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데이트
문화선교회 조정자
쌩쌩 추운바람이 귓불을 때렸지만 그러나 들뜨고 즐거운 마음으로 고속 터미널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올겨울은 그렇게 다른 해에 비해서 춥지 않다고들 말하지만 나이 탓인가? 든든히 잘 차려 입지 않으면 여전히 추워서 신발에서부터 모자까지 빈틈없이 챙기고 종종종 시간이 늦지도 않은데도 조금은 달리듯이 걸어가고 있었다.
“따님 내 친구 현이가 온단다 며칠 전에 70번째 자기 생일을보냈대 그래서 광주에서 서울까지 와서 엄마에게 생일 밥을 사려고 한단다. 밥을 먹고 우리는 터미널데이트를 하기로 했어 생일 선물도 그때 거기 백화점에서 같이 사기로 했단다. 어때 재미있겠지“? 때마침 추운 날인데 어디를 가시느냐고 걸려온 딸의 전화에 한껏 수다를 떨기까지 하면서 거의 2년 만에 만날 친구로 인해서 행복한 마음이었다.
“자야 여기야 여기” 친구를 찾기 위해 터미널로 들어오는 버스마다 두리번거리는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며 현이가 다가왔다. 진보라 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긴 코트와 작은 가방을 옆으로 메고 조그마한 쇼핑백을 들고 내 앞에선 친구는 머리를 애교스럽게 묶은 탓일까? 노인의 인상이 아니고 젊은 여인처럼 화사했다. “어머 너 참 예쁘다” “아니야 너도 아직 곱다 우리 너무 큰 축복이구나. 이렇게 깨끗하게 늙어 갈 수 있으니 말이야” 우리는 두 손을 마주잡고 눈을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서울에 살고 그는 지방도시에 살지만 서울에 좋은 곳을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터미널 안 백화점의 식당가도 익숙하게 찾아서 나를 인도하는 모양이 마치 나는 지방에서 왔고 친구가 서울에 사는 것 같은 느낌 이었다. 친구는 비싸보이고 아늑한 분위기가 넘치는 곳으로 인도한다.이런 곳은 어쩌면 내가 좋아 하는 곳이지만 경비에 부담을 느끼며 두리번 거리는 나를 보며 친구가 미소를 짓는다. "자야 이제 우리는 꼭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게 아니지 않니? 너도 나도 힘든 젊은 날을 보냈고 이제 모든 짐을 벗어버린 여유로운 나이가 됐구나! 그러니까 우리도 식사 한끼래도 즐기며 먹자구나 고급 음식도 먹어 보고 멋진 분위기도 즐겨보자." 그래서 우리 70대의 할머니 둘은 고상하게 앉아서 먹고 마시며 끝없는 대화에 빠져들기도 했다 터미널 안은 없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터미널 안에 있는 백화점을 다니며 모양은 같고 색깔만 다른 모자를 사서 쓰고 젊은 연인들처럼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고 아름답게 내뿜는 분수대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옷 가계도 들어가 봤고 서점도 들렸으며 제과점에 들려 우리손자에게 줄 호두파이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생일선물로 사주고 싶은 스카프 가게에는 가지를 못했다. 내가 돈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친구는 선물을 살만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번만은 꼭 생일선물을 사주고 싶어 손을 잡아끄는 내 귀에 그가 속삭이다. "넌 말씀도 모르니?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고 하셨잖아 나 이래뵈도 우리 영감 아직 돈벌고 있거든" 이러면서 친구는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그만 찻 집에 앉고 말았다.
강남 고속터미널은 지난번 그러니까 2년 전에 현이를 만나기 위해서 와보고 또 이번에도 역시 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와보는 곳이다 친구는 늘 나를 만나기 위해서 광주에서 이른 아침차를 타고 터미널까지 4시간 가까이를 달려오고 나는 집에서 1시간이상을 와서 우리는 여러 번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긴 적이 있다. 전에 내 생활이 너무 바쁘고 몹시 힘이 들었을 때 나는 모든 친구들 사이에서 잠적해버린 적이 있었다. 누구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럴 마음에 여유도 시간도 없다는 핑계 때문이었다. 나는 편지쓰기를 좋아해서 곧잘 친구들과 편지왕래가 잦았지만 그때는 아무와도 연락 없이 그저 집과 직장과 교회 외에는 누구에게도 나를 내어놓지를 않고 있었음에도 현이는 내 주변 모두를 수소문해서 나를 찾아냈고 그리고 나를 돕기도 하며 우정을 이어간 귀한 친구다 이제 나이를 먹고 그 인생의 환란이 다 지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정을 나누며 이렇게 가끔 터미널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나에게 어릴 적 우리 집에서 먹었던 단팥빵이랑 또 우리아버지가 만든 남아까시( 찹쌀생과자를 그렇게 불렀다)가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를 빼놓지 않고 말해주곤 한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아버지는 지방도시에서 제과점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 시대에 그리 흔하지 않은 고급 빵을 우리아버지는 현이가 오면 늘 내주시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별 기억이 없다 그때 현이는 우리 이웃에 살면서 우리 집 출입이 잦았고 마음씨 좋은 우리 부모님은 부모 곁을 떠나와 친척집에서 살림도와 가며 학교에 다니는 현이를 딸처럼 사랑하시고 따뜻이 대해주셨든 것을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이는 빵이 먹고 싶고 엄마가 보고 싶으면 우리 집엘 왔었다는 얘기를 자주 하기도 했었다
“자야 나는 세상에 나와서 그렇게 맛있는 빵을 너네 집에서 처음 먹어봤거든. 가마에서 갓구어 낸 그 빵맛과 그리고 아버지가 카스테라를 자르시고 남은 것을 챙겨주시고 더러 옆이 약간 터진 생과자를 주셨을 때 마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맛을 보며 세상에는 이런 맛있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단다. 지금도 그 맛이 기억에 생생하단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 집 빵 이야기와 우리부모님, 그리고 내가 현이 고향인 벌교에 갔을 때 요즘은 그렇게 유명해진 벌교꼬막을 매 끼니 내놓으며 똑같은 반찬이라고 미안해하시며 난처해 하시던 현이 엄마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끝없는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고 있었다. 어릴 적 함께 공유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함께 누리는 추억도 많은 것 같았다. 4시간 정도의 터미널데이트를 마치며 우리는 또 손을 잡았다 “자야 주님께서 우리를 언제 부르실지 모르지만 그날까지 우리 건강하여 자주 보자”
크고 긴 버스는 그를 태우고 떠나갔고 떠나는 차를 전송하며 나는 겨울 차가운 바람 아래서 따스한 친구의 사랑을 마음에 담고 서 있었다.
첫댓글 뗄레야 뗄 수 없는 영원한 친구와의 사랑 계속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생신을 보내며 더욱 건강하식 바랍니다.
찬민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니 세월은 무척 빠릅니다. 찬민아! 입학 미리 축하해.
본인의 생신상을 직접 먼길 올라오셔서 대접하시려는 친구분, 그 친구분을 귀한 보물처럼 아끼시는 우리 권사님, 두 분 정말 행복하신 분들입니다. 저도 찬민이 입학 축하합니다. 권사님의 기도로 키우신 우리 똑똑한 찬민이 주님 마음에 합한자로 자랄줄 믿습니다.
두분 답글 감사합니다 특별히 우리찬민이를 축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집의 희망이자 내 친구랍니다
부족한 글도 잘 읽어 주셔서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사님, 참 소중하고도 귀한 친구를 두셨네요. 두 분이 어떤 마음으로 만나는지 글 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분 모두 건강하게 좋은 시간 오래 갖게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한 설 맞으세요.. ^^*
심재호 집사님 답글 감사합니다.글을 조금 고쳤으니 다시 한번 읽으시고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