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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사유로 구현한 심서의 감회
- 이경란 편
송 귀 영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1. 서론
시조에서 느낄 수 있는 미적 감각은 균형미, 긴장미, 절제미, 완결 미로 압축할 수 있으며 엄격한 시어의 취택과 응축이 절제된 표현기법이 요구된다. 균형미란 정제되고 절제된 시상의 전개가 시편 전체에 걸쳐 고르고 정돈된 균형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유기적 결속의 형태적 미감을 뜻한다.
긴장미는 생동감과 신선함을 줄 뿐만 아니라 시조의 맛과 멋을 살려내는 중요한 미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긴장미를 상실하면 독자들에게 산만함과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시조에서 긴장미는 시어의 군더더기를 뼈 발라내듯 발라내고 이후 전개될 시상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점이 증폭될 때 관심을 집중 시켜 심적 긴장미를 조성시킨다. 이러한 장치는 시조의 격조를 한층 더 높여주고 시조를 시조답게 그 의미를 살려 미적 감각을 끌어낸다. 시상의 전개에 있어 불필요한 사족은 생략하고 간명하게 함축적인 의미와 긴장감을 불러드려 미적 장치를 활용해야 한다. 절제미로는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쓰는 것을 포괄함으로써 일부 간결미로 표현하고 있다.
문장을 이루는 필수성분의 핵심을 군더더기 없는 요소만이 필요로 하는 절제의 수단을 말한다. 그리고 완결 미는 초, 중, 종장의 연결성과 더불어 종장에서 작가의 주제적 철학 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완결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조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체험의 대상으로 개인의 서정에 밀착된 경험과 행복의 추구라는 주제 의식을 꾸밈없이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더 내밀한 방법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시조가 체험의 토대 위에서 시인의 의지를 짧게 끊어야 할 때가 있고 길게 이어가야 할 경우도 있지만, 항상 압축이 전제되는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시의적절한 주제로 참신하고 유연하게 형상화하는 것은 시조가 45자 내외에 자수율의 양식을 지켜야 하는 근원이다. 시조는 아는 바와 같이 3장 6구로 나누어져 기본 율격을 바탕으로 호흡이 멈춰질 듯 구비 쳐서 반복적으로 꺾어지는 음률이 폭포수 같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마지막 잔잔한 물결처럼 3, 4조의 리듬으로 여운을 남기는 특이한 정형 문학이다. 시조에서 압축과 여운의 멋은 초, 충, 종, 3장 형식의 압축적 미학으로 완결의 미학을 창출해 내는 구도이다.
자유시에서 사족이 많이 늘어나는 것과는 달리 압축의 독특한 맛과 멋이 바로 시조의 특성이며, 깨달음의 철학이 함축적으로 내포된 멋진 장르이다. 행복의 지수는 마음먹기에 따라 그 척도가 달라진다. 시조는 말의 연속적 반복으로 인한 강조의 리듬감으로 시적 분위기를 한껏 추어올려 많은 사람으로부터 정곡을 찌르는 경계심을 부여해 주는 교훈성이 짙게 깔려있다. 그리고 시조라는 문학 장르는 형식이 바르지 못할 때 그 본질의 실상이 변질하거나 생명력을 잃게 되는 수기 많다.
이제 평자는 이경란 시인의 작품을 통하여 그가 숨겨 두고 있는 시적 사상과 주체 의식을 단편적이나마 조명해 보려 한다. 모든 시인은 시적 언술이 존재적 투명성에 대한 진지한 사유로 발현된다는 점을 평설의 서두에 얹는다. 시조 시인들이 잠재된 인식에서 고통이나 갈망 같은 것을 실제로 표현하는 시각적인 근저를 이해시킨다. 물체의 형상에서 순수 지향적 갈망과 구현은 작은 세계의 구축으로 서정에 시적 바탕을 이룬다.
또 한 갈망은 언지(言志)가 실감 나게 새겨지는지 소 공간에서 존재에 대한 희열을 갖는다. 아름답고 흥미롭게 직조한 시어는 영양과 활기로 정신적 건강을 챙겨주며 진부한 관용어 대신 참신한 언어로 표현의 질감을 되살린다. 시간의 틈새를 따라 가벼운 낙서와 무거운 정서가 뒤섞인 사물의 모습들을 그려 쓴다. 시를 읽고 감동하여 기운이 솟는 느낌은 언어가 우리 육체에 새겨지는지를 일깨워 주는 특이한 경험을 갖게 함이다.
시는 읽은 것 외 암송이 최적화된 노랫가락에 가깝다. 자신이 간직한 좋은 문장은 마음속 안전지대의 울타리 역할을 해준다. 사물의 주체와 객체를 이분법으로 해체하면서 자신의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정적 표현의 질감을 현대에 되살리는 언어의 실험적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가시의 눈물샘을 찔러 비로소 참담하다는 뼈저림에 참회의 갈퀴로 독자들의 마음을 긁는다. 이경란의 일부 시편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용서가 가능할지 또는 왜 가능해야만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엿보려 한다. 그의 시적 대상에서 느끼는 사상과 감정을 작품에 기형 형식부터 독특한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내면에 숨어있는 의미가 우리의 인식과 통념에 큰 충격이 가해질 까이다. 이것이 시적 형식의 영역에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요소가 쌓여있는 함축적 이미지가 폭넓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관건이다.
심혈을 기울여 갈고닦은 시어의 뜻과 창작에서 내포된 함의와 매우 차원이 다른 상징성도 잠재되어있음을 발견한다. 진의를 짚어가다 보면 감탄을 동반한 내재율의 의미가 행간에 숨어있음을 넉넉히 이해되기도 한다. 작품의 성향이 시인의 전통적 문학 형태를 형성하고 가치와 사상의 새로운 방법으로 개척하려는 신념도 나타날 수 있어 실험의식을 반영한 표현 기교를 엿볼 수가 있다.
2. 생활 주변을 쓸어 담은 시적(詩的) 담론
현대시조가 기존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환유법을 인용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다. 관심을 끌려면 사물에 의한 감각과 그에 파생되는 사유를 실체적 인간과 같은 유정물이 아닌 무정물을 은유한 물체의 형태를 가시적으로 함의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인간에게 눈물은 감정의 극치이며 기뻐도 눈물이 나고 슬퍼도 눈물이 나는 것은 감정의 기폭에 따라 온전한 감성을 지닌 자아를 발견하는 동시에 기쁨과 감동을 환유로 표현한다.
이경란시인의 시적 착상은 기발한 작품에서 독자들의 몫으로 넉넉히 남길 수 있는 흥미로운 자주적 수법이 동원되고 있다. 아련한 과거 속에 묻혀 모습이 보이지 않아 고독은 그리움을 동반하고 계절은 회상과 향수를 동반한다. 작품구성이 사물에 대해 맞닥트린 환경과 처지가 열악한 과정에서 인간과 사물이 상호 주고받는 대화형식을 취한다면 회화적인 어투와 상황에 호기심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인격을 갖추고 그 삶도 유사한 점을 인식하게 하여 비뚤어진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행위를 통하여 윤리 도덕이란 덕목의 본질로 인격을 가늠하게 된다. 이경란시인은 순수한 자연적 순리로 삶에 반하는 가치를 비판하고 의도적인 강요가 아닌 가치 의식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 이경란시인 식의 일반적인 시적(詩的) 상식이다.
창조의 신비적 탄생은 시간에 영원한 흐름과 생애의 순환 변화를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견해와 해석이 따르기 마련이다. 폭포의 물방울은 수면을 향해 솟아오르며 화가의 곡진한 마음이 화폭에 숨어있듯이 시인의 시구에 영혼이 숨어있다. 바짓가랑이를 걸고 바닥부터 훑으며 올라온 절실한 자신의 표현 방식을 내포한다. 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그 시인이 보이고 그 시인의 현재가 앉아 있는 곳에 그 시인의 과거가 보이며 미래가 떠오른다.
이경란시인의 시풍을 통하여 시인 개인에 표현의 욕구가 일상적 오브제(Objet)로 빗대어 시어로 표현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오브제(Objet)를 사실적인 묘사에 그치지 않고 독특함과 내면의 심상으로 재해석하려는 작품이 눈에 뜨이는 것이다. 원초적인 인간 정신을 구현하는 기본이 되는 그 문학은 쌓여서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깊어질 때 철학이 된다.
철학이 사람 몸의 뼈대라 한다면 문학은 살이 되고 인문학은 피가 된다. 뼈에 살이 붙어서 피가 제대로 순환해야 온전하고 건강한 몸매를 갖추게 된다. 인생이란 너무 눈부시게 그리고 요란하게 살 필요가 없지마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데는 제한 적 시간을 둬서는 안 된다. 가장 추운 날씨를 견뎌낸 뒤에라야 송죽이 그대로 푸름 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인생의 풍파와 모진 삶을 등에 짊어지고 구름처럼 떠다니다가 즐겨서 짜증이 날 때 한 발짝 뒷걸음질 치는 것도 자신을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여유가 된다. 오랜 시공간의 격차를 뚫고 고대와 현대가 이어져 인문학의 오묘한 조화를 빚어낸다. 이경란 시인은 배움이나 끈질김도 없는데 하늘이 자신에게 과분한 은혜를 베풀어 문학의 길을 걷게 한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을 벗 삼아 산골 마을 외길 하나 따라가며 산모퉁이 돌아서면 소슬바람이 잦아드는 아담한 터의 기와집에서 텃밭을 가꾸는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다. 더부살이 인생이랄까 개평 살이 하는 마당에 너무 아등바등 다투지 말고 서로 덕담을 나누면서 너그럽게 사는 인생도 나쁘지는 않다. 우리의 젊음을 끌고 간 중년 시절을 원망하고 장년이 넘어가는 세월을 애석해 한다. 한때 넉넉한 뱃살이 부의 지위와 인품을 상징하던 때가 있었다. 관록이 쌓이듯 뱃살도 중장년의 중후한 멋으로 여긴 때도 있었다. 인간 사회에서 친밀한 관계일수록 더 쉽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철학이란 이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한 의문과 물음을 가짐으로부터 시작되고 인간과 우주를 논리적으로 탐구하여 본질을 도와준다. 철학은 문학과 상관관계로 이를 배우는 것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다. 철학이 지금 우리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는 안목을 키운다.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서서 철학 개념의 새로운 관점으로 시조창작 기법을 연마하는 일이다. 인간의 운명과 문학에 대한 깊은 사유가 철학을 배우는 시발점이 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삶에 유형들을 고려하여 가벼운 훈수로 이경란 시인의 여타 작품 세계에 한발 걸쳐본다.
들녘에 홀로 섰던 늦가을 허수아비
갈무리 끝났어도 떠날 줄 모르고서
참새들 가고 없지만, 고즈넉이 서 있다
이 가을 초인같이 들녘을 다스리고
때로는 바보처럼 우두거니 섰으면서
세월을 떠나보내고 저만 홀로 있어라
-허수아비- 전문
농번기 때 시골 논밭 두렁에 종종 보이는 이 허수아비는 상대를 속여서 농작물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주로 곡식에 피해를 주거나 축내는 새나 산 짐승 따위의 눈을 속여서 피해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막대기와 짚, 또는 헌 옷 등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논과 밭두렁에 세우는 조형물이다. 곡식을 찾아 날아든 참새 떼는 삽시간에 벼 이삭을 축낸다. 제구실을 못 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부류들을 세간에서는 허수아비로 빗댄다.
위에서 인용한 작품 “허수아비”는 첫수에서 농번기가 지나고 추수도 다 끝나서 날짐승도 오지 않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있는 허수아비의 모습을 그렸다. 둘째 수에서는 가을걷이를 다 거두고 이제 허수아비가 필요 없는 데도 바보처럼 그 자리에 저 혼자만 서서 세월만 보내고 있는 머저리 같은 인간들을 비유한다. 이 허수아비는 중국의 여산릉(稜)병마용 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산 북쪽의 옥수수밭에 서 있던 허수아비의 자리에서 농민들에 의하여 우물을 파다가 발견되었다는 설의 전언이다.
켜켜이 쌓인 세월 더없이 초연하다
조각난 몸이라도 목살 무늬 새기어서
언제나 함께하려던 그리움이 있어라
-겨울 의자- 전문
작중 화자는 심중에 맺혀있는 아련한 정한의 서정을 표출하고 있다. 가슴에 쌓여있는 포회(包懷)한 심상을 진술하면서 숱한 사연과 내막을 고집스러운 직관으로 “겨울 의자”를 시화하고 있다. 본시 겨울은 차가움과 삭막함을 동반한다.
인간과 사물을 켜켜이 쌓인 세월로 함께 묶어 거기에서 파생된 사상과 정서를 무정물인 “겨울 의자”를 유정물인 자아로 변용하여 일체를 동화시킨다. 켜켜이 쌓인 세월은 초연하다고 한다. 화자는 이 추운 겨울날에도 상관이 없다. 몸을 움츠리며 의자에 목살 무늬를 새겨서 포근하게 앉아 사색하고 싶어 한다.
이제는 가야 한다. 뒤 돌아 서지 말자
낮은 곳 발을 딛고 마당을 밟고 나가
숲속의 계곡 한자리 마음 풀고 살아야지
-낙수- 전문
이제껏 도시에서 아등바등 바쁘고 고달프게 살아온 세월을 돌이키며 노후의 변화한 생활을 소망한다. 산 좋고 물 맑은 계곡의 한자리에 집터를 마련하여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어 손수 남새도 키우며 한가한 삶을 구가하면서 전원생활에 이상향으로 동경을 하는 삶의 시화이다.
오직 시인의 사상과 의식 그리고 관념이나 감정이 담겨있는 안목은 마당만 밟으면 빗물, 눈석임물, 고드름 따위가 녹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순수 자연에 빚어낸 삶의 연민을 상상한다. 여기에서 시제 “낙수”는 일을 치르고 난 다음 뒤 이야깃거리로독자에 따라 감상할 수도 있겠다.
가진 것 내려놓고 산속에 머물면서
새 소리 바람 소리 혼자서 듣고 있다
많은 것 있다 해도 부질없는 순간이다.
소나무 돌담 사이 다람쥐 넘나들고
옥수수 익을 때면 강물도 넘치어서
펼쳐진 저기 자연에 내가 속해 있어라.
호미로 밭 일구어 씨앗 뿌려 싹이 나고
메마른 나뭇가지 햇살에 꽃피우고
오늘은 내 마음에도 그리움이 하나 있다.
-자연인- 전문
인간 세상의 질서가 자연계의 법칙에 순응하지 않고 그 누구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들의 삶에 고뇌와 번민 같은 것은 애당초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영혼 속에 혼재하고 있는 수많은 고통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어리석은 망상도 해 본다. 인용한 “자연인”은 세수로 된 연작으로 시인이 가지는 자연관의 속살 그대로 표출하여 욕심마저 버리는 순수감정을 드러낸다.
욕심이란 참 오묘한 인간의 본능을 억제할 수 없이 괴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성을 가진 우리 인간들은 어느 정도 조절 할 수 있는 심적 자정 능력이 있다. 채울수록 비워지는 것이 삶이라면 비울수록 채워지는 삶도 삶이다. 부질없는 잡다한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평온과 선량한 상태로 마음을 비워두면 진정한 가치가 더 많은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 바로 순수한 자연인의 모습이 아닐까.
시인은 첫수에서 산속에 머무는 무욕의 자연인상을. 둘째 수에서 산 짐승이 넘나들고 오곡이 익어가는 농촌 풍광의 자연에 자아가 속해 있음을 인식한다. 마지막 수에서 논밭 일구어 씨앗 뿌리는 전원생활의 꿈을 상상의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
강물은 물이 아닌 세월의 소리 어라
멈추어 설 수 없는 자연의 날이어서
아픔이 생각날 때면 속울음만 깊어라
-강물- 전문
강물은 물이고 물은 곧 인체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지나온 족적을 더듬으며 넉넉한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당연한 이치임에도 고집을 부리며 안달하여 심산을 튀기는 일이 다반사다. 과감한 감정의 기복을 보듬어서 쓸어 담기도 하고 정적인 사색에 대상이 되는 “강물”은 모든 사람의 “강물”이 된다. 파랑을 남긴 온갖 사연들을 물속에 품고서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다. 어제와 오늘이 내일(來日)처럼 그렇게 세월을 감아 안고 흘러간다.
시조의 얽음에 있어 언어의 행간을 조절하는 행위는 시인의 특권이자 작시(作詩)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초장과 중장이 대구와 대조를 이루며 시인의 언사에서 강물, 세월, 자연의 이해와 투사가 읽는 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마지막 종장처리는 안정감을 주면서 “속울음만 깊어라”라며 회한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3. 자연 속에 동화된 서정적 자아의 순수성
이경란시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시조 세계에 주체적 신념을 가지고 도전과 열정의 의식으로 작품을 쓰고 있다. 시인은 상자 속의 편지에서 “오래전 그때부터 주고받은 사연들이 다 낡은 모습으로 상자 안에 묻혀있다.”라며 노래하고 가슴속 그리움 하나를 언제나 소중히 간직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다.
그는 체험과 관찰을 통해서 습득한 사물의 속성 인식에 몰입하여 감정이입 수법으로 그 물상들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상을 펼친다. 이러한 심상은 자연 친화적이어서 아카시아 꽃 이라든지 장미나 대왕 참나무 같은 자연 속 식물들의 생태 시(Eco poetry)와 깊은 관계를 맺어 인간의 생명성과 공생관계를 간파하려 한다. 그래서 진정한 시인은 사물에 이름을 지어주며 시들어 가는 사물에 새로운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여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경란 시인은 자연 속의 삶이 언제나 시간과 시공에 멈춤을 허락하지 않고 현존하는 현실적 테두리 안에서 희로애락이 상존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음으로써 감성의 속살에 얼룩진 무늬를 세심한 관찰력으로 응결시킨다. 내면세계의 탐색을 통한 다양한 측면에서 재해석하여 진화하는 작품으로 창작해 내고 있다.
이경란시인은 시적 세계에 몰입하여 그에 생활 주변의 모습과 더불어 다각화한 작품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 속에 동화된 서정적 자아의 순수성이기도 하다. 멀리 떨어져 마음과 생각이 서로 부대끼다가 사랑의 진액에 빨대를 꽂아 빨아들인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응시, 고독한 인간의 무한한 연민과 사랑을 이루어낸 표현에 빛나는 성취도 대상으로 포괄된다.
이경란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절망과 사랑은 최대치를 보여주며 그 고통과 외로움의 끝자락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길어 올리고 싶어 한다. 꿰지 못한 구슬은 어떠한 장광설도 부합하지 않는다. 감각기관으로 사물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차원에서 사물을 관찰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필연이 있다면 자연엔 자연의 필연이 있다. 인간은 끝없는 욕망과 이기심에서 비롯하는 소유욕에 대한 탐욕과 열정의 이중적 대립이 작품 속에 어떻게 반영시켜야 강렬한 느낌을 줄 것인가이다. 소유욕의 끝없는 몸부림은 인간의 공통적인 욕구의 몸짓이다.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탐색과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시조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조하기를 시인이라면 공통된 염원이다. 이러한 이목(耳目) 등의 감각 기관에 이끌려 사물을 판단할 때의 한계를 뛰어넘어 관찰하는 경지이다. 부재와 세월은 공존의 순간에 많은 이야기와 회안에 감동을 부여하고 무심하던 마음을 건드려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공기 속에 사랑이 떠다니고 창문을 통해 풍경을 끌어안고 생각을 일으켜 세운다. 침묵이 생각에 말을 걸고 흘러가는 세월을 마주한다. 침잠하는 명상은 꽃들의 풍광을 담고 내면의 고요함에 잡념까지 깨트린다. 생각이 형태화되면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수가 없다. 사물을 말하면서 인간을 들어내고 인간을 말하면서 사물을 드러내는 이경란시인의 개성 있는 작품을 감상해본다.
비옥한 마음 밭에 씨알 하나 떨어져서
그 오랜 날이라고 한 그루 나무 되어
세상사 바람막이로 살아주는 그 사람
목 타는 가뭄에도 제 몸을 추스르고
폭우가 쏟아져도 꺾이지도 아니하고
오늘도 그늘이 되어 함께 있는 그대여
-남편 나무- 전문
나무는 세월이 흐른 만큼 자라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뻗어 가는 만큼 자라난다. 그러므로 가지와 잎 새가 아무리 무성해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가 강해야 버틸 수 있다. 시인은 남편이 세상사 모진 풍파를 막아주는 든든한 나무로 의인화한다. 태어나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다가 성년이 되어 어떤 인연으로 해서 씨앗(남편) 한 알을 얻어서 사랑의 싹을 틔운다. 그 싹은 부부라는 이름의 밑거름으로 싱싱한 “남편 나무”로 우거진다.
인간사 모든 풍파에 바람막이가 되어서 살아 주는 남편이 참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고맙다. 부부간에 살다 보면 목이 타는 가뭄의 날도 있고 폭우가 쏟아지는 홍수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꺾이지 않고 단단하게 가장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며 그늘을 드리워주고 언제나 든든한 나무로 그 자리를 지키는 듬직한 믿음을 준다.
오월의 길을 걷다 향기를 맡았어라
내 생애 살아가며 이런 사랑 있었던가
죽음도 두렵지 않게 바람으로 꽃 지네
고운 옷 입었어도 이런 향기 아니더라
멋없이 구부러져 볼품없는 그이지만
아픈 맘 쓸어 담았던 어머니의 향기더라
-아카시아 꽃- 전문
피로가 흥건해진 일상에서 화자는 오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는다. 아카시아 꽃은 긴 꽃대에 여러 갈래의 꽃이 어긋나게 피며 콩과에 딸린 낙엽 고목으로 잎과 꽃이 다른 콩과 식물과 거의 비슷하다. 위의 작품을 읽으면 어린 시절 불렀던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라는 유명한 동요의 노랫말이 먼 기억을 소환한다.
아카시아 꽃이 뿜어내는 향기는 저항하기 힘든 꽃가루의 매혹적인 냄새로 누구나 좋아한다. 화자가 살아가며 느꼈던 아카시아 꽃향기는 그 어느 꽃향기와 비길 데가 없다. 오죽하면 이 꽃향기가 어머니의 향기라고 노래를 했겠는가. 시인에 있어 아카시아 꽃 예찬의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다.
한평생 사는 일이 저리도 뜨겁다면
지금껏 살아온 날 후회는 없었으니
내 생애 또 한 번이면 너를 닮아 살고 싶다
-장미-전문
장미는 많은 시인이 시제와 노랫말로 취택하고 있다. 한 번쯤 장미와 관련하여 시를 써보지 않은 시인이 드물 것이다. 강렬한 향기와 꽃말 때문이다. 장미꽃의 꽃말은 꽃 색에 따라 다르지만, 질투와 순결 그리고 뜨거운 첫사랑을 의미한다. 아시아가 원산지인 여러해살이 관목 덩굴식물로 향이 강렬하게 풍기는 꽃 중의 꽃으로 주목을 받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아름다움 때문에 덩굴이 어울리게 대문이나 베란다에다 반려 식물로 기른다. 장미의 봉우리는 소원이 성취될 길조이다. 흰 장미는 신용을 상징하고, 붉은 장미는 행운을 나타낸다.
또한 붉은 장미꽃이 활짝 피거나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이 꽃을 주고받는 꿈은 길몽으로 해석한다. 이외에도 가임여성이 장미와 관련한 꿈을 꾸었다면 태몽일 확률이 높다. 시인은 장미의 꽃말인 순정과 굳은 신념, 뜨거운 열정과 화려함, 절대 사그라지지 않는 정열의 아름다움을 여성스러운 감성으로 현장에서 보는 것과 같은 비유로 형상화하여 부각한다.
지난밤 무서리에 떨고 있던 풀잎들은
아침의 햇살 받고 시린 몸 달래면서
산비탈 고개 너머로 작은 꽃잎 피웠어라.
국화꽃 높은 향기 취하려 들지 않고
높이만 올라가는 담쟁이 욕망에도
적당히 낮은 자세로 우러르지 아니한다.
한 세상 힘겹게도 견뎌온 삶이라서
비바람 몰아쳐도 지난날을 생각하며
이제는 보람도 있어 고즈넉이 살 일이다.
-풀잎은- 전문
시인이 “풀잎은”이란 작품에서 비록 상상으로 구축하는 시 세계이지만 인간 본능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풍부한 환유의 형상화가 돋보이는 솜씨에 눈길이 간다. 세수로 직조된 연작은 각각 수마다 연결성을 확보하여 다각화함으로써 이 시인의 역량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이시는 해설이나 각주를 달 필요도 없이 읽는 그대로 느낌이 와닿는다. 이러한 작품을 일컬어서 서정적 시중유초(詩中有草)라 하고 싶다.
첫수에서 간밤에 내린 무서리로 떨고 있던 풀잎들이 아침햇살을 받고 몸을 녹이며 고개 너머 산비탈에서 피었을 풀잎을 상상하였다. 둘째 수에서 향기에 흠뻑 취한 국화꽃도 아니고 담을 타며 기를 쓰고 올라가는 담쟁이도 아닌 오직 평범한 이름 모를 잡초의 풀잎을 그렸다. 마지막 수에서는 힘겹게 살아온 하찮은 풀잎이지만 그런대로 자기 몫을 챙기는 보람도 있기에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처신을 인간의 삶에 빗대어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야 할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면서
세상사 연연함도 아닌 듯이 말하지만
이 겨울 가지 끝마다 마른 잎이 달려있다.
예고 없는 꽃샘추위일 리가 없으면서
새싹으로 나왔다가 행여나 추울세라
언제나 안타까움을 놓지 않고 있어라.
끊길 듯 맥을 잇는 삭풍의 기침 소리
골 깊은 마디마디 세월을 안고 서서
오늘도 봄날을 위한 바람 소리 들려온다.
-대왕참나무- 전문
가로수로 많이 심어지는 키 큰 대왕참나무는 원시적인 형태의 꽃을 피우며 씨알이 적은 도토리가 열린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 유사 종이 많고 수피가 두꺼워 병마개(크로그)로쓰인다. 이 나무에 “참”이라는 접두사를 붙인 것만 보아도 쓰임새가 많은 다목적 나무이다. 이 작품은 그런대로 정격을 잘 살린 작품으로 비교적 가작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 작품에서 가야 할 때가 되면 가야하고 새싹이 터서 꽃피어 열매 맺고 땅에 떨어트려 후세를 기약하는 긍정적인 한때의 안타까움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시인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보고 인간을 닮은 자연에 주목한다. 대왕참나무와 같이 모든 나무는 더우나 추우나 골 깊은 마디를 안고 언제든 그 자리를 지킨다.
논바닥 두렁길에 왜가리 한 마리가
부리는 갈라지고 모 가지는 말라 있어
덧없는 인생살이도 그와 같이 험하다
지난날 찬 이슬로 젖었던 나의 날개
두 손으로 햇살 받고 그 물가 다시 서면
고고한 그 날갯짓이 저 창공을 오르리라
-목각 새- 전문
시인은 나무를 깎아 만든 새의 조형물을 소재로 하여 사물의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조각한 지 오래되어 갈라진 부리와 마른 모가지의 목각 새를 보면서 우리의 인생살이에 목각 새라는 사물을 독특한 비유와 상징으로 이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비록 나무로 깎은 오래된 왜가리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모질게도 훼상한 측면은 화자의 정신 영역에 깊이 자리 잡은 순수 의식의 이상향이 우리 인생살이에 지향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또 화자는 이 목각 왜가리의 모습을 보고 살아있을 때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고한 날갯짓을 상상한다.
4. 인간 삶의 표현과 가족 포용에 절절한 감수성
작품에 내포한 알갱이는 지금 이후의 영원성을 대변하게 되므로 현재의 많은 진실을 미처 잡지 못한 후일의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매력이 삶의 난감함을 일깨우고 이러한 현실을 겪게 됨으로써 극복할 수 없는 괴리감과 단절감에 부대낀다. 문학은 고통을 극복하고 목적을 이루려는 의욕을 부추겨 생명의 활력소를 얻는다. 마음에 배어들어 세상을 보는 정직한 감성을 열어주는 맥이어야 한다.
그래서 시조의 기능은 목가적 사유로만 그 진실이 갖추어지지 않으며, 전통적 서정의 범주 안에서 현실의 복합성을 수용하고 그 전체를 새롭게 조성해 나가는 능력을 키운다. 시조가 정형화된 형식의 감성과 사유를 압축적으로 녹여서 담아내는 다각적 체험을 통한 표출 언어의 예술이다. 복잡한 일상에서 정서적 갈래가 헝클어져 착시 되고 생각의 갈피를 다잡기 어려운 시조 세계의 난맥상을 볼 수 있다.
시조의 창작이 어려운 것은 율격의 음절 수에 따라 정서의 의미를 압축과 완급을 일정한 틀(정형)에 가두어 조율해야 하는 고도의 필치로 조화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시인다운 개성의 시화가 긍정과 낙관적인 비전으로 자아상을 형상화하거나 치열한 고통의 정서를 녹여서 승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경란시인에게 있어 초로의 격려성을 여과 시켜 정형 미학이나 창조적 변이의 다각화로 긍정적인 양명에 시적(詩的) 세계관의 흔적을 보인다. 또한, 그의 작품에 취택한 형상화 방식은 직설적 화법에 비유와 은유의 의사 진술을 곁들이고 있다. 그의 존재성은 그의 가족관에서 우러나온다. 풍화된 인생과 인고의 과정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혈족의 뼈와 살에 피가 도달하게 된 인생 경륜의 사자성어의 세상을 윤회 속에 비추어 보인다.
좀처럼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다가도
누구든 달려가면 마음 열어 얼굴 묻고
긴 시간 어머니같이 기도하며 다독였다.
밭이랑 불모지를 맨손으로 일구어서
알알이 맺힌 열매 익어가는 모습 보며
붉어진 눈시울마저 먼발치에 놓았다.
바람이 사납도록 폭풍을 몰고 오면
우리들 바람막이 쓰러지듯 버티더니
기어이 강을 건너서 하늘길을 가시누나.
-언니 생각- 전문
한 치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며 불의에 닥치는 불운을 피할 수 없음도 타고난 인간의 숙명이다. 어느 날 화자는 언니의 부고를 받는다. 어머니처럼 기대며 의지하고 살아왔던 언니의 세상 하직에 억장이 무너진다. 어머니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고 어려운 속마음을 좀처럼 내보이지 않았던 언니가 이승을 하직한 날 화자는 눈시울을 먼발치에 놓으며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명복을 비는 것뿐이다. 작중 화자의 심중에는 지나간 날들이 되살아나서 평상시 무심코 넘겼던 언니의 존재가 크게 와 닿은 사실을 행간에 얹어 놓는다. 언니의 기억이 육체적 고통을 가슴으로 수용하면서 그 슬픈 내력을 형상화하여 연민에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참혹한 현실의 파고에서 굴절된 삶에 시달리면서도 혼신을 다하여 한 생애를 경영해 온 양상을, 불모지에 밭일을 맨손으로 일구어 왔다면서 애련함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산골에 피접 와서 둥지 튼 그 날부터
비 오나 눈이 오나 먼 길을 달려와서
근심에 서린 눈물을 내 앞에서 감추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가지붕 다시 엮고
새장을 만들어서 소나무에 달아주며
행여나 다칠까 보아 돌부리도 파헤쳤다.
내 잠든 그사이에 동구 밖 나서면서
남겨진 편지들이 눈물에 젖어 있어
앞산에 부엉이 울면 사무치는 그리움.
-오빠 사랑- 전문
누구에게나 가족과 사랑은 소중하다. 위 인용한 “오빠 사랑”은 시적 화자가 유년 시절 시골에 살면서 오빠와의 추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산골에 피접, 초가지붕, 부엉이의 사무친 울음” 등의 시어에서 전형적인 농촌을 그리며 특히 오빠가 새장을 만들어 소나무에 달아주는 섬세한 기억들이 정감을 불러들인다. 첫째 수는 산골에 집을 짓고 살아왔던 어려운 시절에도 묵묵히 인생을 운영해 오면서 동생 앞에서 절대로 슬픈 내색을 하지 않던 오빠의 모습을 그렸다.
둘째 수에서 매년 초겨울이 되면 초가지붕을 다시 엮었고 새집도 만들어서 소나무에 달아주던 기억 등, 마지막 수에서 오빠가 화자에게 베풀던 애틋한 사랑을 시각화하였다. 인용한 작품 “오빠 사랑”은 소절과 연수와 수 사이 흐름에서 비약과 단절을 매끄럽게 시도하여 순간의 시행 접속을 탈피함으로써 생동감과 역동성을 부여하여 읽기에 편안하다.
해마다 유월이면 아버님 생각이다
젊음을 붉은 피로 나라 위해 산화하신
그 희생 너무 장하여 가슴속에 새깁니다.
싸늘한 충혼탑에 새겨진 이름 석 자
그리움 젖다 말고 눈물도 모자라서
살아온 그 날만큼은 헤아리고 있습니다.
참았던 서러움이 아직도 남아있어
동작동 현충원을 찾아온 오늘에도
한의 흙이 된 것을 자랑삼아 말하리.
-현충일에- 전문
국토방위를 위하여 싸우다가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전몰 장병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난 1956년부터 매년 6월 6일 법정기념일로 현충일을 지정하여 국립현충원에서 각종 추모식을 거행해 왔다. 시인은 해마다 현충일에 동작동 국군묘지를 찾아서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치신 아버님을 추모한다. 충혼탑에 새겨진 아버님의 이름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희생정신을 기린다. 아버님의 산화로 참았던 아픔이 남아 있지만 한 줌의 흙이 되신 영혼에 내 아버지는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아낌없이 불살랐노라고 자랑삼아 말하고 있다.
오늘도 어제처럼 참됨을 알게 하여
언제나 스승보다 앞서지 아니하며
아는 길 다시 물으며 뒤따라서 걷고 있네.
배울 것 무궁한데 세월이 앞서 와서
젊은 날 검은 머리 근저 들어 희끗희끗
뵐 날이 짧을까 봐서 그리움이 더하다.
-스승님- 전문
스승님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 라는 옛말이 있다. 몰랐던 것을 깨우치게 하며 눈을 뜨게 하는 스승의 가르침과 교훈은 문서가 없는 유산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깨우치게 하고 가르치는 스승을 만나게 된다. 특히 학창 시절 스승님의 칭찬 한마디가 평생을 못내 잊게 한다. 스승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아서 감사의 마음은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진다. 인성교육과 기본적인 예절의 가르침은 참으로 소중하다. 화자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예전의 그 모습으로 다시 한 번쯤 스승님을 뵙고 싶어 한다.
한 인생사는 일을 물레에다 감아놓고
먼 옛날 다시 보듯 서둘러 돌아보면
애타던 나의 마음도 저만치서 미쁘다
-일기장- 전문
시인은 하루하루 일상들을 물레라는 일기장에 감는다고 했다. 훗날 자신이 한 일을 다시 이 물레를 풀어 되돌아보고 새길 것은 새기며, 성찰하려는 목적으로 일기장을 쓴 것이다. 인용한 작품 “일기장”에서 애타던 과거 일기장에 적힌 당시의 마음이 저만큼 미쁘게 느끼고 있음이다. 자신의 심리적 의심과는 상관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이중적인 감성이 동시에 발생하는 이이러니 한 상황이라 해도 지금 돌이켜 보면 미쁘기만 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또한, 일기장은 과거의 흔적이다. 일기장을 보면서 자아 성찰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반성하고 살피는 일이다. 또한, 삶을 한층 원숙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 자아 성찰은 미래 지향의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바탕에 출발을 마련하는 초석으로 일기장이 될 수도 있겠다.
하얀 모래언덕 해당화 피어 있고
소나무 우거진 숲 햇살도 가득하여
잔잔한 바다 물결이 봄바람에 무늬 일다
외로운 모래알을 두 손으로 만져보고
깨어진 조개껍질 하나둘 줍고 보니
주고도 다 주어버린 어머니의 빈손이다.
-봄 바다- 전문
봄 바다에 얽힌 감각적 이미지로 무늬 이는 잔잔한 물결은 바다에 청각적 효과의 두드러진 영상과 소리를 잡아낸다. 모래언덕에 해당화가 피고 우거진 소나무 숲 사이로 봄 바다는 일렁인다. 화자가 해변을 걸으며 흰 모래알도 한주먹 집어서 그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본다. 모래알 틈틈이 눈에 띄는 깨진 조개껍질도 줍고 있다. 햇살이 가득한 해변의 생기가 발랄한 생명의 숨을 한껏 들이마신 정경들이 오버랩(overlap)된다.
한 움큼 쥐었던 흰 모래알을 슬슬 흘러내리니 빈주먹이 된다. 삶의 진리를 겪을 만큼 겪었던 화자가 세상을 이해한 눈길로 사람을 대하듯 봄 바다를 바라본다. 시원한 봄 바다에서 적극적인 향수를 받아들이며 충만한 감성으로 공감하는 자세의 풍요로운 봄 바다를 만난다. 봄 바다의 에너지와 햇살은 은총으로 혼자 사유하고 되새기며 진정한 자기와의 만남은 호사스러운 일이다.
5. 맺는말
시조가 언술 정서의 미학적 결정은 역사에 현실적 회로에 낙으로 응결 시켜 시대 의식을 반영한다. 그래서 현실적 불협화음을 비문으로 접촉하면서 완성될 사유를 거느리고 강력한 의지력까지 담아내는 일이다. 시인의 삶이란 언제나 얼룩진 변방에서 세상의 그늘로 향하는 시선을 견지하며 길어낸 삶의 무게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육박하는 시적 언술로 구체화하는 추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실물을 인연의 대상으로 끌어안아 자신의 뿌리로 받아들여 메커니즘(Mechanism)으로 융합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은 시인의 간절한 숨소리인 동시에 초록 햇살이다. 시인은 순간을 포착하는 시선이 날카로워야 하고 반어적 수사법을 회의적이며 역동적으로 시대 의식을 반영한다.
시인들은 시조의 절제 속에서 쓰임새가 잘 살아나는 시어의 제자리 찾기에 언제나 부유해야 한다. 시인은 언어 속에서 살면서 언어를 잘 모른다. 몰라서 알아내는 것, 알아서 모르는 것을 찾아내는 완성된 하나의 사유로 건너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환경 속에서 무게가 환원된 시의 중력을 순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시인들의 숙명이다.
이상과 같이 이경란시인의 작품을 통하여 생활 주변 일상을 쓸어 담은 시적(詩的) 담론과 자연 속에 동화된 서정적 자아의 순수성을, 그리고 인간 삶의 표현과 가족 포용에 절절한 감수성을 엿보았다. 마지막으로 평자의 훈수 한 가지를 든다면 시조를 얽기 위해서는 시조에 미쳐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다. 우리 언어에 자유를 부여한 시조의 근원을 일깨워 주는 계기로 이경란 시인의 향후 시작에서 시 세계를 어떻게 펼쳐나갈지 궁금하게 예의주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