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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을 사용한 하나님의 손길
성경본문 : 사도행전 8: 25-40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 에디오피아 내시의 회심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왕상8:41, 사2:3, 요12:20, 요12:21
28.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마13:51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왕하10:16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7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눅23:24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마5:2, 눅24:7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행10:47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왕상18:12, 겔3:12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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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언제나 순종하는 자에게 그분의 일을 맡기게 된다.
창세기에 보면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가 하여 "시험하시려고"그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자시 생애에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아들 이삭f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순종이란 (휘파코에) 신약성경에 15번 나왔습니다.
아담은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제2의 아담 예수님은 순종함으로 인류의 구원사 역을 이루셨습니다.
순종도 해본 사람이 하게 되고요. 고난도 격어본 사람이 감당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며 살아왔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런 명령을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명령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얻게 되며, 하나님의 축복이 뒤따르기 때 문입니다.
일년 동안 맡겨준 크고 작은 일들을 살펴보면 감당하지 못하는 일보다 감당할 마음이 없어서 감당을 못하는 부분이 더 크고, 감당을 안 하려고 하는 게으름은 생활의 우선순위를 주님을 위해 두는 것이 아깝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생활의 우선이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반드시 외치는 성경구절을 안고 기 도합니다.
고전 4: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마리아에 복음과 함께 살아가는 빌립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순종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분의 말씀 외에 어떤 부분도 우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쓰시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또 다른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면 어떤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현장에 보냄받은 빌립을 만납시다. (26).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뚝을 아무도 막을 수 없듯이, 사마리아로 흘러간 복음의 물결은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달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 천사 (앙켈) 하나님의 전령자
주님은 천사를 통하여 빌립을 불러서 "남으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천사가 직접가지 않고 빌립을 보내야 했습니까?
복음은 가만히 앉아서 직장만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람이 천사보다 더위 귀하게 쓰임받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말씀에 순종하고 그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목적이 있 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광야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알다시피 사람을 만날만한 장소가 아닙니다.
☞ 그곳 광야를 (에레모스)라고 하는데 이는 유대 광야를 뜻합니다.
그곳은 가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장소입니다. 이런 곳에 왜 주의 사자는 나를 보냈을까? 하나님은 목적 없는 원인이 없습니다. 순간순간 내 지식과 생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자들도 있습니다.
☞ 왜 이런 곳에 나를 보내려고 하십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현실에 불만을 품는 자들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든지 시도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안 되네, 못 하네,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마디로 부정적인 사람의 습성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의 특성은 자기 스승과 동조인을 두려고 합니다. 절대 조심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버리지 않는 이상 좋은 일꾼이 되기 어렵습니다.
☞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고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행 8:27 So he started out, 마치 경주를 하는 것처럼 뛰어갔다고 합니다.
빌립의 모습 속에 우리는 머뭇거릴 수 없는 진실 된 주의 일군의 모형을 만나봅니다.
빌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요,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목적이나 방법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 때문에 주님의 일이 뒤로 밀 쳐져서 아예 명칭도 없어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지도할 수 있는 실력을 보유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절대 단순하지만 않습니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입니다.
구원을 받는 일에는 예수 그리스도만 알면 되지만 전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 가 누구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무엇하러 왔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사역을 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더 나가서는 문화도, 문명도, 학문도, 인간관계도 인격적 훈련도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배경도 알아야 합니다.
그 속에 핵심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는 빌립집사는 자신의 현장에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 주님 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
☞ 무엇이 광야길에까지 와야 했습니까?
☞ 그속에는 예수님의 만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이 그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왕으로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오셔서 나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알게 하여 주옵소서.
어느 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꾸 목이 아파서 노래를 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노래를 포기하고 수술을 하던지 아니면 노래를 계속하다가 죽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에 암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 성악가는 "절대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내 목소리는 청중을 위한 목입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밤새도록 아내와 함께 고민하다가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하나님은 원인이 없이 당신을 이곳에 두시지 않았을테니 그분의 뜻이 어디 있는가 기도합시다. 그 밤이 맞도록 기도했습니다.
새벽녁에 남편이 말합니다.
"여보, 나는 지금까지 이 좋은 목으로 많은 청중을 울리는 좋은 목소리를 주님이 주셨군요, 그런데 내가 가진 것처럼 감사할 줄 몰랐다는 것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아내도 말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 모두 내 목을 주셔서 그 동안 사용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 합시다. 그리고 감사하며 이제 내 목소리를 거두어 가신 분도 하나님이시 그동안 감사하지 못한 내 목소리 당연히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지 하고 성악을 포기하고 수술을 받기로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의사가 깜짝 놀랍니다.
"왜 그러십니까? “
“이상합니다. 어제만 보아도 암 세포가 꽉 찼는데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 할렐루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 후로부터 이적이 생겼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기적의 사람, 이적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준비된 영혼을 만나게 하십니다. (27-29).
그곳은 아무도 없는 실로 광야 였습니다. 황무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하고 단숨에 달려온 빌립에게 예비 된 사람을 만나 게 됩니다.
☞ ‘에디오피아’는 나일강 남쪽 지역에 위치한 누비안 왕국을 가리킨다.
구약 성경에서 이곳 사람들은 ‘구스인’으로 불리웠습니다(삼 하 18:21).
그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입니다.
☞ 여기에서 "간다게"라는 말은 특정한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애굽왕을 일컬어 바로라 칭하는 것처럼 에디오피아의 여왕에게 누구나 "간다게"라는 공용어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간다게는 A.D.25-41년 경에 통치한 아만티테레라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한 나라의 경제부 장관이지만
☞ 예배하러 국경을 넘어 1,200마일이 넘는 먼 곳에서부터 예루살렘에까지 왔으며, 그중에도 수레를 타고 오고가며 유대인이 아니면 좀처럼 구하기 힘든
☞ 이사야 예언서 사본을 구해 읽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때로는 많은 시간도 경비도 투자하며 부지런한 진리 탐구자에게 하늘에서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천사를 통하여 복음의 열정을 가진 빌립집사를 그곳에 급파하게 하시는 일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 여러분은 어떤 믿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십니까?
기적의 사람은 반드시 주님의 마음을 감동케 합니다.
그런 사람을 통하여 기적을 베프셨고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는 사람이 되시기 원합니까?
지금 주님을 위한 감동적인 생활을 합시다. 그것은 이 시대 속에 예배 신앙입니다. 그리고 말씀신앙입니다.
어느 날 경희대 병원에 심방 차 다녀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개떡을 파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에게는 검음 봉다리에 개떡과 함께 전도지 한 장을 넣어주면서 예수 믿으세요. 그리고 계속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는 노점도 없는 길거리 노점상인입니다.
그의 생활속에서 예수님을 자랑하는 분이었습니다.
잘 나갈 때 주님을 모른척하다가 모든 것 다 잃어버리고 비로소 주님을 알게 되어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각오가 확실한 웃음먹은 간단한 말을 해주었습니다.
말씀의 순종자 빌립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간다게의 국고를 맡는 이방인 내시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 성경은 이렇게 두 사람의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 사람을 소개하며 그 만남을 절정에 오르게 합니다.
왜 베드로의 전도로 3000명 5000명의 이야기로 성경 전체를 기록하지 않고 소수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기록하느냐는 것입니다.
뿐만입니까? 순교자 스테반을 그렇게 소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빌립을 급하게 파견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된 빌립을 만납시다. (30-39).
☞ 그에게 두 번째로 성령의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행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 나아가라 to worship = 가까이 접근하라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빌립이 성령께 순종하여 그에게다가 설 때에 내시는 이사야 53장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53장1절부터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7,8 절은 메시야의 예언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 53:7,8>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 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복음에 대한 열정이 끓고 있는 빌립에게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인 지위와 위치를 조원 한다는 사실입니다. 간다게의 내시는 국가의 경제를 거머쥔 큰 세력을 가진 자였고 그를 돌보는 수행원들 또한 만만치 않았다. 반면에 빌립은 외형도 볼품없는 일개의 전도자에 불과 했습니다.
☞ 그러나 복음 앞에 담대했습니다.
☞ 주님의 세워주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를 무시 할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를 밀어낼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개 국왕의 사절단이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자라는 면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믿음과 자부심으로 그에게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암살범으로 살아남지 못하는 지목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검문소마다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모든 문제를 관통하고 맙니다.
그리고 내시의 병거에까지 올라가 성경을 공부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책임져 주신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막 절호의 기회를 만났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않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리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공부도 아닙니다. 바로 생명운동입니다. 구원운동입니다.
이 예수 때문에 여러분도 나도 영원한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주님을 만나십시오.
어느 분이 나이야가라 폭포 그 직전까지 가는 배를 탔랍니다.
폭포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양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미국 사람이 다가오더니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나무 십자가를 꺼내 건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적힌 글이있었지만 폭포소리와 물안개 때문에 읽어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써있었습니다.
‘이 십자가는 주술적인 힘도 없습니다. 그리고 명예와 권세도 그리고 아무 힘이 없습니다. 더구나 아름다운 모습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이 십자가를 주머니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닙니다. 그 이유는 내게 참 소망을 주시고 구원을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혹 잊을까 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 예수님을 전해야 할 이유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 첫째, 모든 설교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둘째, 죄인들을 대신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실입니다.
사 53:56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셋째,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그 결과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즉, 죄로 인한 영혼의 상처,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 버림받은 이방인에 대한 소외된 상태가 치유되어지고, 또 그 결과로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귀신론을 주장하는 김기동처럼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예수, 예수를 통하여 새 삶이 회복될 때 그 모든 것은 우리 주님이 대신 짊어지십니다.
내가 내 봇다리 짊어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히 믿을 때 주님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주의 영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검붉은 이방나라 에디오피아에 세례받은 선교사 내시를 보냄으로 그 민족을 살리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왜 내시를 만나게 했는가는 의혹이 풀리게 됩니다.
여러분 나라는 한 인간의 존재 얼마나 귀한 존재인줄 아십니까?
여러분을 쓰시려고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고 대충믿을 것입니까?
☞ 그는 그곳에서 세례를 받고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쪽발이 같은 인생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쓰임받는 개인의 소중한 영혼을 맏아가는 가정선교사인 여러분을 세상에 파송합니다. 가이사랴로 또는 에디오피야로 갑시다.
☞ 아프리카 대륙으로
☞ 그 나라 선교사로, 그 가정의 선교사로, 그 이웃의 선교사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