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은 아주 단출하다. 메뉴는 모듬회 단 한가지. 특이하게도 2인분과 3인분은 3만 원으로 가격이 똑같고 4인분(4만 원)과 5인분(5만 원)은 1인당 1만 원 꼴이다. 공기밥(2000원)과 주류도 있다. 4명이 앉아 5인분 모듬회 한 접시를 주문했다.
쌈류(상추 깻잎 배추)와 장, 통고추 마늘 고추다대기 마늘다대기 외에는 깔리는 밑반찬이 없다. 회 또한 독특하다. 길쭉한 플라스틱 접시에 생선이 짚단처럼 턱턱 쌓여있다. 일반 횟집에서 먹는 것보다 두께와 크기가 족히 서너배는 돼 보였다. 보통 회 밑에 깔리는 무채나 얼음같은 부수물도 전혀 없다. 그냥 회 한 접시이다. 언젠가 TV 속에서 덩치 큰 뉴요커들이 스시바에 앉아 먹고 있던 큼직한 회 조각이 떠올랐다. "얇게 조심스레 저민 회만 보던 사람들은 뭐가 이러냐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회는 한 점만 옮겨놓아도 초장이나 간장 종지가 꽉 찰 정도이다. 입에 넣어도 가득이다. 살을 잘근잘근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배어나온다. 농어가 제철이어서인지 유난히 꼬들꼬들하다. 단골 덕분에 일행은 덩달아 광어등지느러미살(일명 엔피라)도 조금 맛 볼 수 있었다.
다른 집보다 회의 양이 많다고는 하지만 워낙 주변 반찬이 없기 때문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만한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회접시가 비어갈 때쯤 매운탕을 시켰다. 매운탕은 공짜다. 대신 공기밥이 다른 집보다 1000원 비싸다. 매운탕은 큰 양은냄비에 끓여 나온다. 성인 4명이 먹기에도 많을 만큼 양이 푸짐하다. 살은 모두 횟감으로 떠내고 남은 부스러기이지만 여전히 발라 먹을 게 있다. 무는 안들었고 길쭉길쭉 잘게 썬 두부가 많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 국물은 진하고 고소하다.
'기장방우횟집'에서 맛볼 수 있는 얼큰한 매운탕. 국물이 진하고 양도 푸짐하다. 큰 사진은 모듬회 5인분을 시켰을 때 나오는 양. | |
1층과 2층에 4인용 테이블이 각각 20개 있어 넓다. 영업은 오전 10시30분부터 밤 10시30분(회 주문은 9시)까지. 연중 무휴. 주차장은 3시간까지 무료다. (051)581-4346
◆ 주인장 한마디
'회 외에 다른 메뉴는 취급하지 않는다. 밑반찬은 없애고 회의 양과 가격으로 승부한다. 손님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매운탕은 절대 포장 판매하지 않는다. 안주인이 손두부를 잔뜩 넣고 끓이는 매운탕 맛의 비결을 알려고 들지 말자'.
'기장방우횟집' 염방우(57) 사장의 영업원칙이다. 그 고집으로 지난 21년간 이 자리를 지켰다. 갯가에서 나고 자라 선원생활도 해봤다는 염 사장은 바다와 인연이 깊다. "초기엔 다른 집처럼 회를 잘게 썰었죠. 근데 뱃사람들이 원래 회를 크게 먹잖습니까. 그거다 싶어서 한 10년 전부터 지금처럼 회를 썰어냈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생선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회맛이 없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 운반된 생선을 식당 수족관에 풀어 1~3일 정도 쉬게 하면 육질이 단단해지고 맛도 한결 좋아진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사장 자신이 왼손잡이인 덕분에 생선살의 결과 반대방향으로 칼집이 들어가게 되는 것도 그가 꼽는 회맛의 비결 가운데 하나. 여름철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보다 신선하고 시원한 회를 즐길 수 있다는 당부를 염 사장은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