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변산 탐방기
조 성 민
★변산반도를 품은 산
내변산은 국토 서남쪽에 돌출한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절경과 산을 일컫는 지명이다. 내변산은 호남의 5대 명산(지리산, 내장산, 천관산, 월출산, 내변산) 중의 하나이다. 변산반도는 바다를 끼고 도는 외변산과 남서부 산악지대인 내변산으로 구분된다. 외변산인 해안 쪽으로는 격포, 채석강, 고사포 해변 등 일몰이 유명한 해변이 있다. 변산해수욕장은 대천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과 더불어 서해 3대 해수욕장의 하나이다. 내변산에는 천년고찰 내소사와 직소폭포, 직소보(인공호수), 월명암 등 많은 비경을 간직한 절경이 숨어있다. 변산반도는 북쪽으로는 새만금, 남쪽으로는 곰소만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명승지이다.
명승지에 위치한 내변산은 뒷동산 같이 친근한 숲도 있는가 하면 험한 봉우리도 있다. 또한 골이 깊고 호수와 폭포도 있어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는 절 풍경도 만날 수 있다. 내변산은 어촌과 농촌과 산촌이 어울려 있어, 산 위에서 산과 바다와 호수와 들판과 색다른 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내변산은 최고봉인 의상봉(508m)과 더불어 쌍선봉, 관음봉, 옥녀봉, 선인봉 등이 계속 이어지고 골짜기도 깊다. 내변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이 산이 품고 있는 풍경이며 길은 어느 큰 산 못지않게 깊고 다양한 맛을 품고 있다. 내변산은 풍경의 백화점으로 알려져 있고, 예로부터 변재(邊材)·변청(邊淸)·변란(邊蘭) 3가지가 유명하다. 변재는 내변산의 소나무이고, 변청은 내변산 곳곳의 바위벼랑 벌집에서 따는 꿀로 질이 좋아 왕실에 진상하기도 했단다. 변란은 내변산에 자생하는 난으로 보춘화를 말하는데, 보춘화는 일찌감치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난으로 춘란이라고도 부른다.
내변산 등산의 매력은 산과 계곡과 폭포와 호수 그리고 바다조망을 함께 볼 수 있는 점이다. 울창한 산과 계곡, 모래해안과 암석해안 및 사찰 등이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이루도 있으며 산이면서 바다와 직접 닿은 것이 매력적이다.
★남여치 무인안내소를 들머리로 하다
새벽에 코지코브(COZYCOVE) 호텔 베란다에서 변산해수욕장을 내려다보자 만조가 되어 너른 갯벌을 가들 채운 바닷물이 힘차게 요동을 치며 어둠을 깬다. 설레는 마음으로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절경을 품어 산해절승(山海絶勝)으로 “서해의 진주”라 불리는 변산반도의 내변산을 종주하기 위해 택시로 「남여치 무인안내소」까지 갔다. “남여”는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이 타던 지붕이 없는 가마이다. 옛날에 어느 관료가 남여는 타고 쌍선봉 낙조를 보기 위해 오른 고개라는 뜻이란다.
등산로를 익히기 위해 커다란 보드 판에 그려진 안내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사진을 찍었다. 상큼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등산로 입구에 발걸음을 사뿐히 내디딜 때 시계가 06:30을 가리킨다. 숲으로 우거진 오솔길을 채우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걸어가자 「쌍선봉삼거리」가 나오는데 쌍선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폐쇄되어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가던 길을 재촉하여 등산로입구에서 1.9km 거리에 있는 월명암을 마주했다.
★월명암에서 쌍선봉과 내변산 전경을 조망하다
「월명암」은 쌍선봉 일대가 병풍처럼 둘러있어 아늑하고, 앞쪽 동편으로는 툭 터진 골짜기에 직소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내변산을 가로지르는 형국이므로, 산이 멈춰서고 물이 돌아나간다(山盡水廻-산진수회)고 하여 명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12년(692년)에 창건된 고찰이다. 절 마당에 서자 왼쪽어깨에는 쌍선봉이 걸려있고 앞가슴에는 탁 트인 내변산 전경이 한눈에 조망되어 이곳이 명당자리임을 입증해준다.
「쌍선봉」에 얽인 전설이 내려온다. 이성계가 젊은 시절에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 굴바위 옆 저수지 안쪽의 선계안에서 영험한 두 노인에게 각각 문(文)과 무(武)를 익혀 훌륭한 청년이 된 뒤에 스승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 스승과 제자가 모두 이별을 서로 아쉬워하며 선계안으로부터 북쪽으로 3,000보 떨어진 이곳까지 왔다. 이 성계가 두 스승에게 하직 인사를 하자, 두 스승은 사라지고 그 앞에 높은 봉우리 두 개만 우뚝 솟아 있었다고 한다.
월명암은 월명무애가 일품인 것으로 유명하다. “월명무애(月明霧靄)”란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둥실 떠오르는 밝은 달과 안개 낀 아침풍경의 신비로움을 일컫는 말이다. 400m의 봉우리가 빙 둘러 진을 친 산골에 거대한 폭포가 떨어지니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선경을 이룬단다. 월명암에서 내려가는 숲길에는 졸참나무, 서어나무, 팥배나무, 너도밤나무 등이 그늘을 만들어 햇빛을 가려준다. 특히 소나무는 몸통이 번지르르하고 뻗어 나무 맨 위에 가서야 가지가 퍼져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숲길을 벗어나 산비탈에 설치된 전망대에 서자 푸른 산속에 폭 빠진 산중호수의 에머랄드 물빛이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내변산의 풍광을 담은 직소보
월명암에서 숲 내음을 맡으며 2.3km 내려오자 내변산주차장과 내소사로 갈라지는 「자연보호헌장탑」 삼거리이다. 내소사 방향을 따라 조그만 아치형의 「직소보다리」를 건너서 잘 닦인 비탈길을 오르자 「직소보」가 눈앞에 전개된다. 직소보는 직소폭포 계곡에 보를 세워 만든 산중호수이다. 원래는 산 아래 사람들에게 식수와 농사지을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인공보인데, 부안댐(1966년 준공)이 생기고 나서는 그 기능을 상실했지만 아름다운 암릉과 어울린 호수이다. 계곡을 막아 만든 이 호수는 아름다운 산세 밑에 조용히 담겨있는 수면과 거기에 투영된 산 그림자가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직소보 물속에 하늘 찌르는 관음봉의 아름다운 풍광이 비쳐 운치를 자아낸다.
직소보 옆으로 난 호수길을 걸어가자 햇빛을 받은 물결이 바람에 잔잔하게 아롱진다. 산중호수가 거울처럼 물에 비친 산세 그대로의 모습을 물위에 찍어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아름답고 한가로운 풍경에 몰두하다 보니 마음은 어느 새 신선이 된 느낌이다. 호젓한 호수길이 끝나는 지점 삼거리에서 선녀탕을 보기 위해 좌측으로 100m를 들어갔다. 「선녀탕」은 반석이 푹 파인 두 개의 소로 된 울퉁불퉁한 암반에 다소곳이 들어선 물웅덩이다. 계곡폭포 아래 골 바닥에 장병형 모양의 욕조 같은 탕이다. 계곡물에 비친 산 그림자가 뭉게구름과 어우러져 또ㅜ 하나의 멋진 경관을 펼친다. 옛날 하늘나라의 선녀들이 이곳의 신선지경에 매료되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선녀탕에서 돌아 나와 직소폭포를 향해 산길을 올랐다.
★전망대에서 직소폭포를 쳐다보다
급경사 계단길을 올라 암반 위의 전망대에 서자 직소폭포가 보인다. 「직소폭포」는 봉우리들이 둘러싸여 흐르는 봉래구곡 속에 숨어있는 내변산 최고의 비경으로 꼽힌다. 폭포높이는 30m이며 폭포를 받히고 있고 둥근 못으로 곧바로 물줄기가 떨어진다고 해서 “직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수직상태인 폭포의 낙하지점에는 소용돌이와 함께 바닥의 모래와 돌멩이가 깎이며 용소가 생겼단다. 직소폭포는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변산8경”(1경 웅연조대, 2경 직소폭포, 3경 소사모종, 4경 월명무애, 5경 서해낙조, 6경 채석범주, 7경 지포신경, 8경 개암고적) 중 제2경이다.
숲 사이로 비밀스럽게 자리한 직소폭포는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이 많은 여름철에 전망대에서 바라본 폭포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요정이 서슴없이 다이빙을 하는 모습의 장관이라는데, 가을철이라 물이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멀리 떨어져있는 폭포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연속해서 눌렀다.
★제백이고개를 넘다
직소폭포에서 이어진 숲속 오솔길은 평탄해 걷기에 편안했다. 평지에 가까운 길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걸어가자 「재백이다리」이다. 데크로 된 다리 위에서 물을 난간에 기대어 심호흡을 여러 차례하고 비탈길을 걸어 「재백이삼거리」로 가서 좌측으로 이어진 길을 올라 「재백이고개」로 갔다. 직소폭포에서 2.1km 떨어진 고개에 서자 곰소만이 발아래 펼쳐지는 장면에 탄성이 절로 났다. 재백(宰伯)이란 직소폭포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오가던 원님이 쉬던 곳이라는 의미란다. 재백이고개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곰소만을 바라보다가 마당바위에 배낭을 베고 누워 하늘에 떠있는 구름에 시름을 날려 보내고 고개를 넘었다.
★관음봉에서 서해를 바라보다
재백이고개에서 「관음봉삼거리」로 갔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1.3km) 내소사이고, 왼쪽으로 올라가면(0.6km) 관음봉이다.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급경사 계단길이라 오르는데 어려움이 있는 반면, 탁 트인 산 아래 풍경이 눈을 호강시켰다. 거친 바윗길을 느릿느릿 걸어 드디어 바위봉우리인 「관음봉」에 올랐다. 어느 등산객에게 부탁을 하여 “관음봉 정상석(424m)” 허리를 왼손으로 감싸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내변산의 최고봉은 의상봉(508m)이지만, 산의 외곽에 치우쳐 있고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할 수가 없다. 또 제2봉인 쌍선봉(460.7m)도 출입금지라 제3봉인 관음봉이 사실상 주봉역할을 한단다. 사진을 찍고 「관음봉전망대」에 서자 길게 늘어선 산봉우리들과 서해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과자로 요기를 하고 얼음물을 마시자 기분이 쇄락해진다. 이곳 전망대에서 보는 서해낙조가 일품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배낭을 둘러메고 세봉으로 향했다.
관음봉에서 세봉을 향해 내려가는 오른 쪽 바윗길은 서해를 내려다보며 걷는 길이라 조망이 아주 좋았다. 조망이 뛰어난 바윗길을 지나 조망이 닫힌 숲길로 들어섰다. 배낭에서 스틱을 꺼내 펼치고 오르막 내리막을 수차례 반복한 후에 「세봉」으로 갔다. 세봉삼거리 이정표에 좌측은 「가마소삼거리(1.8km)」, 오측은 「내소사(2.3km)」라고 적혀있다. 내소사로 향해 내리막길을 걸으며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내소사에서 산행을 마치다
산에서 내려와 내소사에 도착하자 16:30이다. 「내소사」는 조계종 선운사의 말사로 633년(백제 무왕34)에 건립된 사찰이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수령 110년의 500여 그루의 전나무가 600m 숲길을 이루고 있고, 전나무의 싱그러운 내음이 지친 몸에 원기를 준다. 경내로 들어서자 수령 1000년, 나무높이 20m, 나무둘레 7.5m의 느티나무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대웅전보전으로 갔다. 내소사는 대웅전보전의 8짝 봉합창문의 예쁜 꽃 문살(보물 제291호)로 유명하다. 꽃 문살은 연꽃, 국화, 모란 등 여러 꽃무늬로 조각됐는데, 고색창연한 모습은 꽃 문살의 정교한 문양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정교해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수준으로 평가 받고 있단다. 꽃 문살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내소사에서 나오자 17시이다. 시내버스 종점으로 걸어가면서 오늘 일정을 뒤돌아보았다. 남여치통제소-쌍선봉삼거리-월명암-자연보호헌장탑-직소보-선녀탕-직소폭포-재백이삼거리-재백이고개-관음봉삼거리-관음봉-세봉-내소사로 이어지는 11km의 코스를 종일토록 걸었다. 부안버스터미널로 향하는 시내버스가 코스모스가 핀 길의 가을바람을 가르기 시작한다.
(2022.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