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사회적약자
주수원(『폭염의 시대』 저자)
태풍 레끼마의 간접영향에서 벗어나면서 기상청은 오늘(13일)부터 다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13일 오전 10시를 기해 서울에 폭염경보가 발효되는 등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확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가 지난 주 8일이였는데 실상은 여름의 한복판인 셈이다. 여름이면 “덥다, 더워!”라는 말을 연신 되뇌며, 습관적으로 시원한 음료수와 에어컨을 찾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몇 년 전부터 분명 예년과는 다른 폭염이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폭염의 시대
유럽은 올해 사상 초유의 폭염을 겪고 있다. 6월 하순 프랑스 남부 빌르비에이유의 기온은 45.1도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독일 링겐(42.6도), 벨기에 프람스브라반트(41.8도), 네덜란드 길제리엔(40.7도) 등도 40도가 넘는 날씨에 시달렸다. 폭염은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서 목숨을 위협한다. 2017년 6월 카밀로 모라 미국 하와이대학교 교수 연구진은 학술지 《자연기후변화(NCC)》를 통해서 1980~2014년 36개국 164개 도시에서 발생한 열파 사망사고 1,900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세계 인구의 30%가 체온조절 능력을 뛰어넘는 치명적 기온(열파)에 연간 20일 이상 노출 되어 있다고 보았다. 2003년 유럽 지역의 폭염 당시에는 약 2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후속 조사에서는 최대 7만 명이 숨진 것으로도 밝혀졌다.
우리나라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18년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폭염의 습격을 받았다. 기상자료개방포털(data.kma.go.kr)에 따르면 1973년부터 2017년까지 폭염일수가 평균 10.1일인데 반해 2018년 여름의 폭염일수는 무려 31.5일이다. 2019년 8월 13일 현재 평균을 넘어서 11.8일을 기록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수 역시 늘어나고 있다. 2011년 443명인데 반해, 2018년에는 4,526명으로 무려 10배가 늘었다. 이에 대한 지자체의 대응력도 낮다. 지난 8월 1일 환경부는 전국 229곳의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기상청의 기후전망 시나리오(RCP 4.5)를 활용해 2021~2030년 폭염 위험도를 평가한 결과 ‘높음’ 이상 지역이 55%(126곳)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회적약자에게 더 위협적인 폭염
폭염과 관련해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불평등에 관한 문제이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는 유례없는 폭염이 발생했다. 가장 더웠다는 7월 13일의 경우 무려 섭씨 41도, 체감온도는 48도까지 치솟았다. 이 무시무시한 폭염으로 인해 7월 한 달 동안에 시카고에서만 700명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더 큰 문제는 자연재해만이 아니였다는 점이다.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2000년에 《폭염사회》라는 책을 출간하며 도시의 사회적 기관들을 조사하면서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한 사회적 부검을 시행한다. 그 결과 폭염 사상자의 73%가 65세 이상 노인이며, 민족 및 인종 집단별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는 점을 밝혀낸다. 혼자 사는 사람들, 폭염에도 집을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 사회활동을 하지 않아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폭염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1995년 이후 시카고에서는 나름의 사회 시스 템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폭염의 위험을 알리는 소책자를 도시 곳곳에 비치하고, 폭염의 위협만을 전담하는 웹사이트도 구축하고, 응급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무엇보다 고립된 노인들의 연락망을 확장하고 노인 커뮤니티 센터를 활용함으로써 계절에 따른 생존 전략을 교육하는 등 고립된 노인과 취약 계층을 적극적으로 돌봤다.
우리는 아직 대비가 부족하다. 동네마다 폭염을 피할 수 있는 ‘무더위 쉼터’가 마련되지만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제한적이다. 거동하기가 불편한 어르신들이 혼자 집을 나와서 정해진 쉼터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가정방문과 안부전화도 실시하고 있지만, 폭염에 방치된 소외된 이웃들을 촘촘하게 보살피기에는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형편이다.
살인적인 폭염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
일터는 어떠한가? 실내 주차장의 주차요원, 공사인부,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 주거나 홍보를 하는 사람들,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들 등은 바깥 날씨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가이드》를 통해 작업장에서 물, 그늘, 휴식 열사병 예방을 위한 3대 기본수칙이 지켜질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폭염특보 발령 시 1시간 주기로 10~15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휴식하거나 실내에서 안전보건교육을 하는 방안을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기획하고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전문의 등이 함께 쓴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에는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 사망자 이야기가 나온다. 2014년 8월 한여름 조선소에서 작업하던 만 23살의 젊은 하청노동자는 혼자 쓰러진 상태로 동료 작업자에게 발견되어 응급실로 후송되었으나 결국 사망했다. 선박의 내부에서 안전모를 눌러쓰고 보안경과 방진마스크에 두껍고 뻣뻣한 용접복 거기에 절그럭거리는 안전대까지 둘러야 하는 작업환경에 체감 기온은 한없이 상승한다. 더욱이 경력이 짧을수록, 하청의 단계가 아래로 향할수록 짋어져야 할 작업장비는 더욱 무거워진다. 무엇보다 작업을 중단할 수 없는 환경. 책에 나오는 휴대전화 문자의 내용이다.
고인: “반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내일 연차 내고 이번 주 쉬고 싶습니다. 절대 다른 뜻은 없습니다.(중략) 000한테 정말 미안하고 반장님께 정말 죄송합니다(하략)
반장: 낼 물량을 보고도? 엿 먹어라 이기네?
고인: 출근하겠습니다. 반장님.
정치학자 하승우는 《정치의 약속》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할 뿐 아니라 변화된 기후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작업중지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폭염과 혹한을 피할 수 없다면 노동자들이 폭염 등을 이유로 작업중단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현재의 고탄소 기반의 성장중독 사회를 벗어나 탄소제로 녹색공존으로 전환이라고 한다.
지구는 기후변화를 통해 그동안 오직 성장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인류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 경고의 무게가 사회약자에게 실리고 있다. 이제는 함께 얘기하고 변해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