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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호 『우리 詩』에 실린 <영시해설> 네 번째 작품은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런던」“London”입니다. 조금 길지만 찬찬히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London”
William Blake (1757~1827)
오늘 소개할 작품은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런던」“London”입니다. 제가 낭만주의 시를 소개할 기회가 있을 때 꼭 소개하는 시입니다. 시/시인의 사회참여라는 측면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의 절정기인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영국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도 하지요. 블레이크도 아주 흥미로운 시인입니다. 시를 읽기 전에 블레이크와 관련된 몇 가지를 말씀드리는 것이 이 시를 보다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시기인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영국은 아시는 것처럼 산업혁명의 절정기를 지나며 자유방임의 원칙에 기반한 자유주의가 만개하고 있었습니다. 경제는 발전하고 있었지만 그늘은 그만큼 깊었습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소수의 부유한 이들과 말할 수 없는 빈곤과 비참한 노동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일반 대중들, 특히 노동자들의 간극은 더욱 벌어져만 갔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멀리 대서양 건너 식민지 미국을 잃고, 바로 이웃 프랑스에서 벌어진 혁명의 분위기는 언제라도 영국을 휩쓸 기세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억압과 금지의 족쇄가 더욱 강고해졌고, 종교도 제 역할을 못하고 구빈원과 고아원과 거리에 넘쳐나는 어린아이들의 노동을 이용한 돈벌이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블레이크는 영국사회의 이 모든 타락의 양상들에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당대의 전반적인 상황과 지배적인 사상을 강력하게 비판, 반대하며 혁명적이라 할 새로운 사고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치적 탄압을 비판했고, 종교적 타락을 비난했으며, 경제적 불평등을 끊임없이 고발했습니다. 당시 지배계층이 선善이라 주장하는 복종, 만족, 기존질서의 유지야말로 악惡이며, 그들이 악이라고 부르는 혁명, 모든 속박에 대한 반대, 나아가 새로운 체계의 창조야말로 선善이라는 것이 블레이크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자유연애, 결혼과 이혼의 자유, 무정부주의를 주장, 옹호했으며,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고 육체의 열정을 죄악시 하는 교리에 정면으로 반대했습니다. “인간은 열정을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든 열정들이 분출하는 현실적인 지성을 통해 천국의 보물을 얻을 수 있다.”고 외치며, 영혼과 이성을 강조하고 육체를 악으로 보는 교리는 오류며, 육체는 오감을 통해 세상과 접하는 영혼의 일부이자 영혼의 확장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직접 신을 보았다거나 천사들이 가득 앉은 나무를 보았다는 등의 신비주의적 경향도 보였습니다.
이처럼 당시 정치적 지배계층과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용납하기 어려운 두렵고도 혁명적인 내용들을 거침없이 써낸 그는 정부로부터는 가택연금과 시집의 출판금지 명령을 받았고, 일부 사람들에게 ‘미치광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따져보면 어느 시대나 앞선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이해받지 못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진리는 늦게 드러나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오늘날 그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제 시를 살펴보겠습니다.
「런던」은 그의 시집 『경험의 노래』Songs of Experience에 실린 시로, 당대 런던의 타락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잠깐, 『경험의 노래』가 있으니 짝을 이루는 다른 노래도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순수의 노래』Songs of Innocence가 있습니다. 『순수의 노래』는 사랑, 유년기, 그리고 자연 등 밝은 면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블레이크는 순수와 경험, 두 요소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완전함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순수는 무지와 닿아있고, 경험은 악과 닿아있어서 순수는 경험을 거쳐 ‘더 고차원적인 순수’Higher Innocence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까닭에 두 시집에는 같은 제목의 다른 내용—밝은 순수와 어두운 경험—을 담은 시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만, 「런던」은 『경험의 노래』에만 실려 있을 뿐 『순수의 노래』에는 짝시가 없습니다. 런던은 순수한 면이 없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일까요?
우선 1연부터 보겠습니다.
I wander thro’ each charter’d street,
Near where the charter’d Thames does flow,
And mark in every face I meet
Marks of weakness, marks of woe.
나는 독점된 템즈강이 흐르는 근처,
독점된 거리를 헤맨다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나약하고 비통한 표정을 목격한다네.
런던 거리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시인이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나약하고 비통합니다. 까닭은 1,2행에 연이어 등장한 ‘독점된’charter’d이란 단어가 설명해줍니다. 자유방임 정책 하에 산업혁명의 절정기로 치닫던 영국 런던. 빈익빈 부익부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브레이크 없는 사유재산의 확대는 급기야 소수에 의해 공적 영역까지 사유화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누구나 마음 놓고 다녀야 할 ‘거리’와 ‘템즈강’까지 소수의 이들에게 ‘독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시인의 지적은 경제적 불평등이 얼마나 극심한 상황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실, 블레이크는 처음에 이 단어 대신 ‘dirty’라고 썼다가 나중에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강력한 단어가 필요할 정도의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이 같은 경제적 불평등과 독점 상황이라면 시인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허약함과 비통함이 이해됩니다.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톰슨E. P. Thompson의 역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는 당시 노동계급의 비참한 상황을 언급하는 예들이 실려 있는데 다음은 그 중 한 노동자의 수기입니다.
“보통 5시에 일어나 9시경까지 일거리를 찾아 여러 작업장과 건축공사장을 전전하면서 걸어다녔다. 우리는 그때 1페니짜리 빵을 사서 둘로 나누었다. 그런 다음 오후 4시나 5시까지 걸어다녔고, 일이 끝나면 다시 빵 한 덩어리를 사서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는 아픈 발과 배고픔을 안고 아주 일찍 잠자리로 기어들었다.” (E. P. 톰슨, 『영국 노동계습의 형성』(상, 나종일 외 옮김, 창작과비평사, 367에서 인용.)
1연에서 시인 블레이크가 런던을 걸으며 만났던 이가 바로 저 도시노동자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In every cry of every Man,
In every Infant’s cry of fear,
In every voice, in every ban,
The mind-forg’d manacles I hear:
모든 사람들의 모든 외침에서.
모든 아이들의 두려움 가득한 비명 속에서,
모든 목소리에서, 모든 금지 속에서,
마음이 빚은 족쇄 소리를 듣는다.
2연은 ‘every’와 ‘cry’의 반복이 두드러집니다. 시인의 눈과 귀에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들립니다. 아이, 어른 없습니다. 모두 ‘두려움’으로, '금지와 억압'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온 사방에서 그 비명이 들리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비명과 외침에는 한결같이 ‘금지’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습니다. 왜 일까요?
이미 사람들은 영국의 식민지 미국이 독립하는 것을 보았고(1776) 바로 이웃에서 벌어진 프랑스 혁명(1789)으로 왕정이 철폐되고 왕은 단두대로 끌려가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혁명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이지요. 영국 내에서도 반국교도 운동(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에 반하는 운동)을 포함하여 지방 소작농들의 반란, 종교적 폭동, 그리고 기계화로인한 실직 사태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소요와 폭동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습니다.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거나 처형당한 고든 폭동(1780년 런던에서 조지 고든 경이 개신교도 협회를 이끌고 ‘가톨릭 구제법 폐지’ 운동을 벌이면서 6월 2일부터 1주일간 가톨릭 교도들의 재산과 공공건물을 공격한 사건), 최저임금제를 요구한 직조공들의 시위와 파업, 그리고 조금 후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방직기와 방적기 도입으로 발생한 노동자들의 대량 실직에 저항하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1811년 방직기가 등장하면서 실직하게 된 노동자들이 방직기를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저항운동.--도 있었지요. 특히 “부자들에 대한 빈자들의 근본적 갈등을 명백하게 표현하는 사회적 저항운동의 양상을 띤 런던의 폭도들”은 한때 권력의 통제권에서 벗어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들이 되기도 했을 정도였답니다(톰슨,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99에서 인용). 정부는 이에 대해 경찰부(Ministry of Police) 설치, (노동자들의) 단결금지법(1799) 등을 통해 엄격한 억압 정책을 취하고 있었으며, 시위와 집회에 대한 무력 진압도 불사했지요.
그 가운데 ‘피털루 대학살’Peterloo Massacre이라 불리는 사건은 정부와 시위대 간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819년 의회개혁을 요구하며 시위에 참가한 여자와 아이들이 포함된 6만 명 정도의 시위대를 기병대들이 진압하면서 11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부상당한 이 사건은 당시 영국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워즈워스를 포함한 많은 시인이 이 사건을 시로 담아 기록하고 있지요.
2연에서 블레이크가 묘사한 상황은 바로 이와 같은 사회적 억압과 갈등 상황에 대한 시인의 시선입니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하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였던 것입니다. ‘마음이 빚은 족쇄’The mind-forg'd manacles! 정말 놀라운 표현 아닌가요?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줄 만큼 개인들에게 공포스럽고 두려운 의식적, 무의식적 억압이 존재할 때 사람들은 말을 하기도 전에 스스로 조심을 하게 되지요. 그 마음이 빚은 족쇄가 우리의 행동은 물론 의식까지도 내려 누를 때, 사회는 침묵하고 개인은 비굴해지고요. 억압의 폭정은 대체로 이런 비극적 상황을 가져오는 것임을 우리도 역사를 통해 보아 왔지요. 2연에서 블레이크는 바로 그런 런던의 정치적 혼동과 억압의 상황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연은 2연의 끝에 있는 “I hear”에 이어집니다. 즉, 2연의 “I hear”가 2연과 3연 전체의 주어-동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2연의 마지막에 배치한 것이고요.
How the Chimney-sweeper’s cry
Every blackening Church appalls,
And the hapless Soldier’s sigh
Runs in blood down Palace walls.
어찌 굴뚝 청소부의 비명소리가
타락해 가는 교회들을 겁주고,
불행한 병사들의 탄식이
피가 되어 궁정의 벽을 따라 흐르는가를.
3연의 ‘굴뚝청소부’와 ‘타락한 교회’ 그리고 ‘불행한 병사들’과 ‘궁정’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굴뚝청소부’는 말 그대로 굴뚝을 청소하는 일꾼이었습니다.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상징인 굴뚝들이 빼곡한 공장의 이미지는 익숙하실 겁니다. 어디 공장만인가요. 집집마다 굴뚝이 없는 집이 없었겠지요. 모든 굴뚝은 한 번씩 청소를 해주어야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검댕이 막혀 연기가 안으로 밀려들어 오지요. 굴뚝청소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높은 굴뚝 꼭대기에 고정시킨 밧줄을 몸에 묶고 망태기를 매고 굴뚝 안으로 들어가 안에 묻은 검댕을 긁어내려오는 일, 굴뚝청소부가 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줄이 끊어져 추락하거나 더러 질식하고 때로는 미처 다 식지 않은 굴뚝 안의 열기에 화상을 입기도 하는 위험한 작업이었지요.
어른들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입구가 좁은 굴뚝은 체구가 작은 어린아이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니 굴뚝청소부는 아이들이 많이 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더 위험한 일이었겠어요? 그런 까닭에 1840년에 이르러 21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굴뚝에 올려 보내는 일은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지요. 하지만 아이들의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에 비해 위반에 대한 벌금이 워낙 가벼워 어기는 이들이 많다보니 큰 효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아이들의 일거리가 사라진 것에 대한 반발로 이 법조차 위법이라며 철폐해달라는 청원도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 굴뚝청소부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굴뚝 청소를 하는 아이들을 교회에서 운영하는 구빈원이나 고아원에서 많이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상황은 급격한 인구증가와 ‘인클로져 운동’Enclosure Movement--공영 소농지와 일부 농경지를 목장으로 전환하는 정책과 운동—의 결과로 인한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 집에서 보살필 수 없는 아동들의 증가와 연관이 있습니다.
산업혁명기의 영국은 엄청난 인구 증가를 경험하게 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1801년 1050만 명에서 1841년 1810만 명으로 40년 사이에 70%가 넘는 760만 명이나 증가하는데 그 가운데 1811년에서 1821년 사이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고 합니다(톰슨,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276). 그 대다수의 인구가 대도시, 특히 런던으로 몰려듭니다. 특히 대도시 런던으로의 급격한 인구 유입은 인클로져 운동의 영향도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15-6세기, 18-9세기 두 번에 걸친 대규모의 ‘인클로져 운동’이 있었지요. 농경지를 목축업을 위한 농장으로 개간하고 지대가치를 높이겠다고 시작된 운동이지만 실제로는 인클로져로 인해 소규모 자영농이나 소작인들이 삶의 터전인 땅을 잃고 도시로 밀려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이들이 바로 산업혁명의 형성 요소 가운데 하나인 ‘저임금의 도시 노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역사는 그렇게 굴러가지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도시 가정의 인구급증이라는 결과를 낳고, 넘쳐 난 인구와 빈곤의 문제가 겹쳐 가정에서 부양이 힘든 과잉 인구가 된 어린아이들의 가출과 유기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정도가 되지요. 심지어 아이들을 양육할 형편이 안 되는 부모가 아이들을 팔기도 했다고 하지요. 『올리버 트위스트』를 포함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과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이런 아이들의 모습이 담기기도 했지요. 이런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부가 구호기관을 통해 수용, 보호하거나 교회 등의 자선기관에 위탁하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아이들은 길거리를 배회하며 구걸과 절도 등 범죄에 노출되기도 하지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구빈원에 있게 되었는지는 수치가 보여줍니다. 구빈원에 의존하는 빈민의 수는 1803년 26만 명에서 1867년 69만 명 이상이 되었다고 합니다(줄리아 프레빗 브라운, 『19세기 영국소설과 사회』, 박오복, 이경순 역, 열음사, 1990, 52).
국가에서 다 보살피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탁받아 맡았던 구빈원들은 대부분 교회가 운영하고 있었지요. 이들은 아이들을 맡으면서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또 위탁받은 아이들을 노동 현장에 보내 일을 하게 함으로써 수입도 올리고 있었는데, 바로 이 아이들이 많이 했던 일이 굴뚝청소였던 것이지요. 일 년 내내 그런 힘든 노동을 하는 아이들은 일 년에 몇 차례 종교 축일 같은 날에 자기 교구를 상징하는 깨끗한 복장을 입고 런던시내를 행진했는데, 교회가 위탁받은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있음을 과시하는 허례였지요. 이런 광경 또한 블레이크의 다른 시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굴뚝청소를 하다가 부상을 입거나 혹은 떨어져 혹은 질식하여 숨을 거두는 아이들의 비명은 곧 아이들을 그런 열악한 노동 현장에 보낸 타락한 교회에게 ‘오싹한’ 두려움을 안겨주는 것이겠지요. 양심이 있다면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인 블레이크는 ‘굴뚝청소부 아이들’의 비명과 ‘타락한 교회’를 연결시키며 종교적인 타락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줄의 시행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 놀랍지 않나요? 그러나 저는 이 시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 시를 읽으며 이 두 행에 담긴 저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그것이 이 시를 제대로 읽는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는 시인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한 시어와 형식에 주목하면서 시를 읽는 독자의 감정과 정서를 그 시에 투영하여 감상하고 읽으면 되지만, 어떤 시는 이처럼 한 줄의 시행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사회와 역사, 또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쓰인 시들이니까요.
3-4행의 ‘불행한 병사들’ 또한 그 시기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로 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상징적 권력의 주체일 뿐 국가의 운영은 의회에서 하게 되면서, 수상을 중심으로 한 의회 내각의 권력이 강화되었습니다. 권력 장악을 위한 치열한 투쟁과 암투가 생겨난 것도 필연의 결과였고, 그 과정에서 군인들이 정쟁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위를 하는 국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된 병사들은 왕과 의회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어 자신이 지켜야만 하는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했지요. 시인은 바로 이런 상황을 3,4행에 담고자 했습니다.
잠깐 영어로 된 3연을 찬찬히 봐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눈에 띄는 점이 보이실까요? 혹시 보이지 않는다면 가만히 한 번 더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3연의 네 단어 How, Every, And, 그리고 Runs의 첫 글자를 세로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 첫 글자들은 ‘HEAR’입니다. 블레이크는 지금 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들으라’고, 자신의 절박한 외침을 들으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시인은 혹은 시는 이런 놀라운 면을 보이기도 합니다. 말로, 글로 된 것이니까요. 이런 시를 만나게 되면 어떤 시건 더 자세히, 더 애정어린 눈으로 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지요?
마지막 4연입니다.
But most thro’ midnight streets I hear
How the youthful Harlot's curse
Blasts the new-born Infant’s tear,
And blights with plagues the Marriage hearse.
하지만 가장 끔찍한 소리는 한밤의 거리에서 듣는다.
젊은 창녀의 저주가 어찌
갓난아이의 눈물을 마르게 하고,
역병으로 결혼식 영구차를 시들게 하는지를.
시인이 가장 가슴 아프게 듣는 소리는 한밤에 들리는 소리, ‘어린 창녀들’의 저주와 비명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소설을 영화로 만든 『레미제라블』에서 생생하게 그려진 장면이기도 합니다만 거리로 내몰린 여자아이들은 영화 속 판틴처럼 거리의 여인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을 터이니까요. 그러다 보면 갖가지 성병에 노출되기도 할 것이며, 그러다 혹여 아기라도 갖고 낳게 된다면 성병을 유전으로 물려받은 그 아기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태어날 것이지요. 게다가 병에 걸린 소녀가 혹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상대방 남자에게 병이 옮을 터이니 그 남자에게는 결혼식 마차를 타는 것이 곧 ‘죽음의 영구차’를 타는 일이 될 수도 있지요. 비극입니다.
블레이크는 특히 아이들을 사랑했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그의 『순수의 노래』에서 순수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는 예수와 신을 은유하기도 하지요. 스스로의 삶과 존재를 책임질 수 없는 어리고 나약하며 순수한 아이들이 가정과 사회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거리로 쫓겨나 끔찍한 생활 속에서 가슴 아픈 희생을 당하는 것이야말로 블레이크에게는 가장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런던의 끔찍한 문화적 도덕적 타락의 징표였던 것이지요. 앞에서 경제, 정치, 종교적 타락에 더해 이제 도덕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을 보이는 런던, 나아가 영국 전체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곳임을 블레이크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결혼의 영구차’the Marriage hearse라는 절창이 유난히 통렬하게 들립니다.
「런던」을 읽으면서 다른 어느 때보다 시 바깥의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는, 그리고 어떤 시들은 그렇게 읽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레이크는 이 시를 통해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를 지나던 영국의 화려함보다는 그 화려함과 성장이 드리운 어두운 면을 보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런던은, 나아가 영국은 온전한 면이 없어 보입니다. 온통 억압과 금지와 고통과 타락이 가득합니다.
산업혁명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빛나는 런던, 영국과 억압과 타락과 금지가 만연한 런던, 영국. 과연 어떤 모습이 진실일까요? 둘 모두 거짓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시인은 전자를, 어떤 시인은 후자를 보는 것일 뿐이지요. 블레이크는 후자를 보는 시인이고요.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전자의 시인을 읽는가 후자의 시인을 읽는가, 혹은 둘 모두를 읽을 수 있는가. 분명한 것은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당시 런던이, 영국이 화려하게 빛나기만 한 시대라고 평가할 수 없는 또 다른 면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꼼꼼하게 되새기며 보는 것이 때로 중요한 까닭도 거기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인 블레이크가 말하는 바탕을 곡해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해하더라도 부분적인 이해에 그칠 수 있으니까요.
한 가지 더.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낭만주의 시’에 대해 가끔 제기되는 오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전의 영시해설에서 본 윌리엄 워즈워스를 비롯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이 프랑스 혁명의 영향 속에서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 시각에서 출발했지만, 각각 자신만의 영역—자연(워즈워스), 관습에 대한 끝없는 저항(바이런-G. G. Byron), 초자연적 세계(콜리지-S. T. Coleridge), 그리고 영원한 아름다움(키츠-J. Keats)--에 몰두함으로써 자칫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놓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그런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블레이크를 통해 우리는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이 시대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어떻게 개입할 수 있었는지를 또렷하게 확인합니다. 시대의 어둠과 부조리를 정확하게 보고 진단하며, 잘못된 사고에 대하여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일, 시인의 몫이라는 것을 블레이크는 실행하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시대에 이르러 ‘두 개의 나라’two nations라고 부르게 될 정도까지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해진 영국의 어두운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준 시, 윌리엄 블레이크의 「런던」입니다.
London
William Blake
I wander thro’ each charter’d street,
Near where the charter’d Thames does flow,
And mark in every face I meet
Marks of weakness, marks of woe.
In every cry of every Man,
In every Infant’s cry of fear,
In every voice, in every ban,
The mind-forg’d manacles I hear:
How the Chimney-sweeper's cry
Every blackening Church appalls,
And the hapless Soldier’s sigh
Runs in blood down Palace walls.
But most thro’ midnight streets I hear
How the youthful Harlot’s curse
Blasts the new-born Infant’s tear,
And blights with plagues the Marriage hearse.
나는 독점된 템즈강이 흐르는 근처,
독점된 거리를 헤맨다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나약하고 비통한 표정을 목격한다네.
모든 사람들의 모든 외침에서.
모든 아이들의 두려움 가득한 비명 속에서,
모든 목소리에서, 모든 금지 속에서,
마음이 빚은 족쇄 소리를 듣는다.
어찌 굴뚝 청소부의 비명소리가
타락해 가는 교회들을 겁주고,
불행한 병사들의 탄식이
피가 되어 궁정의 벽을 따라 흐르는가를.
하지만 가장 끔찍한 소리는 한밤의 거리에서 듣는다.
젊은 창녀의 저주가 어찌
갓난아이의 눈물을 마르게 하고,
역병으로 결혼식 영구차를 시들게 하는지를.
첫댓글 양극화 시대와 함께 한 낭만주의 시인 블레이크의 'London' 잘 감상했습니다
김정식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