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2000.10.7 ~ 10.8
10.7(토):12:45(대성교)-13:30(대성마을)-14:10(공비토벌최후격전지)-14:20(작은세개골)-14:50(큰세개골)-15:30(지능선)-16:20(남부능삼거리)-16:40(음양수)-16:55(세석갈림길)-17:00(세석산장):4시간 15분 소요.
10.8(일):08:00(세석산장)-08:15(음양수)-08:45(남부능삼거리)-09:50(한벗샘)-11:00(삼신봉)-11:30(내삼신봉)-12:45(상불재)-13:45(불일폭포)-14:30(환학대)-14:45(쌍계사)-중식-16:25(의신행버스)-16:45(대성교):6시간 45분 소요
가슴이 설랜다. 나의 애마는 경치 좋은 섬진강 압록을 지난다. 구례에 들어오니 저 멀리 노고단과 왕시루봉이 반긴다. 임진왜란때 왜병과 싸우다 숨진 석주관 칠의사묘를 지나 화개장터를 거쳐 의신마을로 올라간다. 이 화개동천은 내원골, 선유동골, 단천골, 목통골, 대성골, 빗점골이 토약질한 물을 모아 섬진강으로 흘려 내려 보낸다. 따라서 물이 많이 흐르는 여름철에는 이곳이 당연 북새통을 이룬다. 점심을 먹으려고 의신마을에 올라갔지만 비수기때라 식당문을 오픈한 곳이 없다. 할 수 없다. 그냥 오를 수 밖에..이윽고 의신마을에서 다시 대성교로 내려와 적당한 공간에 차량을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한다.
대성골 입구 등산 이정표에는 의신2km, 공비토벌 최대격전지3.7km, 세석8.4km라 씌어져 있다. 역시 세석산장까지의 거리가 역시 만만치 않다. 초반부터 가파른 산언덕을 헉헉대며 차고 오른다. 의신에서 출발하면 다소 힘이 덜 들지마는 주차하기가 편리해 이곳 대성교 여기서부터 오르는 것이다. 십여분도 걷지 않아 구슬땀을 등허리골로 사정없이 주르르 흘린다.
사십여분 정신없이 오르다 보니 대성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이라야 고작 2채..몇일전 치악산 비로봉 산행때 물고생 기억에 여기서 2개의 수통에 물을 빵빵히 가득 욕심껏 채우고, 복숭아 한 개로 점심을 대신한다. 아! 꿀 맛..산행에서는 비상식으로 복숭아만큼 더 좋은 것이 없다. 다시 또 배낭을 질머지고 사십여분 오르니 한국전쟁 당시 최대 공비토벌격전지가 나온다.
죽음의 골, 대성골..1952년 겨울. 각 비트에서 모인 빨치산들이 국군 토벌대에 의해서 무차별 총격을 받고 대부분 숨진 곳.(참조:이병주 지리산, 이태 남부군, 정순덕 실록 정순덕, 백선엽 실록 지리산) 지리산 계곡중 칠선계곡 다음으로 깊은 협곡인데다 지세가 험난해 국군들의 접근을 피해 빨치산들이 도피하기엔 안성맞춤이어서 궁지에 몰린 빨치산이 이곳으로 숨었고 때마침 토벌대 백선엽 야전사령부의 작전에 걸렸다는 후문이다. 이곳에서 겨우 살아남은 정순덕. 최후의 빨치산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아픈 민족상잔의 비극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성골의 흐르는 물소리는 오늘 이시간 무심하기까지 한다.
조금 더 오르니 작은세개골이 나온다. 우측으로 나 있는 철다리를 건넌다. 아직도 세석산장까지는 멀리 5km가 남은 듯하다. 작은 세개골은 아담하다. 경치도 그만이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흔적이 없다. 계곡 상류를 바라보다가 조금 더 올라가니 큰세개골을 만난다. 주능 칠선봉과 영신봉에서 발원하는 계곡이다. 이곳으로 오르면 대성폭포를 지나 지리산 최대 기도처 전설의 영신대를 오르게 된다. 큰세개골을 좌측으로 흘려 버리고 우측 능선을 향하여 길은 이어지는데 이곳서부터 드디어 급격한 된비알 오름길로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해 발길이 무겁다. 하지만 조금만 더 오르면 푸른 하늘이 보이며 영신봉에서 삼신봉으로 뻗어내린 멋진 남부능선을 만날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한다. 이놈의 배낭.. 줄이려고 줄였는데도 비상시를 대비한 터라 55리터의 배낭 무게가 물먹은 솜처럼 지친 지금의 나에겐 십자가를 걸머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는 예수처럼 힘겨웁다. 지능을 계속 따라 올라가니 남부능 3거리를 만난다. 위로 오르면 세석산장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유명한 남부능선으로 삼신봉을 거쳐 청학동으로 쌍계사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아! 아름다워라 반야봉이여..지리산 어디서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반야봉. 바라볼 때마다 아름다운 여인의 젖가슴과 둔부를 보는 듯한 황홀한 반야봉. 그래서 많은 뭇사내들이 반야봉을 짝사랑하고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고지대인 이곳은 생각했던 만큼 아직은 단풍은 들지 않았다. 곳곳엔 아름답게 핀 곳도 있다. 지리산맥이 겹겹이 모습을 나타낸 연봉들을 보며 걷다보니 음양수에 도착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마시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의 음양수. 물 한사발로 뻑뻑한 목을 적신다. 이젠 세석까지 다왔다. 여유있게 콧노래를 부르며 오르니 거림골로 내려가는 세석갈림 길이 나온다.
여기에 오니 벌써부터 영신봉 아래 아늑히 자리잡은 세석산장이 시끌벅적하다. 토요일 오후라 상당히 세석이 붐빌 것이다. 드디어 세석산장에 도착. 여장을 풀고 관리소에 숙박 후보자 명단을 올린다. 빈자리를 찾아 간단히 홀로 식사를 한다. 세석에도 어둠은 찾아온다. 아름다와라 저녁 노을이여.. 아름다와라 별과 달빛이여.. 갑자기 진한 감동에 눈물이 왈칵 쏟아 질 것만 같다. 오늘도 세석산장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가는구나!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천왕봉을 향하는 산님들의 시끄러운 산행 준비를 하느라 이곳저곳에서 짐을 꾸리는 몸놀림에 잠을 깬다.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다. 삼대에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지리산 10경의 천왕봉 일출. 그들의 부지런한 몸놀림을 귓가에 흘리며 깬 잠에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있다. 오전 6시가 되어서야 산장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한다.
나는 세석이 좋다. 촛대봉, 시루봉, 영신봉 사이의 그 광할한 펑퍼짐한 산자락을 소유하고 있어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다. 이제 나도 하산 준비를 해야지. 남부능선을 따라 삼신봉까지 10km, 삼신봉에서 쌍계사까지 10km 총 20km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강행군의 하산 길이 있지 않은가. 하늘을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마치 미운 며느리를 향하여 인상 쓴 시어머니의 얼굴처럼 찌뿌둥하다. 많은 비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아침준비를 한다. 혼자 산행을 하면 먹는 것이 정말 귀찮다. <3분짜장>에 <햇반>을 데워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다. 이것이라도 먹어야지 걸어 내려갈 힘이 생길 것 아닌가. 청승맞은 모습이 남들에게 비쳐질까 조심스럽다.
이젠 하산이다. 수통의 물은 음양수에 가서 채울 생각으로 길을 떠난다. 한 솔로는 갈림길에서 거림골로 발길을 내딛는다. 음양수에 이르니 한 마음씨 좋은 중년의 부산 산님을 만난다. 하행 길이 어디냐 물으니 삼신봉 아래 청학동이라 한다. 삼신봉까지 3시간 동안은 동행을 할 수가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같이 말 동무가 되어 길을 떠난다. 어제 올랐던 삼거리 갈림 길을 지난다. 어제 대성골의 등정코스도 상당히 길고 까다로 왔다. 지난번 칠선계곡으로 천왕봉을 오를 때의 힘이 들어간 것 같이 파김치가 되었지 않은가.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촛대봉이 바로 뒤에 서있다. 뛰어받자 부처님 손바닥인 것처럼..지리산은 광활하다. 좌측 아래로 거림골이 바로 눈앞의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온다. 천왕봉 바로 밑의 통천문보다 훨씬 더 잘생기고 멋진 또 하나의 통천문을 지난다. 이름하여 돌문바위 석문(石門)이다. 하늘에선 이윽고 빗방울이 날린다.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기 시작한다.
부산 산님과 함께 배낭 커버를 하고, 고어 자켓으로 무장을 한다. 내 키보다 훨씬 웃자란 산죽(山竹)을 헤치고 나가느라 금새 온몸이 다 젖는다. 속내의까지 다 젖었다. 10시가 되어 한벗샘을 지난다. 이 한벗샘은 박단샘이라고도 하는데 지도상에도 잘 나오지 않은 남부 능선상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샘이다. 이곳에서 좌틀하면 거림골 상류인 자빠진골로 우틀하면 대성골 지류인 수곡골로 빠지게 된다.
한참을 내리고 오르니 드디어 삼신봉에 도착한다. 청학동에서 올라온 노년의 산님들이 지리산행을 하다 숨진 동료의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삼신봉엔 운무가 끼어 평상시엔 지리산 주능을 한눈에 볼 수 있으련만 안개비에 볼 수가 없다. 그저 아쉬운 마음뿐이다.
여기서 부산 산님과 이별을 한다. 헤어지면서 안전산행을 바라며 명함을 건넨다. 부산00은행 엄xx과장. 언제 다시 산행에서 만납시다.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헤어진다. (후에 나의 지리산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대화를 나눔) 다시 또 홀로 산행이다. 나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내삼신봉을 거쳐 불일폭포, 쌍계사까지 가려면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서둘러 하산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며 옷깃을 날린다. 아! 춥다..배고프다.
옛날 빨치산들도 그랬다 했지. 춥고, 배고프고, 졸리웁고.. 마지막으로 남은 복숭아 한 개로 허겁지겁 요기를 한다. 비는 계속 내린다. 하지만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지리산의 품에 있으니. 사십여분을 더 내려가니 상불재. 이제부터 내려가면 불일폭포가 있는 내원골이 나올 것이다. 힘이 솟는다. 하지만 아직도 깊은 산중이다. 험난한 길을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내려가다 보니 어슴프레 옛날 빨치산의 비트가 있었던 곳도 대략 추측이 가능해진다. 1시간 가량을 더 내려가니 불일폭포이다. 아! 아름다워라 불일폭포여.. 언제 보아도 힘찬 물줄기여.. 폭포가의 단풍잎들이 바람에 날려 눈처럼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배고픈 발길이 나를 불일폭포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게 한다.
최치원이 학을 타고 놀았다는 환학대를 지난다. 혹시 여기가 무릉도원이어서 최치원이 신선이 된 것은 아닐까. 이젠 쌍계사다. 삼신산 쌍계사. 휴일이라 많은 사람들로 쌍계사가 붐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땀에 비에 완전이 젖었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쌍계사 입구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맛있는 산채 덮밥과 동동주 한병을 게눈 감추듯 비운다. 식사를 하니 3시30분. 의신마을로 올라가는 버스는 4시25분에 있다. 젖은 몸에 추위가 엄습해온다. 이렇게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다니..추위에 떨다가 의신행 버스를 타고 대성교까지 올라간다. 차를 타면 십분거리이지만, 쌍계사에서 의신마을까지는 10km가 넘는다. 아! 반가와라 . 나의 애마여.. 주인을 기다리며 홀로 밤을 지새웠던 애마가 너무나 반가울 뿐이다.
첫댓글 아~우 애즈산님 젊어서 한때모습 멋짐
한참 지리산을 누비고 다닐때가 좋았죠
산행후기도 하나의 책처럼 쓰셔서 쓰는
것도 일 이었겠습니다 참고삼아 한번씩
읽어 보겠습니다 지리산은 영원히다 ‥
읽을수록 구석구석 지리산 산행기 기대 되네요.
드문드문 대충 읽어도 지리산 향기가 물씬느껴집니다.
그리운 지리산 같이 가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