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년이고... 3학년 5반은 다~ 있었겠으나... 나의 3학년 5반 시절은, '49년 6월 부터-'50년 5월 까지 였다.
담임 선생님은, 문요섭 선생님 이셨고... 평안도 분이셨으며 영어 과목을 담당 하셨다. 우리 학급의 담임이 되신 첫날... "얘기 해 주세요" 하고 부탁 드렸더니... 곱단이 얘기를 해 주셔서 별명이 곱단이 가 되셨다.
우리반 친구들은, 유난히 극성 스러웠으며 또 학창시절의 각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수없이 낳았던 그 중심에 언제나 나 박정순이 꼭 있었다. 나는 작은 박정순 혹은 소박 이라 불리었다. 이유는 큰 박정순(대박) 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박은 성심여고 선생 할때, 박근혜를 가르쳤음으로 육영수 여사로 부터 청와대에 초청 받은적도 있었다...
1) 그때의 기억 나는 일로...쉬는 시간이면, 예쁘고 노래 잘하는 조명자가 "막동방님" 하고 팔을 벌리며 앞으로 나간다. 뒤 따르는 몇명과 함께 강단에서 끼를 발휘하고, 다음시간 종이 울리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2)미술시간에, 자유로 포스터를 그리라 하여 나는 '남녀동등' 의 포스터를 그렸다. 약 저울에 남.녀를 각각 올려 놓았다. 물론 그림은 잘그리는 친구가 그려주었다. 적당히 칠을 했다. 종례 시간에 접어서 앞의 선생 책상에 올려 놓았다. 곱단이 선생이 펴 보더니 다시 접어 앞의 학생에게 주었다. 차츰 나의 자리로 오는것을 나는 뒤로 넘겼다. 계속해서 뒤로 옆으로 돌아 가니까 학생들은 그것만 바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뒤의 모범생 엄익원이 제 책상에 넣어 버렸다. 그때다 화가난 곱단이 선생은... 누구 것이냐 일어나라 하고 호통을 치셨다. 나는 큰일났다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중간쯤의 이정례가 벌떡 일어선다. 연다라 친구들이 다~ 일어선다.나도 마지못해 일어섰다. 단 한명 만이 일어서지 않았다. 곱단이 선생의 화는 다른데로 옮겨졌다. 일장 훈시가 시작 되었는데, "나는 누가 한 짓인가는 알고 있다. 허나 너희들의 단결심을 높이산다... 이럴때 나는 깨끗하다고 단체행동에서 이탈한 사람은 앞으로의 인생살이가 고달플 것이다... 우리는 칭찬 받은 것으로 여기고 좋아했다.
3) 각 학급마다 글을 모아 책자를 만들었다. 나도 나름대로 글을 하나 썼다. 문제는 책뚜껑에 제목을 다는 것이다. 착실한 반장은 "빛" 이라 하자 하고 나는 이것도 추억의 한토막이니 "한토막" 으로 하자... 결국 한토막으로 결정되었다. 나무를 자른 그림으로 삽화를 넣고... 독서실에 비치 되었다. 곧 4학년이 되었고... 6.25 사변이 났고, 얼마 후에 독서실에 화재가 나서 다~ 타버렸다... 나는 그 한토막 글 모음이 타버린게 제일 아쉬었다.
4) 그동안 창문에 커튼이 없다가, 3학년 때야 헌겁 소창이 배급 되었다. 그때 나는 빠졌어야 했는데... 불행히도 내가 나서서 창문 길이를 재고 가위로 천을 잘랐다. 바느질 품이 있었어야 했는데... 결국 4분지 1을 이어야 했다. 전교에서 이어진 커튼을 4개의 창문에 단 교실은 우리 교실 뿐이었다...
5) 잊지못할 곱단이 선생님! 드디어 학년말 이 되었다.끝나는 날... 선생님은 수첩을 꺼내시더니, 각 사람의 특징 이랄까... 읽어 주셨다... 기억 나는것만 옮기자면... 12번 김귀숙... 뛰어라 너의 앞에는 어두움이 없으리라. 16번 허옥순... 가까이 하려다 멀어지고, 멀리 하려다 가까워지고. 19번 유재순... 믿음직한 총각. 24번 박정순... 만족한 X Y Z (뜻을 아직도 이해 못함) 35번 이해옥... 바닷가의 해당화. 42번 신복련... 아버지 어머니 저를 믿어 주세요. 62번아무개... 병든 서울. (안 일어 났던 친구)
내가 싀집가던날... 회현동 회현교회에 오셨음을, 나중에 방명록을 보고 알았다. 부주도 하셨고... 내가 병치레 하면서 사느라 선생님을 못 찾아 뵈었다... 나중에 선생님을 수소문 했더니... 이미 가셨다... 선생님 이 죄를 어찌 하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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