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제시장 번영회 사무실지금은 국제시장 1공구부터 6공구까지 80% 가까이가 영세상인에 거의가 임대예요. 예전처럼 장사가 안되잖아요? 일본의 경우에도 보세요, 재래시장은 전부 죽었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다시 살리려면 접근성이 용이하고 쉴 수 있는 공간 확보가 중요한데 재개발 얘기가 나온 지 얼마나 됐어요? 그래도 그게 잘 안돼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재건축하려면 3~4년은 족히 걸리는데 누가 손해보고 그때까지 기다리겠어요? 에이, 1세대 상인은 아예 없다니까 그러시네. 얼마 전에도 SBS 피딘가 기자가 취재하러 왔다가 그냥 갔어요. 물론 취지야 좋지. 더군다나 피란시절부터 형성된 곳이 국제시장이니 곳곳에 삶의 애환이 깃들어 있긴 하죠. 하지만 그런 분들이 없다니까요?
#2 국제시장 골목예? 뭐라구요? 국제시장 생길 때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하신 1세대 상인을 섭외했다구요? 아니, 그런 분은 거의 돌아가시고 없다던데? 확실히 부친이 황해도에서 피란 오신 분이라 신발 문수(?)가 장난 아니시네요. 근데 그 분은 어디쯤에 계신대요? 아뇨, 전 지금 취재한다고 발바닥 땀나게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겨우 한 분 피프광장에서 인터뷰 따긴 했는데 이거 정말 장난 아니네요. 네, 번영회 사무실에서도 꽝치고 나오는 길입니다. 부평시장 한복골목의 평화치과 맞은편, 상호가 김연아 한복이라구요? 알겠습니다, 장사하시는 분들이라 바빠서 성가시게 해도 일단 시도는 해봐야죠. 아뇨, 제가 알아서 찾아갈게요. 얘기만 살짝 찔러 놓으시면 됩니다. 예, 취재 끝나면 치과에 잠깐 들러 얼굴이나 뵙고 가죠, 뭐.
왜정 때야 여기가 시내 중심가였지. 일대가 온통 일본인들 적산가옥뿐이었으니까. 동란 땐 원조 밀가루 골목이었는데 가루가 날려 안개 낀 것 같았어.(1대 김연아) 이 골목 일대에 이백 곳 넘는 한복가게가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이 문을 닫았어요. 이건 남자들 책임이 커요. 지금은 명절 때도 한복은 안 입잖아요.(2대 이수인·62) 디자인 전공을 살려 2012 한복패션쇼 출품작을 준비 중이에요.(3대 황수진·35)
#3 김연아 한복난 얘기할 것도 없다니까,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하이고, 왜정 때야 당연히 여기가 시내 중심가였지. 이 일대가 온통 일본인들의 적산가옥뿐이었으니까. 그런데 항복하는 통에 죄다 도망치듯이 떠났으니 마을이 텅텅 빌 수밖에는. 그 양반들도 아마 좀 있다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러니 대문 앞에 판자로 못만 쳐놓고 마실가듯 갔겠지. 해방 되고 어수선한 상황이니 집 없는 양반들은 잘됐다 싶어 적산가옥에 그냥 들어가 살았어. 나중에 불하받아 제 집으로 삼은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그런 양반들, 한마디로 봉잡은 거지. 덕분에 졸부자 된 사람도 많아. 덕분에 후손들은 떵떵거리고 살고. 동란 때?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 난 전쟁이 난 줄도 몰랐어요. 피란민이 몰려오는 바람에 전쟁이 났구나 했을 뿐이지. 피란 온 양반들, 우리도 앞방, 뒷방 세줄 정도였어. 그래도 방 얻은 사람들은 돈이 있는 양반들이고 없는 양반들은 용두산이나 보수동 산기슭에 판자 치고 살았어. 그때만 해도 거긴 집은 없고 소나무만 서 있는 산이었으니까. 내가 스물두 살 때 철모르고 큰딸 낳고 시작할 때만 해도 피란시절이었으니 당연히 요 앞에도 적산가옥이 몇 채는 있었어. 지금이야 흔적이 죄다 없어졌지만서두. 여기 부평시장이 형성된 건 피란민들이 몰려와 장사하면서 시작됐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난 피란 온 게 아니고 원래 보수동이라. 아버지 고향이 경주였는데 여기 위에 있는 경남도청에 근무하면서 이주를 했어.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젊은이들 말마따나 오리지널 토박이인 셈이지. 그때? 그때는 이 골목에도 한복집은 몇 집 없었어. 근데 하나둘 생기면서 사람들이 한복 골목으로 부르게 된 거지. 그 전까진 여긴 밀가루 골목이었어. 원조 밀가루를 팔던 곳이었지. 뭐 안개 낀 것처럼 해종일 허연 가루가 날아다녔다면 말 다했지 뭐. 나도 거기서 한복 만들다가 이리로 옮겨온 거야. 원래 이 골목에서 진짜 오래된 집은 '현대한복'이랑 '청실깨끼'였지. 근데 두 집 양반이 차례로 칠성판 멘 뒤 문을 닫아버렸으니 졸지에 내가 이 골목의 제일 원로가 되어버린 셈이라. 근데 나도 정기적으로 신장 투석을 받는 상태니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도 몰라. 나야 뭐 힘닿는 데까지는 할 생각이지만서두.
가게를 연 건 그냥 소일거리 삼아서지, 나야 뭐 그리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니까. 사실 내가 왜정 때 드레스메이커학원을 나왔어. 양장기술이 있다 보니 기술 썩히기도 뭣해 집에서 주문 들어오면 가용으로 쓰려고 한두 벌씩 한복을 만들었어. 근데 솜씨도 인정해주고 기뻐도 하니 본격적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지. 그때가 여기 있는 우리 큰딸이 두 살 때였으니까 하마 60년 가까이 됐네. 지금이야 한복도 사양길이지만 평생 한복만 만진 셈이니 왜 할 말이 없겠어? 그런 건 우리 딸이 잘 알고 또 그런 일을 하니까 물어보구려.
#3 김연아 한복 - 2세대 이수인(62세)
흠흠, 원래 제가 서울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쭉 해왔어요. 영어를 전공해 비서실에서 근무했죠. 그러다가 결혼하면서 남편 때문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셈이죠. 근데 그때는 이미 어머님의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일감이 밀리는 상황이었어요. 그 바람에 도와주러 나섰다가 같이 이 길을 가게 된 거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전통 의상인 한복이 이렇게 사양길로 접어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이 골목 일대가 한때 이백 곳이 넘는 한복 가게가 있었다니까요? 근데 지금은 절반이 문 닫고 절반이 남았어요.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나라 남자들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생각해봐요, 내가 대학 졸업할 때만 해도 한복을 입었는데 지금은 명절 때도 안 입잖아요? 그게 다 남자들의 의식 문제 때문이에요. 그딴 성가신 옷을 왜 입느냐고 전통을 무시하니 여자들이 입는 걸 고집할 수 있어요? 남자가 먼저 입고 자녀들에게도 전통문화와 한복의 가치를 가르쳤다면 이 꼴이 나진 않았죠. 한복은 전통문화의 상징이에요.
물론 그 책임이 전적으로 남자일 순 없죠, 우리 모두의 인식문제이니까요. 제가 방콕, 하와이, 필리핀 같은 외국에서 열리는 한복 페스티벌에도 많이 참여해봤어요. 근데 외국에서는 한복 디자이너라며 깍듯이 예우를 해요. 헌데 우리나라에 오면 단순한 한복쟁이 취급을 해요. 우리도 프랑스인처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프랑스, 그 양반들 보세요. 문화적 우월성 때문에 미국인이라고 하면 화를 낼 정도라 하잖아요? 어머니나 저는 자부심은 갖고 있습니다. 대대로 전통문화를 고수한다는 긍지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딸, 3세대가 함께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겠죠. 얘, 수진아. 너도 나와서 한마디 해봐.
#3 김연아 한복 - 3세대 황수진(35세)엄마는, 참. 왜 저까지 나서게 만드는지 모르겠네? 저기 있잖아요, 전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한복 만드는 일을 어릴 때부터 봤으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죠. 게다가 어머니의 조언도 영향을 주었구요. 지금은 제 전공을 살려 시대 흐름에 맞춰 한복을 디자인화 하는 걸 모토로 삼아 작업 중입니다. 아뇨, 저는 주로 안에서 디자인 업무만 하구요,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가게에서 일해요. 한복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게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잖아요? 다만 그것을 이어가려는 장인정신마저 잃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요. 요즘요, 정신없어요. 2012년에 한복 패션쇼가 열리거든요. 거기에 출품할 한복 작업을 준비하는 중이거든요. 우리 삼대가 라이온스클럽 총회 패션쇼를 맡았으니 응당 자랑이고 자부심이 생길 일이죠. 그래서 이왕 맡은 거 보란 듯이 해내고 싶어요. 물론 젊은 세대니까 우리 세대가 해야 할 나름의 몫이야 있죠. 암튼 제가 맡은 몫만은 열심히 해내고 싶어요. 그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 중 하나일 테니까요. lsangsup@hanmail.net
취재 후일담
국제시장 한 귀퉁이에서 60여 년 동안 외길만을 고집한 상인 1세대. 모처럼 만난 부산 장인 토박이라 더없이 반가웠다. 그래서 여인 삼대를 만나는 과정을 진솔하게 꾸며 보았다. 전란의 상처를 겪지 않아서인지, 내밀한 상처를 들춰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개량복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도 전통 우리 한복만을 만들며 장인정신을 이어오고 있으니 이런 고집은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 우리 옷임에도 불구하고 한복을 입지 않는 시대이니 더더욱. 조만간 또, 추석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