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중세 기독교 세계
롤란드 베인턴, 「세계교회사」 (파주,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2020)
2025년 8월 31일/ 박 영신
1. 책의 어려움:
함께 읽고 있는 베인턴의 「세계교회사」—우리는 이 책을 소개하며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한 한 선생에게 감사했습니다—를 마주하면서, ‘어렵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학에서 교과서로 널리 읽히는 이 책이 우리에게는 ‘어렵다’고 한다면, 이는 우리나라 대학의 공부 방식과 수준의 문제입니다. 깊이 파고드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겉껍질 공부에 길들고, 그러한 공부를 시험하는 단답형 시험 점수를 잘(?) 따서 무슨 대학 무슨 학과에 입학하면 공부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머리 좋다고 생각하는 이 표피의 교육, 이 표피의 공부를 문제시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공부를 많이 하고 잘한들, 무슨 가치가 있고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적당히 잘 못한다는, 그리하여 점수를 그렇게 잘 따지 못하는 사람이 더 깊이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교회에서 ‘대화’를 통하여 함께 생각을 나누는 공부 철학과 방식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우리는 성의와 책임을 느껴 읽고 알게 된 그만큼을 ‘공동 공부’의 자리에 가져와 ‘겸허히’ 함께 나눕니다. ‘설교 후 대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자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교중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우리의 앎은 부족합니다. 모자랍니다. 아는 만큼 안 것을 ‘겸손하게’ 서로 나누며, 제가 자주 말하듯이 자기의 앎을 넓혀가고 우리의 삶을 넓혀갈 따름입니다.
오늘 7장의 뒷부분(2/2)을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면 이 장 공부는 끝납니다.
2. 기억할 사람들:
1) 인노켄티우스 3세. 바로잡기 어려운 중세기의 문제 가운데 교회와 국가가 권위를 두고 경쟁하는 가운데 충돌을 빚었습니다. 교회법과 세속법이 서로 다투기도 했습니다(205 아래). 이 상황에서 뚜렷한 교황이 역사의 무대 위로 들어섰습니다. 권력 투쟁에서 승자가 되어 패권을 행사하던 13세기의 인노켄티우스 3세입니다(208). 교리와 관계되는 사건 하나는 그가 라테란 공의회를 열었고, 거기에서 ‘화체설’--성찬식 때 신부가 제단에서 ‘이것은 내 몸이니/피니’ 하고 선포하는 순간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본질’로 바뀌게 된다는 교리—를 공식화한 일입니다(210).
2) 앗시시의 프란체스코, 또는 성 프란체스코. 은거하고자 하는 베네틱투스 수도원과 달리, 사람들의 일상 안에서 활동하고자 했습니다. 문둥병자들을 목욕시키고 농부들에는 일손이 되어 전도 활동을 펼쳤습니다. 소유욕이 만병의 원인이고 만악의 근원이라고 보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가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여기에 ‘중상주의(commercialism)’라는 말이 나옵니다(210). 혼란을 자아냅니다. 아담 스미스를 읽다 보면 ‘중상주의’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는 ‘상업주의’ 혹은 ‘소비주의’/‘시장주의’와 달리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제한하는 국가 정책을 가리킵니다.
3) 도미니쿠스. 이 수도회도 가난을 강조하였으나 가난 자체로는 역부족이라며, 그릇되게 가르치고 그릇되게 알고 있는 무지-무식이 문제라며,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무지와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교육 중심’의 수도회가 됐습니다(214).
4)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스 철학을 만나 ‘이성’의 도움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신학 체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리 근거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방법에서 찾았습니다. 어릴 때 들었듯이, 인과율에서 제1 원인이 있어야 하고, 움직임에서 제1 운동자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하나님이 그 원인이고 운동자라는 논리였습니다(223).
5) 단테. 통상 「신곡」(The Divine Comedy)만 알고 있었는데, 이에 앞서 교황권에 대한 제왕권을 옹호한 「군주론」(On Monarchy)을 쓰기도 했습니다. 가까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3. 중세의 경제, 종교 운동, 사회. 변화의 낌새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일종의 자원집단이라고 할까요, 길드 조직도 나타났고, 이른바 ‘이단’이라는 종교개혁 운동을 ‘예고하는 운동’도 있었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종교재판소도 설치되었습니다(214-222).
4. 개혁 신앙의 전통을 새김:
1) 연옥에 대하여. 단테의 작품을 논하는 데서 ‘연혹’이라는 말이 나옵니다(226). 개신교 전통에서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교리이기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교리는 ‘면죄부’를 판 교회의 부패와 타락과도 이어지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다루는 장에서 다시 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2) 성례에 대하여. 오늘날의 천주교는 역사를 거듭하면서 만들어진 ‘7성사(聖事)’(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병자성사, 성/신품성사)를 제도화했습니다. ‘혼인성사’는 12세기 중간에 만들어졌습니다(192). 혼인의 일을 교회가 관장할(205) 뿐만 아니라 이를 성사/성례의 하나로 넣었습니다. 이 ‘7성사’는 종교개혁을 통하여 정리되었습니다.
몇 해 전 ‘성경공부’ 시간에 칼빈의 「기독교 강요」(초판)(2014)[1536]를 함께 읽으면서 종교개혁의 신앙 전통을 다시 익힌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의 7성사’는 ‘말씀’에 어긋납니다(<제5장 거짓 성례> 볼 것). “주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 두 가지 외에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성례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윗글, 256).
교회/신학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편안함을 준다고 해서, 곧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의 기분과 요구와 느낌, 편리와 편의에 맞는다고 해서, ‘말씀’과는 동떨어진 주장을 교리로 만들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화체설’이 ‘연옥설’이 그렇고, 성례가 그러합니다. 오직 성경 말씀이 일러주는바 ‘주께서 정하신 것’만을 받아들일 뿐, 어떤 군더더기도 덧붙이지 못하고, 덧붙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이란 개혁 신앙의 전통을 지켜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