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학의 인문학 산책] 논어의 인문학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은 하급 무사로 키가 10척이었다. 당시 1척은 22.5cm이었으니 2m 25cm의 장신이다. 공자의 키도 9척 6촌으로 2m 16cm이다.
오늘날에도 공자의 고향인 산동 지방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호방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을 산뚱따한(山東大漢)이라 부른다. 숙량흘은 아들 공자 덕에 북송 진종(1008) 때 제국공(齊國公)에 추봉 되었고, 청나라 옹정제 때 계성왕에 추봉 되었다.
숙량흘은 셋째 부인 안징재(顔徵在)에게서 공자를 얻었다. 숙량흘은 공자 나이 3세 때 사망하였고 이후 공자 가족은 숙량흘이 대부로 있던 추읍에서 곡부 시내인 궐리촌(闕里村)으로 이사하였다.
그리하여 공자의 고향을 궐리라고 한다. 현재 경기도 오산과 충남 논산에 있는 공자 사당인 궐리사(闕里祠)는 이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공자의 어머니는 안징재(顔徵在, BC568-535)이다. 노나라 곡부 출신이며 죽은 사람 얼굴을 화장하는 직업인 안(顔)씨가의 셋째 딸이다.
16세 때 70세인 숙량흘에게 출가하여 18세 때 공자를 출산하고, 공자가 17세 때 34세로 사망하였다. 기록에 따라 41세 사망 등 나이가 다르게 나타난다. 남편 숙량흘이 추봉 되어 계성왕부인, 노국 태부인에 추증되었다.
사마천은 「사기 史記」<공자세가>에서 숙량흘과 안씨녀의 결혼을 야합(野合)으로 기록하였다. 이는 남녀 간의 합당치 못한 결합을 의미한다.
비정상적 결합 또는 예에 맞지 않는 결합으로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하였거나 생식능력 관점에서 볼 때 남자 16-64세, 여자 14-49세를 벗어난 결합을 말한다.
공씨 가문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였거나 숙량흘이 70세로 생식능력을 벗어났고 안씨녀가 16세로 생식능력에 다소 못 미치는 비정상적 범위에서 결합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자가 3세이던 BC549년에 아버지 숙량흘이 별세했다. 이는 공자의 인생에서 아주 중대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심리학적 분석에 의하면 공자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것이 몰입과 창의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헝가리계 미국의 심리학자인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1934- )는 <몰입의 즐거움 Finding Flow>이라는 책에서 몰입이 창의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또한,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창의성을 불러오는 몰입은 좌절이 없다면 절대 가질 수 없는 경험이라고 하였다.
칙센트미하이의 또 다른 책 <창의성의 즐거움 Creativity>을 보면 어릴 때 아버지의 사망이 창의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공자의 손자인 자사는 3세 때 아버지 백어가 사망했고, 맹자는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한석봉도 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적인 인간의 10가지 특성을 복합성으로 규정하고, 창의적인 인간은 외향성과 내향성, 책임감과 무책임, 겸손과 자존심, 보수성과 개혁성, 남성성과 여성성, 주관성과 객관성, 상상력과 현실감, 명석함과 천진함, 활동성과 여유, 즐거움과 고뇌를 두루 갖추었다고 하였다.
이는 한마디로 치우침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동양 최고(最古)의 의서인 <황제내경>에서 말하는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 즉 음양이 균형을 이룬 상태와도 같다.
<논어> 학이편 10장에서 언급된 공자의 5덕인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도 마찬가지다. <논어> 미자편 8장에서 공자가 자신을 가리켜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 즉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다고 한 것도 같은 의미이다. 또한, 한결같이 알맞은 상태를 말하는 중용(中庸)도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공자와 논어의 인간형은 바로 21c가 추구하는 인간형인 창의·융합인간형과 일치한다. 이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자아실현형 인간(BeAllYouCanBe)이다. 참고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의 7가지 특징은 독선적, 충동적, 논쟁적, 유치함, 부주의함, 신경증적임, 활동 과다적인 것이다.
공자가 17세 되던 BC 535년에 어머니 안쟁재가 사망하였다. 같은 해 노나라 삼환의 실세인 계무자와 맹희자도 사망하였다.
이에 노나라에서 새로운 실세로 맹의자와 계평자가 등장하게 된다. 맹희자의 유언으로 맹희자의 두 아들인 맹의자와 남궁경숙이 공자에게 예(禮)를 배우게 된다.
공자는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에 소년가장이 되고 고아와 같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논어> 자한편 6장에 언급된 ‘오소야천 고다능비사(吾少也賤 故多能鄙事)’ “나는 젊었을 때 미천했기 때문에 비천한 일을 할 줄 아는 것이 많다.”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유교의 특색인 백성에 대한 동정심과 제자 교육 정신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인생의 3대 악재는 초년 출세, 중년 상처, 노년 빈곤이라고 한다. 카프만 부인이 쓴 <광야의 샘>을 보면 ‘누에나방의 교훈’이 있는데, 누에나방이 작은 구멍으로 나오려고 고생하는 것이 가여워서 누에고치의 구멍을 넓혀주었더니 누에나방이 쉽게 고치에서 나왔지만 날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공자의 삶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몇 년 전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청년층 주거정책을 묻는 물음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식으로 답해 논란이 일었던 것과는 다른 의미다.
첫댓글 공자 나이 3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17세에 어머니마저 사망하여 소년가장이 되었고
고아와 같이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새롭다.
공자의 삶은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라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