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 현玄
| [GALLERIES] Hakgojae Gallery
2021.9.8 – 10.17
김현식
Installation view
학고재는 2021년 9월 8일(수)부터 10월 17일(일)까지 김현식(b. 1965, 경상남도 산청) 개인전 《현玄》을 연다. 지난 2018년 학고재 개인전 이후 3년 만의 개인전이다. 김현식은 평면 속에 색이나 형태를 이용하여 깊고 아득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노자의 “현은 온갖 신묘함의 문”이라는 생각을 미술로 풀어내는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340여 점의 작품은 그가 동아시아의 사상과 미감을 서구 모더니티에 불어넣어 얻은 결실이다. 그는 언제나 작가를 넘어서 관객과 함께하는 미술 여행의 길잡이이길 원한다. 이번에는 노자가 말한 “만물의 신묘함 을 간직하고 있는” 현(玄)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표면 너머의 무한한 공간과 조우함으로써 외면 우월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2018년 2월에 연 개인전 《빛이 메아리치다》에서 김현식은 평면으로부터 입체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레진(resin)을 붓고 단단히 굳힌 후 긁어내는 행위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평면 속에 드러낸 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그동안 구축해왔던 평면 속 공간을 더 넓고 깊게 구현했다. 레진을 붓고 말리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 다다르고자 했다. 동양에서 말하는 현(玄)으로서의 절대 공간을 표현함으로써, 숭고 주의 회화를 재해석한 것이다.
Installation view
현玄: 색을 넘어선 본질로서의 공간
‘하늘 천(天), 따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 누구에게나 익숙한 천자문의 첫 네 글자다. 으레 ‘검을 현’으로 알고 있는 현(玄)은 단순한 검은색을 뜻하지 않는다. 또 다른 ‘검다’는 의미를 지닌 글자, 검을 흑(黑)이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이라면, 현(玄)은 모든 색이 섞여서 검어진 색을 뜻한다. 더 나아가 색뿐만이 아닌, 우주의 진리가 섞인 색이라고 한다. 김현식은 이러한 현(玄)을 작품에 담는다. 모든 것을 품은 공간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지 않고 두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시각 예술로서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위해 김현식은 거꾸로 접근하는 방법론을 택했다. “그 깊이가 아득하여 오묘한 색으로 보이는 현(玄)”이기에 역으로 ‘색채를 먼저 보임’으로써 아득한 깊이를 가늠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표면의 색이나 형은 공간으로 넘어가기 위한 관문과도 같다. 그 문을 넘으면 본질과 현상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운율을 품는 공간, 현(玄)의 세계를 직감할 수 있다.
Who Likes Obang Color_Y, 2021,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 54x54x7cm
동아시아의 철학을 통한 서구 미술의 재해석
김현식은 홍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회화과를 서양화과라고 칭하는 대학들도 있듯이, 현재 한국의 고등 미술 교육은 서구의 모더니티(modernity)로서의 미술 학습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에서 발생한 ‘모더니티’라는 개념에 대해서 동아시아인은 후발 주자일 수밖에 없기에, 한국의 동시대 미술 작가가 이 개념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지에 따라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정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현식은 동양의 미감과 사상을 통해 서양에서 제창한 숭고주의 회화를 재해석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Beyond the Visible, 2021,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135x135x7cm
김현식의 공간은 원말 명초에 활동했던 예찬(倪瓚, 1301-1374)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절대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이 공간에 대해 ‘불변의 상(常)의 세계’라고 언급하며, 자신 또한 작품 안에 이러한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왔다. 또한, 그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색이 가지는 힘과 압도적 깊이감에 주목했다. 다만, 숭고주의 회화가 작품의 규모로 관객을 압도하며 숭고미를 추구했다면, 김현식은 면적이 아닌 깊이로서 공간을 구축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모더니티와 한국의 전통을 함께 계승하고자 했던 한국 근대 미술 거장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진명 미술비평가는 이번 전시 서문을 통해 김현식을 “김환기, 윤형근으로 이어지는 한국 대가들의 유산을 상속받을 추정상속인(推定相續人)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김현식은 1965년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199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학고재, 모거모던아트(런던), 아트로프트(브뤼셀), 노블레스 컬렉션 등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천), 부산시립미술관(부산), 시안미술관(경북 영천) 등 주요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트 바젤 홍콩(홍콩), 아트 브뤼셀(벨기에), 아트 파리스(프랑스) 등 해외 아트페어에서 컬렉터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며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울산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학고재 우정우 디렉터는 "동양에서 말하는 현(玄)으로서의 절대 공간을 표현함으로써, 숭고주의 회화를 재해석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작품 '거울'(2021) 연작은 관찰자의 시선이 점진적으로 심연에 다다르게 한다. 작품을 보다 보면, 표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작품 속 공간 사이를 시선이 넘나들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현식은 이 연작을 큰 규모로(300) 선보여 우주를 구현하고자 했다. 연못에 비친 자신이 모습을 보고 이전에는 몰랐던 감정을 깨닫게 되었던 신화 속 나르시스처럼, 모든 것을 품은 현(玄)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다.
작가는 "표면 너머의 무한한 공간과 조우함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고 바랐다.이번 전시에 '신묘함의 문을 여는 것' 같은 작품 340점을 공개한다
김현식: 현玄
김현식(金玄植, 1965-)은 회화 속에 시간을 포획한다. 수평으로 레진을 올리고 마른 후 칼과 송곳으로 수직선을 그은 후 물감을 바르고 다시 레진을 올려서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거듭되는 작업의 결과로 무한공간이 펼쳐진다.
현(玄)은 세계의 불가사의한 섭리를 일컫는 형용사이다. 현(玄)은 우주가 운영되는 알 수 없는 비밀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말이다. 따라서 현묘하다. 적막무짐하다. 너무나 깊고 어두워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두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을 다만 직감할 수 있다. 그것이 현(玄)의 세계다. 이 말은 춘추시대와 위진 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사용된다.
김현식 작가는 모더니티 회화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고민해왔다. 모더니티 회화는 풍경과 인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던 고전적 회화에 대한 반발로 태어났다. 이와 다르게 동아시아의 경우 풍경과 인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나의 심경(心境)과 대상이 완벽히 감흥을 이루는 경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관물회신(觀物會神)이라 한다. 김현식 작가는 관물회신의 정신으로 세계와 마주했다. 아울러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 현묘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관점으로 세계를 파악하여 모더니티를 재해석했다. 김현식이 그리는 세계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빛나는 색채의 이면의 무한 속으로 한없이 침잠하는 동시에 이내 앞으로 질주하듯 다가오는 수직선들의 운동은 유례가 없었던 새로운 회화이다. 김현식의 회화는 우리 고전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성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모더니티 철학의 문제의식을 재해석해 얻은 결실이다. 이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은 현재 서구의 미술 현장에서 인정받아 후일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다.
– 「현(玄)」 | 이진명 · 미학, 동양학,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