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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깼다. 추웠다. 짙은 푸른빛이 텐트 안을 물들이고 있다. 빈 조니워커병, 과자 부스러기, 토해 게워 놓은 오물들, 둘둘 말려 꿍쳐 박힌 옷가지, 매트리스 바닥에 여기저기 고인 물 …. 텐트 문의 자크를 열었다. 밖은 어젯밤 내내 휘몰아치던 폭풍우가 끝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텐트는 절반쯤 기울어 쓰러져 있다. 지주대 하나가 부러졌다. 어제 밤 폭풍을 견디지 못한 거다. 그저 그만하려니 했더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새로 산 텐트인데... 울통은 벗고 팬티만 입었는데 젖었다. 밖으로 나갔다. 알몸을 때려대는 날려 부서지는 빗줄기가 제법 매섭다. 춥다. 하긴, 3100m 위 산중 폭풍 새벽 속이니, 게다가 젖은 알몸이고. 텐트를 덮고 있어야할 호루가 없다. 그래서 텐트 안이 물바다가 된 거다. 저만큼 바위 틈 사이에 호루가 보인다. 다행이다. 날리지 말라고 돌로 눌러 놓았는데, 돌로 눌러둔 곳이 험하게 찢어졌다. 아깝다. 3100m 산 꼭대기 만년설 위 바위에 아슬하게 친 텐트. 바람에 텐트가 통째로 날려 산비탈로 떨어질까, 설마 걱정이다.
우에마쓰는 자고 있다. 침낭 속에 몸을 넣고 비닐로 그 침낭을 칭칭 둘러 감쌌다. 엄청 따뜻하고 아늑해 보인다. 얄미운 친구. 누군 팬티만 입고 물에 젖어 알몸으로 부들부들 떠는데. 그를 탓할 건 없다. 술만 보면 끝을 보고 마는 내 고질 탓. 우에마쓰는 병뚜껑에 따른 술 한 잔쯤 마셨을까? 바닥을 보고 뒹굴고 있는 760ml 빈 병은 내가 다 마신 거다. 술은 우에마쓰가 내놓았다. 의형제를 맺은 기념으로 딱 한 잔씩만 하자고. 병뚜껑으로 따른 술 한 잔을 권하며.
우에마쓰는 뭐 저런 놈이 있나 했을 거다. 산행 내내 조금씩 아껴 먹으려고 뚜껑도 안 딴 양주 한 병을 바닥까지 비워 버리고, 잔뜩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양국의 우의를 다지자고 횡설수설하다, 토하고 팬티바람으로 쓰러져 버린 놈. 한국 청년들이란 게 다 저런 놈 같은가 싶을 거다.
마른 옷이 있을까? 배낭을 열었다. 배낭 안에도 물이 고여 있다. 옷가지를 꺼내보니 물이 줄줄 흐른다. 살갗이 퍼렇게 소름이 돋았는데, 입을 만한 마른 것이 없다. 알몸이 차라리 나을까 싶어 젖은 팬티를 벗어 보지만 더 떨리는 게 그나마 젖은 팬티라도 입고 있는 게 낫다. 물에 빠진 침낭을 꽉꽉 짜고 팬티와 런닝도 꽉꽉 짜 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부들부들 떨리지만 한동안 웅크리고 있으니 그래도 좀 나아진다. 여름이라지만 3000m 가 넘은데다 새벽 폭풍우 속이니 체감온도가 영하쯤 될 듯하다. 그나저나 움직일 수 있으려면 한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젖은 침낭 속에서 도무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우에마쓰란 놈, 비닐로 나 좀 덮어 주지, 저는 침낭이 있으면서. 하긴, 나라도 그런 생각 하지 않을 거다. 힘들었을 거다. 양주는 혼자 다 쳐 먹고, 안주하라 내놓은 비상식량을 게걸스럽게 먹더니 바닥에 다 토해 놓고. 그런 상황에서도 조니워커 병이 바닥을 볼 때까지 기다렸으니 우에마쓰는 착한 놈이다. 아니, 정말 좋은 놈이다. 내가 염치없는 놈이다.
오사까에서 나고야를 거쳐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가자고 완행기차를 타고 하루를 들어왔다. 깊은 협곡사이로 중간쯤 아슬아슬한 비탈에 기차길이 있다. 기차길 종점에서 밖으로 나섰더니 멀리 산봉우리에 하얀 氷瀑이 보인다. 만년설도 처음인데 빙폭이라니.
가까이 가 보기로 했다. 오를 생각은 없었다. 버스가 봉우리 밑으로 간단다. 물에 잠긴 고목들이 있는 커다란 호수를 지나 도착한 곳은 뜻밖에 대규모 관광단지다.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바글댄다. 빙폭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해 보기로 하고 사람들을 떠나 숲길로 들어섰다. 오후 한시쯤 봉우리로 향하는 산길에 접어들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사람들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입산이 금지된 산인가? 궁금하지만 쫓겨나면 그만이다. 조금만 오르다, 돌아갈 일을 생각해서 네 시쯤 물러설 작정이었다. 산기슭에 해으름이 뉘웃거리자 돌아가려는데 하산하는 일본 등산객 일행을 만났다. 날더러 올라갈 수 없단다. 산장까지 가는데 12시간 걸리기 때문에 아침 여섯시에 출발해야 한단다. 난 열시쯤 출발했는데 네 시간 쯤 늦은 거다. 망설였다.
텐트도 있고 식량도 있는데 되돌아간다는 게 스스로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일본사람들 앞에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서 경험이 많다고, 산행을 많이 해 봤다고, 껄껄 웃으며, 그들과 작별했다. 3000m 이상은 처음이지만 손전등도 있으니 올라갔다. 산은 험했다. 계단 같은 건 아예 없고, 안전 로프도 없고, 빨간 페인트로 바위에 화살 표시 해 놓은 게 전부다. 빨리 올라간다고 서둘렀는데, 시간은 밤 아홉시쯤 된 거 같은데, 텐트 칠만한 자리가 나오지 않는다. 구석진 바위 틈 사이에 박혀 호루로 몸을 감싸고 비박을 해야 하나? 산장까지 가야하나? 3000m 이상에서 야영을 해보지 않았으니 밤 추위를 알 수 없다. 거의 정상 봉우리에 올라 이제부턴 능선을 타면 되니 힘들 일은 없을 거고, 가는 데 까지 가기로 했다.
얼마쯤 갔을까, 두 개 건너 산봉우리에 사람 같은 모습이 으스름한 능선 빛 언저리에 보인다. 사람일 리는 없겠지 하면서도 반가웠다. 거기까지만 가기로 하고, 사람이 아니라면 근처에서 비박을 하기로 하고 속도를 높였다. 도착해 보니 뜻밖에 사람이다. 그는 바위에 자리를 잡고 짙은 어둠에 갇힌 산 아래를 내려 보며 앉아 있다. 그가 사람이 아니고 나무인 줄 알았다. 한 밤중 3000m 가 넘는 산꼭대기 바위 위에 사람이 걸터앉아 있으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니까. 게다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사람인 줄 가까이 가서 알았을 때 그는 한가롭기조차 했다. 그는 나의 출현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난 그의 곁에 가만히 앉았다. 그의 고즈넉한 분위기로 미루어 일행에서 낙오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번거로움을 피해 약간 늦은 시간에 혼자 출발한 거 같다. 조금 신비해 보이는 그런 타입. 그의 묵상을 방해한 것은 나다. 손전등을 끄고 그의 곁에 앉았다.
‘ How are you? ’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영어를 사용했으니 그는 내가 외국인임을 알았을 것이다.
‘ Are you alone? ’
‘ Fine? ’
‘ I am korean. ’
그는 나를 바라본다. 어둠 속에 그의 눈빛이 날카롭다.
‘ Japan. ’
‘ Will you stay here, tonight? ’
‘ No. ’
그는 너머 산봉우리를 손짓으로 가리킨다.
‘ Over there is Lodge. ’
‘ Are you staying in the Lodge? I have a tent. ’
‘ Me, too. ’
‘ Are you going to use the tent? Camping?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 Let's use one tent only. ok? ’
그는 잠시 망설인다. 마침내.
‘ Ok! ’
그렇게 우리의 동행은 결정되었다.
‘ I am kim. ’
‘ I am uemath. ’
우린 영어와 일어를 섞어 대화를 나눈다. 우에마쓰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고, 전문 사진가다. 테니스와 수영을 즐기고 가끔 산을 찾는다. 나이는 일본나이로 스물아홉 살이다. 나이도 같지만 취미도 같고, 거기다 3190m 산 정상 만년설 바위 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만난 때문인지 너무 쉽게 가까워졌다. 처음 만난 외국인인데도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 아무런 경계심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했다. 깊은 어둠 탓이겠지만 부담 없이 서로의 눈 속 깊이까지 마음껏 들여다 볼 수 있다, 생각했다.
한 시간쯤 지나 그가 일어선다. 난 그를 따라 나선다. 만년설이 시작되고 그는 능숙하게 길을 찾는다. 이 산이 경험이 많은 듯하다. 텐트 칠 자리를 찾았을 때,
‘ Which one we use? ’
물었다.
‘ My... ’
난 남의 나라에 왔는데, 길 안내도 받았고, 해서.
‘ No, My one. My one is new, and strong. ’
‘ My tent was used in the winter. ’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난 그의 말을 무시하고 텐트를 꺼내 펼쳤다. 그도 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거센 비바람 속에서 겨우 텐트를 치고 폭풍에 날아갈까 봐 호루 주변을 무거운 돌맹이로 눌러 놓았다. 텐트 속 램프의 불빛아래 그는 짧은 콧수염과 친밀한 눈빛을 가지고 있는 귀공자 타입의 청년으로 앉아 있다. 여자라면 첫눈에 반할 만큼 고혹한 멋이 있다. 처음 인상은 나보다 오년쯤 위로 보였다.
마주 앉아 잠시 서먹함이 감도는데 그가 배낭에서 불쑥 조니워커 양주를 꺼낸다. 케이스에 담긴 계란도 꺼내고. 장조림도 꺼낸다. 조니워커 병뚜껑에 한 잔 따라 건네주며 웃는다.
‘ Nice to meet you. ’
‘ Me, too! ’
한 시간쯤 대화를 나눴나 싶다. 그 사이 병은 삼분의 일이 줄고, 우에마쓰는 한 잔 밖에 마시지 않았다. 처음엔 안주에 손을 대지 않았다. 몇일 산행을 계획하고 산꼭대기까지 지고 올라온 걸 내 놓았다고 먹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안주를 자꾸 권하고. 어느덧 병은 반이 비고, 그는 졸린 듯 연신 하품을 해댄다. 난 결의형제를 제안하고 내 건배 제의에 우에마쓰는 잠깐 입에 대는 시늉을 한다. 그 다음부터 기억이 없다. 일어나 보니 이 모양이다. 이런 실수를 했으니 이젠 그와 헤어져야 할 거다. 여행이란 게 만나고 헤어지는 거. 뭐 지내다보면 또, 더 멋진 친구를 만날 거다. 의형제야 다시 맺으면 되고. 우의가 깨졌다고 안타까워 할 거는 없다, 그런 변명 같은 위안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온 몸이 떨려 숨을 쉬기 힘들다. 이러다 저체온으로 죽지 싶다. 차라리 드센 바람을 맞더라도 움직이는 게 나을 거다. 바닥에 고인 물에 빠진 옷가지들을 건져 내 짜서 입고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폈다. 어제 밤은 어두워 몰랐는데 새벽빛에 싸인 산 전체는 용트름을 하며 저 밑바닥으로부터 가파르게 치솟아 오르는 듯 장엄하다. 그 사이를 물줄기가 소용돌이치며 부서져 날린다.
날씨가 개일 기색은 없고 한동안 이 모양일 것 같다. 산장에서 머물지 않는 것이 그동안 지켜온 내 산행의 원칙이지만 이쯤이면 다른 방도가 없다. 산장으로 내려가면 따뜻한 난로불이 있을 거다. 100여 m쯤 아래 산장이 어스름한 빛 속에 아담하다. 마당에 수도도 보이고 사람도 서넛 나다닌다.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TV 앞에 모여 앉아 일기예보를 보고 있다. 난로는 TV 앞 홀의 한가운데 있다. 내 모양새가 꼴이 아닌 지라 사람들이 몰린 난로 가까이 가지 못하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숨듯 앉았다. 그래도 훈기에 숨이 트인다. 실컷 숨을 몇 번 들이마셨다. 이젠 정말 살았다 싶다.
두 시간쯤 지나 배낭을 짊어진 우에마쓰가 산장으로 내려온다. 겸연쩍게 웃었더니 못 본 척 한다. 지난 밤 때문인지 그의 표정이 무겁게 닫혀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주저할 내가 아니다. 뻔뻔하게 웃으며 아침인사를 건네고 마지못해 눈빛을 마주치는 그에게 비옷을 빌려 입고 다시 텐트로 올라가 짐을 꾸렸다. 그사이 폭풍이 그치고 산장이 두꺼운 구름에 갇혔다. 육칠미터 앞이 안 보인다. 비옷을 입으니 바람도 안통하고 체열도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배낭을 추리고 산장으로 나려와 산장 매점에서 간이 비닐 비옷을 사 입었다. 그 사이 아침을 해 먹은 우에마쓰가 다가 왔다.
‘ Will you go down? ’
고개를 끄덕였다.
‘ Immediately after we meet is goodbye. ’
‘ Don’t you go down? ’
‘ I'm going down, when the fog disappears. ... I must wait. ’
어제의 기억이 새롭다. 절벽과 같은 산비탈을 로프나 쇠사다리를 이용해 오르기도 하고 자갈 비탈에서는 미끄러져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잠깐 실수하면 오래 굴러 떨어질 만큼 험한 산이다. 그런데 이 안개 속에서.
‘ I have to go down, because my schedule is full. ’
그건 핑계다. 어젯밤 실수 때문에 얼굴 대하기가 민망해 빨리 떠나려는 것이 속마음이다. 그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어색함이 말 몇 마디에 풀린 듯하다. 구름은 발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점점 두껍게 말린다.
창밖의 구름 속에서 불쑥 두 사람이 튀어 나온다. 모두들 놀라 그들을 주시한다. 한 명은 어린 소년이다.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배낭을 내리고 비옷을 벗고 난로로 다가간다. 소년은 열살 정도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중년의 사내와 소년은 말없이 30여분을 난로 곁에 앉아 몸을 데운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짙은 구름 속에 험한 산을 타고 온 소년. 대단하다. 아마도 아버지와 아들인 것 같은데. 그들에게 산은 몹시 익숙한 모양이다. 아니라면 이런 구름 속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을 탄다는 것은 무모하다. 작은 체구인데도 중년의 사내는 듬직해 보인다.
TV 는 너무 멀어 보이지도 않고 달리 할 일도 없다. 30여분 내내 그들을 지켜본다. 그들은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그저 TV 일기예보를 보고 있다. 마침내 아버지가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소년에게 가벼운 고갯짓을 한다. 가급적 말을 아끼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소년이 일어선다. 중년의 사내도 따라 일어서더니 구석진 테이블로 가 배낭을 풀고 코펠을 꺼낸다. 아버지는 버너에 불을 붙이고, 소년은 쌀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들은 밥을 하는 동안 가끔씩 연인들처럼 나지막이 속삭인다. 아버지는 중후해 보이는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키득키득 아이처럼 웃지만, 소년은 웃지 않는다. 소년은 입을 굳게 다물고 여리고 맑은 눈길로 그런 아버지를 올려 본다.
소년이 올 수 있을 정도라면 못 갈 것이 없다,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섰다. 아무도 산장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우에마쓰는 만류하지 않는다. 그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웃음이 어색하고 불안하다는 걸 나도 느끼고 있다.
‘ see you... ’
그가 손을 내민다. 손을 잡았을 때 그가 턱짓으로 소년과 아버지를 가리킨다.
‘ when I am middle school student. I came to this mountain with my father. Like now, the mountain was stuck in thick clouds, my father did not walk even one step, until the fog disappears. ’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 떠나는 것은 그런 거와는 관계없다. 그는 산장 밖 마당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든다. 좋은 놈.
가고자하는 목적지는 없다. 오사까에서 중부 내륙으로 들어오다 방향을 북쪽으로 잡았는데 멀리 이삼백 미터쯤 된 기다란 빙폭이 보여 가까이 가 본다는 것이 조금씩 접근하다 올라오고 만 것일 뿐. 우에마쓰의 지도를 보면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는 것 말고 내려가는 길이 두 군데다. 이박 삼일 코스, 일박 이일 코스, 일박 이일 코스를 택했다. 서둘러 몸이고 배낭이고 정비해야 했다. 일박은 걸으면 된다. 짧은 코스니까 당연히 길이 가파르리라 생각했다.
구름 속 산책은 오 미터 앞이 안 보인다. 나침판도 지도도 시계도 없는데 흰 만년설에 간혹 모습을 드러낸 검은 바위 위로 붉은 페인트로 칠한 화살표가 유일한 길잡이다. 20여미터를 내려오자 바위가 없어졌다. 만년설 위로 사람들이 밟아댄 흔적이 길잡이다. 얼은 눈으로 덮인 만년설의 하얀 구름 속. 만년설의 경사는 60- 70°정도다. 산 아래서 봤을 때는 수직에 가까운 빙폭처럼 보였던 눈 계곡이다. 빙폭은 아니라지만 아이젠도, 스틱도 ,등산화도 없는 내게 60° 경사의 만년설은 당황스럽다. 거꾸로 올라 이박삼일의 길을 택할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우에마쓰와 다시 마주치는 것은 쪽팔리다. 한번 떠나왔는데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고. 조금 더 내려가면 흙바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이었다. 테니스화 뒤축으로 얼은 눈을 쿡쿡 파내서 홈을 만들어 뒤축을 처박고 한 발 내려딛고 한 발 옮기고, 그렇게 조금씩 내려갔다. 테니스화를 신고 15 Kg 배낭(물에 젖어 아마 20 Kg)을 지고 70° 경사의 빙판을 내려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구름 속이라 앞을 볼 수 없어 그렇지, 사람들의 발자국 흔적이 있으니 만년설은 곧 끝날 것이다, 믿고 고집스럽게 내려갔다. 그러다 미끄러졌다.
근래 테니스 선수들과 삼년을 다진 운동신경이라 미끄러져 내리는 순간 몸을 돌려 바짝 만년설에 밀착해 붙었다. 다행히 일 미터쯤 미끄러져 내리다 멈췄다. 계속 미끄러졌다면 구름 속에 얼마나 떨어져 내렸을까? 운이 좋으면 좀 미끄러지다 흙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놀란 가슴에, 우에마쓰와 다시 마주쳐야한다는 창피도 무릅쓰고 거꾸로 오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이젠도 스틱도 없는 상황에서 테니스화로 빙벽을 오른다는 것은 꿈이다. 사지를 만년설 위에 바짝 붙이고 기어보지만 50cm 도 올라갈 수 없다.
일단 배낭을 벗었다. 배낭을 아래로 떨어뜨리기로 했다. 운무에 싸인 만년설이 어느 만큼인지 알 수도 있을 거고, 배낭의 무게 때문에 중심을 못 잡을 염려도 없을 거고. 배낭을 만년설 위에 얹고 놓고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스르르 배낭이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귀를 대고 기다렸더니 한참 후, 쿵, 쾅, 퍽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으로 봐서 이삼백 미터는 족히 될 성 싶다. 내려온 길 빼고도 60-70°경사의 만년설이 이삼백 미터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곤 만년설을 타고 내리는 것 하나뿐이다.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 배낭까지 저 아래 있으니. 그나마 식량도 배낭 속에 있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스틱과 아이젠으로 무장한 일본사람 둘이 만년설을 오르고 있다. 사람을 만나자 우선 살았다는 생각부터 든다. 저절로 던진 환한 미소로 ' こんにちは! ', 인사를 보냈다. 그들도 반갑게 손을 흔든다. 그들은 내 매무새를 살피더니 어처구니없는 모양이다. 배낭을 떼 버린 내 차림새는 영락없는 동네 뒤 산을 산책하는 차림이다. 테니스화, 땀과 물에 젖은 반소매 남방, 헐렁한 바지.
사람을 발견했다는 것은 이 만년설 어딘가에 길이 있다는 뜻이다. 희망이 보이니 내 얼굴엔 생기와 자신감이 넘쳐흐를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뜻밖에 그들이 오르던 길을 바꿔 나를 쫒아 내려온다. 구름 속에 그들도 길 찾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마 그들은 나를 이곳을 잘 아는 사람쯤으로 여기고 의지하기로 한 모양이다. 산 속에 은거해서 사는 사람 정도로. 어쨌거나 나로서는 그들이 있는 것이 안심이 되는 지라 믿지 마라, 그들을 마다할 수도 없다.
그들을 끌고? 마침내 만년설의 마지막에 도착했다. 편편한 바위가 10평방미터 쯤. 그런데 그 끝은 백 미터 정도 되는 수직의 아득한 폭포다. 빙벽 양쪽은 깎아지른 절벽.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두 사람은 고개를 살레 살레 흔들더니 만년설을 타고 다시 오른다. 괜한 고생만 했다 하는 표정이다. 가벼운 미소로 그들을 보냈다.
배낭은 폭포가 시작되는 바위틈에 쳐 박혀 있다. 겉은 찢어지고.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된 것은 모두 깨지고, 코펠은 찌그러졌다. 난 아직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하다.
그 사이 시야가 확 트였다. 절벽과 만년설 틈은 지열로 녹아 넓이 일이 미터, 깊이는 알 수가 없는 크레바스다. 떨어진다면 올라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괜한 자존심으로 환한 미소를 보내던 여유 있는 내 표정에 일본 사람들은 구조대를 보낼 생각도 안할 것이다.
길은 둘이다. 일본 사람들의 눈치를 믿고 앉아 무작정 구조대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발아래 크레바스를 두고 절벽으로 기어오르든지.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구조대가 올 리 만무하니. 배낭은 포기하고 돈하고 여권만 챙겨 절벽으로 붙었다. 절벽은 만년설의 물기로 삭아, 돌이고 풀이고 잡기만 하면 부서지고 뽑아져 흘러 내렸다. 그래도 손을 박고 발을 박으니 조금씩 오를 만은 했다. 미끄러지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만히 앉아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기어오르는 데만 열중했다. 얼마쯤 오르다보니 배낭이 아깝다, 이 정도면 배낭을 메고 오를 것도 같다. 다시 내려가 배낭을 걸머졌다. 일 미터쯤 뛰어 절벽에 붙어야 하는데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다. 중심잡기도 그렇고... 꿍쳐 박히듯 건너 뛰어 옆으로 붙었다.
얼마쯤 올랐더니 만년설을 기어오르는 그들이 보인다. 여전히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모양이다. 그냥 위로만 오르면 되는데... 다시 한참을 오르다 제법 큰 바위에 올라 기대고 한숨을 돌리는데 저만큼 위 나뭇가지에 붉은색 천이 길게 축 늘어져 있다. 길 표시다.
그랬다. 길은 만년설을 조금 내려오다 절벽 쪽으로 나 있는 것이었는데 구름 속이라 그걸 못보고 만년설의 가운데를 타고 끝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들에게
' ここ, 道. '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내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을 보고 다시 절벽을 올랐다. 결국 먼저 절벽으로 난 길에 오른 내가 배낭은 감추어 두고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은 나와 합류하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며
' 本当に ありがと. '
나는 씩, 웃고, 손사래를 치며 도망치듯 그들을 떠났다. 그들에게 이 산을 잘 아는 뒷동네 사람이어야 해서.
그들과 헤어진 지 십 분이 안 되어 어제 폭풍의 여력인지 폭우가 숲길에 쏟아지기 시작한다. 장대 같은 비속에 숲길을 걸었다. 주변이 어두워졌다. 열 시간쯤 걸었을 거다. 비옷을 입은 덕분에 흠뻑 젖었지만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추운 건 몰랐다. 어젯밤 술 마시고 토하고 난 후 오늘 밤이 이슥하도록 아무 것도 먹지 못했지만 배고프지도 않다. 살아 나왔으니... 입술로 흘러드는 빗물을 조금씩 받아 마셨다. 그걸로 해갈과 해장이 된 듯하다. 하긴 이런 분위기에 배고픔은 사치다. 사람이 사는 지역에 도달하기만 바랄 뿐. 도중에 산장이 한군데 있었지만 폐쇄된 지 오랜 듯 낡고 허물어졌다. 깨진 손전등도 켤 수 없어 밤이 깊을수록 속도가 늦어진다.
차가 다닐만한 포장길을 찾은 건 한참 깊은 밤이다. 자정 어름일 거다. 그러니 폭우속에서 열여섯시간쯤 걸은 거다. 길 위에 그냥 주저앉았다. 오 분 정도 지나자 몸이 떨려오기 시작해 다시 걸었다. 운 좋게 버스가 나타난다. 손을 들어 흔드니 세워준다. 승객은 없다. 승객을 떨구고 돌아가는 관광버스 같다. 산길에서 몇 번을 미끄러져 진흙투성이라 차마 의자에 앉을 수 없다. 배낭만 통로에 내려놓고 서서 가까운 마을에 내려달라 했다. 운전사가 차를 멈춘다. 운전석을 떠나 밖으로 나가더니 짐칸에서 비닐을 들고 와 의자에 깔아주며 앉으라 한다. 폐 끼치지 않고 서서갈 수도 있었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무례한 것 같았다. 내 행색도 그만큼 가여운 모양이고. 진흙과 비에 젖은 몸을 의자에 앉혔다. 기사는 히터를 틀어준다. 한여름에 히터라... 이십 분쯤 가자 불빛이 보인다.
버스는 호텔 앞 광장에 멈춘다. 100엔을 내밀었지만 기사는 웃으며 돈을 받지 않는다. 6층의 제법 깔끔한 호텔이다. 이 모습으로 들어서기 미안하다. 신발과 온 몸에 묻은 진흙을 호텔 앞 하수구에 들어가 대충 씻었다. 과연 손님으로 받아줄까? 안 받아주면 다시 걷는 수밖에 없다. 인연을 만나 도움을 받을 때까지.
‘ Economic room. please! ’
프론트의 건장한 젊은 청년은 덤덤한 얼굴로 다행히 받아 준다. 호텔비가 만 원 이상이면 머물 수 없다. 지금껏 지하인도나 공중전화박스, 공원 같은데서 밤을 지냈는데.
‘ Twenty hundred yen.’
다행히 만 원 정도다. check in 하는데 로비의 카페트 위로 흙탕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민망하지만 부끄러워 할 건 없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럴 만큼의 여정이었다. 욕조의 뜨거운 물에 몸부터 녹였다. 졸음이 밀려든다. 식사도 해야 하는데... 우에마쓰처럼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려야 했을까?
1990 년 여름.
귀국해 생각해 보니 일본 북알프스의 上高地(가미코지) 에서 穂高岳(호타가다케)을 올라 내려간 것 같은데 그냥 추정일 뿐이다.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도도 없었으니. 어쨌건 일본여행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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