마든지 진행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진행된바가 없다.
이우환은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유행한 일본 모노하(物派·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통해 사물과 공간, 위치, 상황, 관계 등에 접근하는 예술 운동)의 이론적 중심인물로 알려진 예술가다. 대구미술계와는 7~80년대 서너 번 정도 전시회 등에 출품하면서 왕래한 경험이 있을 뿐, 대구 미술계와 교류하거나 영향을 끼친 직접적인 사례는 찾기 어렵다. 또한 한국 모노크롬(단색추상회화)계열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논란의 여지를 갖고 있는 사안이다. 이는 한국 미술과 일본미술의 역학 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성과가 아직 나온바 없고 대부분의 연구는 기계적으로 일제강점기 일본미술의 한국으로의 이식에 맞추어져 있다. 2차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과 한국전쟁 후 한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이 양국간의 예술교류와 영향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단순히 표현양식의 유사성과 어느 쪽이 선점인가 정도의 연구만으로 영향의 주고받음을 단정할 수 없음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으로 이우환과 친구들 미술관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이 논의에서 이우환이 과연 시립미술관을 지어 추앙하다시피 해야 되는 예술가인가에 대한 검토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고의적인 탈출(일본으로의 이유 있는 밀항과 고의적인 체류)과 스스로 일본화 되어서 일본현대미술의 중심에서 활동한 예술인을 우리는 한국의 예술가로 인정해야 되는가의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의 미술관이 자칫하면 한국 현대미술과 더 나아가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과 한국 현대미술을 송두리째 일본미술의 아래로 편입시키는 씻을 수 없는 오류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3. 전시작품 디스플레이 시뮬레이션 등 향후 장․단기 운영계획 수립 - 작품이 없음으로 진행될 수가 없다.
4. 2.를 토대로 미술관의 성격과 소장작품의 내용에 맞게 설계 - 1.2.3.이 전혀 진행되어 확정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설계가 완성되고 실시설계에 들어가 있다.
이러한 진행이 어떻게 가능한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부문이다. 특정인을 지정해서 설계를 확정하는 것이 현행법상 가능한 일인지, 특정회사를 미리 지정하다시피한 시행사의 선정에는 문제는 없는지 등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5. 설계완성, 건축
6. 디스플레이, 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