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걸어온 삶을 뒤돌아보며 낄낄거릴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어렸을 때 기억이지만, 하루하루 뭐가 그리 재밌고 신 났었는지 늘 웃음을 달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저녁 학원 갈 시간에 미사참례를 했었고, 주일엔주일학교, 성탄이 가까워 오면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 성당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성가집은 너덜너덜, 때가 낀 미사보는 훈장과도 같았지요. 잘 생기고 목소리 좋은 청년부 오빠 때문에 마음 설레기도 했고, 미사시간 주님의 말씀을 낭독할 땐 의젓해지기도 했습니다.
사랑도 배우고, 배려도 배우고, 또 나쁜 일을 하고 성호 긋는 일이,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그러셨거든요, 나쁜 일 하고 성호 그으면 이마에 십자가가 없어지지 않는다고요, 후후. 돌아보면 제게 신앙은 어머니의 가정교육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고, 힘들 때 찾아가 안기는 친정엄마의 품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한 방송인, 배려 깊은 내조자로 매진할 수있게 하는 기둥이기도 하지요.
있는 그대로를 남에게 보여주기, 내 삶을 스스럼 없이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나를 열어놓는 작업, 솔직히 어렵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드러내며 남들에게 영향주고 싶어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너도나도 튀고 싶어 안달 난 요즘, 자신을 누르는 일은 어쩌면 득도에 가깝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일은 더 어려워집니다. 잘 안될 때 전, 또 어김없이 주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무릎을꿇고 답을 구하죠. 그리고 그분은 꾸지람 없이 또 답을 주십니다. 그 답들이 바로 제 방송 밑천이지요.
모르는 길을 갈 때 자동차의 조수석은 진짜 이름값을합니다. 운전하는 사람 입에 김밥도 넣어줘야 하고, 물도마시기 좋게 빨대 꽂아줘야 하고, 빠져나가는 길도 알려줘야 하고, 휴게소도 일러줘야 합니다.
라디오에서 혹시, 베토벤 운명교향곡을 들어보셨나요? 가슴을 울리는 타악기, 심금을 울리는 현악기, 머릿속을 공명하게 하는 관악기 등으로 표현되는 그 멋진 음악 어디에도 지휘자의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그 음악은 지휘자의 역량과 특징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전혀 다르게 표현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처럼 제게 신앙은, 인생을 멋지게 지휘할 수 있는 힘을, 자동차 조수석의 세세함과 배려를 잃지 않게 하는 신념입니다. 그러나 그 신념이 또 흔들릴때 전 얼굴에 철판 깔고 주님께 또 달려갈 테지요.^^
최유라 안나 /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