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남사는 가지산문의 종조인 도의선사(道義禪師)가 824년(현덕왕 16)에 처음 개창한 선찰로서 한국 최고의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공부가 엄하기로 유명한데, 금당(金堂)ㆍ심검당(尋劒堂)ㆍ정수원(正受院) 세 곳의 선방에서는 서릿발 같은 기상이 넘쳐난다. 정수원은 보통의 선방처럼 결제ㆍ해제를 지키지만, 결사(結社) 도량인 금당은 해제가 따로 없이 1년ㆍ3년씩 용맹 정진하는 수좌들만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심검당은 노스님들이 자유롭게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여, 석남사는 각자의 근기에 맞게 다양한 방식의 선원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근대 석남사의 중창주인 인홍(引弘) 스님은 오늘날의 석남사를 있게 한 장본인이자 비구니 승단의 귀감이 되는 이로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등 백장선사의 청규를 엄격히 확립한 바 있다. 따라서 밭갈고 논매는 일에서부터 불공과 대중공양, 법당청소, 도량정비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의 청정한 생활은 세계최대의 비구니 도량다운 실천과 모범을 보여준다.
석남사 안내석
석남사 일주문
석남사 입구
석남사 대웅전
석남사 대웅전내 석가모니불
석남사 대웅전내 지장탱
석남사 대웅전내 신중탱
석남사 조사전
석남사 구유
구유는 큰 나무토막이나 돌의 한쪽을 파내어 만든 그릇으로, 절에서 공양을 지을 때 쌀을 씻어 담아두거나 밥을 퍼 담아놓는 통을 말한다. 석남사 구유는 엄나무를 깎아 속을 파내어 만든 것으로 길이 630㎝, 폭 72㎝, 높이 62㎝의 대형이다.
현재 석남사 대웅전 뒤편에 보관되어 있으며, ‘간월사(肝月寺) 유(柚) 임○(壬○)’이라는 명문이 있어 원래 울주군 삼남면 등억리 간월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전에 의하면 약 500년 전 간월사가 폐사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하며, 이 구유에 밥을 담으면 약 1천여 명의 대중이 공양할 수 있다고 한다
석남사 조사전내 진영
석남사 극락전
석남사 요사
석남사 요사
석남사 요사
석남사 석가사리 삼층석탑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으로 창건주인 도의국사(道義國師)가 824년(헌덕왕 16)에 건립한 것이라 전한다. 원래 15층 큰 탑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탑신의 기단만 남아있던 것을 1973년 인홍(引弘) 스님이 삼층석탑으로 복원하였다. 현재 높이 11m, 기단부의 폭 4.57m로,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을 배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모습을 따르고 있다.
이중 기단에는 탱주와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옥개에 5개의 층급받침을 표현하였다. 특히 이중기단 중 상층기단의 탱주가 1개인 것은 통일신라 9세기 중반의 탑의 형식을 따르는 것으로, 이 탑이 석남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석탑 내부에는 스리랑카 사타시싸 스님이 기증한 부처님 진사리 3과 가운데 2과가 모셔져 있다.
석남사 종루
석남사 침계루
석남사 요사
석남사 대웅전앞
석남사 도의국사 부도
보물 제369호
석남사 동북쪽 언덕의 넓은 대지에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부도탑으로 높이 3.53m의 부도이다. 대웅전에서 50m 떨어진 부도전에 있으며, 통일신라 헌덕왕(憲德王) 때 사찰을 창건한 도의국사(道義國師)의 사리탑이라 전한다.
전체적인 모습은 8각의 형태를 취하며, 8각 바닥돌 위에 기단부와 탑신을 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말기의 부도이다. 양식으로 보아 신라말기(92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건립ㆍ중건 연대 등을 새긴 부도비가 없어 창건주인 도의국사의 부도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하대석(下臺石) 주위에는 사자와 구름무늬를 도드라지게 양각하고, 중대석(中臺石) 8각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고 그 안에 꽃모양의 띠(花文帶)를 둘렀다. 중대석은 북을 세로로 세워놓은 모습으로, 가운데 받침돌에는 상하좌우에서 안쪽을 향해 낮게 솟은 꽃모양의 안상(眼象)을 투각한 후 그 안에 꽃모양의 띠를 둘렀는데, 통일신라 부도의 장식문양적 특징을 계승하고 있다.
8각의 앙련 받침대 위에 놓인 탑신은 각 8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얇게 새기고, 앞ㆍ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그 중 앞면에만 자물쇠가 새겨져 있다. 문의 양 옆으로는 외호신장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배치되어 있어 문비와 함께 사리의 수호를 위해 장식된 문양임을 알 수 있다.
지붕돌인 옥개석(屋蓋石)은 목조건물의 팔작지붕을 연상시키듯 추녀가 짧고 서까래와 기왓골이 상세히 표현되어 있어, 10세기 초 목조건축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으며, 지붕 꼭대기에는 앙화(仰花)ㆍ보개(寶蓋)ㆍ보주(寶珠) 등 상륜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도괴되어 어느 때인가 복원되었으나, 석재의 위치가 바뀌어져 1962년 다시 복원하였다. 전체적으로 넓이에 비해 높이가 큰 세장한 모습으로, 안정감을 떨어지나 받침돌의 구름무늬나 탑신의 사천왕상, 중대석의 안상 등 뛰어난 조각과 양식미를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남사 도의국사 부도
석남사 전경
석남사 수조
문화재자료 제4호
화강암으로 만든 석조,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길이 2.7m, 높이 0.9m, 너비 1m, 두께 14cm의 대형으로, 절에서 사용되는 수조가 일반적으로 직사각형인 데 비해, 이 수조는 모서리의 안과 밖을 둥글게 다듬어 아름다운 형태미를 보여준다.
사면의 모서리에는 연꽃봉우리 문양을 시문하고 있어, 석조의 외형과 더불어 천년 전 신라 장인의 석조기법과 미감을 엿볼 수 있다.
석남사 청운교
석남사 침계루
석남사 찾아가는 길
석남사를 찾는 가장 빠른 길은 경부고속도로 언양나들목에서 서울산 IC로 들어오는 길이다. 이곳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밀양방면으로 11Km 진입하면 얼음골 못미처 가지산 초입에 석남사 안내판과 함께 가지산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부산에서는 경부고속도로 서울산 IC에서 언양으로 진입하는 방법과 언양간 328번 국도를 따라 찾아오는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