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제목이 「그대에게」
흔히 기대하는 사랑의 '그대'가 아니라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말. 김사이 「그대에게」 - 불안은 정말 무사한가요? 시인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두 종류의 얼굴을 세웁니다. 하나는 벨트를 타고 찍혀 나오는 얼굴, 다른 하나는 벨트 앞에서 똑같은 얼굴을 찍어내는 얼굴. 생산되는 사람과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노동자와 관리자, 지시받는 사람과 지시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둘이 결국 닮아 있다고 말합니다.
공장이 상품만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까지 대량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웃고, 말하고, 처신하는 인간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옛날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요즘청년등은 자유롭게 처신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기계를 움직이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기계의 질서가 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직장과 조직의 관계로 들어갑니다. 뒤에서는 서로를 씹으면서 앞에서는 웃습니다. 서로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관계를 유지합니다.
가면이 등장합니다. 가면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가면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선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의 가면을 인정해줍니다. 하나의 관계와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회사도 돌아가고 조직도 돌아가고 사람들도 웃습니다. 그래서 "불안은 무사하다고" 표현됩니다.
보통 '나는 무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사람이 아니라 불안이 무사하다고 합니다. 불안이 인간이 됩니다. 불안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은 살아 있습니다.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가면으로 덮어두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평온한데 속에서는 불안이 아주 건강하게 살아남습니다. 사람이 무사한 것이 아닙니다. 불안이 무사한 사회가 됩니다. 무사하니 불안님이 잘 계십니다.
현대 조직과 문명의 시가 됩니다. 산업사회는 물건을 표준화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까지 표준화했습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비슷한 성과를 요구받고, 적절하게 웃고, 적절하게 경쟁하고, 불편한 감정은 감추도록 합니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그것이 더욱 섬세해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얼굴을 만들어 보여주고, 다른 사람 역시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서로 '좋아요'를 누릅니다. 인공지능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정말 무사한가요. 우리의 불안만 무사하고 안녕하신 것이 아닌가요?
AI와 SNS의 시대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얼굴을 찍어내는 컨베이어 벨트는 더 거대해졌습니다. 마음생산성의 관점에서 보면 한 걸음 더 갈 수 있습니다. 가면으로 유지되는 협력과 신뢰로 이루어지는 협력은 생산성이 전혀 다릅니다.
겉으로 잘 돌아가는 조직이라고 해서 건강한 조직은 아닙니다.
불안을 감춘 채, 자기 얼굴을 감춘 채 작동하는 조직은 단기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지만, 마음의 생산능력을 조금씩 소진시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이직율이 늘어나는 것일 수 있어요. 특히 능력있는 청년부터 이직을 여러번 하니까요.
첫댓글 무슨 어떤 사연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까?
털어 놓고 머리짜 보는 건 어떤가요?
"사람들은 왜 가면을 쓰게 되었는가?"부터 파고들어야겠습니다. 원인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조직이 어떻게 사람에게 가면을 요구하게 되는가? 에서 시작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불안이 무사한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람들은 처음부터 가면을 쓰고 조직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갈 때는 대체로 자기 생각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더 잘해보고 싶고, 잘못된 것은 고쳐보고 싶고,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합니다. 특히 젊고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가진 생각과 능력을 일에서 시험해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조직생활을 하면서 모든 생각을 말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가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하고, 문제를 지적했다가 오히려 문제를 만든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상사의 잘못을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보다 적당히 맞장구치는 사람이 편하게 지내는 것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사람은 조직의 공식 규칙보다 더 중요한 보이지 않는 규칙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는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가?" 이것을 알아내는 순간부터 가면이 만들어 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