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지났는데 어쩌지? 이런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유통기한이 뭐지? 유통기한은 유통업자와 관련이 있을 뿐 소비자와 직접 관련이 없다. 실험실에서 얻은 데이터에 혹시 모르니까 0.8을 곱해서 20퍼센트 깎은 숫자다. 그냥 숫자에 불과하다.
김밥에 들어있는 단무지는 발효식품이므로 급속하게 효모가 퍼진다. 유통기한이 짧을 수 밖에. 단백질이 세균을 만나면 독성을 띠게 된다. 덜 익은 햄버거 패티 말이다. 재탕한 식용유는 공기와 접촉하여 산패된다. 삶은 나물이 공기와 접촉하면 비타민 성분이 파괴된다.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유통기한이 큰 의미는 없는게 겨울과 여름의 계절 차이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세균은 몇 백배가 된다. 방부제가 없어도 햄버거가 썩지 않을 수 있다. 취식기한이 아니라 유통기한인데도 사람들이 숫자에 목을 매는 거다.
사이비종교와 다를 바 없다. 무슨 유기농이니 생태니 성찰이니 진정성이니 하는 것도 대개 이런 식의 사상누각이다. 허구 위에 허구의 탑을 쌓는다. 그냥 숫자라고. 유통기한은 0.8을 곱해준 숫자일 뿐 단무지, 식용유, 단백질, 비타민을 개별적으로 고려하는게 맞는 거다.
문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까지 읽고 판단이 선 사람은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독자는 뭐? 발효문제, 단백질 독성, 식용유 산패, 비타민 문제를 일일이 판단하라고? 그렇게는 못하겠네. 그냥 유통기한 지나면 버리고 말지. 이럴 거다. 세지 않는게 나이스다.
기본적으로 세고 싶지 않다. 반대로 나는 세고 싶은 거다. 그런 것을 대충 뭉개고도 잠이 오냐? 문명과 야만 사이의 장벽은 크다. 우리는 쉽게 셈을 배우지만 아프리카는 다르다. 우리는 장벽을 쉽게 넘기 때문에 요소요소에 장벽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UFO만 해도 딱 봐도 가짜잖아. 눈으로 봤잖아. 설명이 필요한가? 필요하다. 그 많은 UFO 사진들 중에 필자의 눈길을 잡아끈 사진은 하나도 없다. 비슷하기라도 해야지. 일단 무게중심이 안 맞아서 어색하다. 전진하는 물체는 무게중심이 전방에 있어야 자연스러운 거다.
그 사실만으로도 괴롭다. 고통을 준다. 그런데 설명하기 어렵다. 그림을 그리기도 그렇고. 물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실험을 해봐야 안다. 실제로 그 높이에서 그 속도로 움직일 때 어떻게 되는지. 가짜는 분별하기 쉽다. 세상은 맞물려 돌아간다. 얽힌 부분 때문이다.
얽혀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가짜다. UFO가 움직이면 거대한 소닉붐이 일어나고 지그재그 비행에 외계인은 7G 이상의 관성저항을 받아 허리가 깨져서 죽는다. 그거 해결하는 기술은 외계인도 없다. 그러므로 UFO가 있다면 로봇들이 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같다. 1픽셀만 어긋나도 어색하다. 필자가 자동차 디자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그렇다. 나는 매우 괴로운데 다른 사람은 괜찮은가? 나는 괴로워서 싸이월드에 가지 않았다. 결국 망했다. 나만 괴로운게 아니었구나? 그런데 왜 아무도 지적 안해?
그렇게 하면 망하는데? 싸이월드의 그 많은 직원들은 뭐했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인가? 현기차 직원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라는 말인가? 디자인이 고통을 준다. 문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발소 그림만 해도 그렇다. 이건 그림이 아니야?
왜 아니냐고? 그림은 맞다. 그런데 아닌건 아닌 거다. 사실이지 설명하기 어렵다. 뽕짝은 음악이 아냐. 왜 아닌데? 나무위키 밥 로스 항목을 보면 밥 로스 그림도 예술이라고 확언해 놓았다. 나 같은 사람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물론 밥 로스 그림도 예술은 예술이 맞다.
그런데 솔직히 아닌건 아니잖아. 그 부분을 설명하기 어렵다. ART라는 말은 어렵다는 의미가 있다. 밥 로스는 쉽다. 쉬우면 안 되는 거다. 그것도 예술은 예술인데 예술은 아냐. 예술의 본령과 맞지 않다구. 본령이 뭔데? 유령이냐? 현대예술의 발전방향과 맞지 않다는 거.
예술의 가치 판단은 방향성이 중요하다. 김봉남 패션도 그렇다. 그게 행위예술이다. 물론 딴지일보가 B급문화를 띄우는 분위기에 내가 엘리트랍시고 굳이 찬물을 끼얹을 이유는 없다. 과학은 주술과 다르고 예술은 상업과 다르고 그 사이의 애매한 틈새시장도 있는 거다.
이것을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그건 예술이 아냐. 그건 그림이 아냐. 뽕짝은 음악이 아냐. 하고 단칼에 자르는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예술과 상업 사이에 중간지대도 있다면서 왜 단칼에 자르려고 하지? 얽혀있음 때문이다.
뒤에 따라오는 처치곤란한 곁가지들 때문이다. 그냥 눈으로 봐도 지구의 곡률이 뻔히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다. 문제는 얽혀있음이다. 그걸로 끝나는게 아니다. 왜 그 부분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지? 필자가 수평선을 처음 보았을 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수평선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그 배후의 부재 때문이다. 존재를 설명하기 쉽지만 부재를 설명하기 어렵다. 없잖아. 왜 없냐구? 뭐가 없는데? 거시기가. 물이 찰랑거리고 넘치는데 담는 물그릇 테두리가 없다. 문제는 아무도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는 거다. 거시기가 문제다.
수평선은 칼같이 잘려 있다. 물이 넘치는게 뻔히 보인다. 옛날 선원들도 바다끝까지 가면 낭떠러지 폭포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는데 나만 그것을 느낀게 아니었다. 지구가 평평하면 그 잘린 선이 보이면 안 된다.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꽤 두려운 것이다.
UFO가 출현했을 때 뒤에 따라오는 여러가지 자연현상들의 부재가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의 선이 뭉개져야 하는데 왜 깔끔하지? 선이 뭉개진 테두리는 어디로 갔지? 물그릇처럼 안전하게 느껴질 무너미 테두리선 말이다. 수평선 위에 가멸한 선이 하나 더 보여야 한다.
이런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처음 봤을 때 당황스럽지 않았다는 말인가? 심쿵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고도에 따라서 선이 달라지는게 이상하지 않다는 말인가? 일곱살 쯤 경주 남산에 올랐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어마어마한 대도시를 발견했다.
서울이다! 하고 외쳤는데 아니란다. 그럼 서울은 어디지? 소백산에 가려서 안 보인다고? 그럼 소백산은 어디에 있어? 나만 충격받았나? 멀어서 안 보이는 것은 알겠는데 그 안보이는 형태는? 부재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가림막의 경계를 남겨야 한다.
알맹이가 없으면 쭉정이라도 보여야 한다. 지구가 둥근 것은 높이에 따라 수평선이 다르게 보이는 정도로 알 수 있다. 바다 색깔만 봐도 표시가 난다. 거리에 따라 색이 변하는 정도가 고르지 않다. 바람이 부는 날은 수평선에 파랑이 보인다. 울퉁불퉁 한 그게 이상한 거다.
고도를 높이면 매끄럽게 선으로 떨어진다. 왜 입체가 되었다가 선이 되었다가 바뀌지? 일몰후와 일몰전의 박명으로도 알 수 있다. 여름과 겨울의 계절 차이가 있다. 여름에는 박명이 오래간다. 일출이나 일몰 속도가 의외로 빠르다. 3분이면 완전히 수평선으로 넘어간다.
커다란 해가 스르르 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해가 움직이는 것은 자전거가 움직이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속도다. 개기일식 때는 순식간에 캄캄해진다. 지구가 평평하면 박명은 없어야 한다. 전깃불을 끄듯이 갑자기 캄캄해져야 한다. 해는 엄청나게 빨르고 박명은 느리다.
지구가 둥근 증거는 많고 이런 것은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얽혀있음의 부재다. 기차가 사라지면 철도역도 없어진다. 지구가 평평하면 많은 현상들이 연동되어 나타난다. 그 연동되는 현상들의 부재를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말하지 않으므로 인간들이 괴력난신, 음모론, 허무맹랑, 경거망동, 집단 히스테리, 마녀사냥에 빠지는 거다. 과학과 주술의 차이는 크다. 우리는 보이는 부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얽혀있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실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고 거짓은 설명하기 쉽다. 단 나처럼 꼬장꼬장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면. 속아주고 싶어서 환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속이는 사람이 없겠는가? 수요가 있는데 어찌 공급이 없겠는가? 어차피 인간은 모든 경우의 수에 맞는 거짓을 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