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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최수진 씨는 아이스크림을 골라서 먹는 다국적 체인점의 한국지사에 진행했던 여행 경품 행사에 당첨되었다고 합니다. 최씨는 성탄절 기간동안 2박을 할 수 있는 여행권과 숙박권에 당첨되었고 당첨된 여행권과 숙박권을 달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이 아이스크림업체측은 1박 밖에 제공할 수 없다고 맞서면서 원래 조항에는 없었던 여행 조건까지 임의로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이에 화가 난 최 씨는 결국 아이스크림 업체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합니다.
법원은 최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아이스크림업체 측은 최 씨에게 2박 3일 호텔 숙박료와 항공료 108만 원, 그리고 이자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양쪽 모두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지만 문제는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업체에서 배상액 지급을 계속 미루었고 참다 못한 최 씨는 강제 집행을 신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회사는 사무실의 에어컨 넉 대를 압류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업체 담당자는 이 일에 대해 "전표 처리를 한 뒤 배상하기로 했지만 담당자의 실수로 입금이 늦어졌다"며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고 뉴스는 전했습니다. 뉴스는 또 이런 뒤늦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유명 아이스크림 업체는 고객과의 신뢰를 저버려 압류 조치까지 당했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뉴스를 마무리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약속을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나는 많은 분쟁들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사람들의 약속에는 서로의 이익... 서로의 득실이 있기에 약속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불변의 약속이 있습니다. 영원한 약속... 완전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경의 용어로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관자이실뿐 아니라 온 세상의 이치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주권자이십니다. 만물의 주관자이실 뿐 아니라 시간과 물질의 모든 권한을 가지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오늘 아브람에게 미래에 대한 약속, 언약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하십니다. 이 ‘언약’이라는 여러 성경번역본에서 ‘계약’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일단 구약 원어성경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tyriB (뻬리쓰) 혹은 (뻬리트)인데요. 이 단어를 영어로 번역한 영어성경에는 거의 모든 영어성경에서 covenant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번역본 성경중에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들은 이 번역을 따라서 ‘언약’이라는 단어를 ‘계약’이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언약과 계약은 뉘앙스의 차이가 있습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입장만 강조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을 주셨다는 의미이고, 계약은 하나님과 사람의 유기적 관계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계약관계가 성립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계약신학자라고 불리는 일련의 사람들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과 일종의 계약을 맺으면서 요구사항을 제시하시고 축복을 요구사항을 이행할 때 부어주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축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절 뒷부분에 등장합니다.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번성, 아브람의 성공을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 이후 등장하는 말씀속에서 신학자들은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번성과 성공을 약속하시며 요구사항을 말씀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신학자의 사상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과 아브람의 관계가 “내가 이렇게 해줄테니까 너는 이렇게 해라”고 말할 수 있는 만한 관계가 될까요? 다시 말하면 “아브람과 하나님이 계약을 맺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가 될 수 있냐?”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다고 번역하는 많은 성경번역본보다 차라리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의 ‘언약’이라는 본문이 정확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잘 쓰는 말은 ‘계약’이지만 아브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계약’의 관계가 아니라 ‘언약’의 관계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계약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싶은 축복이 있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아브람이 이런 약속을 받고 은혜를 누렸던 것처럼 우리도 이런 약속을 믿고 복을 누리며 살아야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아브람이 어떻게 약속의 은혜를 누리며 살았는지 살펴보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체험하는 은혜의 인생을 사시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번성과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위해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3절과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4절 말씀을 보니까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5절에 아브람의 이름을 개명시켜 주십니다. 이전의 이름과 다른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단지 뒷부분의 발음이 약간 차이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과 ‘아브라함’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브람’이라는 말은 큰 아버지... ‘great father' 위대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 ‘global father' 혹은 ’father of all nations' .... 모든 민족, 모든 나라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비젼을 새롭게 하십니다. 아브람의 영향력을 새롭게 하십니다. 아브람의 미래가 광대할 것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시며 축복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돈, 명예, 권력 등으로 우리가 자랑하지만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나의 든든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에 아브람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고 열국의 아버지라는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람을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창세기 26장 24절에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 26장 24절... 같이 찾아서 읽어보시겠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네게 복을 주는데 너의 자손이 번성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야곱에게는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창세기 28장 15절 말씀입니다.
창 28장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있어서 어디를 가든지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시고 도망나갔던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일이 마치기까지 야곱에게서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속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고 함께 살고 싶어서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해서도 직장을 갔다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길 원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한 자리에 있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속에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그 말을 항상 새기며 살아가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행하는 기본 생활양식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이 우리속에서 살아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 또한 아브람처럼 번성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번성과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위해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가 지키고 우리 자손들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을 가르쳐야 합니다.
17장 9절 말씀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번성을 약속하시고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후손들도 대를 이어 말씀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복을 부어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민족중에 그대로 전승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번성을 이야기하고 성공을 이야기할 때 내가 성공해서 자녀들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재산을 잘 관리하도록 하고 자녀들의 자녀들까지도 재산을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어떻게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며 어떻게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위해 노력했을 뿐 아니라 자녀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쳤고 자녀들의 자녀들까지 그 행복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교육법을 테필린 전통을 통한 교육법이라고 합니다.
테필린이 무엇인가?
테필린의 시발점에 대한 성경기록이 있는데요.
바로 신명기 6장 6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찾아보시겠습니다. 찾으셨으면 교독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신명기 6장 6절~9절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테필린은 가로 세로 3~4센티미터 크기로 두 개의 검은 가죽 상자와 띠로 구성되어 있고 머리와 손목에 각각 붙인다고 합니다. 이 상자 안에는 네 개의 성경 구절을 적은 두루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항상 머리와 손목에 성경말씀을 들고 다니고 기록된 말씀을 외우는 것입니다. 테필린 교육법을 통한 유대인의 자녀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유대인의 천재교육 프로젝트”라는 책을 쓴 김형종 목사님은 유대인의 교육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세상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성경 교육이 자녀 교육의 전부이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이 첫 번째 성공이고 두 번째 성공은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말씀의 아들이 되는 것이 두 번째 성공이다. 세 번째는 자식을 낳아 말씀의 아들로 세우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거의 대부분 유대인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말씀을 지키고자 노력할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유대인의 학교교육에 있어서도 최우선의 교육이 말씀교육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의아해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유대인들은 정치, 경제, 과학, 문학, 의학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지식층을 가지고 있는 뛰어난 지식을 가진 민족입니다. 온 지구상 인류 중 불과 2 퍼센트의 유태인이 오늘날 전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는 방송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미국 인구의 0.2 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명문대학이 몰려 있는 아이비리그의 유명 대학 학생의 20 퍼센트이상이 유대인이고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교 하바드대학교 햑생의 거의 30퍼센트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또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의 3분의 일이 유태인이라고 합니다. 무려 백칠십 여명의 유태인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 돌탑이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인을 키워내기 위한 유대인의 교육방법이 철저한 학교 교육이나 사교육을 통한 지식연마가 아니라 성경암송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훈련이라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교육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엄연한 사실입니다. 성경을 철저히 읽고 암송하는 것을 통해 유대인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되었고 전 세계를 움직이는 민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 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 1장 8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을 자녀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말씀을 잘 지키고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뿐 아니라 자녀들도 믿음과 말씀속에서 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훈련시키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들의 자녀까지 번성과 성공의 역사를 경험하며 대대로 믿음의 명문가로, 세상에서 인정받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로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번성과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위해 번성과 성공이 약속을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창세기 17장 19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 본문을 보시면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운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과 아브람의 약속이 계약관계라고 말하는 신학자들의 생각에 대해 말씀을 근거로 잠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이 본문에서도 사실 하나님과 아브람의 이 약속관계가 계약이 아닌 하나님의 철저한 은혜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낳게 하시고 이삭과도 언약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시는데... “내 언약을 세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삭과 세우는 언약이 이삭의 행위에 따라서... 이삭의 행동여부에 따라서 바뀌는 계약관계라고 한다면... 내 언약이라고 말하기가 조금 힘이 들 것입니다. 왜냐면 계약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그 약속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계약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권한이 있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복을 누리고 살아가게 되는 근거는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의 여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로 결정하면 우리가 복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거부하시며 우리가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아시고 우리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분명한 축복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내가 어떻게 할 지, 하지 않을 지를 내 스스로 결정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그리고 그런 일들속에서 우리가 어떤 고민과 힘든 여정을 살아갈 지... 그런 일들속에서 최종적으로 우리가 어떤 복된 결정을 하게 될 지도 미리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분명한 축복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손자...야곱에게 이런 비젼을 보여주십니다.
창 28:13~14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가운데 사닥다리 꿈을 보여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친히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시는 주권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우리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만들어가시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총괄하시는 주권자되십니다. 그럼,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됩니까? 이렇게 물으시면 제가 뭐라고 답을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우리를 간섭하시고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를 잘 모릅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 없지...” 진짜 우리는 우리를 잘 모릅니다. 내 성격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우리의 5분뒤, 10분뒤, 하루뒤, 한달 뒤, 일년뒤는 더더욱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인도하시고 가르쳐달라고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오늘 본문 19절은 이런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약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영원이라는 시간을 살아가시는 분이시니 하나님의 말씀 또한 영원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을 보시면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한 영원한 계획을 세우시고 영원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에서는 이 약속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로부터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친히 죽어주심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 우리들에게 영원한 기업된 천국약속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간직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기에 날마다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은 영원한 약속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2장 2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약속인데.. 그 약속은 바로 영원한 생명 약속일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믿고 구원얻고 이 땅가운데 평강을 누리고 기쁨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감사한데 이 세상이 끝나면 또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간직하고 살아간답니다. 이런 영원한 생명을 감사하며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성공하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번영을 누리며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모여있는 우리도 우리 맘속에서 이런 본능이 잠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나 그런 욕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과 우리는 방법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과 번영을 위해 죽자사자 노력합니다.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일하고 죽도록 노력합니다. 그렇게 죽도록 노력하다가 결국에는 죽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번영의 방법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며 말씀붙들고 살아야합니다. 또한 항상 말씀이 하라고 하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으며 자녀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시며 우리에게 축복의 약속을 세워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분명히 깨달으며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된 삶과 기쁨의 인생을 허락하시는 주인이 되십니다. 이번 한 주간 열심히 살아갈 때 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무리하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평화의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