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은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예향의 도시, 자유무역지역을 낀 공업도시 등으로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만 음식(문화) 쪽도 빠뜨리면 섭섭한 곳이다. 경제적 번화와 함께 각 지역 사람과 물산이 집중됐던 마산은 현재의 전라도나 통영 못지않게 음식도 발달했다.
조선시대 마산은 동해 원산, 서해 강경과 함께 전국 3대 수산물 집산지 중 하나였다. 마산 어시장은 1960년대까지 남해안 수산물 집산지이자 교환 중심지였으며 1990년대까지도 전국 최대 거래량을 자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산이 어느 시점부터 쇠락의 길을 걸은 것은 음식문화가 왜곡되지 않는 데 외려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만일 무분별한 개발 광풍이 몰아쳐, 창동·오동동을 비롯한 주요 지역에 대형 건물·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섰다면 각종 프랜차이즈 음식점만 판치는 곳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최소 십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을 한결같은 맛으로 이어온 노포(老鋪)들은 높은 임대료를 못 견디거나 권리금·대형화의 유혹에 휩쓸려 제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2014년 현재 마산 음식계를 주름잡고 있는 맛집을 총정리해봤다. 참고로 밝히면 본보가 발행하는 월간지 <피플파워>에 두 차례 걸쳐 연재한 내용을 축약·보완한 것이다.
◇최고의 복국, 장어구이는 어디?
마산 하면 역시 해산물. 일단 싱싱하고 다양한 생선회와 해물을 즐기고 싶다면 150여 개 점포가 몰려 있는 어시장 내 횟집골목을 이용하면 될 듯하다.
좀 더 특별한 것을 원하면 바닷가 근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바닷가와 마주한 값도 싸고 맛도 좋은 장어골목은 그야말로 마산의 자랑이다. 1인분 1만 2000원대 정도로 그 귀하다는 민물장어보다 2~3배 저렴하지만 잘만 구우면 고소함이 민물장어 못지않다. 여러 음식점이 있고 맛이나 서비스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개중 나았던 집으로는 '해안선'을 꼽고 싶다.
하지만 이 집이 '마산 최고'라 보긴 어렵다. 가장 훌륭한 장어구이는 가포동 옛날영도집에서 맛볼 수 있다. 옛날영도집은 주방에서 미리 구워져 나오는 게 특징이다. 육즙을 잘 잡은 촉촉한 살코기 맛을 보면 '야끼바'나 오븐 같은 곳에서 구운 것으로 보이나 확실치는 않다. 양념보다는 소금구이를 추천한다. 장어구이를 먹은 후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장어국 또한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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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영도집 장어구이. |
내친 김에 장어국 잘하는 음식점을 한 곳 더 소개하면 복국골목 쪽 명품장어국수가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으나 마산에서 먹어 본 장어국 중 가장 깊고 진한 맛이다. 장어국 맛을 살리는 '묘약'이라 할 수 있는 초피도 직접 말리고 갈아 쓰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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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장어국수 장어국. |
마산의 단점이 있다면 그 풍부한 해산물에 걸맞은 다채로운 '요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어골목 바로 옆 해안횟집에 가면 이런 불만을 나름 다스릴 수 있다. 물메기탕·멍게비빔밥·대구탕·병어조림·갯장어회·멸치쌈밥·탱수탕 등 '솜씨 좋은' 제철요리를 그때그때 낸다. 주로 통영에 이 같은 형태의 음식점이 많은데, 맛만 놓고 보면 전혀 통영이 부럽지 않다.
여기서 다시 창동·오동동 쪽으로 향하면 자연스레 복국골목, 아구찜골목이 눈에 들어온다. 복국 역시 통영이 유명하지만, 1960년대 문을 연 남성식당 등 일부 복국전문점은 그야말로 생물 복국(맑은탕)의 '극한'을 보여준다. 남성식당 외에 여러 복국집이 있는데 덕성복집(밀복찌개), 진미복집(복매운탕)도 기억해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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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식당 까치복국. |
마른 아구를 이용해 만드는 마산만의 독특한 아구찜은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좀 토속적인 맛을 원하면 구강할매아구찜이나 진짜초가집원조아구찜에 들르면 되고, 좀 현대적인(?) 맛을 원하면 오동동아구할매집, 우정아구찜 등이 추천할 만하다.
아구탕이나 아구수육도 다른 지역에서 흔히 먹기 힘든 마산의 축복이다. 1순위에 놓고 싶은 집은 장어구이와 마찬가지로 정작 아구찜골목 쪽에 없는데 석전동 마산우체국 뒤편 흥부식당이 그 주인공이다. 아구찜을 비롯해 아구내장수육, 아구탕, 아구찌개 모든 메뉴를 갖추고 있는데 모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특히 아구내장수육은, 일천한 경륜과 안목이지만 그간 만나온 것 중 최상급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구간이나 내장은 수육으로 만들 경우 신선도가 생명인데 어떤 비법이 있는 건지 늘 물 좋은 녀석들로 서빙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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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식당 아구수육. |
◇장사 방식은 충격적이지만…
마산에는 또 허름한 외관이나 걱정이 좀 되는 주방·위생 환경 등 겉만 보면 전혀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막상 음식을 먹으면 감탄이 쏟아져 나오는 음식점이 많다. 모두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한두 분이 꾸려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어쩌면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닐까 싶다. 새로 이것저것 꾸미고 넓히고 해서 떼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평생 차곡차곡 쌓아온 손맛과 나름의 방식대로 소소하게 장사를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산호동 사보이호텔 뒤편에 있는 육일돼지국밥이 대표적이다. 식당 이름은 돼지국밥이지만 돼지국밥 먹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이 집은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하는 할머니의 '충격적인' 장사 방식이 특히 유명한데, 어쨌든 해물된장찌개 맛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다. 일반적인 된장찌개라기보다는 제주도 등에서 많이 먹는 해물뚝배기 스타일에 가깝다.
인근 산호시장 근처 항아리수제비도 '강추'(강력 추천)할 만한 집이다. 역시 할머니 혼자 수제비와 칼국수 단 두 가지 메뉴로 장사를 하는데 깊고 개운한 황태·멸치 육수에 부드러운 면발 등 마산에서 먹어 본 칼국수 중 단연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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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수제비의 칼국수. |
술집이긴 하지만 부림시장 근처(수성동)에 위치한 고가네와 오거리도 이 방면 리스트에 꼭 넣고 싶다. 예의 모두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집인데 고갈비와 가오리찜(고가네), 족발과 닭꼬치(오거리) 등 가격 대비 훌륭한 안주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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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네 전어구이. |
대도시 중심가라면 어디든 우후죽순 생기는 이른바 '이자까야'(일본식 선술집)를 우습게 만드는 집도 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오동동 통술골목 근처 미나미가 그곳이다. 각종 채소, 다시마 등을 넣어 만든 오뎅탕은 조미료 맛만 가득한 '싸구려'와 절대 비교할 수 없으며, 강원도 한 덕장에서 '반건' 스타일로 살이 탱글탱글하게 말린 명태포, 개조개를 잔뜩 다져 넣어 만든 '무(無)밀가루' 오리지널 유곽도 별미이다.
양덕동 솔밭집, 산호동 새제일식당, 회원동 콩남울교실도 들러볼 만한 음식점이다. 오리전문점인 솔밭집은 깊고 진한 국물이 인상적인 오리탕이, 새제일식당은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가 밥맛을 돋우는 집이고, 콩남울교실은 마산에서는 드물게 꽤 수준 높은 전주식 콩나물국밥을 내는 집이다. 모두 점심시간 때 자리 잡기조차 쉽지 않다.
그 밖에 추천할 만한 음식점은 백숙으로 유명한 함양옻닭(중성동), 일본식 숙성회와 초밥을 '한국식으로' 즐길 수 있는 40년 넘은 노포 고려횟집(오동동), 깔끔한 국물 맛을 선사하는 청하곰탕(신포동), 허접한 프랜차이즈 치킨과 비교를 거부하는 전기구이 스타일의 대영통닭(오동동), 생선국이 일품인 은아식당(동성동), 생선 굽는 솜씨가 뛰어난 생선마을(양덕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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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통닭의 통닭. |
옛날식 냄비우동 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호반분식(산호동), 수준 높은 일본 라멘을 먹을 수 있는 라멘당(합성동), 아주 싼 가격(3500원)에 최고 수준의 핸드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몬스터 로스터스(해운동)도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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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로스터스 핸드드립 커피. |
파면 팔수록 많은 맛집이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마산이라, 마산에서 맛집 찾기 '미션'은 쉬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언제 어디서 또 엄청난 음식을 먹게 될지 살짝 가슴까지 설렌다. 독자님들도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 적극적인 추천과 제보를 기다린다. '마산 맛집 기행' 2편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