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운동이 봉쇄된 후에 국교도적 청교도들은 반교회정치체제 운동인 저항운동에서 정부의 검사와 저지를 받을 수 없는 개인적•내적 영성의 개혁으로 전환하였다. 1593년 분리주의자 존 펜리(John Penry)와 헨리 배로우(Henry Barrowe) 등이 사형을 당하자 국교도적 청교도들은 영적 설교, 개인 윤리의 촉구, 가족 종교 등을 중시하기 시작하였다. 1590년대에 ‘가족 종교’는 주일성수를 강조했던 것과 더불어 당시 청교도운동의 특징이 되었다. 매일 가정기도가 드려졌고, 주일에는 일체의 운동이나 오락을 금지하였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시대가 변하여 교회의 참된 개혁이 가능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1590년부터 1640년까지 영국에서 반교회정치체제 운동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 청교도운동이 패배한 것으로 보였으나 실상은 내적으로 더 강력한 힘을 기른 것으로 평가되었다. 1640년대에 다가오는 시민전쟁의 강력하고도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힐은 청교도운동이 개인 윤리적 영성으로 전환된 것을 교회개혁의 실패로 보지 않고, 오히려 “동일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경로”로 보았다. 1607년 국교회 감독 토마스 로저스(Thomas Rogers)는 1580년 말과 1590년 초를 회고하면서 변화된 청교도운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사람들은 패배하였으나 죽지 않았고 저 구석에 후퇴하여 있더니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그 반격은 평신도들을 목표로 쏟아 부은 수많은 책들이었다.”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그는 초기 장로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반체제운동에 가담하였으나 장로교운동이 봉쇄된 이후로는 신자의 영성과 경건훈련으로 방향을 돌려, 칼빈주의를 기초로 한 설교와 목회에 전념하였다. 그는 1584년부터 1595년까지 케임브리지의 크라이스트칼리지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많은 학생들을 영적으로 각성시켰다. 이후에는 세인트 앤드루스 교회의 강사로서 17세기의 청교도 사역자들을 배출하였다. 그의 영향을 받아 청교도운동의 지도자로 성장한 이들은 존 프레스톤, 윌리엄 에임즈, 존 코튼, 윌리엄 가우지, 토마스 굿윈 등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청교도 경건의 아버지로 불렸다. 그는 수많은 저작으로 청교도 영성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퍼킨스는 그릇된 신학에 기초한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바로 잡기 위해서 1590년 『기독교의 기초』(The Foundation of Christian Religion)를 출판하였다.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오류는 성경보다 교회회의와 교황의 권위를 높이는 데서 온다고 지적하고, 교회의 전통들과 교회회의의 결정들, 교황의 교서들을 성경에 비추어 재평가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라틴어로 Armilla Aurea를 출판하고, 1591년 번역 증보하여 『황금사슬』(A Golden Chain)을 출판하였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난 예정론 논쟁 때문이었다. 1579년 케임브리지 신학부 교수였던 피터 베로(Peter Baro)가 요나서 강의를 통해서 영국에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도입하려고 하자 로렌스 체더튼(Laurence Chaderton)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퍼킨스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칼빈의 예정론을 변호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3가지의 예정론을 논박하기 위해서 예정론 논쟁에 뛰어들었다. 피터 베로와 윌리엄 바렛(William Barret)은 1595년 퍼킨스의 예정론 교리를 정면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언약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황금사슬』은 칼빈의 『기독교강요』1559년판의 구조를 충실히 따랐고 내용에 있어서도 칼빈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칼빈에 비해 보다 실천적이었다. 퍼킨스는 성령의 유효한 역사로서 우리 심령에 나타난 표시와 증거들을 더욱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작정으로서 인간에 대한 예정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이것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외적 방법’(outward menans)은 ‘하나님의 언약과 그것의 인침’(God's covenants, and the seale thereof)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의 쌍무적 성격을 띤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이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고, 인간의 약속은 하나님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퍼킨스는 언약사상을 통해 인간의 능동적인 참여를 강하게 유발시키려고 노력했다. 그의 신학적 특징에 대해서 원종천은 “이것은 청교도 반체제운동(classis movement)으로부터 전환되어 개인 경건을 도모하는 새로운 개혁방법이었다. 퍼킨스는 예정론으로 말미암아 나타날 수 있는 수동성과 운명론으로 인한 무기력증을 타파하고, 언약사상을 통하여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며, 하나님 앞에서 윤리와 경건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촉구했다.”고 평가하였다. 조일 베키와 랜들 페더슨도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상극으로 보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친구들’로 취급하였다.”고 보았다. 켄달(R. T. Kendall)은 퍼킨스의 예정론을 체험적 예정론(experimental predestinarianism)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퍼킨스의 신학은 칼빈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김홍만도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하였다. “퍼킨스가 구원의 서정으로 예정론을 설명한 것은 칼빈의 주된 가르침들을 상승시켜서 칼빈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고, 퍼킨스의 추종자들로 청교도 신학의 틀을 만들었으며, 도르트대회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영향을 미쳤다.” 티모시 조지 (Timothy George)는 “퍼킨스의 구원의 서정이 라무스주의의 영향 가운데 칼빈의 신학을 변호하고, 칼빈의 신학을 더욱 정교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하인리히 헤페(Heinrich Heppe)는 퍼킨스의 신학이 그리스도의 신비적 연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았다.
퍼킨스의 영성은 그를 영향력 있는 설교자요 신학자가 되게 하였다. 1592년에 라틴어로 출판한 『설교의 기술』(The Art of Prophesying)은 17세기 뉴잉글랜드 청교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양심의 경우』와 『황금사슬』은 영국 뿐 아니라 유럽과 신대륙 칼빈주의자들의 교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퍼킨스의 저술들은 최소한 50판 이상 스위스와 독일 곳곳에서 인쇄되었고,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아일랜드어, 웨일스어, 헝가리어, 체코어로 번역되었다.
퍼킨스의 신학은 영국 청교도 신학의 기초가 되었고 미국과 네덜란드, 유럽 등 서구 사회에 방대한 영향을 미쳤다. 윌리엄 에임스, 폴 베인스, 로저스, 테일러 등 케임브리지대학의 청교도들은 실천적 신학운동과 교리의 실천적 적용을 강조하였다. 그들에 의하여 청교도운동은 영국 교회의 핵심적인 신앙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에임스를 포함하여 리처드 십스, 존 코튼, 존 프레스턴 등과 같은 신학자들을 통해서 그 영향이 지속되었다.
< 참고문헌 >
◇원종천, 『칼빈과 청교도 영성』(서울: 도서출판 하나, 1994)
◇Perkins, The Works, vol. I : 원종천, “영국 청교도 영성 발전 과정의 역사적 조명,” 「신학과 선교」 2005년 9호(양평: 아세아연합신학대학대학교출판부, 2005)
◇Timothy George, John Robinson and the English Separatist Tradition (Macon: Mercer University Press, 2005) : 김홍만, “윌리엄 퍼킨스의 칼빈 신학의 계승과 적용”,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총서 7』, 이상규 편(부산: 개혁주의학술원, 2013)
◇Richard Muller, Christ and Decree (Grand Rapids: Baker, 1986) : 김홍만, “윌리엄 퍼킨스의 칼빈 신학의 계승과 적용”,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총서 7』, 이상규 편(부산: 개혁주의학술원, 2013)
◇오덕교, 『청교도 이야기』(서울: 이레서원, 2002)
◇조엘 비키, 랜들 페더슨 편저, 『청교도를 만나다』, 이상웅, 이한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첫댓글 좋은 글 써주셨네요. 퍼킨슨은 제가 책 속 형님들 중 한분으로 모시는 분인데, 이렇게 카페에서 다루어 주시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코람데오 미진한 부분들이 있어 집에 가서 수정하겠습니다.
청교도 하면 미국과 추수감사절만 생각는데, 이미 영국에서 발전한 거군요.
잘 읽고 유익했습니다.
16세기 대륙의 종교개혁이 영국에 영향을 주어 17세기 영국에서 청교도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이 카페에서 윌리엄 퍼킨스에 관한 글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회원님의 글에서 또 많이 배웁니다^^
아직 황금사슬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기회 되는대로 꼭 읽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