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강원교원작가상 수상 작품(동화 : 2014)
아름다운 선물
“뻐꾹.”
“뻐꾹.”
솔미네 뻐꾸기 괘종시계가 어느 새 열두시를 알려 줍니다. 바깥에는 ‘윙윙’ 바람 소리가 스쳐지나 갑니다. 솔미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창문 커튼을 젖혀 봅니다. 온통 하얗게 뒤덮인 평화스런 모습들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어머나, 눈이 내렸구나. 아유 멋있기도 해라.”
행여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할까봐 아무도 몰래 살금살금 내린 눈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더욱더 반짝입니다.
‘멋있는 크리스마스가 될 거야. 그래 맞아,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빨리 마무리를 해야겠어.’
솔미는 한동안 바라다보던 새하얀 바깥 모습에서 눈을 돌립니다. 그리곤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솔미는 지금 뜨개실로 예쁜 목도리를 짜고 있습니다. 빨간 색에 흰줄이 들어있는 아주 보기 좋고 예쁜 목도리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 날 누구에게 줄 선물입니다. 그게 누군지 아직은 얘기할 수 없지만 빨간 목도리를 받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보기 좋고 예쁘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 목도리에는 한올한올 쌓은 솔미의 따스한 마음과 훈훈한 정성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느 목도리보다 값진 선물이 될 것입니다.
솔미가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봄부터 입니다. 6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진로적성활동 부서를 새로 조직하였습니다. 산문부, 동시부, 영어회화부, 컴퓨터부, 수예부, 과학부, 그리기부 등 서른 개가 훨씬 넘는 부서 중에서 솔미는 ‘수예부’에 들었습니다.
“얘, 내년이면 중학교에 갈 텐데 나랑 같이 영어회화부에 가자. 응?”
짝꿍 혜경이가 여러 번 졸라지만 솔미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습니다.
저녁 시간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오늘 학교에서 진로적성활동 부서를 새로 짰는데 저는 수예부에 들었…”
하고 솔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엄마가 말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아니 너 정신 나갔니? 영어회화나 과학부를 가야지 수예부에 가서 무얼 하겠다고…….”
역시 솔미가 예상했던 대로 엄마는 펄쩍 뛰었습니다.
“당신 아이에게 무슨 얘길 그렇게 하는 거예요? 솔미야 참 잘했다. 여자 아이는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단다.”
솔미 아빠가 다정하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역시 우리 아빠가 최고야!”
아빠의 말을 들으니 잠깐 동안 우울했던 솔미의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풀렸습니다. 그때부터 솔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다가오는 진로적성활동 시간을 무척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수예부에 참 잘 왔어요. 여러분의 고운 마음을 한올한올 새롭게 엮어 드리겠어요.”
나긋나긋한 수예부 선생님의 목소리는 동화 속에 나오는 선녀님의 목소리처럼 곱고 다정하게 들렸습니다. 솔미가 뜨개질을 배운 것도 수예부 선생님에게서 이었습니다. 뜨개질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솔미는 멋진 생각을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내 뜨개 실력도 발휘할 겸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도리를 선사해야겠어. 내가 짠 목도리를 받으면 가장 기뻐하고 소중하게 간직할 분에게 선물로 드려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부터 솔미는 아무도 몰래 조금씩 조금씩 목도리를 짜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선물을 받기만 하던 솔미가 누구에게 선물을 주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물을 받는 것도 기분이 좋지만, 선물을 주는 것이 훨씬 기분이 좋구나.’
그러나 이 소중한 비밀은 솔미 몰래 살짝 새어나가고 말았습니다. 솔미가 학교에 가고난 후 솔미 방을 청소하던 엄마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아니, 우리 솔미가 예쁜 목도리를 짜고 있구먼. 아유 귀여운 것.’
지난봄에 수예부에 들었다고 야단치던 일도 까마득히 잊은 듯 솔미 엄마는 아직 다 짜지 않은 목도리를 두르고 거울 앞에 서 봅니다.
‘예쁘기도 해라. 이건 틀림없이 나를 줄 거야.’
솔미 엄마는 저절로 신바람이 났습니다. 저녁이 되자 엄마는 하루 종일 품고 있던 궁금증을 견디지 못해 솔미를 불렀습니다.
“예, 솔미야. 네가 짜던 그 빨간 목도리 누구 줄거니?”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크리스마스 날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었는데…….”
무슨 큰 잘못을 하다 들킨 양 솔미의 양볼이 발갛게 변했습니다.
“누구에게 드릴건지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어요. 살짝 힌트를 드리자면 그 분은 저를 무척 아껴주세요. 그리고 목도리가 꼭 필요한 분이기도 하고요. 그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아빠 엄마 죄송해요.”
이렇게만 얘기해 놓고 솔미는 얼른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더 늘어나기만 했어요.”
엄마가 아쉬운 듯 말하였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어. 그 사람이 당신은 절대 아니라는 거야.”
“어머 이이 좀 봐. 솔미를 아껴주고 목도리가 꼭 필요한 사람이 저 말고 또 누가 있어요?”
“글쎄. 당신은 아니야. 혹 나라면 모를까?”
“어디 두고 봅시다. 크리스마스 날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까.”
아빠와 엄마는 빨리 크리스마스 날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후에도 솔미에게 선물 받을 주인공이 누구인지 전혀 낌새를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솔미 아빠와 엄마가 그렇게 궁금해 하는 사이 드디어 크리스마스 날이 다가왔습니다. 거리에는 구세군 아저씨의 종소리가 딸랑거리고 가게마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습니다. 반짝이 전구들도 반짝반짝 분위기를 돋우었고, 가는 곳 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은은히 울려 퍼졌습니다.
밤이 점점 깊어 갑니다. 솔미 아빠 엄마는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벌써 10시가 넘었습니다.
“여보 우리 이러지 말고 솔미가 좋아하는 군밤이나 사러 갑시다.”
참다못한 솔미 엄마가 말했습니다.
“그게 좋겠구려. 그런데 여태까지 군밤장수 할아버지가 들어가시지 않았을까?”
“그럼요.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븐데 벌써 들어 가셨겠어요? 아마 오늘은 12시 넘어까지 군밤을 팔 거예요.”
솔미 아빠와 엄마는 다정스레 팔짱을 끼고 시내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군밤을 팔고 있는 할아버지께로 갔습니다. 솔미 엄마의 생각대로 아직까지 군밤장수 할아버지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군밤의 구수한 냄새가 콧속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군밤장수 할아버지 앞에 다가가던 솔미 아빠 엄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음을 우뚝 멈추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할아버지 목에는 예쁜 목도리가 둘러져 있었습니다.
“군밤 많이 파셨어요? 할아버지, 그 목도리 참 예쁘군요. 얼마주고 사셨어요?”
“웬걸요. 사다니요? 조금 전에 늘 이 앞을 지나다니던 예쁜 여자 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내 목에 둘러주고 갔어요. 뉘 집 아이인지 어쩜 그렇게 착하게 키웠는지……. 내 오늘 기분이 좋아서 군밤을 듬뿍 주리다.”
할아버지는 연신 싱글거리며 평소보다 두 배 정도는 많게, 봉지 가득 군밤을 담아 주었습니다.