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실제 역사 속 가상인물과 사건을 내세워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은
암살단이 작전을 실행하기 전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면.
개봉 1주일만에 400만명 돌파, 하반기 최대 히트 예감
실존인물, 가상인물 함께 등장… 열사들 희생정신 기려
1930년대 경성 생생히 재현… 전지현 등 배우들 연기 압권
“5분 안에 끝내고 우린 살아서 돌아갑니다.”
암살 작전을 이끄는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은 함께 참여한 속사포(조진웅 분)와 황덕삼(최덕문 분)에게 말한다. 하지만 밀정에 의해 그들의 작전이 들통 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더군다나 결행 전 속사포가 습격을 당하면서 원래 계획마저 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전은 실행된다. ‘타겟’(표적)을 향해 안옥윤이 조준하고 이윽고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담은 영화 ‘암살’이 지난 7월 22일 개봉했다. 1300만명을 동원한 ‘도둑들’의 연출자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개봉 7일 만에 400만 명을 동원하며 하반기 최고의 흥행작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장인 백범 김구와 약산 김원봉은 일본에 노출되지 않은 세 명의 독립운동가를 소집해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의 암살 작전을 계획한다.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 분)은 한국 독립군 제3지대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을 찾아나서고 이들은 각자 서로 다른 이유로 암살 작전에 합류해 경성으로 향한다.
한편 상하이 일본영사관은 임시정부 속에 심어 놓은 밀정을 통해 암살 작전 정보를 입수한다. 이어 일본영사관측은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과 그의 오른팔 영감(오달수 분)에게 암살단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하고 이들은 암살단의 뒤를 쫓는다. 경성은 암살하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의 사투로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영화는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둔다. 영화에 등장하는 김구와 김원봉의 의열단, 한국독립군의 무장투쟁, 반민특위의 친일청산 실패 등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김구와 김원봉을 제외한 나머지는 영화 ‘국제시장’처럼 가상이다. 암살의 표적인 친일파 강인국과 가와구치를 비롯 안옥윤 일행, 이를 쫓는 하와이 피스톨 등은 허구의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1933년 경성에서 임시정부 소속 독립운동가들이 암살을 자행한다는 사건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가상의 사건과 인물을 등장시킨 건 특정 독립운동가들과 사건이 아닌 해방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모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함이다. 이로 인해 그들의 안타까운 행보가 더 슬프게 느껴진다. 암살단은 최근 유행하는 헐리우드 영화 속 영웅들처럼 조국을 구해내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 쟁취해낸 독립이 아닌 일본의 패망으로 얻어낸 해방이라는 실제 역사의 영향 아래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암살단 역시 자신들이 하는 일이 당장 조국의 해방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포화 속으로 뛰어든다.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한 사투와 비애를 효과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느끼는 감동이 배가된다.
여기에 더해 작품은 친일파 청산 문제라는 큰 화두를 던진다. 해방이 될 줄 몰랐다는 변절자 염석진과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강인국의 변명에 영화는 짧고 명쾌한 답변으로 응대한다.
조선인들의 고통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지 않고 몇 장면으로 암시적으로 처리한 것도 인상적이다. 적은 분량이지만 해당 장면의 충격이 강해 당시 사람들의 고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를 통해 온전히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러닝타임이 2시간20분에 달하지만 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거운 주제와 달리 영화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먼저 1930년대 경성과 상해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 눈길을 끈다. 전차가 다니고 일본인이 지배하던 ‘경성’의 모습을 비롯해 당시 의상과 작은 소품까지 꼼꼼하게 되살려 감상의 재미를 높였다.
화려한 액션도 볼거리. 첨단 장비 없이 소총과 수류탄을 들고 맨몸으로 경성과 상해를 누비는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인다.
무엇보다도 여주인공 역을 맡은 전지현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전작에서 잇달아 코믹스런 역할을 맡아 개봉 전 잘못된 섭외라는 우려도 낳았지만 전지현은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연기로 이를 불식시킨다. 민낯에 가까운 화장을 한 채 건물 사이를 넘나들고 지붕에서 뛰어내리는가 하면 5kg에 달하는 무거운 총을 든 채로 전력 질주하는 그의 연기는 극을 장악하기에 충분했다.
극 초반 열성적인 독립운동가에서 일본의 밀정으로 변절한 염석진 역을 맡은 이정재의 원숙한 연기는 작품에 무게감을 더한다. 특히 그는 작품에서 20대와 40대 그리고 60대의 모습을 선보이는데 사상의 변화와 함께 각 연령대에 맞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속사포를 맡은 조진웅과 영감역의 오달수도 무거운 이야기로 영화가 지루해질 무렵에 등장해 큰 웃음을 준다. 속사포의 ‘1층에서 보자’와 영감의 ‘어이 3000불, 우리 잊으면 안 돼’라는 대사는 관객들의 눈물샘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