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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소칼. 리처드 도킨스.
●앨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은 라캉이 위상학 등 수학 분야의 용어를 사용한 것, 라캉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적 개념을 오남용한 것 등을 비판하면서 라캉을 "습자지 지식꾼"(superficial erudition)이라 칭하였다. 다만 그들은 라캉 저술의 순수히 정신분석학적 부분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않았다. 리처드 도킨스는 라캉이 "사기꾼인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굳이 수학 전문가의 의견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라캉을 향한 앨런 소칼과 리처드 도킨스의 비판을 보면 ;
https://www.yes24.com/지적사기-앨런소칼
앨런 소칼의 사건과 리처드 도킨스의 비판 사이에는 약 2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소칼 사건은 1996년 5월에 발생했다. 미국 물리학자 앨런 소칼이 포스트모더니즘 학술지 '소셜 텍스트'에 가짜 논문을 게재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소칼은 벨기에 물리학자 장 브릭몽과 함께 1997년에 '지적 사기'라는 책을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도킨스는 이 책의 영문판이 출간된 1998년에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제목의 서평을 발표하며 라캉 비판에 가세했다.
두 학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한다는 목적을 공유했으나 비판의 세부 시각과 요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소칼은 물리학자로서의 학문적 엄밀성과 '방법론적 왜곡'에 주목했다. 그는 라캉이 수학적, 과학적 용어를 맥락 없이 남용하여 인문학적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태를 꼬집었다. 반면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는 대중적 지식인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 학계 전체의 '반지성주의적 태도'와 '현학성'을 더 강하게 비판했다. 도킨스는 라캉의 난해한 문체가 깊은 사상을 담은 것이 아니라 알맹이 없는 사기를 감추기 위한 껍데기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타당성의 측면에서 소칼의 비판은 더 구체적이고 타당했다. 소칼은 라캉이 사용한 수학 공식의 오류를 직접 지적하며 텍스트 자체의 한계를 증명했다. 이에 반해 도킨스의 비판은 라캉 사상의 본질적 가치나 정신분석학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지 않은 채, 자극적인 언어로 철학 전반을 조롱했다는 점에서 다소 감정적이고 일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캉의 커리어 중에서 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후기 사상'인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의 서술들이다.
라캉은 이 시기에 자신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공식화하려는 '마템(Matheme)' 작업을 시도했다. 특히 주체의 분열과 결핍을 설명하기 위해 토폴로지(위상기하학)의 개념인 '뫼비우스의 띠', '클라인 병', '보로메오 매듭'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가장 논란이 된 구체적인 서술은 정신분석학 세미나에서 나온 언사들이다. 라캉은 남성의 성기적 상징인 '남근(Phallus)'을 복소수의 '허수 단위인 제곱근 마이너스 1'에 비유하는 공식을 만들었다. 또한 인간의 발달 단계를 설명하며 수학의 '집합론'이나 '초한수' 개념을 자의적으로 가져다 썼다. 과학자들은 라캉이 이러한 수학적 개념의 실제 정의를 무시한 채, 단순한 문학적 은유를 넘어 마치 과학적 진리인 것처럼 서술한 부분을 심각한 문제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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