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립미술관의 ‘열정의 시대 ? 피카소부터 천경자까지’를 보기 위해 가족 단위의 소규모 관람객들, 그리고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이 미술관을 방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화풍인 입체파(큐비즘) 작품이 전시된 제4전시실은 피카소 작품 이외에도 페르낭 레제의 100호 상당의 유화 작품 ‘곡예사와 음악가들(114.5.4×146.5㎝, 캔버스에 유채, 1945, 베네수엘라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 전북 최초로 전시,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곡예사와 음악가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기계들이 서로 닮아있으며, 형태와 색채의 ‘대비의 강렬함’이 느껴지는 레제의 대표작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7명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남성 3명과 곡예사 4명(남성 1명 및 여성 3명)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나 무표정에 가깝다.
차가운 이미지 속에서도 근현대 도시를 특정 짓는 기계미학이 담겨져 있다. 딱딱하면서도 직선적으로 표현된 인물상과 구조물에서는 기계적인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의 평면적인 구성, 두껍고 검은 윤곽선이 돋보이는 ‘곡예사와 음악가들’ 작품은 기계적인 아름다움에 주목한 새로운 튜비즘 양식의 진면목을 느끼게 해준다.
페르낭 레제(1881~1955)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목축업자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성격은 근면하고 끈기가 있었으며, 세심한 관찰자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기계적인 아름다움에 주목한 당시의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양식을 고안해 낸 화가로 유명하다.
레제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던 시기는 1910년 이후부터다. 들로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파리의 지붕들’(1912, 페르낭 레제 국립미술관, 비오)을 비롯,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작품을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발표한다. 레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산업사회뿐만 아니라, 대포와 비행기, 포탄과 같은 전쟁무기들에 매료된 작품 ‘원반들’(1918, 파리), ‘공장에서’(1918,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 뉴욕) 등을 선보인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피난을 떠난 레제는 마르세유 항구에서 물놀이 하던 항만 인부들(‘노란 배경 앞의 잠수부’, 1941~1942, 뉴욕), 뉴욕의 밤풍경(‘춤’, 1942), 풍경화, 사이클 경기의 모습을 담은 연작(‘그랑드 쥘리’, 1945, 뉴욕) 등을 화폭에 담았다.
‘시골 파티(1953년)’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노동자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산업사회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고를 작품에 직접 녹여낸 레제는 현대 도시를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 그 자체를 작가 고유의 조형 언어로 재탄생시켰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