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최길하
접골되었던 등뼈의 탁본을 떼어낸 후 아버지는 영영 일어서지 못했
다. 그해 한 달이 더 많은 음력 윤사월. 손가락 마디마다 천간과 지
지의 암호를 걸어두었던 아버지의 60갑자 방정식도 흔들렸다.
나는 가끔 아버지의 자서전 빈 지개를 져보곤 한다. 이 단순한 구조
의 미학. 이 건축물 만큼이나 아버지의 문장도 단순했다. 늑골과 숨
결만을 감싼 술이부작의 문장. 설형문자 같은 구조와 구성들로 된
문장은 언어를 넘고 울림은 컸다.
달무리가 걸리고 새들이 앉았다 떠날 때 나무가지가 떨리듯, 지개의
뿔과 가지에도 파동이 왔다.
하늘을 향해 경배를 드리던 두 개의 기둥과, 꽃이 피고 잎마다 귀를
달고 팔랑거렸을 잡목으로 가로지른 횡경막. 생선뼈를 발라 놓은 듯
등뼈와 소소한 가시뼈들의 부푼 들숨.
시베리아의 사슴뿔이 경주의 무덤에서 나오듯 어느 달밤엔 아버지가
멜빵끈을 조율하는 것이 꼭 첼로를 어루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날은 흰 이빨을 앙크랗게 드러낸 악어 같기도 했다. 아버지 스스로
접신이 되어 명줄을 늘렸다는 자기 연민과 위로의 문장도 있다. 5일
장이나 친척 애경사에 다녀오실 때를 떠올리며, 빈 등의 적막함에
깜빡 속을 뻔도 하였다. 나는 이 변명의 문장을 "도반이었다"라고
달래서 읽기도 했다.
돌을 파서 적어두었던 서사를 종이에 떠내는 탁본은, 유묵의 향기가
훅 올라왔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복숭아꽃과 복숭아꽃이 비에 젖어
비친 속살 같은 것. 저릿저릿 내 등골에 전율이 왔다. 자기 몸에서 가
장 먼 곳. 등은 망망대해의 등대일지 모른다. 내 등에 업힌 아버지의
등, 산 넘어 사기막골의 봄으로, 물 건너 안골 수숫잎 서걱이는 가을
로, 화석이 된 악어와 현악기의 파동은 나를 자꾸 보챈다.
慈사랑과 悲슬픔은 한 몸 측은지심 감기도 하늘 땅 響 울력의 온도 윤사월
진동 공명주파수 지개 무생물 1차원 환상통은 2차도 아니고 3-4차로 생물이 되고
내 몸으로 접신이 된 것
60갑
자의 운명으로 얽킨 아버지의 자서전은 내 등에서 진동했다.
목극금 그러나 질서를 부여한다 사물의 영성과 감각계 사물 내부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
말이 지나간 행간의 울림 그래서 언어는 풀어지고 자기자이 생긴다.
영들의 세계는 물결처럼 일렁인다 파동 양자역학의 미시
감각의 세계에서 비어있던 공간들이 영혼들의 세계에선 투명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