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문장 만들기
1. '복수형'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을 남용한 글이 많습니다. 영문 번역체의 영향을 받은 탓입니다. 심지어 신춘 문예나 문학상에 당선된 작품에도 이런 경우가 많아 문맥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우리말은 굳이 ‘-들’을 붙이지 않아도 문맥으로 보아 복수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복수형은 복수임을 알릴 필요가 있을 때 쓰는 게 좋습니다.
-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 여러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 과일들이 열려 있다.
- 대중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생각들이 뇌리에 맴돌았다.
- 상점들이 즐비했다.
위 예문은 ‘들’을 붙이지 않아도 의미 전달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시민’이나 ‘대중’은 무리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문제는, 무리를 하나의 단위로 보느냐 개개의 모임으로 보느냐에 달렸는데, 전후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
‘생각’은 추상명사기 때문에 복수형을 쓰지 않습니다. 꼭 쓰고 싶으면 ‘생각의 조각들’처럼 개별 단위로 쪼갠 다음 ‘들’을 붙이면 어법에도 맞고 추상의 의미를 더하는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2. ‘꾸밈과 겹꾸밈’
‘꾸밈’은 문장에 화장을 하거나 옷을 입히는 일입니다. 수필 문장에서도 꾸밈은 필요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의미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문장을 산만하게 하기도 합니다.
1> 와이셔츠를 반듯하게 다려 입은 대학 철학 교수.
2> 목사님의 설교의 오묘한 뜻처럼.
3> 노파의 생을 지키는 늙은 몸속의 낡은 내장.
4> 나의 어머니의 옷고름.
5> 꾸미지 않은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
6> 실과 바늘은 붙어서 함께 가야하는 끈끈했던 삶들이었다.
수필을 읽다보면 위 예문과 비슷한 언어 배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는 ‘멋을 부리려는 욕심’ 또는 ‘분량을 맞추려 문장을 늘이려는 의도’가 낳은 기형아입니다.
1>은 ‘와이셔츠를 반듯하게 다려 입은’의 주체가 ‘대학’인지, ‘철학’인지, ‘교수’인지 아리송하지만 와이셔츠를 입었으니 ‘교수’입니다. '대학'은 빼는 게 좋겠지요. 또한 ‘반듯하다’는 어의로 보아 ‘다려 입다’와 어울리지 않으니 차라리 '깔끔하다'가 낫지 않을까요.
2>는 ‘의’라는 고개를 두 개나 넘어 ‘뜻’에 닿습니다. 숨이 차지요? 그냥, ‘오묘한 설교처럼’ 하면 고생을 덜할 텐데 말입니다.
3>은 구절양장 고개를 넘어야 ‘내장’에 닿습니다. 풀어쓰면 ‘늙은 몸속의 낡은 내장이 노파의 생을 지킨다.’인데, ‘지킨다’ 보다는 ‘버틴다’ 또는 ‘지탱한다’가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문장은 어휘와 어휘를 결합해 화학반응이 일어나면 새로운 연상을 일으킨다는 차원으로 구사할 수 있으나, 이마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늙은 노파의 생을 지탱하는 낡은 내장’이라고 해도 답답하지요. 비유와 꾸밈, 모두 실패한 경우입니다.
4>는 ‘내 어머니’로 표현하면 간단합니다. '나의 것'보다 '내 것'이 발음도 간편하듯,
5>는 ‘천진’에 ‘꾸미지 않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둘 중 하나는 빼야겠지요.
6>은 문장도 비문이지만, ‘붙다’, 함께 가다‘, ’끈끈하다‘가 삼촌 또는 사촌입니다.
언어에도 근친교배는 좋을 게 없겠지요. 무리하게 배열하려다보니 비문이 되었고, 지나치게 꾸미려다보니 화장에 실패했습니다. 시詩에서는 일부러 비문을 만들고 그 너머로 독자를 밀어넣어 묘한 여운을 남기지만, 수필에서는 오히려 점수만 깎입니다.
그런가 하면 ‘겹 꾸밈’을 잘 쓰면 리듬과 효과를 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 콩 심으면 콩 나는 정직한 땅.
나> 사계절이 어김없이 순환하는 약속의 땅.
위 예문은 ‘정직한 땅’과 ‘약속의 땅’을 적절히 강조했습니다. <콩 심으면 콩 나는 = 정직한'>이지만 겹 꾸밈으로 언어에서 느끼는 지평을 넓힌 경우입니다.
3. 조사 ‘의’
‘의’는 일본어 'の' 의 번역 투인데, 요즘엔 워낙 많이 쓰다 보니, 뭐랄까요, 습관이 되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수필문장에도 대수롭지 않게 쓰고 있습니다. 물론 쓰임새가 많다는 증거지만, 문장력을 높이려면 되도록 안쓰는 게 좋습니다. '습관'이 '변화'를 가두기 때문입니다.
* 나무의 인간취급이 엉뚱한 일은 아닐 것이다. ☞ 나무를 인간으로 취급하는 일은
* 마을의 수호목인지 여부도 알 수 없다. ☞ 마을을 수호하는 나무인지
* 은행나무를 유교의 상징적 나무로 여긴다. ☞ 유교를 상징하는 나무
* 화투의 짝 ☞ 화투짝
* 영화의 한 장면 ☞ 영화 한 장면
* 동굴의 천장 ☞ 동굴천장
* 짐승의 울음 ☞ 짐승울음
* 여성의 문제 ☞ 여성문제
* 사회의 문제 ☞ 사회문제
위 사례처럼, ‘의’를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유려한 문장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려한 색깔로 표현했다.
* 아름다운 자연을 화려한 색상으로 표현했다.
위 문장은 얼핏 같은 의미로 보이나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아름다운 자연>에 있습니다.
첫째문장은 시선이 가깝고 둘째문장은 시선이 멉니다. ‘나무’와 ‘숲’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색깔/색상>도 거리에 맞게 썼습니다. 이제 미묘한 어감 변화가 느껴지십니까?
* 아버지의 사진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사진인지, 아버지를 찍은 사진인지, 모호하지요?
‘~의’는 워낙 광범위하게 쓰이고 또 쓰임새마다 어감이 미세하고 다양하게 변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A의 B>와 <B의 A>, 이 미묘한 변화를 감각으로 익혀두면 정밀한 문장을 구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4. '주격조사'
① 한 여성이 ‘육아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② 한 여성은‘육아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문장은 비슷하나 그 의미는 다릅니다. ①번 문장은 단순한 사실에 그치지만 ②번 문장은 사실 뒤에 다른 입장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는 문장 주체의 행위와 관련된 사항만 말하고, '은, 는‘은 '비교, 대조.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 (참석자 대부분은 말이 없었으나), 한 여성은 ‘육아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가’와 ‘은, 는’을 잘못 쓰는 경우는 드물지만, 주격조사도 쓰임새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는 걸 인식하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5. 접미사 ‘~적(的)’
일본식 한자어인 '~적(的)'은 ‘과녁’을 말하며, ‘상태, 성질, 경향’을 나타낼 때 쓰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다운, ~성질을 가진, ~에 가까운’이 되겠지요. 주로 논문이나 논설에 많이 쓰는데, 이는 (문법에 관심 없는) 논문이나 논설을 쓰는 학자가 아무 비판 없이 남용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논문이나 논설을 읽으며 공부한 학생도 ‘적’을 남용하게 되지요.
* 경제 문제 * 윤리 문제 * 학문 성과-이처럼 ‘적’을 빼도 아무 문제가 없으며,
* 국제적 수준에 근접했다.-이처럼 잘못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에는 ‘가깝다’라는 뜻이 있기에 ‘근접하다’는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문장에 한껏 멋을 냈지만 실은 무식의 소치며 남용입니다.
* 개인적 생각으로 * 포괄적 뇌물죄
‘내 생각으로'하면 될 것을 굳이 개인에게까지 ’적‘을 썼지요. 잘못된 표현입니다. 그런가하면, 법원은 ’포괄적 뇌물죄‘라는 희한한 신조어를 만들어 과녁(的)의 범위를 넓히기도 했습니다. 유식이 넘친 판사가 한 짓(?)입니다.
* 효과적 방법 ☞ 효과가 있는 방법 * 다각적 이유 ☞ 다양한 이유
* 가급적이면 ☞ 되도록 * 윤리적 측면 ☞ 윤리면
* 윤리적 소비 ☞ 윤리에 맞는 소비, 윤리를 따르는 소비
* 상식적으로 ☞ 상식으로, 상식을 기준으로, 상식 선에서
‘적’은 수필 문장에서도 잘 쓰는데, 되도록 지양하고 꼭 써야할 곳에만 쓰는 게 좋습니다.
첫댓글 의
많은 도움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