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목걸이 폭포를 목에 걸다
▲중국 귀주성 천성교풍경구에 있는 은목걸이 폭포. 바람의 칼과 물의 검이 빚어내어 아름다운 수상석림을 이루고 있다.
귀양-곤명으로 가는 하늘길을 달리며…
귀양에서 아침 7시에 안순으로 출발했다. 국경절 황금연휴기간이라 서두르지 않으면 황과수폭포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청암고진성과 천하담에서 물밀 듯이 몰려오는 중국 관광객들을 이미 체험한 바 있다. 말로만 듣던 국경절 중국인들의 이동은 상상을 초월한다.
황과수폭포는 귀양(貴陽 구이양)에서 128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귀양에서 곤명으로 이어지는 새로 건설된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하늘 길을 달려가는 느낌이 든다. 해발 1000m 이상의 산과 산 사이에 터널을 뚫고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건설하여 이어진 도로는 말 그대로 하늘 길 그 자체다.
▲귀양에서 곤명으로 가는 고속도로. 해발 900~1000m에 건설된 하늘길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의 발전은 놀랍기만 하다. 넓은 땅, 무한한 자원, 13억 명이 넘는 폭발적인 인구, 거기에 강력한 중앙정부가 국가발전을 이끌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발전을 할까?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을 하다가는 순식간에 자원이 고갈되어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바리지 않을까?
차창밖에 펼쳐지는 선경이 아름다기만 하다. 산 중턱에는 어김없이 계단식 밭이 들어서 있고, 그 밭에는 농부들이 율무 등 곡식들을 추수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해왔던 원시적인 모습 그대로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현대문명과 퍽 대조적인 풍경이다.
중국인들이 수천 년 동안 살아왔던 풍경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풍경도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뚫고 부수어지고 오염되어가고 있다. 13억이 넘는 인구가 모두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 과연 중국은 어떻게 될까?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극도로 오염되고 말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허지만 인간의 끝없는 욕망 끝에는 절벽으로 떨어지는 나락이 있게 마련이다. 파괴된 자연을 다시 복구하기란 어렵다.
창밖을 스치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있다 보니 어느덧 안순에 도착했다. 황과수폭포는 안순(安順)에서 45km 떨어져 있다. 평균 해발 고도 900m, 연평균 기온 16도C의 자연환경에 위치한 황과수폭포군은 높이 74m, 폭 81m의 황과수대폭포를 중심으로 두파당폭포와 천성교풍경구 등지에 크고 작은 18개의 폭포 군이 산재해 있다. 1977년 황과수풍경 명승구로 지정, 2007년 5A급 관광지구로 승격된 황과수폭포는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포로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 군을 이루고 있다.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최고의 자연정원
우리는 먼저 천성교풍경구를 돌아보기 위해 입구에 도착했다. 황과수폭포 하류 6km 지점에 위치한 천성교경구는 카르스트 지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카르스트 지형(Karst topography)은 석회암 지역에서 잘 나타나는 것으로, 화학적으로 용해하여 침식되며 나타나는 지형을 통틀어 이른다.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빗물과 지하수에 쉽게 용해되면서 나타난다. 지하에 하천이 흐르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점차 석회암을 용해시키면서 일련의 지형변화를 볼 수 있다.
이곳 천성교풍경구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최고의 자연정원이다. 매표소에는 묘족들이 꽃으로 만든 월계관과 비옷을 팔고 있다. 이곳을 찾은 중국인 아가씨들(주로 한족)은 화려한 화환을 머리에 두르기를 좋아한다. 얼굴이 둥글고 토실토실하게 생긴 중국인들은 거의 한족으로 보면 된다.
중국내에서 정치와 경제면에서 모두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들은 중국의 부유층들이다. 월계관을 쓴 아가씨들에게 사진을 좀 찍자고 하니 기꺼이 포즈를 취해준다. 그들의 모습이 전통복장을 하고 월계관을 팔고 있는 묘족 할머니와 퍽 대조적으로 보인다. 고대인과 현대인이 함께 겹쳐지는 모습이랄까? 마치 문명의 충돌이 일어나는 현장과 같다.
▲전통복장을 하고 월계관을 팔고 있는 묘족 할머니
▲월계관을 둘러 쓴 한족 아가씨들
우리는 다시 예의 오픈 빵차를 타고 천성교풍경구 입구로 향했다. 이곳은 다행히 사람들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워낙 넓은 지역이라 사람이 밀리지 않는 모양이다.
“형님, 형수님은 제가 잘 수행을 할 테니 사진이나 멋지게 찍으세요.” “허허, 그리해 주겠는가! 너무도 고마우이.”
함께 동행을 한 병용 아우가 내 대신 아내를 돌보겠으니 마음 놓고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사실 아내는 무릎이 좋지 않아 잘 걷지를 못할뿐더러 몸의 균형도 잘 잡지를 못한다. 그래서 툭하면 넘어지기 일쑤다. 천하담에서는 아내를 수행하느라 폰카로 몇 장의 사진만 겨우 찍을 수 있었다.
이를 지켜본 병용아우가 아름다운 배려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몇 해 전 부탄을 여행할 때도 각하(아내의 이름이 박정희라서 붙은 별명)를 경호(?)하는 경호실 차장을 자칭하고 나선바 있다. 부탄을 여행하다가 아내는 아킬레스건에 골절상을 입어 큰 고생을 했었다. 그때도 아우 덕분에 큰 신세를 졌는데, 이번에도 경호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아우 덕분에 나는 큼직한 DSRL 카메라를 꺼내 마음껏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오픈카에서 내리자 곧 호수가 나왔다. 호수에는 분수가 시원하게 품어 나오며 아름답게 장식을 하고 있다. 호수주변에는 물 위에 목조다리로 연결해 놓고 있다. 목조다리를 천천히 걸어가니 <천성동경>(天星洞景)이란 붉은 글씨가 아치를 이루고 있다. 아치를 지나자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다. 마치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천성교는 자연분재구, 천성동, 수상석림의 세 명소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세차게 흘러가는 물이 폭포를 형성하고, 흐르는 물 위에는 괴이하게 생긴 돌들이 수상석림을 이루고 있다. 꼬불꼬불 흐르는 물 위에 돌들이 별처럼 박혀 있다. 그래서 천성동(天星洞)이라고 했을까?
카르스트 지형은 오랜 세월 물살에 부대끼면서 강바닥에는 수많은 작은 구멍들을 만들고, 물은 그 구멍을 따라 아래로 부서지며 마치 반짝거리는 진주처럼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마치 은(銀)으로 연결된 담(潭)과 같다고 하여 은련추담(銀?墜潭)이라고 부른다.
괴이하게 생긴 기암괴석을 오르내리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성협비폭과 은련추담을 잇는 비폭교를 건너다보니 아득한 태곳적 시절로 회귀를 한 기분이다. 비폭교는 주변경관과 어울리게 울퉁불퉁한 바위로 만들어 놓고 있다.
비폭교를 지나니 드디어 은련추담으로 이어지는 물소리가 세차게 들려온다. 마치 수많은 하얀 진주가 굴러가듯 물살이 수상석림에 부서지며 흰 포말을 일으킨다. 흐르는 물결에 탄성을 지르기도 잠시, 우리는 곧 천성동 동굴로 들어갔다.
지하예술의 극치 천성동굴
동굴로 들어가자 물소리는 잦아들고 화려한 색채에 태고를 쌓아올린 석회암 석순들이 나타난다. 수많은 석순 고드름들이 지하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동굴 속에는 기이한 봉과 기괴한 석순 속에 네 개의 돌기둥이 뿌리를 박고 있다.
높이 약 20m쯤 되어 보이는 돌기둥에는 오색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돌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다. 바다를 건너는 여덟 명의 신선, 넓은 포도홀, 돌로 피어난 연꽃모양, 석순으로 형성된 만리장성 모형도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빙산과 설야, 석순으로 이루어진 다락방 등 세상의 기이한 모습을 한 곳에 집결하듯 모여 있다.
사람들은 동굴의 규모와 황홀함에 혀를 내둘렀다. 아름다운 동굴 경관에 취해 마음껏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덧 다시 은련추담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나왔다. 계곡에는 무수한 은구슬이 다발처럼 흰 포말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계곡 주변 암벽에는 몇 백 년을 묵었을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분재가 되어 도열해 있다.
바람의 칼과 물의 검이 만들어 낸 수상석림
자연이 만들어 낸 괴이한 분재다. 계곡주변에는 바람의 칼과 물의 검이 만든 수변분재가 끝없이 이어진다. 나무뿌리라는 붓과 덩굴이 바위에 한데 엉겨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 폭의 수묵화를 군데군데 그려놓고 있다. 크고 작은 자연의 돌들이 흰 포말 위에 수상분재를 이루고 있다. 오직 자연만이 그려 낼 수 있는 오묘한 조화다.
선경에 취해 수상석림을 걷다보니 마침내 은련추담폭포에 도착했다. 은구슬처럼 생긴 물방울이 폭포를 이루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은목걸이 폭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폭포라고 할까?
은구슬이 되어 수상석림을 구르던 물방울들이 봉긋봉긋한 바위 봉분을 타고 미끄러지듯 굴러 내려간다. 가운데가 움푹 팬 구덩이 속으로 수많은 방울들이 은구슬처럼 부서졌다가 노도처럼 좁은 계곡으로 흘러 내려간다.
“오, 정말 희한하게 생겼네요?” “세상에, 이런 폭포는 난생 처음 봐요!” “저 은목걸이 폭포를 목에 한 번 걸어볼까?”
은목걸이 폭포를 목에 걸다
사람들은 은목걸이 폭포 앞에서 저마다 탄성을 지른다. 정말 희한하게 생긴 폭포다. 자연만이 빚어 낼 수 있는 작품이다. 모나지 않고, 거북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입체적인 풍경에 저절로 감탄이 나오며 고개가 수그려 진다.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동안 은구슬 포말이 구르며 빚어낸 은련추담의 바위들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사람들은 은련추담에 홀린 듯 자리를 뜰 줄 모른다. 한 번이라도 그 모습을 더 담고 싶어서 포즈를 취하고 또 취한다.
우리 일행들을 한분 한분 폭포 앞에 세우고 네모난 카메라에 담아 온 몸에 은목걸이 폭포를 걸어주었다. 사람은 풍경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했던가? 은목걸이 폭포 앞에 선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상기되고 기분이 최고조로 상승된 모습이다. 아아, 무수히 많은 은구슬이 포말을 그리며 흘러내리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자니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만다.
자연이 만든 최고의 지상정원 은구슬처럼 흐르는 물에 별처럼 많은 돌들이 박혀 있네. 사람들은 이를 천성교(天星橋)라 부른다네.
바람의 칼과 물의 검이 만든 수상석림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지고 수상석림 위에는 나무뿌리가 붓이 되고 덩굴이 묵이 되어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네.
아아, 알알이 은구슬이 포말을 그리며 빚어낸 은목걸이폭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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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내와 함께 떠난 세계일주 원문보기 글쓴이: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